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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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행복은 실패할 수 있는 기회다>

 

그녀와 제러드는 난민이다. (...) 그들은 새로운 땅새로운 문화에서 더 행복하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을 옮긴 쾌락의 난민이다대개 쾌락의 난민은 깨달음이 순간을 경험한다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분명하게 깨닫는 순간.”


난민이라는 단어를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나름의 정서적 정리 과정이 필요했다이유가 무엇이건 태어나고 자라며 사회화가 이루어진 곳에서 머물지 못하는 내외적 동기로 이들을 가리킨다는 말에서 수긍이 가는 지점이 있다.

 

다른 한편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이 정도로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어디서든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디서 살지 고민이 더 많아진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면 나는 뭘 간절하게 원하는 게 참 없는 삶이다.

 

저자가 행복을 주제로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지도를 그리는 이유를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 담지된 것들을 관찰하는 시선을 일독을 마치니 스르륵 이해가 된다순서를 바꾸지 말고 다시 읽으며 나라를 배치한 구성을 느껴봐야겠다.

 

프롤로그에서 뜬금없이(?) 동양철학 강연하는 영국 태생 철학자 인용이 있어서 이건 무슨 미쿡적인 취향인가 하고 넘어갔는데그 역시 공간과 공간 인식과 인간에 대해 언급하는 이야기로 이제 잘 엮인다.


만약 내가 원을 하나 그려놓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 그것을 벽에 뚫린 구멍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바깥쪽보다 안쪽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사실 이 두 면은 항상 함께 다닌다. ‘바깥이 없으면 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있는 장소가 우리의 사람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향과 가족이라는 관계이자 공간을 상징하는 명절 기간이면사회 전체가 명절 치르기를 제1행사로 삼고 종종 찬미하는 언론 보도들을 접하면그런 장소와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폭력을 경험하고 상처를 입은 후 홀로 지낼 이들은 어떤 심정일지 마음이 아프다.

 

지난 4년간 국내 친족 성폭력 발생 건수 3천 건 이상

암수율*이 높은 범죄라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 범죄 발생 후 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비율

- 60% 이상의 피해 생존자가 미취학 아동초등학생이고 부녀간 아동 성폭력이 다수

가족이란 이유로 절대적 침묵을 강요당하고 신고도 못 한 채 극심한 고통을 겪음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에게도심리 상담 시에도 털어 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공통의 것들을 찾고 없으면 만들고 강조하며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혹은 필요한 이유들이 많아 호들갑도 신비화도 이해는 하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이렇게 강제도 압박도 강한 사회도 별로 없는 지라폭력과 상처가 없는 나조차 때론 질린다.

 

고향과 가족’ 공동체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하고 확장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도 자신을 생각해보는 일도 조금은 더 장려되길 바란다사익이 공익에 우선하는 삶을 살다 불타고 물에 빠져 죽는 시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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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연구를 하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인 것 같아요.”

벤호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인류의 능력에 대해 영원한 믿음을 갖게 될 거 아닙니까?”

아뇨꼭 그렇지는 않아요.” (...)

 

사람들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행복의 격차가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는 비밀을 파헤칠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던 반전이다희망하고 기대하는 것에 대한 짐작과 일반화는 이렇게 확실한 오해일 수 있다는 소위 뼈 맞는 공부를 한 셈이다.

 

연구 주제가 행복이지만 연구 동기는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닐 수 있다실상 비교 연구란 세상 모든 것을 정량화해야 하는 연구 방식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일 수 있다.

 

그러니 행복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불행을 찾아내야 한다행복이 최대치를 기록해서가 아니라 불행이 최대치를 기록해도 그 격차가 클수록 선명한 연구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

 

결이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실험 과학 훈련을 받으면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과학은 실제로 눈 먼 행동을 많이 한다그런 약점을 잘 알아서 기업은 연구 투자비로 과학자들을 조종한다공학과 산업과 결부된 분야의 연구자들은 모두 이 그물 안에서만 생존한다인류의 자산이 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쓰일 과학은 그렇게 사유화된다.

 

혼미한 의식의 흐름인 듯 무지하게 이상한 글이지만  이만 총총.

 

어쨌든 오늘도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최대한 행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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