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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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읽는 직업

◎ 지은이 : 이은혜

◎ 펴낸곳 : 마음산책

◎ 2021년 6월 5일 1판 5쇄, 231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읽는 직업'이라고 제목을 소리내어 읽었을 때 얼핏 든 생각은 '좋겠다.'였다. 직업이 읽는 거니까 이 사람은 참 좋겠다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일이야말로 지극히 이상적이지 않은가. 그러니 책도 아주 쉽고 편하게 설렁설렁 읽히겠구나 싶었다. 허나, 읽어갈수록 책은 내 예상을 빗나갔고 나는 삐딱하게 앉아 있다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책을 쓰게 된 이유 세 가지를 이렇게 밝힌다. '저자들을 많이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들과 한편이 될 것이므로 저자들에게 이런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편집자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리고자 했다, 독자들은 최종 결과물인 책을 읽는 것으로 족하겠지만, 책 만들기의 역사와 현실도 알게 되면 흥미로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다. 흥미롭다기보다 골치 아프다 쪽이 맞는 표현이다. 당신들의 일까지 알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편집자의 일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편집자의 일을 해내기 위해 그녀가 읽어야만 했던 많은 책들과 논문과 자료들이라니. (그녀가 열거한 것들 중 내가 아는 건 거의 없다는 게 충격이다.) 팩트체커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도 기억에 남는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이 책은 저자와 친분을 맺은 이야기, 관계가 소원해진 이야기, 저자들이 보내오는 원고 등을 이야기 하는 저자 관찰기,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의 편집자들의 수고로움을 볼 수 있는 편집자의 밤과 낮, 잘 안 팔리는 책들과 복간을 못 하는 이유 등을 보여주며 좋은 책이 외면당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한 독자와 책을 옹호하며,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편집은 배치와 재배치, 수정과 재수정의 과정이며, 편집자는 원본을 창조하는 저자와는 독창성 면에서 수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편집자가 공들여야 하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수백 수천의 시간이며, 결국 지난 세월을 돌아봤을 때 남는 것도 뒤에 버려진, 길에 뿌려진, 못 보여준 것 속에 간직된 시간들이다. (90쪽)

-이렇게 한 권의 책을 만들던 편집자는 자기만의 책지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지금 이 책에서처럼 글 여기저기에 인용된다. 더 많이 읽는 편집자일수록 더 훌륭한 독자가 되거나 작가가 될 수도 있는 이유다.

(94쪽)

-독자는 때로 책을 책꽂이에 처박아둠으로써, 즉 침묵함으로써 자신을 지킨다. 나와 작가는 침묵함으로써 서로의 세계를 침범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176쪽)

저자가 인용한 수많은 책의 제목만으로도 주눅이 들었다. 그저 이야기에만 치중했던 내 독서편력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마저도 나는 책꽂이에 처박아두는 일을, 나를 지키는 일을 너무나 자주 해왔다. 내 식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영화<죽어야 사는 여자> 에서 골디 혼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걸어다녔던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던 거다. '그 시절이 지나면 못 읽는 책들' 이 되기 전에 책꽂이에 처박힌 책들부터 구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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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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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금각사

◎ 지은이 : 미시마 유키오

◎ 옮긴이 : 허호

◎ 펴낸곳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2월 5일 재판 14쇄, 297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김동인의 <광염소나타>와 <광화사>가 떠오르는 작품이다.

<금각사>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취재한 것이란다. 범인 히야시는 금각이 불타는 것을 바라보며 수면제를 먹고 단도로 몸을 찔러 혼수 상태에 빠졌고 7년형을 언도받았으나 5년 3개월로 감형, 폐결핵 악화 및 전신 상태 불량으로 27세로 사망했다.

