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미숙아로 태어나, 허약한 체질과 왜소한 체구,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일상 생활에 대한 불안'을 품은 채 성장하였고 했는데 말더듬이에 보잘 것 없는 외모를 가진 주인공 미조구치에 그를 투영한 것 같다.
미조구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금각사>에 깊이 빠지게 되고, 아버지의 친구였던 금각사 주지의 도움으로 금각사에 들어간다. 한때는 주지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하려 했으나 그 자리를 지나치게 탐내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 (어린시절 목격한 어머니의 외도로부터 시작된), 그의 양화(陽畵)라 생각했던 유일한 친구 쓰루카와의 죽음, 안짱다리 가시와기와의 교류 등을 통해 엉망이 되고 만다. 결국 금각사에서 쫓겨나게 된 주인공은 화재경보기가 고장난 틈을 타서 금각사에 불을 지른다.
-나는 단지 홀로 있고, 절대적인 금각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내가 금각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까, 소유당하고 있다고 해야 옳을까? 아니면 모처럼 균형을 이루어, 내가 금각이고 금각이 나인 상태가 가능해지려는 것일까? 140쪽
-나는 환경으로부터, 나를 속박하고 있는 미의 관념으로부터, 내 감가불우(수레가 가는 길이 험난하여 고생하는 모양)로부터, 나의 말더듬 증세로부터, 나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하여간에 출발하여야 한다. 191쪽
-인간처럼 필멸하는 것들은 결코 근절되지 않는다. 반면에 금각처럼 불멸의 것은 소멸시킬 수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러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 내 독창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메이지 30년대에 국보로 지정된 금각을 내가 불태운다면, 그것은 순수한 파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며, 인간이 만든 미의 전체 무게를 확실히 줄이는 일이 된다. 205쪽
-허무가 이러한 미를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미의 이러한 세부적인 미완성에는, 저절로 허무의 예감이 포함되어, 가느다란 나무로 만든 섬세한 이 건축은 영락(瓔珞- 구슬목걸이)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허무의 예감에 떨고 있었다. 265쪽
<금각사>는 1956년에 쓴 작품이다. 고리타분한 구석이 없지 않아 읽는 동안 따분하기도 하고, 평소 잘 쓰지 않는 한자들(양화, 영락, 감가불우 등)이 마구 튀어나오는 바람에 찾아보느라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금각사 방화로 이어지게 되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탁월해서 또 몰입하게 되는 희한한 책이다.
-내가 타인에게 평범하게 보이는 이상, 나는 평범한 것이고, 어떤 이상한 행위를 굳이 한다고 하더라도, 내 평범함은, 키로 까부른 쌀처럼 남을 것이다. 256쪽
-한 마디의 말이 평소나 다름없이, 마치 자루 속에 손을 넣고 무엇인가를 뒤질 때, 다른 것들에 걸려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물건처럼, 잔뜩 나를 안달시키며 입술 위에 모습을 보였다. 258쪽
-미가 금각 그 자체인지, 아니면 미는 금각을 에워싼 이 허무의 밤과 동질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미는 그 모두이리라. 세부이기도 하고 전체이기도 하며, 금각이기도 하고 금각을 에워싼 밤이기도 하였다. 265쪽
원래 사건을 일으켰던 히야시와는 다르게 '나는 담배를 피웠다. 일을 하나 끝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우는 사람이 흔히 그렇게 생각하듯이, 살아야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272쪽) 로 마무리를 지은 것이 마음에 든다.
방화는 벌을 받아야 할 일이나, 금각사 때문에 자신의 생활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은 주인공이 이 방화를 저지른 후 다시 살아낼 삶을 응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가본 교토. 은각사는 이미 보고 왔는데 금각사를 보러 갈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