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여섯 살 무렵 나는,
내 생이 끝나고 난 뒤 뭐가 남을까?
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죽음 이후 아무 것도 없다면 그 긴 시간 동안
난 어떤 형태로 있는 것인가? 어떤 느낌일까? 그 공허감을 어떻게 참을까?
나는 도대체 왜 사는 것일까?
그런 의문에 괴로워했던 기억만 난다.
어른들이 보듯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도 않을 것 같다.
학교 생활에, 친구와의 관계에, 소원한 부모와의 간극에, 불투명한 미래에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생활하는 시기가 바로 요때쯤이다.
시를 가르치는 사람이자 시인이었던 아빠가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 후
소중한 것 하나를 잃고 사는 열다섯 살인 준호는 엄마가 이제 막 재혼한 것이 마음에 안 든다.
이 상황으로부터 달아날 길을 찾고 있는데 마침,
절친한 친구인 규환이의 운동권 대학생 형을 도와주는 일을 맡게 된다.
규환이가 일러준 대로 양조장 트럭을 몰래 숨어 타는 일은 성공했으나
갑작스레 양조장 집 아들 승주와, 개장수인 아빠의 구타를 피해 도망 온 정아,
정아를 쫓아 달려온 사나운 개 루스벨트, 그리고 정체 모를 할아버지까지
모두 트럭에 같이 타게 되고 떼어낼 방법도 찾지 못한 채 함께 여정을 시작한다.
규환이 형을 만나 서류를 건네주고 도망 갈 길을 주선해주는 역할을 꼭 해내고 싶었던 준호는
경찰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약속된 곳 임자도로 향한다.
루스벨트 때문에 차에 타지도 못하고 내처 걷기만 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고생에
몸은 죽을 지경이지만 기괴한 일행 사이에 팽팽했던 긴장은 조금씩 풀려가고
서로가 가진 말 못할 고민들을 이해해주게 된다.
숨어 있던 안개섬에서 형을 만나 뭍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을 할아버지에게 맡긴 후
태풍이 불어대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은 고래를 만난다.
고래, 할아버지의 꿈 속에 들어있던 고래들이 아이들을 만나러 왔고
어느 새 아이들의 새로운 꿈이 되어버린다.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엄마와 싸운 후 그대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가슴이 비었던 준호나
되풀이되는 가혹한 매질에 가슴까지 멍들었던 정아나,
엄마의 극심한 보호 아래 미칠 것 같은 왕따의 삶을 살던 승주나,
딸이 광주 사태때 갑작스레 죽어버린 걸 자기 탓으로 여기는 할아버지나
모두 이 여행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배운다.
앞으로 나아가면 인생이 각자의 몫으로 마련해 준 '비밀'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얼마나 멋진가. 보물 찾기를 할 때처럼 어디에선가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서 지친 내 삶에
반짝이는 보석이 되어주는 비밀이라는 놈은.
모두가 한 가지씩 아픔을 가지고 사는 그 때쯤의 아이들에게
누구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혼자 고민하고 사는 것이 아님을,
이렇게 극적인 사건을 겪지 않는다 하더라도 진정한 소통이 있다면
내 성장의 큰 주춧돌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