-미시마가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것은, 범인이 말더듬이였다는 점과, 범행 동기 중에 '미에 대한 질투'라고 진술한 부분이다. 범행 동기에 대한 하야시의 진술에는 일관성이 없으나, 미시마는 그 나름대로 필요한 부분을 선택하여 <금각사>라는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280쪽. 해설 중에서

작가는 미숙아로 태어나, 허약한 체질과 왜소한 체구,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일상 생활에 대한 불안'을 품은 채 성장하였고 했는데 말더듬이에 보잘 것 없는 외모를 가진 주인공 미조구치에 그를 투영한 것 같다.

미조구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금각사>에 깊이 빠지게 되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금각사 주지의 도움으로 금각사에 들어간다. 한때는 주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하려 했으나 그 자리를 지나치게 탐내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 (어린시절 목격한 어머니의 외도로부터 시작된), 그의 양화(陽畵)라 생각했던 유일한 친구 쓰루카와의 죽음, 안짱다리 가시와기와의 교류 등을 통해 엉망이 되고 만다. 결국 금각사에서 쫓겨나게 된 주인공은 화재경보기가 고장난 틈을 타서 금각사에 불을 지른다.

-나는 단지 홀로 있고, 절대적인 금각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금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까, 소유당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까? 아니면 모처럼 균형을 이루어, 내가 금각이고 금각이 나인 상태가 가능해지려는 것일까? 140쪽

-나는 환경으로부터, 나를 속박하고 있는 미의 관념으로부터, 내 감가불우(수레가 가는 길이 험난하여 고생하는 모양)로부터, 나의 말더듬 증세로부터, 나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하여간에 출발하여야 한다. 191쪽

-인간처럼 필멸하는 것들은 결코 근절되지 않는다. 반면에 금각처럼 불멸의 것은 소멸시킬 수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러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 내 독창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메이지 30년대에 국보로 지정된 금각을 내가 불태운다면, 그것은 순수한 파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든 미의 전체 무게를 확실히 줄이는 일이 된다. 205쪽

-허무가 이러한 미를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미의 이러한 세부적인 미완성에는, 저절로 허무의 예감이 포함되어, 가느다란 나무로 만든 섬세한 이 건축은 영락(瓔珞- 구슬목걸이)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허무의 예감에 떨고 있었다. 265쪽

<금각사>는 1956년에 쓴 작품이다. 고리타분한 구석이 없지 않아 읽는 동안 따분하기도 하고, 평소 잘 쓰지 않는 한자들(양화, 영락, 감가불우 등)이 마구 튀어나오는 바람에 찾아보느라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금각사 방화로 이어지게 되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탁월해서 또 몰입하게 되는 희한한 책이다.

-내가 타인에게 평범하게 보이는 이상, 나는 평범한 것이고, 어떤 이상한 행위를 굳이 한다고 하더라도, 내 평범함은, 키로 까부른 쌀처럼 남을 것이다. 256쪽

-한 마디의 말이 평소나 다름없이, 마치 자루 속에 손을 넣고 무엇인가를 뒤질 때, 다른 것들에 걸려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물건처럼, 잔뜩 나를 안달시키며 입술 위에 모습을 보였다. 258쪽

-미가 금각 그 자체인지, 아니면 미는 금각을 에워싼 이 허무의 밤과 동질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미는 그 모두이리라. 세부이기도 하고 전체이기도 하며, 금각이기도 하고 금각을 에워싼 밤이기도 하였다. 265쪽

원래 사건을 일으켰던 히야시와는 다르게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272쪽) 로 마무리를 지은 것이 마음에 든다.

방화는 벌을 받아야 할 일이나, 금각사 때문에 자신의 생활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은 주인공이 이 방화를 저지른 후 다시 살아낼 삶을 응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가본 교토. 은각사는 이미 보고 왔는데 금각사를 보러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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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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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노 본스 NO BONES

◎ 지은이 : 애나 번스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창비

◎ 2022년 6월 20일 초판 1쇄, 471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노 본스(No Bones)라는 원제를, '본(bone)이 소설에서

여러가지 중의적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그대로 음차해서 한국어판 제목으로 삼았다. 소설에서 '본'은 아도인에 있는 어떤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고, 여러차례 등장하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라는 뜻의 숙어 'no bones about it'에서 가져온 말이기도 하다. 그런 한편 '뼈(bone)는 이 소설에서 여자들이 도달하려고 하는 앙상한 몸, 욕구도 희망도 없는 몸,

섹슈얼리티가 거세된 몸을 뜻하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영국영토인 북아일랜드 안에서 영국편인 개신교계 세력과 아일랜드편인 가톨릭계 세력이 무력충돌을 일으키며 민간인 포함 최소 3500명이 넘는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시기를 다룬다.

