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면을 먹을 때 모두가 친구 12
하세가와 요시후미 지음, 장지현 옮김 / 고래이야기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이 리뷰를 쓰고 있을 때, 다른 분들은 뭘하고 계실까.  올 한해동안 가까이 지냈던 연하녀는?  얼마 전 손수 뜨개질한 스웨터를 보내준 우리 엄마는..  28년만에 이사해서 아파트로 입주하신 우리 시부모님은 이제 새집에 많이 익숙해지셨을까.  고등학생 때 이유도 없이 날 얄미워하던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중학생 때 펜팔을 하던 영국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겠구나. 이 그림책을 읽고 나니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나와 연결된 사람들, 나와 연결된 세상과의 보이지 않는 고리 같은 것.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옆에서 방울이는 하품을 한다.
옆에서 방울이가 하품을 할 때 
이웃집 미미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이웃집 미미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
이웃집의 이웃집 디디는 비데 단추를 누른다.
이웃집의 이웃집 디디가 비데 단추를 누를 때 
그 이웃집 유미는 바이올린을 켠다.
그 이웃집 유미가 바이올린을 켤 때

 
   

 이런 상상은 누구나 가끔 해보지 않을까.  아파트에 사는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내 위에 어떤 사람이 자고 있고, 그 위에 또 어떤 사람이 자고 있고.. 하는 상상을 하다보면 아파트라는 공간이 참 삭막하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밤새워 공부하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이루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며 잠드는 사람, 싸우고 등돌리고 자는 사람, 악몽을 꾸는 사람, 밤낮이 바뀐 아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밤을 지새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마다 이 밤을 보내는 마음도 모습도 사연도 제각각일지도...  

   
 

이웃마을 남자아이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른다. 
이웃마을 남자아이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때
그 이웃마을 여자아이는 달걀을 깬다.
그 이웃마을 여자아이가 달걀을 깰 때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탄다.
이웃나라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탈 때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여자아이는 아기를 본다.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여자아이가 아기를 볼 때
그 이웃나라 여자아이는 물을 긷는다.
그 이웃나라 여자아이가 물을 길을 때
그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소를 몬다.
그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남자아이가 소를 몰 때

 
   

컴퓨터 앞에 앉기 전 잠깐 본 TV에서 에디오피아의 커피 재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유기농 커피를 재배하는 그들은 커피 판매가의 10%도 안되는 가격에 커피를 파는데 올해는 병충해로 커피열매 대부분이 썩어버려 걱정하는 이야기였다.  내가 좋아라 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에디오피아의 어떤 사람은 썩어버린 커피열매에 마음을 졸이며 한숨을 쉬고 있었겠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커피콩을 볶아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지도 못하고 열매껍질로만 차를 끓여마신다는데, 이런...  너무 먼 나라 이야기라고 커피 한 잔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구나.  늘 항상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커피 맛에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일지도 모르겠구나.
얼마전엔 몽고의 맨홀 속 아이들을 보기도 했다.  겨울엔 영하 40도의 추위가 예사라는 몽골에서 추위를 피하려고 유독가스와 폭발의 위험이 있는 맨홀 속으로 들어가 하루를 살아내는 아이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생필품들이 부족해서 좁은 땅굴을 이용해 어린 소년들이 이웃 이집트까지 가서 생필품들을 밀수해온다고 한다.  때로 땅굴이 매몰되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좁은 땅굴을 오가다 보면 사고를 당하는 일도 많다는데 어린 소년들이 어른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을 봤다. 
어쩌면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맞은편 나라 여자아이는 빵을 판다.
그 맞은 편 나라 여자아이가 빵을 팔 때
그 맞은 편 나라의 산 너머 나라 남자아이는 쓰러져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 때
바람이 불었다.

 
   

얼마전 큰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하는 말이, 올해 사랑의 열매는 전자파 차단 스티커로 나왔는데 반 아이들 중에 단 한 명도 그 스티커를 산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단 한 명도?
"너라도 하나 사지 그랬어.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겨울이 참 힘든 계절인데, 연말연시도 다가오는데, 하나 사지."했더니 친구들이 모두 '나 살기도 힘들어 죽겠다'며 아무도 사질 않아서 혼자 튀는 게 싫어 자기도 사지 않았단다.  하도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아이들이 거칠어지고 이기적이 되어간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딸아이가 전하는 구체적인 현실의 모습을 만나고 보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게 아닐까, 불안할 만큼.  

