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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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노 본스 NO BONES

◎ 지은이 : 애나 번스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창비

◎ 2022년 6월 20일 초판 1쇄, 471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노 본스(No Bones)라는 원제를, '본(bone)이 소설에서

여러가지 중의적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그대로 음차해서 한국어판 제목으로 삼았다. 소설에서 '본'은 아도인에 있는 어떤

장소의 이름이기도 하고, 여러차례 등장하는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라는 뜻의 숙어 'no bones about it'에서 가져온 말이기도 하다. 그런 한편 '뼈(bone)는 이 소설에서 여자들이 도달하려고 하는 앙상한 몸, 욕구도 희망도 없는 몸,

섹슈얼리티가 거세된 몸을 뜻하기도 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영국영토인 북아일랜드 안에서 영국편인 개신교계 세력과 아일랜드편인 가톨릭계 세력이 무력충돌을 일으키며 민간인 포함 최소 3500명이 넘는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시기를 다룬다.

배경이 된 아도인은 벨파스트 북부 구역으로 주민 대부분이 친아일랜드계 가톨릭이자 노동계급이고, 길 건너편엔 개신교도 지역인 샨킬이 있다. 이 거리에 사는 가톨릭계 러빗 가족, 그중에서도 어밀리아를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이 이야기마다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홉살에 술을 마시는 아이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섹스를 즐기고, 쾌락을 위해서라면 동생한테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는 오빠도 있다. 청소년들은 자경단인 척 사람들을 놀래키고 약탈, 방화, 총격전도 불사. 장난으로 러시안룰렛게임을 하다가 목숨을 잃고 아직 어린 소녀를 겁탈하여 아기를 갖게 만든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같지 않은가.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서 늘 들리는 이야기다. 이런 곳에 방치된 아이들이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방어기제로 그들은 머릿속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을 만들어내고, 강간당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적인 마음이 거식증을 불러와 여자다운 볼륨을 없애며, 미래가 없다고 믿기에 술에 탐닉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셔댄 술은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져 정신분열까지 초래한다.

'어밀리아의 뇌와 신경계와 심장은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어밀리아는 무력하게 겁에 질린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방범 창살을 더 꽉 쥐었을 뿐 몸의 다른 부분은 꿈쩍도 할 수가 없었다.' 369쪽

'서배스천은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일' '일어났어야 하는 일' '일어날지 모르는 일'의 세계에 살고 있었고 실제 현실에 와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433쪽

자기 삶을 산다고 할 수 없는 시절이 30년간 이어졌다. 앞으로 이들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러난다.

'어떤 마음가짐이 있어야 해." 어밀리아가 말했다. "솔직히 나도 그런 건 없어. 하지만 나중에는 그런 마음가짐을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얻을 수 있을 거야." 463쪽

전쟁이 끝나고 취득 후 처음 해보는 운전실력으로 친구들과 하루 소풍을 떠난 길에서 어밀리아는 계획에 없는 배를 타게 되고, 그 배는 래슬린 섬에 도착했지만 주민들은 적대적이다. 학살이 자행되었던 작은 섬을 나오며 그들은 래슬린섬이 자기들 고향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한다. 그리고 미치광이 앰브로즈 같은 이와 함께 작은 섬에서 살아야 했다면 자신들도 방어적이게 되지 않았겠냐는 물음을 던진다. 아일랜드인을 미워하는 래슬린 섬 영국인들을 만나 그 적대감을 온 몸으로 느낀 뒤 가져보는 역지사지인 것이다.

누구를 미워할 수는 있지만 미워하는 감정이 폭력으로 변하면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잘 안다. 잘 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어디선가는 다른 이유를 앞세워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 전쟁통에 가장 불쌍한 건 아이들이다. 아름다워야 마땅할 어린 시절을 통째로 빼앗기고, 받아야 할 사랑은 한숨과 절망으로 대체된다. 그런 무거운 아픔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이 책은 피가 튀는 그 현실에서 살짝 물러나 있다. 도피와 관망은 아니지만 공중에 1cm쯤 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건 그 아이들이 겪는 정신착란이 현실과 버무려진 탓으로 보인다. 이것이 부커상 수상작인 『밀크맨』보다 앞선 첫 장편이라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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