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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ㅣ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임신이라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10개월 동안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는 일도 내 맘대로 안 되고,
움직임도 편안하지 않지만 그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
힘든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는 망각 증세 덕분에
여자들은 다시 임신을 한다.
하지만 만약 20개월 동안 임신인 상태로 지내야 한다면?
흠..생각도 하기 싫다.
뭐, 여자와 남자의 생각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남자가 밀실에서 사라진 일보다는 '20개월째 출산을
못하는' 이 부분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누구인지 아직 모르는 상태의 '그녀'가 불쌍했다.
1950년대.
소설가이며 삼류 기사로 연명을 하는 세키구치와
고서점을 운영하며 귀신을 떼어내거나 악령을 퇴치하는
부업을 갖고 있는 박학다식한 교고쿠도.
그가 보던 책에서 '우부메'의 모습을 발견하고 기겁을 한
세키구치는
'회임을 했으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은 자를 그대로 들에
내다 버려, 태내의 아이가 죽지 않고 들판에서 태어나면
어머니의 혼백이 형태를 이루어 아이를 안고 기르며 밤에 돌아다니는데, 그 아기의 울음을 우부메가 운다고 한다. 그 모습은 허리
아래는 피에 젖어 있고, 힘이 약하다.'
라는 설명을 보다가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키구치 주변의 독특한 인물인 탐정 에노키즈와
형사 기바 들의 등장으로 사건은 좀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오래된 가문인 구온지가에 아름다운 두 딸 교코와 료코.
-관측한 시점에서 성질이 결정되는 걸세
-관측을 할 때까지는 확률로밖에 인식할 수 없는 거야
-자네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유령처럼 환상일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과 똑같이 존재하는 걸세.
교고쿠도의 이 말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밀실에서 사라진 그 남자는 사라진 게 아니라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 집안 사람들과 세키구치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교고쿠 나츠히코는 이 작품이 처녀작이라고 했다
처녀작치고는 굉장히 치밀한 구석이 있다.
물론 내가 잘 모르는 일본 민속학에 대한 것들 때문에
일일이 각주를 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그거야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부합하는 책이다.
내가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