이 그림책 속에서 부는 바람.  그 바람을 우리도 같이 느끼고 안아야 하는데 무엇인가가 그 바람을 막고 있는 듯하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 때
바람이 막혔다
, 가 되어버린 느낌.  
아이들 이야기를 해서 뭐하랴.  결국 어른들을 보고 배운 것인 걸.  아이들더러 인정머리 없다, 이기적이다,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볼 일이다.  

섬사이, 너에겐 바람이 불어오더냐. 
저 산 너머 먼 나라에 쓰러져 있는 아이의 등을 훑고 지난 바람이 너에게도 불어오더냐. 
그림책 하나가 내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묻고 있다.  

 

*** 인용한 글은 이 그림책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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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1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섬사이 2009-12-13 23:09   좋아요 0 | URL
네.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 좋아지네요. ^^
 

애들 시험기간이다.  유진이는 지난 월요일에 시작해서 다음주 화요일까지, 명보는 다음주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세 아이들의 하루가 나에겐 한꺼번에 몰아친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이 뭐 그런거지..  

오늘은 유진이가 겨울방학 방과후학교 안내장을 가져왔다.  지난번에 신청했던 강좌들이 수강료와 교재, 각 강좌별 수강인원 등이 확정되어 온 것이다.  1기와 2기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유진이는 각 3강좌씩 모두 6강좌를 듣기로 신청했다.   

1기는 1월 4일부터 1월 22일까지, 2기는 2월 8일에서 2월 26일까지.  한교시당 90분 수업, 3교시까지 하고나면 1시 10분이 된다.  지난 여름에도 학교에서 하는 방학강좌를 들었는데, 학원을 다니지 않는 유진이에겐 꽤 유용하다.  1기에는 고전문학, TEPS 강좌(원래 영어 수능유형 강좌를 신청했는데 신청인원이 너무 많아서 TEPS강좌로 밀렸다), 수학 1 선행학습을 듣고, 2기에는 영어수능구문독해, 수학필수개념고2선행, 현대소설특강을 듣기로 했다.  교육비는 한 강의당 4만원대.  TEPS강좌만 신청 인원이 21명이라 62,800원이다.  모두 269500원.  

수학 과목은 그냥 방학 내내 꾸준히 강좌가 열려서 방학동안 충분하게 배울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마 앞부분 진도를 좀 나가다가 중간에 끝날 것 같다.  그래도 강제보충수업이 아니라서 마음에 든다.  선생님들이 강의를 맡아서 아이들에게 신청을 받아 진행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자율'인 것이다.  이번에도 신청지가 왔을 땐 지리, 경제, 정치 강좌가 있었는데 신청인원이 적어서 폐강이 된 것 같다.  사회과목을 좋아하는 유진이도 지리나 경제 강좌를 듣고 싶어했는데, 아무래도 주요과목 위주로 가야하고 3교시 안에서 선택을 해야하다보니 신청을 못했다.  다른 아이들도 사정이 비슷했을 듯.   

명보도 시험을 코앞에 두고 학원을 끊었다.  2년동안 학원을 다녔으니 지겨울 때도 되었겠다, 싶어서 말 나온 김에 얼른 끊어줬다.  '자기주도학습'과는 거리가 꽤 먼 녀석이라 좀 걱정이 되지만 일단 스스로 해보도록 맡겨보기로 했다.  어차피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학원으로 공부를 해결하는 것도 무리고, 혼자 해보다가 안되면 녀석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오겠지... 내가 너무 무사태평한 걸까.. 

유빈이는 드디어 2년 6개월동안 대기자로 되어있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내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것이다.  6살이면 다니던 어린이집도 끊고 영어유치원이나 일반 사립 유치원으로 바꿔주는데 이제서 어린이집 가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게 좀 웃기는 일일 수 있지만, 워낙 맘에 들었던 어린이집이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가장 대기자 수가 많아 들어가기 어려운 어린이집이라 연락온 게 반갑기만 하다.  게다가 구립이라 교육비도 저렴. ^^  유치원이나 초등학교가 아이들 공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6살에 어린이집 보내면서도 좋아라 하지..) 그냥 선생님들 좋고 주변 환경이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헤헤, 이제 내년 봄이면 하루에 일정한 내 시간이 생긴다.  몇 년만에 가져보는 자유인가..  유빈이가 어린이집에 가는 첫날엔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들어와야지, 이제 헬스 등록을 하든가 요가를 배우든가 해야지, 책도 차분하게 잘 씹어 읽고, 페이퍼랑 리뷰도 매일매일 써야지,,,  아직 유빈이가 어린이집 갈 날은 멀었는데 공연히 마음이 먼저 들뜨고 있다.   

