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날씨가 좋았다.  큰일났다.  내가 아무래도 바람이 난 것 같다.  자중해야한다는 머릿 속 외침이 들렸다.  안돼, 안돼, 안돼.. 반찬도 만들어 놓아야하고, 빨래도 쌓였어.. 아이들 내일 학교갈 준비도 해놔야 하고, 저녁 때면 백양사 간 옆지기도 돌아올텐데. 어쩌구 저쩌구..

그렇지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한국화 1953~2007'전시회는 오늘이 마지막인데.. 날씨가 자꾸 나더러 떠나라잖아.  2호선 지하철 타고 휘~익 갔다오면 시간도 오래 걸리진 않을걸..

결국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난 집을 나서고야 말았다. 

<서울시립미술관 - 한국화 1953~2007- 전, -천경자 혼-전>

전혀 의도했던 바는 아니건만, 오늘이 무료관람의 날이었던 거다.  입장료라고 해봤자 700원인데, 그나마라도 무료라니까 무지 기분이 좋았다.  땡잡은 기분이랄까?  거기다 미술관 뜰에서는 <art safari>전시회까지!!!
비니가 미술관 뜰에 세워진 총천연색 아크릴로 만들어진 <온고지신 2007-말>을 보고 환호했다.  물론 그 앞에서 사진 한 방 찰칵~  그러더니 <거북이>를 보고 달려간다. 파란 거북이 등에 집들과 나무들이 서있다.  비니는 "엄마, 나무, 집, 엉금엉금~"하며 소리지른다.   저 편에 보이는 기린 두 마리.  허걱, 아니다, 기린이 아니다.  최혜광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탄생시킨 이 작품은 <기린인 척 하는 아빠>와 <기린인 척 하는 아들>이다.  전신덕이라는 작가의 <나른한 오후> 시리즈는 철판을 가지고 만든 작품.  동물의 형상을 한 듯한데 무척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작품이다.   미술관 현관지붕 위에도 작품이 있었다.  나무 밑에 고양이와 쥐이 듯 보이는 동물 형상이 보인다.  작품명이 <삼자대면>, <카메라 위 검은 쥐를 위한 기념비>이다. 

야외에서 열린 이 전은 비니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 이번에도 전혀 의도했던 바는 아니건만, 마침 미술관 쪽 스텝이 전시 설명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또 땡잡았다.  나는 비니 때문에 설명을 들을 수 없었지만 지니와 뽀는 작품 설명을 들어가며 전시를 누릴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도 역시 "나는 너무 아는 게 없다"라는 것을 느꼈다.  한국화의 내가 모르던 새로운 면을 많이 발견했고, 작품 전시를 '1.추상과 유입의 실험', '2.전통산수의 재인식과 현대적 변용', '3.서구 모더니즘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4.채색의 맥', '5.한국화의 시야를 넘어'라는 소제목으로 구분하여 전시를 구성하는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낯선 그림들이 너무 많았다는 건 그만큼 내가 무식하다는 증거였다. 

이응노 화백의 수묵추상화 몇 점도 볼 수 있었고, 서세옥 화백의 <사람>은 굵고 힘찬 붓의 터치로 그린 검은 먹빛의 사람 형상 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 내 안에 자리잡은 허전함을 보는 듯하여 작품 앞에 서서 흠칫했다. 박래현 화백의 그림 <노점>등의 그림들을 보았고, 이종상 화백의 <취상>은 잔잔한 강물에 비친 암벽을 보는 듯했다.  묵의 짙고 옅음의 묘미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고찬규 화백의 <봄날은 가고>는 전통의 맥락을 벗어난 아주 현대적이고 회화적인 맛이 풍기는 작품이라 감상의 재미가 더했다.   그 외에 인상적인 작품들이 있었으나 아쉽게도 작가와 작품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리저리 뛰어 달아나려는 비니, 야외의 <art safari>로 되돌아가려는 비니의 몸짓이 자꾸 집중력을 흩어놓았던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한국화에 대한 - 그것도 오늘의 한국화에 대한 - 느낌은 매우 좋았다.  화가들의 다양한 변주와 시도들이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도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공통의 뿌리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층에서 전시중인 <천경자의 혼>전시회도 둘러보았다.  1998년에 천경자 화백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93점을 기증한 것을 기념하고자 2002년 5월부터 개최하고 있는 상설전이다.  93점이 모두 전시된 것은 아니고 30여점 정도만 전시되고 있다.  사실 천경자님의 그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뭐.. 그냥..  천경자님의 그림에서 느껴진다는 화려한 슬픔들은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걸로 만족. 

확인해보니 매월 넷째주 일요일은 무료관람의 날이란다.  흐흠.. 6월에는 <인상주의와 클로드 모네>전이 있다.   6월 넷째주에도 날씨만 허락해준다면 난 미술관 나들이를 가려네~~~ㅎㅎㅎ 앎으로의 행진에 박차를 가하고~!!!

