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반올림 3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정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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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고 이름 붙여진 공간은 아이들에게 참 많은 생각과 느낌들을 표출해내게 하는 곳임엔 틀림없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학교가 아이들의 주요생활공간인 만큼 그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단 생각이 든다.

첫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이보다 내가 더 심난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고생길로 접어든다는 뜻이었고,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의 막이 오른다는 의미였다.  딸아이도 조금 큰 치수의 교복을 입고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첫 중학생활을 두렵고 어색한 마음으로 견뎌나갔던 것 같다. 서양도 그런 점에선 별반 다를 게 없는 듯, 수지 모건스턴의 <중학교 1학년>에 등장하는 마르고의 허둥대는 모습들이 친근하다.  적극적이고 활발하고 오지랖 넓은 마르고가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이 책에서 수지 모건스턴은 특유의 익살과 위트가 넘치는 문체로 학교교육의 헛점들을 꼬집고 있다.  예를 들어 학교의 개혁을 의논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어른들은 "가능성"을 모색하기 보다 "불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심사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도네 국어선생님의 독서카드를 이용한 독서독려법도 그렇다.  아이들은 "깃털처럼 가벼운 경량급 책"들을 찾아 체면치레 정도의 장수채우기를 하고 독서의 질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는 선생님은 카드 매수에 따라 상을 준다. 

내 오감을 모두 동원해서 알고 받아들여 깨우쳐 진정 내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앎을 덮어두고 암기만을 목적으로 한 지식 습득 수준의 앎만을 강요하는 학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어느날  마르고는 국어시간에 프로방스 지방에 부는 서른 아홉가지의 바람의 이름을 배운다.  마르고는 그 바람의 느낌까지도 알고 싶어서 프로방스 알피유 산꼭대기에 올라가 그 바람들을 하나하나 맞아보며 그 바람의 이름을 불러보는 상상을 하지만 말도네 선생님은 바람의 이름들을 암기해오라는 숙제만 던져주고는 바람에 대한 공부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학습태도와 성적과 점수만을 가지고 마르고네 반 아이들이  "형편없는 아이들"이라고 단정지어버리지만 아이들이 만든 선생님들에 대한 성적평가도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은 교육이라는 것이 교사와 제자들간의 상호작용이라면 제자들이 "형편없다"는 것이 어찌 학생들만의 잘못이겠는가라며 모건스턴이 우리에게 던지는 재치있는 질문인 것같다. 

마르고는 몽상에 잠긴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학습 계획을 짜고 함께 공부하는 그런 앎의 터전을, 모임을, 현장을..... 그럼 역사-지리나 자연 과학이 와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과목만은 아닐것이다.  또 문학이며 그 밖의 과목들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될 것이다.  언젠가 자연 과학 시간에 '종의 진화'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었다. 그럴 때 국어 시간에 거기에 맞춰 찰스 다윈 시대의 책들을 공부할 수 있었다면,  역사 시간에 그 시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다면....."

"불가능성"만을 모색하는 어른들의 '심사숙고'보다 마르고의 몽상이 더 나아보인다.  

학창시절 내내 영어를 공부하고도 외국인을 만나면 입 한 번 못떼보고 허둥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만 치더라도 12년동안 음악과 미술과 체육을 배웠건만 어느 음악가 하나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방법과 즐거움조차도 배우지 못했고, 자신있는 운동종목 하나 갖지 못했다.  12년 동안 왜 그런 것들이 생활 안으로 스며들어올 수 없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왜 그런 것들은 학교 밖에서 따로 배워야 했을까.. 왜 학교 안에선 자극 받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생각들은 계속 이어진다.

