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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뗏목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6년 2월
평점 :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두 번째다.
앗! 소리 나게 특이했던 그 책이 다시 생각난다.
<돌뗏목>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전력이 있는 만큼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겨우 두 권 읽어놓고
그의 작품세계가 어쩌니 저쩌니 말할 수는 없지만
두 권을 읽은 결과 내가 느낀 건
주제 사라마구는 인간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세운 다음
혼돈 속에서 인간 본성을 찾는 걸 즐기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극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심리 조명이 탁월하다.
<돌뗏목>은 이베리아 반도가 유럽에서 떨어져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베리아 반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두 나라가 위치해 있으면서
대체로 1차 산업에 치우쳐 개발은 뒤떨어진 곳.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은 제각기 맡은 바 책임이 있는데
차례차례 자신이 등장해야 할 때를 정확히 연습한 줄인형을 닮았다.
1. 주제 아나이수 : 찌르레기 떼가 따라다니고
2. 조아킴 사사 : 돌을 바다에 던지가 파도가 해변에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3. 페드로 오르세 : 발로 바닥을 세게 구르는 바람에 땅이 떨리다
4. 조아나 카르다 : 느릅나무 가지로 땅에 금을 그었더니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5. 마리아 과바이라: 파란 양말을 풀기 시작했는데 그 실이 양 백 마리의 털을 깎은 듯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그리고 성대 없는 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그들은
어느 순간 모두 함께 모여 여행을 떠나게 된다.
각자가 행한 일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기도 하고,
반도가 떠다니는 모습을 확인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인생은 지속된다.
(아니다. 돌뗏목 위에서 -반도는 그 순간 흐르고 있는 배와 같았으니)
주제 사라마구는 때때로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느냐고
엄살을 부리기도 하고,
쉼표나 마침표만 쓰는 게 미안하기도 했는지
가끔은 안 해줘도 되는 안내방송을 다시 한 번 하는
버스운전사 같기도 하다.
한 번에 끝까지 읽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중간에 느낀 흥미진진함을 끝까지 끌고 가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그리고 낱말이 가진 의미를 일일이 주석을 통해 알아야 한다는 건
언제나 짜증나는 일이다.
우리말처럼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의미 파악이 된다면
나는 훨씬 더 즐겁게 이 책을 읽었으리라
유럽 속에서 이방인처럼 겉돌던 두 나라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떨어져 나와 헤매는 동안 희망을 갖게 된다.
모든 여자들이 임신을 했다. 새 생명은 희망이다.
그 희망을 바탕으로 두 나라는 떠돌기를 멈추고
유럽 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힘차게 전진하게 되겠지.
'중요한 건 그 순간이다. 우리는 오직 그 순간에만 우리 역할을 하오'
책 속 페드로 오르세가 한 말이다.
이 순간에 내 역할을, 나는 제대로 해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