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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왼손 ㅣ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서정록 옮김 / 시공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 속에 들어있는 책을 슬쩍 보고 지나치는 순간 기본적인
줄거리가 생각나면 참 좋은데 ‘결말이 어떻게 되지?’
하고 되묻게 되면 그 순간부터 짜증이 시작된다.
이 책이 그랬다. 2년 전에 읽었으니까 정도로는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새 책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나 요즘 들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책을 왜 읽는가’
라는 물음에 스스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회색 표지에 흰색의 눈 결정을 으스스하게 나타난 책 표지는 앞으로 내가 읽게 될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 것인지를
말해 주는 듯하다.
빛의 전달자인 엔보이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카르하이드로 돌아가는 길은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반지를 버리러 가는 그 길고 지루한 여정을 닮았다.
거긴 뜨겁고 여긴 무척 차갑고의 차이가 있을 뿐...
겐리 아이는 행성 겨울(게센)을 우주에 존재하는 83개의 행성들과
교역을 하라고 권유하기 위해서 파견되어 지구(에큐멘이라고 지칭되는)에서 온 사절(엔보이)다. 그가 도착한 행성 겨울은 아주 특이한
인류가 존재한다.
양성..남성과 여성을 한 몸에 갖고 있는데 보통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아무런 성적 욕구를 느끼지 않다가)
케머주기(약 26일)가 되면 상대편에 의해 남성으로든, 여성으로든
성이 구현되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어떤 때는 여성이 되어 아이를 낳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빠가 되는 이 과정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여성으로, 남성으로 구분지어 상대하면서 느끼는 불편함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행성 겨울에는 카르하이드와 오르고린이라는 두 나라가 존재하는데 어딜 가나 끊이지 않는 권력 싸움에 휘말려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카르하이드에서 왕에 의해 쫓겨났던 에스트라벤이 구원의 손길을
주어 그 넓고, 춥고 황량한 고브린 빙하를 함께 넘게 되는 것이다.
어둠의 왼손은 그 모든 것을 가두고 있었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사람들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남성과 여성, 사랑과 미움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다 그 반대편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그런 면에서는 <어린왕자>가 이야기했던 부분과
닮아 있다.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아. 진짜 중요한 건 눈으로 보이지 않아.”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케머 연인처럼
함께 누워있다
마주 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