"과연 학교가 우리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주장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가야 할 길을 일러 줄 수 있을까?
그 길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밝혀 줄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학교에서 인생을 알 수 있을까?
인생의 비밀을 배워서 터득할 수 있을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마르고가 던지는 질문들이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이제 가능성을 모색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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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7-05-1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 들 때가 많아요. 그런데 학교에 있다 보면 그런 것에 점점 익숙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어서 무서워요. ㅠ.ㅠ

섬사이 2007-05-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선생님들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아요. 학교라는 제도 뒤에 숨은 뭔가 검은 힘같은 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들거든요. 가능성은 선생님들만이 모색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학교와 정부, 사회 전체가 나서서 모색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려운 거겠죠? 그러니 앤디뽕님, 힘내세요. 몇몇 이해하기 어려운 선생님들도 있지만 정말 존경스런 스승님도 많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절망적인 교육현실과 힘든 여건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애쓰시는 선생님들께 진심어린 존경의 마음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학부모들이 희망을 걸고 믿을 수 있는 분들은 교육현장에서 땀흘리시는 선생님들밖에는 없답니다. 힘내세요.

알맹이 2007-05-13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분이 있다면 감사할 일이지요, 정말. 그런데 사실 저도 '검은 힘'을 계속 느껴 왔어요.. 이번 주말에 연수를 하나 듣고 왔는데 거기서도 참 우리 나라 교육 현실에 대해 많은 절망을 느꼈답니다. 그래도 주말에 안 쉬고 자발적으로 와서 연수를 듣는 70여 분의 선생님들과,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멋진 강사 선생님들을 보며 희망도 얻었습니다. ^^

섬사이 2007-05-14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희망이 살아있으면 언젠간 변하겠지요. 대한민국 선생님들 화이팅입니닷~~!!!
 

의식 성장의 단계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을 관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긴장과 습관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긴장과 습관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놓아버리고 편안하게 이완될 것이다.

우리가 놓아버리고 편안하게 이완된다면
우리는 온몸의 감각을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가 온몸의 감각을 알아차린다면
우리는 선명한 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선명한 인상을 갖게 되면
우리는 그 순간에 깨어날 것이다.

우리가 그 순간에 깨어난다면
우리는 실재를 경험할 것이다.

우리가 실재를 경험한다면
우리는 개인성을 넘어선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개인성을 넘어선 존재임을 알게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두려움과 집착을 놓아버릴 것이다.

우리가 두려움과 집착을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신과 하나 되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가 신과 하나 되기를 원한다면
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것이다.

우리가 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면
우리는 변할 것이다.

우리가 변한다면
세상이 변할 것이다.

세상이 변한다면
온 세상이 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2007년 5월 노틀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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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고, 온 세상이 신에게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온 세상이 신에게로 돌아간 다음에는?
천국같은 세상이 펼쳐지나요?
오만방자한 말씀이오나
우리가 신의 의지대로 행동한다는 건 또 뭡니까?
나의 의지가 신의 의지와 일치한다는 뜻입니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존재의 본질이 다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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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쯤.. 서서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저쪽 담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낼랑 말랑 할 즈음에

뽀의 학원 가방과 그 가방을 매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 유난히 애처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중학생 누나도 학원 한 군데도 안가고, 그 흔한 학습지 하나 안하는데

초딩짜리가 뭔 권세를 누리겠다고 이 좋은 봄날, 칙칙한 학원 건물 안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어가

저녁 때가 지나서야 해산해서 집으로 터덜터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학원을 재등록하기 전 날,

"뽀야, 너 5월 한 달 학원 쉬게 해줄까?"

뽀가 어리둥절~   엄마에게 숨은 계략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본다.

"아니, 이 좋은 가정의 달 5월에 네가 학원에 가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가정의 달은 가정에서 보내야지, 뭐, 싫으면 말구~"

"아니아니아니, 좋아, 근데 정말 그래도 돼?"

학원에 전화해서 5월 한달 쉬겠습니다 하고 뽀는 요즘 신나게 놀고 있다.

친구들과 자전거 타러 나가서 저녁 밥 때를 넘겨서 배고파 죽겠다며 들어오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 앞, 길 건너 산에 올라가 놀다 오기도 하고..

