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면을 먹을 때 모두가 친구 12
하세가와 요시후미 지음, 장지현 옮김 / 고래이야기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이 리뷰를 쓰고 있을 때, 다른 분들은 뭘하고 계실까.  올 한해동안 가까이 지냈던 연하녀는?  얼마 전 손수 뜨개질한 스웨터를 보내준 우리 엄마는..  28년만에 이사해서 아파트로 입주하신 우리 시부모님은 이제 새집에 많이 익숙해지셨을까.  고등학생 때 이유도 없이 날 얄미워하던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을까.  중학생 때 펜팔을 하던 영국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도 나만큼 나이를 먹었겠구나. 이 그림책을 읽고 나니 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나와 연결된 사람들, 나와 연결된 세상과의 보이지 않는 고리 같은 것.  

   
 

내가 라면을 먹을 때,  
옆에서 방울이는 하품을 한다.
옆에서 방울이가 하품을 할 때 
이웃집 미미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이웃집 미미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릴 때
이웃집의 이웃집 디디는 비데 단추를 누른다.
이웃집의 이웃집 디디가 비데 단추를 누를 때 
그 이웃집 유미는 바이올린을 켠다.
그 이웃집 유미가 바이올린을 켤 때

 
   

 이런 상상은 누구나 가끔 해보지 않을까.  아파트에 사는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 내 위에 어떤 사람이 자고 있고, 그 위에 또 어떤 사람이 자고 있고.. 하는 상상을 하다보면 아파트라는 공간이 참 삭막하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밤새워 공부하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고,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이루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하며 잠드는 사람, 싸우고 등돌리고 자는 사람, 악몽을 꾸는 사람, 밤낮이 바뀐 아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밤을 지새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마다 이 밤을 보내는 마음도 모습도 사연도 제각각일지도...  

   
 

이웃마을 남자아이는 야구방망이를 휘두른다. 
이웃마을 남자아이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를 때
그 이웃마을 여자아이는 달걀을 깬다.
그 이웃마을 여자아이가 달걀을 깰 때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탄다.
이웃나라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탈 때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여자아이는 아기를 본다.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여자아이가 아기를 볼 때
그 이웃나라 여자아이는 물을 긷는다.
그 이웃나라 여자아이가 물을 길을 때
그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소를 몬다.
그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남자아이가 소를 몰 때

 
   

컴퓨터 앞에 앉기 전 잠깐 본 TV에서 에디오피아의 커피 재배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유기농 커피를 재배하는 그들은 커피 판매가의 10%도 안되는 가격에 커피를 파는데 올해는 병충해로 커피열매 대부분이 썩어버려 걱정하는 이야기였다.  내가 좋아라 하며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에디오피아의 어떤 사람은 썩어버린 커피열매에 마음을 졸이며 한숨을 쉬고 있었겠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커피콩을 볶아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지도 못하고 열매껍질로만 차를 끓여마신다는데, 이런...  너무 먼 나라 이야기라고 커피 한 잔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구나.  늘 항상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커피 맛에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일지도 모르겠구나.
얼마전엔 몽고의 맨홀 속 아이들을 보기도 했다.  겨울엔 영하 40도의 추위가 예사라는 몽골에서 추위를 피하려고 유독가스와 폭발의 위험이 있는 맨홀 속으로 들어가 하루를 살아내는 아이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선 생필품들이 부족해서 좁은 땅굴을 이용해 어린 소년들이 이웃 이집트까지 가서 생필품들을 밀수해온다고 한다.  때로 땅굴이 매몰되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좁은 땅굴을 오가다 보면 사고를 당하는 일도 많다는데 어린 소년들이 어른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하는 일을 설명하는 것을 봤다. 
어쩌면 내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 맞은편 나라 여자아이는 빵을 판다.
그 맞은 편 나라 여자아이가 빵을 팔 때
그 맞은 편 나라의 산 너머 나라 남자아이는 쓰러져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 때
바람이 불었다.

 
   

얼마전 큰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하는 말이, 올해 사랑의 열매는 전자파 차단 스티커로 나왔는데 반 아이들 중에 단 한 명도 그 스티커를 산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단 한 명도?
"너라도 하나 사지 그랬어.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겨울이 참 힘든 계절인데, 연말연시도 다가오는데, 하나 사지."했더니 친구들이 모두 '나 살기도 힘들어 죽겠다'며 아무도 사질 않아서 혼자 튀는 게 싫어 자기도 사지 않았단다.  하도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아이들이 거칠어지고 이기적이 되어간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딸아이가 전하는 구체적인 현실의 모습을 만나고 보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게 아닐까, 불안할 만큼.  

이 그림책 속에서 부는 바람.  그 바람을 우리도 같이 느끼고 안아야 하는데 무엇인가가 그 바람을 막고 있는 듯하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그 때
바람이 막혔다
, 가 되어버린 느낌.  
아이들 이야기를 해서 뭐하랴.  결국 어른들을 보고 배운 것인 걸.  아이들더러 인정머리 없다, 이기적이다, 탓하기 전에 나를 돌아볼 일이다.  

섬사이, 너에겐 바람이 불어오더냐. 
저 산 너머 먼 나라에 쓰러져 있는 아이의 등을 훑고 지난 바람이 너에게도 불어오더냐. 
그림책 하나가 내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묻고 있다.  

 

*** 인용한 글은 이 그림책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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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1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섬사이 2009-12-13 23:09   좋아요 0 | URL
네.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 좋아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