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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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 9관왕 수상작에다 이제까지의 장점을 모두 합쳤다는 작품을 읽고 싶긴 했지만 배경 지식이 없어 시도를 안 했는데, 먼저 읽은 이들이 읽을 수 있다! 잠깐만 시대 배경 공부하면 읽을 수 있다! 막... 무섭게(?) 격려해서 도전해보았다.




기초지식만 알아도 충분하고 몰라도 괜찮다는 거짓말 같은 말을 믿고 열어보니, 고풍스러운 구성이 먼저 보인다. ‘인因’이 시작이다. 설득력이 강하다. 세상만사가 인因으로 시작되고 복잡해지는 법이니.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자 공간의 이동인 겨울, 봄, 여름, 가을.




단편 연작인가 싶게 말끔한 완결성을 보이는 각장의 이야기는 최상의 추리 미스터리 작품에 기대하는 결론에서의 수렴으로 멋지게 마무리된다. 그 과정이 얼마나 교묘하고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는지, 수렴 방식과 내용이 얼마나 세련되었는지가 작품 전체의 매력을 결정한다.


시대와 장소에 거리감을 느껴서 그렇지 초반이 지나 익숙해지면 이 작품은 당시의 일상미스터리처럼도 느껴진다. 시대상을 입은 장소들이 작가가 펼치는 트릭들을 더욱 흥미롭게 치장한다. 도전하고 싶은 기분이 솟는 추리문제를 각 장마다 풀어보는 긴장되고 즐거운 독서이다.


어렵지 않게 한 반복 구조인 듯 비슷한 사전 전개가 나는 지루하지 않았다. 각 장을 반복하면서 풀이에 좀 더 자신감이 붙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아라키 무라시게’를 따라가도, ‘구로다 간베에’를 따라가도, 혹은 독자적인 독자의 시선으로 풀어내도 재밌을 정보가 주어진다.


단! 관심도 계기도 없어 알지 못했던 일본의 전국시대의 풍경은 참으로 잔인하다.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폭력성에 힘들 수도 있겠다. 그 당시에는 칼에 베어 죽고 착취당해 죽고 지금은 일터에서 매일 다치고 죽는다는 생각에 잠시 읽기를 쉬고 분한 기분을 누그렸다.


포악성과 배신을 망설이지 않는 것은 한국인인 나는 이해 못하는 일본 역사의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했을 것이고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모든 판단은 유보되거나 적어도 오랜 침묵과 사유를 거쳐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성이 견고한 것은 해자가 깊고 성루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버티고 있는 장졸들이 성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전부 나의 상상과 짐작일 뿐이지만, 작가도 혹... 누구도 예외로 두지 않고 배신을 거듭한 뒤 잘 살다 천수를 누리고 평화롭게 죽은 이 인물이 궁금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가들이 찾지 못한 틈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며 전한 메시지처럼도 느껴졌다.


“신벌보다 주군의 벌을 두려워하라.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


스포일러가 될 수는 없는 글을 쓰다 보니, 추리미스터리가 아닌 역사소설을 읽은 감상글이 되었다. 이제 내게는 지요호란 이름과 너무 빠르고 짧게 끝나버릴 듯해 쓸쓸한 2022년의 가을이 남았다. 인간들 외에도, 찬란하고 떠들썩했던 많은 삶들이 조용히 혹은 눈부시게 죽음을 맞는 계절이다.


! 주의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밤샘 책이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펼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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