어제는 수련회에서 돌아온 지니랑 같이 만화가게에 가서 만화를 잔뜩 빌려오더니

오늘 아침 깨자마자 뒹굴거리며 읽고 있다.

그래, 놀아라 놀아.  요즘 비니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보면 초록빛 신록의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햇빛에 반짝이고 있더라. 

그 속에서 울리는 우리 아들 웃음소리를 듣고 싶은 건 엄마의 당연한 욕심 아니겠냐.

이담에 뽀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그 해 5월은 행복했네."라고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도 엄마 욕심이지..

 

근데, 너 뽀, 6월엔 어림도 없다.   도로 원상복귀야.  그리고 중학생되면 5월도 안봐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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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2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뽀가 즐거우면 섬사이님도 행복한 거지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향기로운 2007-05-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에겐 정말 기쁜 이벤트가 아닐 수 없겠는데요^^

무스탕 2007-05-12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이 '5월' 이군요. 뽀가 정말루 좋겠어요 ^^

hnine 2007-05-1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엄마는 계속 이런 갈등과 타협해야 할 것 같아요, 더 즐겁게 놀리느냐 마느냐...
나중에 어떤 쪽을 더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을지, 그 말씀이 와 닿습니다.

비로그인 2007-05-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진 엄마세요... 흐믓해지는 페이퍼 :)

홍수맘 2007-05-1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에겐 정말 "행복한 5월"이겠네요. 저도 배워뒀다가 나중에 써 먹어야지!

섬사이 2007-05-1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향기로운님, 녀석, 요즘 아주 살판났습니다. ^^

무스탕님, 그렇군요,, 제가 뽀에게 5월을 선물한 거, 맞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제 자신에게 5월의 작은 한 조각이라도 선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hnine님, 어릴 땐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면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겐 뭔가 내재된 욕구들이 있어서 될 수 있으면 그걸 다 쏟아내고 분출해내고 나서야 뭔가 다른 것들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고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려면 공부 못지 않게 노는 게 참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구요. 저희 아이들은 여름엔 밤 열시, 열한시까지 놀이터에서 여름 밤을 불사르며 놀곤 했어요. ㅋㅋㅋ

체셔님,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읽지 못하는 대책없는 철부지 푼수엄마라는 생각은 안드세요? 전 제가 그런 엄마가 되는 건 아닌지 내심 불안하기도 하거든요.

홍수맘님, 네,나중에 한 번 해보세요. 굳은 학원비로 애들이랑 맛난 것도 사먹고 재밌는 데 놀러도 가고.. ^^ 애들이 어릴 때 하는 게 심리적 부담감이 더 없겠죠?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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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도록 우리나라 소설을 읽지 않았다.  나의 우리나라 소설 읽기는 저기 저만큼, 이청준님과 윤대녕님, 박완서님, 이문열님 등등의 8,90년대 작품 쯤에서 멈춰있는 것 같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지만, 참으로 시건방지게도 어느 순간 소설의 말장난스러움을 느껴서였나보다.  긴세월의 군부정치에 대한 민주항쟁의 어렵고도 슬픈 한복판을 지나야했던 시대상황 속에서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 시대 작가들의 표현들이 왜 치열하지 못한지, 애써 에둘러 모호함의 극치로 내달리는지, 비탄과 통회의 눈물을 쥐어짜고 있는지.. 짜증이 났었던 것 같다.

아니다.  작가들 탓이 아니다. 내 탓이다.  소설 속에서 위선적인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그런 내 자신이 답답해서였다.  주변에서 서성대고 있는 한심스런 나의 초상이 소설 속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소설을 집어들었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으니 소설계에도 새로운 물결이 유입되었을 것이고, 그만큼 새로워졌으리라고 기대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제목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야기는 동구라는 남자아이를 통해 이어진다.  읽고 쓰는 것에 장애를 일으키는 난독증을 가진 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난독증은 동구 혼자만 가진 장애가 아니다. 

