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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주부 명랑제주 유배기
김보리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3월
평점 :
미국에서 출장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또 한 권의 책을 꺼냈다.
아내는 지인들과 한 달에 책을 한 권씩 읽는 독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가 얼마 전에 읽은 책을 나에게 소개했다. 글 내용을 소개받고 이 책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주인공이 현재의 나와 같은 나이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가끔 잘 산 건인가 의문을 가진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인가 생각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중간에 쉬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일주일 정도 휴가는 많이 갔다. 대학교 때 휴학도 할 수 있고, 직장을 옮길 때 좀 더 쉬는 시간을 낼 수도 있었고, 회사 다니면서 휴직도 할 수 있었는데, 뒤쳐질거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다. 연인 때문에, 가족 때문에,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원하는 만큼의 휴식을 시도하지 못했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용기가 부족했다.
두 번째, 이 책은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주제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아보자고 계속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 한 달 살기에 필요한 비용이 얼마나 될까 몇 번 검색도 했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소박하게 살기보다 많은 비용을 쓰며 편하게 사는 모습이 많았다. 차를 렌트하고, 멋진 정경이 보이는 곳에 집을 빌리고, 맛집과 명소를 찾아다니며 한 달 보내기, 뭐 나쁘지 않다. 재미있는 경험이겠지.
하지만, 그런 경험이 제주도를 제대로 알았다고 말할 수는 있을까? 제주도 한달 살기에 필요한 비용이 멋진 경험을 제공하는 모든 요소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약 100만원으로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실천했다.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충분히 즐거워 보이고, 여행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주도에서 한 달 살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모든 올레길 걸어보기, 모든 동네 책방 방문하기, 유투브, 넷플릭스, SNS 안 보기, 최소한의 비용으로 지내보기, 도시락 먹기, 몇 권의 책 읽기 등 예전에 제주도 여행하면서 했던 일들과 차이가 많이 났다.
먼저 읽었던 <휴남동 서점>에 한 달 동안 유럽에서 살면서 서점을 방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동네 서점을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한 인사이트 발굴이 목표였으니, 제주도 한 달 살기와는 다르다. 아무 목표 없이 편히 쉬기 위한 여행도 좋지만, 테마를 정하고, 가는 여행도 괜찮을 거 같다. 마음을 추스리기도 일종의 테마이겠지.
버스를 타고, 김밥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하루에 3만원 정도의 숙박 시설을 이용하고, 맛집과 유명한 카페를 가지 않아도 제주도 여행은 충분히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하루에 2만 보를 넘게 걸어다녀도 아름다운 제주도인데,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멋있는 곳을 많이 놓치지 않았을까? 제주도 여행을 몇 번이나 갔지만, 이 책에 나오는 장소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한 곳만 쫓아서 다니느라 항상 바쁘게 움직인 기억만 난다. 이 책을 통해 극도로 절제하는 여행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의 글솜씨도 이런 생각에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출장하고 복귀하는 비행기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쪽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비교적 수월했다. 비행 시간이 12시간이니 마음 먹으면 한 권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
외국으로 출장을 가면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출장과 여행은 다르다. 마음부터가 다르다. 출장 기간 중 힘들게 개인 시간을 낼 수도 있겠지만, 그런다고 마음이 달라지지 않는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여행, 언제 갈 수 있을까?
2022.08.05 Ex. Libris H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