냄푠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눈비가 오거나, 차를 쓸 일이 있는 날만 빼고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있다.  아는 분이 1500만원짜리 티타늄 자전거(그런 자전거가 정말로 있구나..)를 사는데 따라갔다가 얼떨결에 그 분 자전거의 10분의 1가격의 중고 자전거를 얻어 타게 된 게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그 분께 감사.  집에서 남편 사무실까지는 10km가 약간 안 나오는데 (9.7km라던가..), 왕복하면 거의 20km가 되니 꽤 운동이 될 것 같다.  남편 운동에 자극을 받아서 나는 요가 DVD를 샀다.  첫날, 내몸의 뻣뻣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반성했다.  지금도 여전히 뻣뻣하지만 한결 몸이 부드러워진 느낌이랄까.  겨울동안은 이렇게 버티고, 내년에 유빈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 본격적으로 운동 좀 해야겠다.  점점 배둘레가... 흐흐흑...  예전에 알던 사람 만나기가 두려울 정도다.  

어제, 알라딘에서 그림책 몇 권을 구입했다.  불매선언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되도록이면 하지 말자..하고 있었는데 옆라인에 사는 연하녀네 집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려다가 그만...  연하녀네 아이 신이가 <이가 빠지면 요정이 온대요>라는 책을 선물해달라는데 그 책이 절판된 책이었던 거다.  그런데,,, 마침 그 책이 알라딘 중고로 나와있어서, 그 책과 함께 <사랑해 100번>을 신이를 위해 더 주문했다.  신이 동생 현성이(3살)는 아이즐에서 나온 <영어동요>를 해달라기에 그 책에다 <부릉부릉 자동차가 좋아>를 더 보태서 주문.  총 4권을 주문했다.  <이가 빠지면 요정이 온대요>란 책이 알라딘 중고로 나와있지만 않았어도 참을 수 있었는데..  그래도 알라딘 컵과 탁상달력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쳤다.  (용하다, 섬사이!!) 

올해의 책 선정에 매일 참가하고 있다.  넷북이 당첨되었으면 하는 바람..(난 그런 요행운이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알면서!!)  며칠 전에 노트북을 하나 사줄 것처럼 냄푠이 슬쩍 이야기를 비추더니 다시 묵묵..  하긴 난 노트북 없이도, 넷북 없이도 잘 살 자신이 있지만 말이다.   

오늘은 지난 주에 꿀로 유자차를 담가 놓았던 것을 한 해동안 친하게 지냈던 이웃들 넷과 나눴다.  나보다 한참 어린 엄마들인데도 경로사상(?)이 투철해서인지 이런 저런 것들을 참 많이도 챙겨줘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던 이웃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도토리묵이라도 한 번 더 쑤어서 나눠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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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9-12-11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진이에겐 이미 방학이 방학이 아니군요. 그래서 더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네요.
요즘 중고등학교 입시 체제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중에 이번 겨울호 창비어린이의 대담 기사를 보고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어요. 무엇이 문제인지도 좀 더 실감이 되었고요. 하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정말 답답하더군요.
내년 봄에 대한 기대가 크시겠어요 ^^

섬사이 2009-12-11 21:29   좋아요 0 | URL
앗, 저 지금 막 hnine님 서재에 가서 쇼팽의 야상곡을 듣고 왔는데. ^^
교육문제는 아무래도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아요. 성경 말씀처럼 "거듭나지 않고서는" 손대기 어렵지 않을까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교육문제 해결이 더 어렵지 않을까, 아아아~~ 왜 생각이 비관적으로 흐르는 거죠...
내년 봄을 생각하면 마음이 들썩거려요. 너무 좋아요. 유빈이에겐 미안하지만. ㅋㅋㅋ

