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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머리 앤줌마의 봄
앤줌마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9월
평점 :
읽고 쓰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혼자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재밌고 멋진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펜팔’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예전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어떤 글들을 써서 주고받았을까 무척 낭만적인 상상을 해보았다.
인터넷은 인류문명을 영구적으로 바꾸었고 덕분에 읽고 쓰기는 몸의 이동 없이도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되었다. 세상엔 사람 수만큼 다양한 글이 있고, 관심사가 비슷한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때로는 최초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누군가와 각별한 글 친구가 된다.
저자는 블로그 글쓰기를 오래 하신 분이다. 오래 함께 한 이웃분들의 축하와 기쁨이 가득해서 나도 표지처럼 화사한 기분으로 읽었다. 여성의 서사가 온통 꽃길이기만 할까.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여러 문장에서 이전에 읽은 다른 여성들의 서사가 튀어나왔다.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선택으로서 결혼,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시절의 임신, 바쁜 시댁일, 자식과 조카들 육아, 혹독한 갱년기... 그리고 이제 비로소 한가한 시간을 만났다고 한다. 정말 축하드리고, 다른 무엇도 아닌 ‘창의적인’ 일을 원하신 것에 감탄한다.
결핍을 급하게 채워야한다는 식의 과욕도 조바심도 없이 일상적인 삶을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시는 모습도 존경스럽다.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생각을 헤아리고 수용하고 마음을 맞추려 노력하시는 모습도 따라하고 싶다. 무엇보다 ‘시집살이’를 대물림 하지 않으신 점!
! 파서방 이야기는 정말 최고입니다. 목이 아프도록 웃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할머니로 살아가시는 분을 만날 때마다 오래 살고 싶다. 급작스럽게 떠나지 말고 배운 것, 다듬은 마음을 나누며, 새로운 관계를 여유롭게 받아들이며, 한가롭게 즐겁고 싶다. 햇볕도 실컷 쪼이고, 오디오북이라도 들으면서 무릎 위에 고양이도 재우고 싶다.
에세이의 장점이라면, 어떤 인물의 삶을 고유한 흐름대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때론 그 삶이 너무 순식간이라 애틋하고 때론 너무 무거워서 도중에 도망가고도 싶다. 그래도 읽기 시작한 글은 끝까지 읽어내고 싶다. 저자의 삶을 담은 글이니까.
‘이대로 무너지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이야 그쟈.’
건강도 잃고 몸도 감각도 정신도 약해지는 생의 계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무겁고 고약한 통증과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며, 그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도움을 만났을까. 내 어머니의 갱년기에 아무 도움도 못 된 처지라 미안함 외에 할 말이 없다.
지혜로워지진 못하더라고, 살아 낸 세월만큼의 담대함만은 좀 갖췄기를, 그래서 부디 자신에 대한 결정을 ‘결단코’ 담대하게 내릴 수 있는 모습이기를, 내 갱년기를 염려하며 불안해하며 그려본다.
“노을을 보며 가야 하는 나이에 가지를 뚫고 나온 보드라운 이파리 같은 삶의 시간을 마주하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