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죽화
최재효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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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여성을 꽃을 비유할 때는 능력이나 활약상이나 삶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할 때가 많은데, 실존 인물인 설죽화(1001-1019)는 고려 최고의 무인으로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배경은 고려 현종 재위 기간인 1018년 12월에 발발한 고려와 거란 간의 제3차 전쟁이다. 설화나 교과서, 역사 소설... 어떤 경로로도 들어 본 적 없는 인물이다.


부친이 고려의 병사였으며 사망 후 남장을 하고 절에서 무예를 익혔다. 뛰어난 무예 실력 덕분에 별동대를 조직하고 전쟁이 발발하자 강감찬 장군 휘하에 들어가 고려 서북면군별동대장이 되어 거란군 장수들을 도륙한다.


흰 말을 타고 - 표적이 되기 쉬운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지만 - 언월도 - 고려시대 무기에 언월도가 있었구나 - 를 들고 싸우다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전쟁을 묘사하는 장면이 사실적이고 가감이 없어 놀란다. “머리통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도... 투구가 깨지면서...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설죽화가 화살이 온 몸에 박혀 출혈 과다로 사망하는 장면 역시 잔인하다. 저자는 천년 만에 이 영웅을 부활시키고 싶었다고 하는데도 죽음에는 타협이 없구나 싶다. 그래도 기억과 기록은 자체가 힘이고 응원이다.


물론 장편역사소설이고 설죽화에 대한 기록보다 구전에 기반을 하고 있으니 각색의 여지와 여부는 있는 것이 당연하다. 


25년이 넘게 재발하던 거란과의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지쳤을 것이고 설죽화라 인물의 실전과 스토리는 분명 화제가 되고 사기를 돋우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평민인 아버지가 전사 후 품에서 시가 한 수 발견되었고, 설죽화 역시 사망 후 품속에서 서신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문자에 대한 내 역사 지식에 뭔가 오류가 큰 듯도 하다. 


“이 땅에 침략 무리 천만 번 쳐들어와도 고려의 자식들 미동도 않는다네.

후손들도 나같이 죽음을 무릅쓴 채 싸우리라 믿으며

나 긴 칼 치켜세우고 이 한 몸 바쳐 내달릴 뿐이네.”


“금수강산을 넘보는 북방의 흉악한 거란 오랑캐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무려 1003년 전에도 “네가 아들이었다면...” 이란 대사가 존재했다니. 워낙 전투가 빈번하고 농사 노동이 중하던 시기라 오히려 장정이 더 필요했던 시대였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1003년 전인 1018년 고려 시대의 전쟁 전황도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저자는 잊히고 사용되지 않는 순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크다. 각 페이지에 단어의 뜻을 풀이해 두거나 어려운 용어들, 인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따로 어휘를 정리해서 첨부해 두었다. 590-628쪽이나 된다. 


아는 바가 없어 낯선 시대처럼 낯선 용어들을 유추하고 뜻을 배우는 재미가 컸다. 언어란 기록 수단이자 기록 그 자체이기도 해서 가장 활발하게 살고 활용되었던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 시대에도 지키고자 하는 바를 위해 나서 싸운 평민들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의 최전선은 이 오랜 시간에도 수많은 이들의 지독한 노동으로 무너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 도움이 되는 영웅이 있으면 반가운 일이지만 영웅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세월이 지나 인류의 문명이 존속된다면 이 시대는 어떻게 기록될까 흐릿해서 서운하고도 간절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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