배경이 된 아도인은 벨파스트 북부 구역으로 주민 대부분이 친아일랜드계 가톨릭이자 노동계급이고, 길 건너편엔 개신교도 지역인 샨킬이 있다. 이 거리에 사는 가톨릭계 러빗 가족, 그중에서도 어밀리아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이야기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홉살에 술을 마시는 아이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섹스를 즐기고, 쾌락을 위해서라면 동생한테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는 오빠도 있다. 청소년들은 자경단인 척 사람들을 놀래키고 약탈, 방화, 총격전도 불사. 장난으로 러시안룰렛게임을 하다가 목숨을 잃고 아직 어린 소녀를 겁탈하여 아기를 갖게 만든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같지 않은가.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 늘 들리는 이야기다. 이런 곳에 방치된 아이들이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방어기제로 그들은 머릿속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을 만들어내고, 강간당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인 마음이 거식증을 불러와 여자다운 볼륨을 없애며, 미래가 없다고 믿기에 술에 탐닉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셔댄 술은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져 정신분열까지 초래한다.

'어밀리아의 뇌와 신경계와 심장은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밀리아는 무력하게 겁에 질린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방범 창살을 더 꽉 쥐었을 뿐 몸의 다른 부분은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369쪽

'서배스천은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 '일어났어야 하는 일' '일어날지 모르는 일'의 세계에 살고 있었고 실제 현실에 와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433쪽

자기 삶을 산다고 할 수 없는 시절이 30년간 이어졌다. 앞으로 이들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다.

'어떤 마음가짐이 있어야 해." 어밀리아가 말했다. "솔직히 나도 그런 건 없어. 하지만 나중에는 그런 마음가짐을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얻을 수 있을 거야." 463쪽

전쟁이 끝나고 취득 후 처음 해보는 운전실력으로 친구들과 하루 소풍을 떠난 길에서 어밀리아는 계획에 없는 배를 타게 되고, 그 배는 래슬린 섬에 도착했지만 주민들은 적대적이다. 학살이 자행되었던 작은 섬을 나오며 그들은 래슬린섬이 자기들 고향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미치광이 앰브로즈 같은 이와 함께 작은 섬에서 살아야 했다면 자신들도 방어적이게 되지 않았겠냐는 물음을 던진다. 아일랜드인을 미워하는 래슬린 섬 영국인들을 만나 그 적대감을 온 몸으로 느낀 뒤 가져보는 역지사지인 것이다.

누구를 미워할 수는 있지만 미워하는 감정이 폭력으로 변하면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잘 안다. 잘 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어디선가는 다른 이유를 앞세워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전쟁통에 가장 불쌍한 건 아이들이다. 아름다워야 마땅할 어린 시절을 통째로 빼앗기고, 받아야 할 사랑은 한숨과 절망으로 대체된다. 그런 무거운 아픔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이 책은 피가 튀는 그 현실에서 살짝 물러나 있다. 도피와 관망은 아니지만 공중에 1cm쯤 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그 아이들이 겪는 정신착란이 현실과 버무려진 탓으로 보인다. 이것이 부커상 수상작인 『밀크맨』보다 앞선 첫 장편이라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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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공부 -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최재천.안희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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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최재천의 공부

◎ 지은이 : 최재천·안희경

◎ 펴낸곳 : 김영사

◎ 2022년 6월 9일 1판 4쇄 발행, 302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대담 형식은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최재천 선생의 다른 책들처럼 아주 술술 읽힌다. 그것이 안희경의 탁월한 진행 탓인지 최재천의 재미난 이야기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비슷한 비율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 없다.

