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르는 버스 - 2016 뉴베리 상 & 칼데콧 명예상 수상작 비룡소의 그림동화 239
크리스티안 로빈슨 그림, 맷 데 라 페냐 글,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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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환승을 세 번이나 해야 하는 일정에 조금 초조해졌다.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더니 환하게 인사를 건네시고 일정을 조금(?) 캐묻고는 마침 도착한 버스기사에게 당부를 하셨다. 다음 환승지까지 늦지 않게 잘 데려다 주라고.

 

버스를 타기 전 타고 나서 내리고 나서도 내내 행복했습니다. 제목이 오랜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국적입니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 위계가 강한 것이 참 슬픈 일이지만, 이 버스에서만큼은 함께여서 아름답습니다.

 

저도 시제이의 할머니와 함께 이 버스에서 마지막 정류장까지 가보는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란 찬찬히 보고 알게 되면 얼마나 다채로운지. 다들 원하는 것은 비슷한 다를 것 없는 우리는 그저 사람.

 

저는 얼마나 지혜로운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오래 살아 이것저것 더 구경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제이 참 귀엽습니다. 덕분에 시제이의 시선을 따라 저도 여러 사람들을 봅니다. 대답도 어찌나 멋진 지.


 

아름답고 재밌고 오래 생각해볼 귀한 가치를 전해 주는 참 좋은 책입니다. 수상작은 수상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거듭 경험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세상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하게 버스를 타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길.

 

시제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나 있단다.

늘 무심코 지나치다 보니 알아보지 못할 뿐이야.”


 

오늘도 바빠서, 생각이 복잡해서 아름다운 많은 것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별 일 없으니 오늘도 행복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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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온난화 - 더 많은 사람들이 연결될수록 세상이 나아진다는 착각
찰스 아서 지음, 이승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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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늦기전에

#눈을뜨라

#깨어있으라

 

인류의 문명을 비가역적irreversible으로 바꾼 것 중에는 물론 인터넷이 있습니다. 최근 며칠 간 개인과 사회 모두가 SNS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도 실감하는 중입니다. 곧 다시 연결될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잠시 디톡스를 즐길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제목이 무척 놀랍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지구온난화, 즉 기후위기에 비견될만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저자가 표현하려 했다고 합니다. 읽기 전에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는 주장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맞습니까?

 

의도된 대로, 설계된 대로 이용될 경우 소셜네트워크들은 (...) 결국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되기 마련이다. (...) 작은 차이가 더 큰 의견 충돌로 증폭되며, 상반되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인 신념이나 극단적인 행위로 치닫는다.”

 

존재하는 위험들 중에는 인류가 감당할 만한 것들도 있고 절대 발생하면 안될 것들도 있습니다. 차 사고나 비행기 사고가 난 경우와 핵무기와 핵발전소 사고를 생각해보면 차이가 선명해집니다. 소셜미디어가 인류사회에 끼치는 부작용과 유해함은 어떤 쪽에 가까울까요?

 

만약 후자라면, 더 크게는 기후위기에 준하는 피해를 야기하는 문제라면, 과연 인류가 해결할 능력이 있을까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읽을수록 체온이 식어가는 주장입니다. 사회학적 분석이 없이도 단톡방의 해악은 최소한 선거 하나쯤은 거뜬히 망칠 수 있다는 경험을 했기에 더 두려운 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셜미디어 때문에 포퓰리즘이 확산되기가 더 쉬워졌다. 그리고 분노를 이용하는 매커니즘과 알고리즘의 증폭이 이를 돕는다.”

 

다양한 applications'들이 우리의 생각, 판단, 선택을 편향시키고, 결과적으로 정치와 사회를 망치고 있다면, 그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싸워야할 지도 모릅니다. 무시무시한 SF 설정 같습니다. 이렇게 과격한(?) 주장을 하는 책인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우리는 이전으로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건 소로의 삶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수만 명이 생겨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다행인 것은 저자는 무서운 이야기만 하고 만 것이 아니라 해법도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낙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인류가 정답을 방법을 몰라서 여태 문제들을 해결 못한 것이 아니니까요. 어쨌든 그럼에도 저는 모르고 휘둘리는 것보다는 알고 힘든 편이 더 좋습니다. 변화의 여지는 지식과 고민에서 출발하니까요.

 

대단한 일은 못하지만 확증편향과 자기합리화에 대한 반성과 의심을 멈추지 말아야겠습니다.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를 파괴하고, 인간관계의 기본 구조를 파괴하고, 중독이라는 이름의 습관성 약물을 불법 판매하고 있다.” (조애나 호프만Joanna Hoffman 스티브 잡스 고문 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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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줌마의 봄
앤줌마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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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혼자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재밌고 멋진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펜팔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예전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어떤 글들을 써서 주고받았을까 무척 낭만적인 상상을 해보았다.

