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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게 1 - 천둥소리
강기현 지음 / 밥북 / 2021년 4월
평점 :
1900년대 한국근현대사가 배경이다. 그야말로 생사를 건 일들이 일어나던 극한의 시절이다. 6.25 전쟁 장면의 묘사들을 읽다 보면 탱크가 한 대도 없이 정신없이 밀려 내려오던 장면들을 본 것만 같다. 끔찍하다. 이런 수단으로 땅을 차지하려던 생각이, 시대가.
제목에서 지게조차 붉게 물들 수밖에 없던 시대가 떠오른다. 지게로 나르던 것이 짐만이 아니었던 탓이다. 무기와 탄약을 나른다는 것은 다음 날 그 무기와 탄약에 죽어간 사람들을 나른다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배경이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라서, 대화를 잘 못 알아듣고 잘 못 읽게 되는 건가 살짝 불안했다. 문맥을 따지고 짐작을 하는 것으로는 그 대단한 말맛을 다 알 도리가 없어 늘 안타깝다.
하동군에서 태어나 교사로 산 작가가 이야기 속에 창조한 주인공은 작가의 친족인가 싶기도 했다. 꼭 성이 같아서가 아니라 금방 배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생생함이 실존했던 인물처럼 느껴진다.
소작농으로 마름으로 살던 이에게 민족의 암울한 시절이 어떤 기회로 작용하는지, 역사책처럼 소상히 기록한 일본인들에 의한 토지수탈 과정이 충분히 안다고 생각한 정보에 여러 장면을 더한다.
그러나 이미 부자들, 글을 아는 이들, 작은 감투라도 가진 이들은 더 재빠르기 마련이다. 소작농의 마름이 땅을 갖고 부자가 되는 꿈은 실현될 기회가 없었다.
힘을 가진 이들이 야합을 해서 ‘작당’을 하면 누군가의 재산을 뺏는 일도, 목숨을 끊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과정은 마치 폭력을 합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일들은 중단된 적이 없어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 기분이 아프고 나쁜 기시감과 현실감이 든다. 그나마 지금의 언론이 없어서 주인공 강몽환의 삶이 산산조각나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그는 그 일로 세상을 다르게 판단하는 눈을 가지게 된다. 위계를 판단하고 더 크고 강한 힘을 파악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를 그 힘과 닮은 모양새로 만드는 그야말로 개벽천지와 같은 일을 한다.
조선인보다 일본인, 조선의 문물보다 일본의 신문물을 배워야 원하는 삶도 세상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저 멀리 우리가 모리고 있는 서양이라는 세상이 있는디요. 거기는 일본보담 더 문명이 발달했다고 헙니다. 시방 우리는 서양사람들 헌티 신문물을 바로 받아딜일 형편이 몬데닝께로 하는수 읎이 일본 사람들 손을 빌려서라도 배와야 안 데겄십니꺼?”
쓰다 보니 간단한 구조의 단일 사건처럼 보이나 실은 권력 구조가 끊임없이 바뀌고 찬탈 당해서 언제나 새로운 누군가가 세상을 판치고 깨부수는 그런 시절이었다.
‘나’와 내 집안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늘 이런 대하소설이 된다. 그렇게 살아서, 그렇게 살아남아 우리는 무엇을 꼭 하고 싶었을까. 나는 요즘 그 중요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기분이 종종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