공부의 뿌리, 공부의 시간, 공부의 양분, 공부의 성장, 공부의 변화, 공부의 활력 이렇게 6부로 나뉘어 있는 이 소제목들만 보면 머리가 지끈지끈한 상태로 돌입하려 하지만 그저 분위기대로 정리된 것일뿐, 만담가들의 수다를 듣는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 이 책은 최재천 교수와 안희경 저널리스트가 2021년 4월에서 2022년 1월 사이에 나눈 대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최재천 교수의 삶과 시행착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그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상을 들어보고, 공부의 뿌리에서 변화까지 100세 인생에 필요한 배움과 깨움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 - 책의 일러두기에서

우리 사회의 그 어떤 문제든 결국 교육으로 귀결됩니다. 교육은 우리 인간 사회의 시작이자 마지막입니다. (전주, 6쪽)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실에서는 20세기 방식으로 과목별로 가르친다. 그 점이 오늘날 복합적으로 융합하는 산업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기 힘들게 한다'라고 하셨어요. (36쪽, 안희경의 말 중에서)

-아이를 가르쳐서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세상을 보고 습득하도록 어른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그것이 바른 교육입니다.(43쪽, 최재천의 말 중에서)

-어떤 자원을 동원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까를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주어진 문제를 한정된 시간 안에 어떻게 푸는지를 가르치죠.(64쪽, 최재천의 말 중에서)

-독서를 일처럼 하면서 지식의 영토를 계속 공략해나가다보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분야를 공략할 때 수월하게 넘나드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146쪽, 최재천의 말 중에서)

-토론을 잘하려면 말이 짜임새 있어야 하고 논리적 사고를 해야 하니 글쓰기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고요. 글을 잘 쓰려면 책 읽기가 필요한 거죠. --(중략) 결국, 말을 잘하려면 글쓰기를 잘해야 하니, 평소에 많이 읽고 많이 관찰해야 합니다.(148쪽, 최재천의 말 중에서)

-벤저민 프랭클린이 "나에게 말로 하면 잊을 것이고, 가르쳐주면 기억할 것이며, 참여하게 하면 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지요. (233쪽, 최재천의 말 중에서)

-아쉽게도 인간의 마음은 태어남으로써 리셋됩니다. 인성과 능력 개발은 각자의 몫인 동시에 이웃한 환경 공동체의 몫이 되었죠. 그래서도 우리의 공부는 나의 미래를 만들어갈 뿐 아니라 그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공유할 모두의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나를 위해 시작한 공부라할지라도 '모두'로 뻗어가기에 그 공부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무한히 확장될 것입니다.(296쪽, 후주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 책 읽을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자연에서 뛰놀게 하는 일, 서로의 생각을 묻고 글을 쓰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면서도 그걸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환경 탓을 하고 시간이 없다고 하고 남들이 다른 것을 하니까 따라서 해야 한다고도 한다. 교육문제는 늘 돌파구가 없어보이지만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내'가 있으면 가능하다.

우리나라 대학생들도 공부를 많이, 열심히 하면 좋겠다. 더불어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이런 스승들이 학교 곳곳에 넘쳐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우리나라 교육에 자부심을 갖는 날이 오면 좋겠다.

수포자였던 선생이 수학까지 제대로 공부하게 되고, 그의 능력을 꽃피우게 된 것이 결국 우리가 아닌 미국 교육의 힘이었다는 게 아쉽다. 자신이 겪어 온 과정들이기에 결국에는 어떤 교육이 아이들에게 힘이 될 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선생을 보며 이 책은 반드시 위정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교육에 관련된 힘있는 모든 이들이.