꿈꾸는섬 2009-12-1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너무 힘들겠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ㅠ.ㅠ
유빈이가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나봐요. 우리동네에도 저렴한 구립이나 시립 어린이집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요. 이제 좀 편안하게 볼 일 보실 수 있겠어요. 운동도 하시면 좋겠어요.^^

섬사이 2009-12-12 01:58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제 큰아이 둘이 모두 학원을 안다니니까, 다른 아이들에 비해 힘들다고 할 수는 없어요.^^
저희 동네에도 구립이나 시립에 들어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요. 유빈이는 2년6개월을 기다렸죠.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일찌감치 구립어린이집에 대기신청부터 해놓는 엄마들도 많아요.
오랜만에 찾아오는 자유라, 한동안은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심심하게 있어보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

마노아 2009-12-12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교육문제에 있어서 의연하게 대응하시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요. 모두들 이만큼씩의 여유가 있으면 다함께 덜 고단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내년 입학이면 1월이에요, 3월이에요? 섬사이님의 자유시간이 저도 함께 기다려져요. ^^

섬사이 2009-12-12 21:28   좋아요 0 | URL
아이가 셋이 되면 의연해지고 싶지 않아도 자연히 의연할 수밖에 없어요. 대한민국 교육문제도 어쩌면 자녀 많이 낳기가 해결방법이 될 수도... 유빈이는 3월에 입학이예요. 막상 자유시간이 생기면 뭘 할지 몰라 멍하게 지낼 것 같기도 해요.^^

 
<안녕, 영원히 기억할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안녕, 영원히 기억할게!
하라다 유우코 지음, 유문조 옮김 / 살림어린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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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결혼을 하고 집안 분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장례를 치르면서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몫으로 다가왔다.  미안함, 죄책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세상을 떠난 사람의 어떤 눈빛, 이야기, 추억, 그리고 휑한 빈 자리.  정작 죽음을 맞은 사람은 고단한 일을 마친 사람처럼 평온해 보였다. 죽은 사람을 미화시키는 건 죽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겨진 나를 위해서라는 것도 알았다.  

이 책은 개구장이 눈빛을 가진 검둥개 리리와 단발머리 여자 아이와의 우정 이야기다.  여자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고 있던 리리는 아이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된다.  그러나 갖고 있는 목숨줄은 저마다 달라서 리리는 수명을 다하고 숨을 거둔다.  태어나던 순간부터 사랑하는 친구가 되어주었던 개의 죽음, 그 죽음을 남겨진 아이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안녕'이라는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무력감을 아이는 잘 이겨낸 걸까.   

배경이 아예 생략되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배경만을 그린 단순화한 그림은 개와 아이의 감정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죽음을 통해 아직 남아있는 존재들의 생명을 연민한다는 것은 좀 잔인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아이들도 그럴까?  언젠가는 우리가 모두 헤어져야 하는 날들이 온다는 걸,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겨지는 날이 온다는 걸, 어렴풋하게라도 알고 느끼게 될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이 리뷰를 쓰는 것도 나에겐 버겁다.  이 나이가 되어도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 편안할 수 없다는 게 좀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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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세상을 설득하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10대, 세상을 설득하라 - 가슴속 열정과 의지로 세계를 사로잡는 기술
이정숙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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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만족하고 애써 나를 고쳐보거나 다듬으려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인가 보다.  자기계발을 하려는 건 뭔가 목표가 있기 때문일 텐데, 내겐 그 목표라는 것마저 사라지고 없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읽기가 쉽지 않았다.  뭐하러 굳이 이런 책을? 하는 마음이 들었던 거다.   

이 책은 설득의 방법으로써의 '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말'의 중요성은 옛부터 강조되어 왔다.  "'아' 다르고 '어'다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다"...  조심하고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이 '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속담들이다.   '예의', '경계', '조심' 이  기성세대들이 말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이라면 요즘은 적극적으로 '말'을 활용하여 상대를 사로잡는 것이 중요시 되고 있는 것 같다.  '침묵은 금'이라는 예전의 가치관이 약해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이 책은 '말'을 잘 하면 실력을 인정받고, 사람들과도 잘 사귀고,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을 잘 한다'는 건 뭘까?  저자는 '말은 나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소통의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잘생긴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언변이 좋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고 호감을 유도하고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으로 치자면 아마 사기꾼들이 최고의 고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서 윈스턴 처칠,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안철수, 강인선 기자를 예로 들었지만 말이다.