<마야를 만나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돌아오는 길,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나와 덕수궁 앞을 지키는 수문장 나으리 옆에 뽀와 비니를 두고 사진 한 방 또 찰칵~  그런데 저기 저 시청 앞 광장에서 뭔 행사가 있나보다.  아까부터 쩌렁쩌렁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다, 노래를 틀어놓은 게 아니었다.  이 또한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었건만, 마야가 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던 거다.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 시청앞 광장 잔디밭으로 돌진~

정말, 끝내주게 노래 잘한다.  뽀가 디카를 빼앗아 무대 앞으로 나갔다.  마야는 <진달래 꽃>을 열창중. 사람들 틈에 끼어서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앞사람들 뒷통수나 엉덩이만 찍어오는 거 아닌가했는데, 짜아식, 제법 잘 찍은 게 몇 장 있었다.  마야의 새앨범에 들어갈 노래를 마지막 곡으로 들었다.  아주 신나는 곡이었다. 

시청앞 바닥분수의 물의 향연 속으로 뛰어들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젖으면 갈아입을 옷이 없으므로),  다음에 서울숲 바닥분수를 점령하자는 다짐을 하고, KFC에 들어가 에어컨 앞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더위를 잠시 씻어냈다.  (사실은 베스킨라빈스에 들어갔었는데 너무 비싸서 그냥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니는 잠이 들었고, 아직도 자는 중이다.  뽀는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느라 열심히 디카를 삑삑거리고 있고, 지니도 지쳤는지 소파에서 골아떨어졌다. 

난 이제 저녁을 차려야지.  저녁을 먹고 백양사 탱화 색을 잡으러 간 옆지기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집을 치워놔야겠다.  (늘 현실은 가혹하다) 

사진은 다음에 올려야겠다.  사실은 집에 디카USB케이블이 없어져서.. 케이블이 없어진 건 내탓이 아니다.  디카는 내 담당이 아니기 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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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5-2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정말 대단하셔요...^^&

치유 2007-05-2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34900

육삼 빌딩에 사천구백명이라~~~~~!!

좋아요~~~~~~~~~~~``


섬사이 2007-05-3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웠는걸요. 그리고 아이 셋 중에 둘이 큰 아이라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날씨는 좋았다.  부엌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아침을 준비하는 내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런 날 집을 나서지 않고 어찌 가만히 있으랴 싶었다.  갈 곳도 정해졌겠다, 집을 나서기만 하면 그 곳에야 시간이 알아서 데려다 줄 것이다. 

비니가 잠 깨기를 기다렸다가 씻기고 밥먹이고, 옷갈아 입히고, 머리 빗기고... 외출을 위한 절차와 준비가 왜이리 복잡한지.. 자고 오는 여행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건만..

지하철을 타고 한성대입구역에서 내려 간송미술관까지 가는 길.  어른의 빠른 걸음으로 가면 10분,15분 정도나 걸릴까 하는 거리건만 비니걸음에 맞춰서 걷다보니 길이 한없이 늘어졌다.  중간중간 그야말로 '성북동 비둘기'들 구경도 하고 길에 한가득 내놓은 꽃들 구경도 하면서 드디어 간송미술관에 도착.

< 간 송 미 술 관 >

미술관 뜰로 들어서는 순간 코끝에 걸리는 풀과 흙내음.  아, 이 싱그런 내음 하나 만으로도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구나 했는데, 우리가 들어선 그 순간 미술관 한 켠 우리에 사는 공작새가 꼬리를 활짝 펼쳤다.  비니의 흥분.. "엄마, 짹짹, 엉덩이, 꼬리, 부채, 확~!" 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그 흥분을 내게 전달하느라 열을 올렸다.  공작 우리 앞에 서서 한동안 공작의 화려한 꼬리털을 구경하고 공작우리 앞을 떠나려 하지 않는 비니를 살살 달래서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 주제는 우암 송시열 탄신 사백주년기념 서화전. '진경문화의 뿌리를 마련해준 우암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그가 살던 시기에 제작됐던 그림과 글씨 및 그가 이룩한 이념기반 아래 그 제자인 삼연 김창흡의 제자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중 일부를 한자리에 모아' 놓은 전시회였다.  오래된 그림들. 당시의 화가가 휘둘렀을 붓끝의 여운이 수백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을 살고 있는 내 눈 앞에 펼쳐 보여진다는 사실에 숙연해졌다. 

창강 조 속이라는 화가가 그린 고매서작 (故梅瑞鵲 ; 묵은 매화나무에 앉은 상서로운 까치)이라는 작품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 한 마리의 자태가 사뭇 고독하면서도 도도한 듯하여 흔히 볼 수 있는 까치이건만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겸재 정 선의 박생연朴生淵  과 청풍계淸風溪는 그림 속에서 청아한 바람이라도 한 줄기 불어나올 듯, 요란스럽지 않게 고운 자태로 떨어지는 폭포의 정취와 거친 붓놀림으로 그려낸 장대한 나무들의 기상이 전해져왔다.