안희경은 마지막에 이렇게 독려한다. '힘써 배워요. 들판을 거닐며 배우는 줄 몰랐는데 배웠듯이, 우리 그렇게 공부해요. 그리고 온 삶을 감각하는 거예요. '나'와 '모두'의 삶은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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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김숨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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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국수

◎ 지은이 : 김숨

◎ 펴낸곳 : 창비

◎ 2022년 1월 21일 개정판 1쇄, 243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 수록작품 : < 그 밤의 경숙>, <국수>, <옥천 가는 날>,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막차>, <구덩이>

김숨은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된 인물, 이한열. 그가 남긴 운동화- 망가져서 가루가 되다시피 한- 복원에 관한 기록이었던 <L의 운동화>로 처음 만났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복원이라는 구역으로 끌고가는 솜씨가 하도 탁월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책이 두 번째.

어젯밤 9시가 넘어서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잠들기 전까지 이 책을 다 읽고, 읽고나서 그 밤에 읽은 걸 후회했다. 마치 '희망따위는 노래하지 않겠다. 이런 아픔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는.' 이렇게 선언하는 것만 같은 일련의 작품들은 색으로 치면 검은 색, 매혹적인 검은 색이 아니라 생명이 다 꺼진 검은 색이다. 어두워서 숨이 막힌다.

<그 밤의 경숙>

'실내등을 밝히지 않아 그녀와 아이들은 먹지 위에 눌러쓴 글씨처럼 흐릿했다.' (8쪽)

늦은 밤 언니네 집들이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재빨리 출발해버린 택시로 인해 퀵 기사와 부딪힐 뻔하자 경숙의 남편은 차에서 내려 그와 욕설로 대응한다. 경숙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울분을 거기에 쏟아붓는 것 같은 남편은 이미 이성상실. 경숙은 퀵기사의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자신이 근무하는 콜센터에서의 일들이 마구 떠올라 횡설수설. 돌아간 듯 싶었던 퀵기사가 다시 돌아와 창에 침을 뱉고 남편은 그를 치고 달아난다. 커튼 가게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그림자는 정말 사람이었을까? 그녀의 죄책감이었을까?

<국수>

엄마가 집을 나가버린 뒤 아빠가 맞아들인 여자는 아무 말 없이 앉았다가 반죽을 하고 국수를 만들어 주인공과 동생들에게 준다.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국수.

'반죽에 매달려 있으려니 속절없이 나이가 들어버린 심정입니다. 반죽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가면서 밀개로 밀 즈음에는 당신만큼 맥없이 늙어 있을 것만 같습니다.'(49쪽)

임신이 안 되어 인공수정을 시도하고 있던 주인공은 병원에 가야할 날에 갑자기 그녀를 찾아 내려간다. 그리고 찬장에서 밀가루를 찾아 그녀가 했던 것처럼 국수를 만들어 혀에 암이 생겨 아무 것도 넘기지 못하는 그녀에게 줄 참이다. 이야기는 국수를 만드는 과정과 그녀가 주인공의 삶에 들어온 과정들, 그리고 임신을 하지 못하는 그것이 친 엄마도 아닌 그녀 탓이라고 하는 주인공은 그녀에게 말을 하듯.

'당신이 양푼 속에 소금물을 부어가며 치대고 치댄 것, 그것은 어쩌면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시간이 아니었을까요.'(54쪽)

세상 좋아하는 국수가 이렇게 맛없게 보이기도 처음이다. 아무런 간을 하지 않은 채 조선간장, 들기름, 쪽파, 고춧가루, 물엿 등을 넣어 양념장을 넣는 국수는 별로 좋아한 적이 없다. 우리 엄마는 늘 제대로 간이 된 국수를 끓여줬으므로. 입안에 넣으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밀고 들어오는 것만 같은 숨막힘이 지배한다.

