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큰일났다. 내가 아무래도 바람이 난 것 같다. 자중해야한다는 머릿 속 외침이 들렸다. 안돼, 안돼, 안돼.. 반찬도 만들어 놓아야하고, 빨래도 쌓였어.. 아이들 내일 학교갈 준비도 해놔야 하고, 저녁 때면 백양사 간 옆지기도 돌아올텐데. 어쩌구 저쩌구..
그렇지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한국화 1953~2007'전시회는 오늘이 마지막인데.. 날씨가 자꾸 나더러 떠나라잖아. 2호선 지하철 타고 휘~익 갔다오면 시간도 오래 걸리진 않을걸..
결국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난 집을 나서고야 말았다.
<서울시립미술관 - 한국화 1953~2007- 전, -천경자 혼-전>
전혀 의도했던 바는 아니건만, 오늘이 무료관람의 날이었던 거다. 입장료라고 해봤자 700원인데, 그나마라도 무료라니까 무지 기분이 좋았다. 땡잡은 기분이랄까? 거기다 미술관 뜰에서는 <art safari>전시회까지!!!
비니가 미술관 뜰에 세워진 총천연색 아크릴로 만들어진 <온고지신 2007-말>을 보고 환호했다. 물론 그 앞에서 사진 한 방 찰칵~ 그러더니 <거북이>를 보고 달려간다. 파란 거북이 등에 집들과 나무들이 서있다. 비니는 "엄마, 나무, 집, 엉금엉금~"하며 소리지른다. 저 편에 보이는 기린 두 마리. 허걱, 아니다, 기린이 아니다. 최혜광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탄생시킨 이 작품은 <기린인 척 하는 아빠>와 <기린인 척 하는 아들>이다. 전신덕이라는 작가의 <나른한 오후> 시리즈는 철판을 가지고 만든 작품. 동물의 형상을 한 듯한데 무척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작품이다. 미술관 현관지붕 위에도 작품이 있었다. 나무 밑에 고양이와 쥐이 듯 보이는 동물 형상이 보인다. 작품명이 <삼자대면>, <카메라 위 검은 쥐를 위한 기념비>이다.
야외에서 열린 이 전은 비니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 이번에도 전혀 의도했던 바는 아니건만, 마침 미술관 쪽 스텝이 전시 설명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또 땡잡았다. 나는 비니 때문에 설명을 들을 수 없었지만 지니와 뽀는 작품 설명을 들어가며 전시를 누릴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도 역시 "나는 너무 아는 게 없다"라는 것을 느꼈다. 한국화의 내가 모르던 새로운 면을 많이 발견했고, 작품 전시를 '1.추상과 유입의 실험', '2.전통산수의 재인식과 현대적 변용', '3.서구 모더니즘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4.채색의 맥', '5.한국화의 시야를 넘어'라는 소제목으로 구분하여 전시를 구성하는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낯선 그림들이 너무 많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무식하다는 증거였다.
이응노 화백의 수묵추상화 몇 점도 볼 수 있었고, 서세옥 화백의 <사람>은 굵고 힘찬 붓의 터치로 그린 검은 먹빛의 사람 형상 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 내 안에 자리잡은 허전함을 보는 듯하여 작품 앞에 서서 흠칫했다. 박래현 화백의 그림 <노점>등의 그림들을 보았고, 이종상 화백의 <취상>은 잔잔한 강물에 비친 암벽을 보는 듯했다. 묵의 짙고 옅음의 묘미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고찬규 화백의 <봄날은 가고>는 전통의 맥락을 벗어난 아주 현대적이고 회화적인 맛이 풍기는 작품이라 감상의 재미가 더했다. 그 외에 인상적인 작품들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작가와 작품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리저리 뛰어 달아나려는 비니, 야외의 <art safari>로 되돌아가려는 비니의 몸짓이 자꾸 집중력을 흩어놓았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한국화에 대한 - 그것도 오늘의 한국화에 대한 - 느낌은 매우 좋았다. 화가들의 다양한 변주와 시도들이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도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공통의 뿌리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층에서 전시중인 <천경자의 혼>전시회도 둘러보았다. 1998년에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3점을 기증한 것을 기념하고자 2002년 5월부터 개최하고 있는 상설전이다. 93점이 모두 전시된 것은 아니고 30여점 정도만 전시되고 있다. 사실 천경자님의 그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뭐.. 그냥.. 천경자님의 그림에서 느껴진다는 화려한 슬픔들은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걸로 만족.
확인해보니 매월 넷째주 일요일은 무료관람의 날이란다. 흐흠.. 6월에는 <인상주의와 클로드 모네>전이 있다. 6월 넷째주에도 날씨만 허락해준다면 난 미술관 나들이를 가려네~~~ㅎㅎㅎ 앎으로의 행진에 박차를 가하고~!!!
<마야를 만나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돌아오는 길,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나와 덕수궁 앞을 지키는 수문장 나으리 옆에 뽀와 비니를 두고 사진 한 방 또 찰칵~ 그런데 저기 저 시청 앞 광장에서 뭔 행사가 있나보다. 아까부터 쩌렁쩌렁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다, 노래를 틀어놓은 게 아니었다. 이 또한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건만, 마야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던 거다.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 시청앞 광장 잔디밭으로 돌진~
정말, 끝내주게 노래 잘한다. 뽀가 디카를 빼앗아 무대 앞으로 나갔다. 마야는 <진달래 꽃>을 열창중. 사람들 틈에 끼어서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앞사람들 뒷통수나 엉덩이만 찍어오는 거 아닌가했는데, 짜아식, 제법 잘 찍은 게 몇 장 있었다. 마야의 새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마지막 곡으로 들었다. 아주 신나는 곡이었다.
시청앞 바닥분수의 물의 향연 속으로 뛰어들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젖으면 갈아입을 옷이 없으므로), 다음에 서울숲 바닥분수를 점령하자는 다짐을 하고, KFC에 들어가 에어컨 앞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잠시 씻어냈다. (사실은 베스킨라빈스에 들어갔었는데 너무 비싸서 그냥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니는 잠이 들었고, 아직도 자는 중이다. 뽀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느라 열심히 디카를 삑삑거리고 있고, 지니도 지쳤는지 소파에서 골아떨어졌다.
난 이제 저녁을 차려야지. 저녁을 먹고 백양사 탱화 색을 잡으러 간 옆지기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집을 치워놔야겠다. (늘 현실은 가혹하다)
사진은 다음에 올려야겠다. 사실은 집에 디카USB케이블이 없어져서.. 케이블이 없어진 건 내탓이 아니다. 디카는 내 담당이 아니기 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