작게는 동구네 가족,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가 심각한 난독증 증세를 보인다.  그건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쓸수 없는 난독증이 아니다.  서로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데 장애를 보이는 난독증이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동구네 가족은 늘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롭고 불안하다. 

크게는 소설 속의 1980년 전후의 시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난독증이다.  정치가들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읽어내지 못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군부의 정치적 욕망을 읽어내지 못한다.  그 예로 동구네 학교 교장선생님은 민주화 시위를 빨갱이와 간첩의 소행이라고 아이들에게 부르짖으며 자신의 난독증을 과시한다. 그 시대의 난독증은 지독한 전염병같은 것이었다.

이 소설 속에서 난독증에서 자유로운 두 인물이 있다.  하나는 동구가 사랑하는 박영은 선생님이고 다른 하나는 동생 영주다.
박영은 선생님은 동구의 난독증을 치료해 준다.  난독증의 치료는 박영은 선생님이 동구를 이해해주고 마음 깊은 곳 구석구석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착하고 마음깊은 동구의 고운 심성을 인정해주는 데서 비롯된다.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에게 난독증을 치료받고 그 후로 가족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엄마와 아빠의 갈등을, 희망을 갖지 못한 할머니의 분노를, 아빠의 번민과 고뇌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영주는 난독증이 있는 동구와는 대조적으로 3살때부터 능숙하게 글을 줄줄 읽어 동네사람들에게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영특한 아이다.  읽기 능력이 탁월한 영주는 불협화음의 심각함이 극에 달하는 가족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소통이 가능한 아이로 묘사된다. 그리하여 영주가 불의의 사고로 가족 곁을 떠났을 때 동구는 이렇게 말한다.

"영주는 우리 식구들 중에 유일하게 애정 표현이 자유롭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벌리는 팔과 그 아이가 내미는 입술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 아이를 통하지 않고는 웃지도, 이야기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길들여져 있었다.  우리 가족들은 마치 신호등이 고장난 네 갈래 길에 각각 서 있는 당황한 사람들처럼, 서로 말을 걸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로 바라만 보게 되었다.  우리의 소통이 엉키지 않도록 요술 같은 방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누군가는 직진하게 하고, 누군가는 좌회전하도록 지도하던 우리의 푸른 신호등은 영원히 잠들어버렸다.  우리는 신호등 없이는 교차로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난독증에 걸리지 않은 두 사람, 박영은 선생님과 영주가 사라진 뒤 박영은 선생님으로부터 난독증을 치유받은 동구만이 유일한 희망이 된다.  동구는 드디어 읽고 이해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선생님과 영주가 깃들어 있는 유년의 아름다운 정원의  철문은 닫히고 혹독한 겨울, 인왕산 아래 산동네의 칼바람을 맞으며 어른이 다 되어버린, 그러나 아직 어린 동구는 할머니와 아버지, 어머니의 난독증을 치료하러 떠난다. 

난독증의 뿌리는 깊다.  가족에 대한 난독증을 앓고 있는 건 아닐까.  친구나 이웃에 대해 유별난 난독증이 발작처럼 찾아오는 경우는 없었을까.  중증의 난독증이 나와 그들 사이에 거미줄같은 장막을 치고 따뜻하게 오고 가야할 감정의 교류와 소통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소설이 너무 말장난스럽다며 멀리 했던 그 시간동안 난 소설에 대한 난독증을 앓았던 건 아닐까.   또한 군부정치의 막은 내려졌으나 또다른 이 시대의 아픔과 소외의 고통을 읽지 못하는 난독증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아직도 난독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은 자꾸 가지를 뻗고 난독증이라는 낱말 하나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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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7-05-1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멋진 리뷰십니다. 저도 이 책 읽었는데, 님처럼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님 리뷰 보고 하나 배워갑니다 ^^;;

2007-05-11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5-13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디뽕님,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칭찬에 춤추는 섬사이입니다. 울라울라 ~~^^

속삭인님, 우리나라 소설을 읽지 않은지 오래돼서 뭘 읽어야 좋을지도 모르는 바보가 되었어요. 오랫만에 읽는 첫소설치고 저에게 딱 어울리는 책을 골랐죠? 난독증에 대한 이야기. ^^ 저도 중증의 난독증 환자라 치료가 시급하답니다. 노력하다보면 100% 완치까진 아니더라도 조금은 나아지겠죠? 같이 노력해봐요. ^^

홍수맘 2007-05-1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 멋진 리뷰예요.
님의 리뷰를 보니 다시한번 이 책 보고 싶어요. 지금쯤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을텐데......