 

인터넷은 인류문명을 영구적으로 바꾸었고 덕분에 읽고 쓰기는 몸의 이동 없이도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되었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 다양한 글이 있고, 관심사가 비슷한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때로는 최초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누군가와 각별한 글 친구가 된다.

 

저자는 블로그 글쓰기를 오래 하신 분이다. 오래 함께 한 이웃분들의 축하와 기쁨이 가득해서 나도 표지처럼 화사한 기분으로 읽었다. 여성의 서사가 온통 꽃길이기만 할까.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여러 문장에서 이전에 읽은 다른 여성들의 서사가 튀어나왔다.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선택으로서 결혼,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시절의 임신, 바쁜 시댁일, 자식과 조카들 육아, 혹독한 갱년기... 그리고 이제 비로소 한가한 시간을 만났다고 한다. 정말 축하드리고, 다른 무엇도 아닌 창의적인일을 원하신 것에 감탄한다.

 

결핍을 급하게 채워야한다는 식의 과욕도 조바심도 없이 일상적인 삶을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시는 모습도 존경스럽다.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생각을 헤아리고 수용하고 마음을 맞추려 노력하시는 모습도 따라하고 싶다. 무엇보다 시집살이를 대물림 하지 않으신 점!

! 파서방 이야기는 정말 최고입니다. 목이 아프도록 웃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할머니로 살아가시는 분을 만날 때마다 오래 살고 싶다. 급작스럽게 떠나지 말고 배운 것, 다듬은 마음을 나누며, 새로운 관계를 여유롭게 받아들이며, 한가롭게 즐겁고 싶다. 햇볕도 실컷 쪼이고, 오디오북이라도 들으면서 무릎 위에 고양이도 재우고 싶다.

 

에세이의 장점이라면, 어떤 인물의 삶을 고유한 흐름대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때론 그 삶이 너무 순식간이라 애틋하고 때론 너무 무거워서 도중에 도망가고도 싶다. 그래도 읽기 시작한 글은 끝까지 읽어내고 싶다. 저자의 삶을 담은 글이니까.

 

이대로 무너지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이야 그쟈.’

 

건강도 잃고 몸도 감각도 정신도 약해지는 생의 계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무겁고 고약한 통증과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며, 그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도움을 만났을까. 내 어머니의 갱년기에 아무 도움도 못 된 처지라 미안함 외에 할 말이 없다.

 

지혜로워지진 못하더라고, 살아 낸 세월만큼의 담대함만은 좀 갖췄기를, 그래서 부디 자신에 대한 결정을 결단코담대하게 내릴 수 있는 모습이기를, 내 갱년기를 염려하며 불안해하며 그려본다.

 

노을을 보며 가야 하는 나이에 가지를 뚫고 나온 보드라운 이파리 같은 삶의 시간을 마주하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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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연습을 시작합니다 - 청소년 심리와 자기 돌봄 발견의 첫걸음 2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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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중요한 소통수단인 인간으로서는 분화하고 섬세해지고 강력해지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어휘가 부족한 시기가 참 어렵습니다. 어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반복적으로 특정 어휘 몇 개를 사용한다는 발견을 하곤 합니다.

 

새로운 레시피북을 사도 결국 먹던 것만 먹게 되는 악순환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독서나 필사로는 내 어휘가 되지 않아 극도로 느린 확장이 힘겹기도 합니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여러 어려움을 감정적으로 경험하고 있을 때는 일단 잘 들어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정신의학 전문의의 책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십 대 두 명과 어쩌면 감정 연습이 더 필요한 제가 함께 읽어 보았습니다. 적당한 이론과 많은 사례(데이터)를 통해 배우는 방식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반갑게 읽었습니다. ‘연습만이 살 길이다는 감정에도 예외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북클럽장이신 김영하 작가께서 짜증이란 단어를 빼고 자신의 감정/상태를 표현하라고 하셨던 것과, 예전에 융 심리학 강의 들을 때, ‘우울하다말고 다른 구체적인 표현을 하라던 일도 기억납니다. 어찌 보면 짜증과 우울은 텅 빈 말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정확한 표현이 아닌 사용은 결국 자신의 감정조차 혼동하고 오해하게 만들 수 있고, 차이를 변별하지 못하는 반응 역시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화를 내는 사람,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감정적인 반응 역시 연결점이 있다고 봅니다.