이 책이 '미래의 글로벌 리더를 위한 말하기 비법 공개'라거나 '말하기 실력이 인생의 무대를 확 바꾼다!'식의 문구를 달지 않고 그냥 소박하게 서로 더 잘 소통하기 위한 말의 예의 쯤으로 다루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에서도 말을 잘하려면 상식이 풍부해야 하고, 책을 많이 읽어야 하며, 상대를 존중하고,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등등의 설명이 들어있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성공과 출세와 인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건 좀 씁쓸했다.    

'말'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그러나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눈다는 것은 성공과 출세, 인기몰이와는 또 다른 차원이 아닐까.  지은이의 의도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지 않아도 무한경쟁의 시기를 살아내야 하는 아이들에게 '말'조차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 삼으라는 것 같아서 별로 권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르고 순진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진심'이 통하는 '말'을 위해 쓰인 책이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어떻게 말할까'와 함께 '무엇을 말할까'를 고민하라고 하고 싶다.  말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방법은 스스로 찾아내지 않을까.  '세상을 설득하라'는 이 제목이 요즘 10대들이 가져야 할 목표라면 어떻게 설득할까에 앞서 설득할 그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설득하고 싶은 그 무엇이 10대들에게 있는지, 그것부터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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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으로 보는 삶 마이 라이프
호세 안토니오 미얀 지음, 최고은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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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웃음이 났다.  책 속에 등장하는 기발한 표지판들도 그렇지만, 그 표지판들을 엮어서 그럴듯한 인생 이야기를 묶어낸 아이디어를 향한 웃음이기도 했다.  그림책이긴 하지만 어린 아이들보다는 사춘기에 들어선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면 더 좋을 것 같다.   
'기호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을 가진 언어학자'라는 스페인 출신 지은이는 이 책 외에도 여러 매체와 신호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다루어 왔다니 꽤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인물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이 작가의 다른 책들을 더 살펴보고 싶어진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나 역시 어머니의 도움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어."라는 글에 붙은 임산부 표지판.  우리나라에서도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표지판이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잔소리를 먹으면서 자란다.  엄마의 잔소리, 그것처럼 지겨우면서도 두고두고 그립기도 한 것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거다.   

 



하지만 아이들은 노는 것 외엔 관심이 없고, 그럴 수록 엄마들의 잔소리는 질적, 양적으로 더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조심할 것도, 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은 세상에 대한 잔소리가 이어지고    



그 잔소리가 지겨운 아이는 가출한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제 아이는 고생 좀 하면서 세상과 인생을 배워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돈을 써서 더 좋은 걸 갖는 거'고, '집을 사려면 돈이 엄청 들'며, '살아남으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아이는 결국 일을 구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해 왔던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충고를 해줄 만큼 아이는 자랐다.   





등골 빠지게 힘들게 일해도, 재미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부조리함'에도 눈을 뜨고...  














일이 끝나면 춤추고 마시면서 즐기다가 필름이 끊겨 집에 돌아오고 다음날이면 후회를 하고.. 

 







 

 

  

그러다가 책을 읽으며 세상을 이해하고 특별한 여자도 만나게 된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에게 어릴 적 지겹게 들었던 잔소리를 반복하다 늙어가고,   

 



 삶을 마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와있는 표지판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책 맨 뒤를 보면 그 궁금증이 싹 해결된다.  어디에 있는 무슨 표지판인지가 다 나와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있는 표지판이 대부분이고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일본에서 건져온 표지판도 있다.  아이디어나 표지판과 이야기의 환상적인 조화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인생의 모습에선 진지함이 느껴진다.   주저없이 나의 완소 그림책 반열에 올려주었다.  

유진이와 명보도 '재미있다'는 반응이었고, 표지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책을 소개해주신 선생님은 인터넷에서 표지판 그림을 뽑아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만들어봐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그것까지는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표지판들을 보면 그 속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면 표지판들처럼 우리 삶을 가깝게 둘러싸고 있는 기호도 드물테니 그 속에 우리 삶의 모습이 담겨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삶은 단순한 표지 이면에 들어있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빛깔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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