섬사이 2007-05-13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 고맙습니다, 홍수맘님,^^ 여러가지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소설이더라구요. 정말 멋진 소설이었어요.

비로그인 2007-05-2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게 읽었던 책인데, 리뷰가 늦어져 걸국은 못썼네요.
읽은지 한참되면 결국 리뷰를 못쓰게 되더라구요 우엉...
잘 읽었습니다. 심작가님 다른 책도 너무 좋아요 :)

프레이야 2007-05-23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심스러운, 위선적인 내 모습이 난독증의 원인이었군요.
그래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주위 사람, 가족에 대한
난독증, 저도 앓고 있네요. 섬사이님, 좋은 리뷰 추천입니다~~

hnine 2007-05-24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정원'이란 동구가 속하고 있던 장소가 아니었지요.
저도 인상깊게 읽었던 책이었어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섬사이 2007-05-24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님이 리뷰를 쓰셨다면 훨씬 더 새로운 시각으로 흥미롭게 쓰셨을텐데.. 아깝네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재밌게 읽고 지금 <이현의 연애>가 책꽂이에 대기중에 있어요. ^^

배혜경님, 난독증 고치기가 쉽지 않네요. 저도 고쳐보자고 마음 먹었다가도 이내 또 꼬이고 말아요. 제 마음 속에도 묵을대로 묵은, 미해결의 미움이 있거든요. 쥐고 있기도 털어버리기도 어려운, 복잡한 난제에요.

hnine님, '아름다운 정원'은 동구의 유년의 꿈과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죠. 결코 정원 안으로 들어가서 정원과 하나가 될 수는 없었지만,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황홀하게 빠져드는 곳이요. 동구보다는 박영은 선생님과 동생 영주에게 어울리는 곳이었어요. 속하진 못하지만 정원이 있었기에 그나마 동구의 고난했던 유년에 아름답게 빛나는 부분이 생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정원이 "나의" 아름다운 정원일 수 있었던 것 같구요. 선생님과 영주의 죽음으로 그 꿈마저 닫혀버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구에겐 험난하고 냉엄한 현실만이 남아 있게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죠. 참 잘 엮은, 좋은 소설이란 생각을 했어요. 제 개인적인 느낌을 얼기설기 서툴게 풀어놓은 리뷰를 관심갖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꾸벅~

향기로운 2007-05-25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마이리뷰에 오르셨어요^^ 축하드립니다~

섬사이 2007-05-2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으로는 인간승리의 드라마에요, 이 감격..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우선 온갖 방해공작으로 저를 긴장시키곤 했던 우리 비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또 그런 비니와 놀아주면서 저에게 잠깐씩이라도 시간을 만들어주었던 우리 지니와 뽀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죠? 무엇보다 저의 이 허접한 서재를 찾아와 주시고 일일이 댓글을 달아주셨던 서재지기님들께도 너무너무 감사하단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여러분~~~

향기로운 2007-05-27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치유 2007-05-2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너무 기쁘네요..축하드려요..
알라딘 이주의리뷰 정말 잘 뽑는다니까요..섬사이님..너무 멋져요..*^^*

섬사이 2007-05-28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 님, 제가 너무 오버했나요? ㅋㅋ

배꽃님, 이주의 리뷰에 뽑힌 게 아니구요, 추천리뷰에 올라간 거예요. 제가 너무 오버해서 착각하셨나봐요. 헤헤~~ 알라딘 서재엔 너무 실력있는 분이 많아서 이주의 리뷰에 등극하는 건 꿈도 안꿔요. 추천리뷰에 오른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저는. 함께 기뻐해주시는 님들이 계셔서 더 행복하구요. ^^

치유 2007-05-28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니예요..이주의 마이리뷰에 올라왔던데요??5월 셋째주..