<옥천 가는 날>

연휴가 낀 토요일 오후 옥천으로 내려가는 자매들과 어머니. 일언반구도 없는 아흔둘의 어머니도 그렇지만 자매들도 서로의 얼굴을 보려하지 않는다. 밀리는 차 안, 두서없이 옛날 이야기들과 고달픈 삶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마침내 도착한 옥천의 한 장례식장. 구급차에서 내리는 자매들은 죽은 어머니를 모시고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던 옥천에 당도한 것이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하루종일 오리뼈를 고아서 그 국물을 맛나게 들이켜는 시아버지. 그 냄새가 죽도록 싫은 임신한 며느리. 전기문을 필사하고 산책을 나갔다가 온갖 고물을 들고와 자신의 방에 두는 시아버지. 잉크제조회사 영업사원인 남편은 아버지가 살던 빌라를 처분한 돈으로 펀드에 투자한뒤 거의 날려버렸기에 할 수 없이 같이 살게 된 것. 노인은 그중 4천만원만 주면 자신이 나가겠노라고 한 뒤부터 남편은 매일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 어느 날 저녁 노인은 산책을 나가다말고 며느리에게 302호집 새댁에게 돈 삼십만원을 빌려주었는데 오늘 준다 했으니 네가 받으라며 나간 후 소식이 없다. 남편도 들어오지 않고 며느리는 오리뼈만 남도록 바싹 졸여서 노인이 한 국자도 못 마시게 만들고는 노인을 찾아 나선다. 302호에는 여자가 살지 않는다.

<막차>

며느리가 암으로 죽을 것 같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올라가는 막차 안. 대꾸하지 않는 남편을 상대로 줄곧 말을 거는 아내. 딱히 뭔가 할 일을 하지 않는 남편 대신 미장원을 해서 살림을 꾸려온 아내는 피곤하고 힘들다는 푸념이 그치지 않는다. 어쩌다 나란히 달리게 된 다른 고속버스에 사람이 하나도 안 탄 게 너무 신기했던 그녀가 남편에게 그 얘기를 하자 여태 대꾸없던 남편이 누군가 탔다고 한다. 돌아보니 남편의 얼굴이 비칠 뿐이다. 휴게소에 잠시 정차했다 올라탄 버스에 남편이 없다. 운전사는 아내 혼자 탄 게 아니었냐고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찾겠다고 기다려달라고 내린다. 그때 아까 봤던 고속버스에 남편과 닮은 사람이 하나 타서 유유히 떠난다. 그 사람은 진짜 남편이었을까, 그녀는 운전사 말대로 혼자 탄 걸까?

<구덩이>

구제역으로 돼지를 살처분하는 구덩이를 파는 일에 동원된 주인공. 추운 겨울이라 그런지 구덩이는 더디 파지고 때맞춰 배는 아파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함께 일을 하는 남씨는 아내가 암이라 수술을 받는다고 한다. 주인공은 아들이 어릴 때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떠났기에 아들은 아버지를 증오한다. 엄마와 이혼하라고 종용하는 중이다. 돼지를 몰살시켜야 하는 농장에는 노인말고도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는 아들과 임신한 외국인 며느리가 있다. 그 아들은 주인공이 돼지를 모두 죽인다고 믿고 그를 죽이려고 망치로 머리를 때리지만 그는 수건으로 대충 막은 뒤 일을 마친다. 구덩이는 남씨의 아내 암으로 이어진다. 암이 너무 퍼져서 그냥 덮었다는 그 말은 구덩이에 돼지를 묻고 그냥 덮었다는 말과 오버랩되고 구덩이 속에 들어가 죽이라고 소리치던 노인과도 겹친다. 다 죽인 것과 다름없다. 자신의 아들 재구가 되어 자신을 노려보는 것만 같은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며 주인공인 나는 그저 피만 줄줄 흘리고 있다.

혼란스럽게 만드는 게 작가의 특기인가보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쫓아가질 못하고 몇 걸음이나 뒤쳐져서 왔던 길을 한참 뚫어지게 노려봐야했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든 삶을 영위하는 중이다. 측은하지만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겠다. 그 손을 잡으면 나도 그들의 삶에 물들 것만 같아서,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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