가장 안심이 되고 좋았던 것은 저자가 필요 없는 감정은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무시당하고 부정당하다면 더욱 감정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용 이후에 차근차근 세심하게 자신의 감정을 알아보고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감정의 영역은 늘 그렇듯 실천이 참 어렵습니다. 수많은 책과 강연이 있으니 우리는 어쩌면 이론에 관해서는 다들 준전문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매번 달라지는 상황에서 감정적 반응과 대처는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 번 연습만이 살 길이다라고 말해봅니다.



 

행복과 용기에 관한 내용은 불만과 답답함을 잠시 가둬두고 차분하게 읽으며 현재와 현실을 기억해내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늘 상대비교를 하며 내 행복을 확인하는 일은 그다지 윤리적이지 않지만, 불안을 제외하면 무척이나 안전하고 별 일 없는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항하고 극복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은 참 많지만, 쓸모없다고 부정해도 되는 감정은 없다는 저자의 원칙에 따라 두려움 또한 수치스러운 일로 취급받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못 느낀다면 오래 전에 인간은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십 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감정을 설명하고 위안을 주는 책이지만, 늘 그렇듯이 독서대상연령은 얼마든지 유동적입니다. 사춘기도 무섭지만 갱년기도 두렵고, 감정적이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제게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 청소년 필독서인데 청소년은 읽기만 하고 갱년기 독자가 읽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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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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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 9관왕 수상작에다 이제까지의 장점을 모두 합쳤다는 작품을 읽고 싶긴 했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 시도를 안 했는데, 먼저 읽은 이들이 읽을 수 있다! 잠깐만 시대 배경 공부하면 읽을 수 있다! 막... 무섭게(?) 격려해서 도전해보았다.




기초지식만 알아도 충분하고 몰라도 괜찮다는 거짓말 같은 말을 믿고 열어보니, 고풍스러운 구성이 먼저 보인다. ‘인因’이 시작이다. 설득력이 강하다. 세상만사가 인因으로 시작되고 복잡해지는 법이니.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자 공간의 이동인 겨울, 봄, 여름, 가을.




단편 연작인가 싶게 말끔한 완결성을 보이는 각장의 이야기는 최상의 추리 미스터리 작품에 기대하는 결론에서의 수렴으로 멋지게 마무리된다. 그 과정이 얼마나 교묘하고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는지, 수렴 방식과 내용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가 작품 전체의 매력을 결정한다.


시대와 장소에 거리감을 느껴서 그렇지 초반이 지나 익숙해지면 이 작품은 당시의 일상미스터리처럼도 느껴진다. 시대상을 입은 장소들이 작가가 펼치는 트릭들을 더욱 흥미롭게 치장한다. 도전하고 싶은 기분이 솟는 추리문제를 각 장마다 풀어보는 긴장되고 즐거운 독서이다.


어렵지 않게 한 반복 구조인 듯 비슷한 사전 전개가 나는 지루하지 않았다. 각 장을 반복하면서 풀이에 좀 더 자신감이 붙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아라키 무라시게’를 따라가도, ‘구로다 간베에’를 따라가도, 혹은 독자적인 독자의 시선으로 풀어내도 재밌을 정보가 주어진다.


단! 관심도 계기도 없어 알지 못했던 일본의 전국시대의 풍경은 참으로 잔인하다.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폭력성에 힘들 수도 있겠다. 그 당시에는 칼에 베어 죽고 착취당해 죽고 지금은 일터에서 매일 다치고 죽는다는 생각에 잠시 읽기를 쉬고 분한 기분을 누그렸다.


포악성과 배신을 망설이지 않는 것은 한국인인 나는 이해 못하는 일본 역사의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것이고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모든 판단은 유보되거나 적어도 오랜 침묵과 사유를 거쳐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성이 견고한 것은 해자가 깊고 성루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버티고 있는 장졸들이 성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전부 나의 상상과 짐작일 뿐이지만, 작가도 혹... 누구도 예외로 두지 않고 배신을 거듭한 뒤 잘 살다 천수를 누리고 평화롭게 죽은 이 인물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가들이 찾지 못한 틈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며 전한 메시지처럼도 느껴졌다.


“신벌보다 주군의 벌을 두려워하라.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


스포일러가 될 수는 없는 글을 쓰다 보니, 추리미스터리가 아닌 역사소설을 읽은 감상글이 되었다. 이제 내게는 지요호란 이름과 너무 빠르고 짧게 끝나버릴 듯해 쓸쓸한 2022년의 가을이 남았다. 인간들 외에도, 찬란하고 떠들썩했던 많은 삶들이 조용히 혹은 눈부시게 죽음을 맞는 계절이다.


! 주의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밤샘 책이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펼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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