프레이야 2007-05-2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경사 났어요. ^^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섬사이 2007-05-2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배혜경님, 알라딘 마을에서 확인해보고는 어머낫~!! 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저한테 이런 일도 일어나네요.. 기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래저래 올 5월이 축복의 5월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놀라서 다물지 못했던 입이 지금은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으로 다물어지지 않고 있어요. 축하해주시고, 저보다 먼저 기뻐해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

fallin 2007-08-14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리뷰를 읽고 이 책을 샀죠. 며칠 전에 읽었는데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근데 리뷰를 쓰질 못하겠어서 섬사이님의 리뷰를 다시 읽습니다. 책을 읽고나니 리뷰가 또 새롭고 멋지네요. 꼭 책 뒤에 있는 해설 같아요^^ 제가 풀어내지 못한 느낌들을 풀어내고 계신다는..아름답고 따뜻한 책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 2단계 문지아이들 8
수지 모건스턴 지음, 김예령 옮김, 미레유 달랑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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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크리스마스라는 뜻을 지닌 노엘이라는 이름의 나이 많고 뚱뚱한 선생님.

아이들에게 엉뚱하다 싶은 내용의 조커카드 한 벌씩을 선물로 나눠주고 필요할 때 조커 카드를 사용하기를 적극 권장해 마지 않는 선생님.

아이들에게 딱딱한 수업 대신에 "인생의 시련들(또는 스트레스)"라고 불리는 수련수업을 받게 하는 선생님. 

아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쳐주는 선생님..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 알겠지.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살아 가는 데는 이처럼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거야."

라거나 아니면

"인생에는 조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너희가 사용하지 않는 조커들은 너희와 함께 죽고 마는 거야."

라는 말을 아이들 가슴에 심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생님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노엘 선생님의 그런 탁월한 능력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과연 이게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일까? 

"우리들은 탄생과 더불어 이 모든 조커들을 받았다.  그러니까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낫겠지!"라는 노엘선생님의 말이 단지 아이들을 향해서만 울리는 말일까?

책을 덮으며 나는 내 자신에게 어떤 조커를 선물할까 생각해본다. 

일주일에 한 번쯤, 될 수 있다면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조커를 만들어봐야겠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해 봐야겠다.

노엘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그렇지,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다."라고. 

알았습니다, 선생님.  오늘부터 열심히 조커를 만들어 보도록 하죠. 열심히 사용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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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7-05-1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중학생한테도 괜찮을까요?? 저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읽어 봤네요.

섬사이 2007-05-1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8쪽짜리 아주 짧은 이야기지만 중학생들도 재밌게 받아들이고 자기 인생의 조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줄 것 같아요. 오히려 글씨도 크고 그림도 있는 짧은 동화라서 아이들이 부담없이 책에 다가설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 같구요. 특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까지 불러 모으는 책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근데 이 책이 워낙 알려진 책이라 벌써 읽은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요?

향기로운 2007-05-12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저는 이 책때문에 울 딸아이가 하루에도 몇번씩 사용하는 바람에 당황했었던 기억이나요^^ 조커사용이 난무하지 않도록 약속을 만드는 등의 작은요령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은 어쩌다 한번씩 잊을라하면 사용해요^^;;

섬사이 2007-05-1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책을 구입하면 따라온다던 조커 카드는 받지 못했어요. 아마 카드가 생겼다면 저도 꽤 골치가 아팠을 것 같아요. 저는 저를 위한 조커카드를 만들어볼까하고 궁리 중입니다. 애들이랑 모여 앉아 같이 만들어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암튼 읽고 나서 그 여파가 오래가는 책인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