정유승의 <군원유희>라는 작품은 유쾌하다.  여덟마리의 원숭이가 서로 어울려 노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머리를 긁고 있는 녀석도 있고, 남의 머리를 긁어주는 녀석도 있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장난감 같은 것을 갖고 노는 녀석들도 있다.  그 장난끼 가득한 모습들에서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밝음과 명랑함이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창강 조속의 <고매서작>


간송미술관의 전시를 보고 내가 가장 뼈저리게 느낀 점은 "내가 너무 아는 게 없다"는 점이다.  이제 마흔인데 왜 이리 모르는 것들 투성이일까.. 하고 자기연민과 패배주의에 빠질랑 말랑하다가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알아가자고 용기를 내보았다. 

미술관 뜰은 너무 아름답다.  곳곳에 석탑과 불상들이 놓여있고,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 그 한적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누릴 수 있음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수집하고 미술관을 설립한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흉상 앞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득 담아 놓고 돌아섰다.

< 최순우  옛집 >

최순우 옛집을 찾아 나섰다.  오던 길을 되짚어 가다 보면 등촌칼국수집이 나오는데 그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최순우 옛집이 눈에 들어온다. 

대문까지 올라가는 높다란 계단.  대문 위에 걸린 '최순우 옛집'이라는 현판.  계단에 비니를 앉혀놓고 사진 한 장을 찍고 계단을 올라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시끄럽게 차들이 오고가는 큰 길을 잠시 벗어나 이 최순우 옛집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마치 설화 속의 나무꾼이 파랑새를 쫓아, 또는 떠내려오는 복숭아를 건져내다가 문득 신선계에 들어선 듯한 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

우리나라 고유의 미학을 예찬하던 분의 집답게 어쩌면 그렇게 단아하고 소박하고 조촐하며 편안하던지.  비니는 툇마루에 누워 기와지붕 선을 따라 오려진 하늘을 바라보고, 나는 기와 틈틈이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한무더기의 노란 들꽃까지도 감탄하며 바라보았고, 지니는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 내뱉는다. 

사는 것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이런 집에서 푸른 새벽 날이 밝아오는 것과 휘엉청 달이 떠오르는 것을 고요히 앉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집 뒷뜰에 놓인 달항아리.. 최순우님이 하얀 백자를 꺼내놓고 그 백자에 달이 비치는 모습을 사랑했다던ㅡ, 그 달항아리 백자가 정말 뒷뜰에 놓여있었다.  보고 싶다.  나도 그 백자 달항아리에 달빛이 어리는 모습을. 

2시에 강연이 있고 그 강연이 끝나면 간송미술관의 출입금지 지역의 문화재를 답사하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아쉽게도 너무나 혈기왕성한 비니 덕에 그 시간까지 머무는 것이 여의치 않아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라는 최순우님의 책을 사들고 옛집을 나섰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는 오래 전에 사서 아직 간직하고 있는데,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바람에 내 것이 되질 못했다.  이 기회에 최순우 옛집 방문 기념 스탬프까지 꽝 찍어 왔다. 

기회가 되시면 꼭 한 번씩 가보시기를..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민속촌이나 한옥마을과는 다른 정취와 감동을 맛볼 수 있으리라 장담하노니..  두어시간 머물다 왔을 뿐인데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집이다.  아직도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그 집으로 달려가곤 한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대학로 무슨 문화 축제 어쩌구..뭐 그런 거였는데...   고즈넉한 옛집에 머물다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축제 마당 가운데에 서고 보니 잠시 아득해지는 기분. 

그래서였는지 마로니에 공원에서 벌어진 행사를 눈여겨 보지도 못하고, 지니만 자그마한 판넬에다 뭔가를 그리는 이벤트에 참가하고는 그냥 돌아왔다. 

거리 공연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랐건만,  야외무대에선 S여대 학생들과 즉석에서 올라온 청년들의 미팅을 주선하는 행사가 진행중이었다.  커플을 짜고, 짜여진 커플들끼리 춤 경연을 벌이고,,

한 쪽에선 유니셰프 등등의 사회단체에서 봉사하는 청년들이 후원모금을 하고 있었다.  지니와 뽀가 지들 용돈을 모아 매달 유니셰프에 적은 액수지만 정기적인 기부를 하고 있어서 관심있게 보려했지만 후원모금행사의 분위기가 너무 지나쳐서 그냥 돌아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다섯시가 넘어 있었다.  비니는 말할 것도 없고 나와 지니도 지쳐서 있는 반찬으로 대충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서 벌러덩 누워버렸다.

놀라운 건, 그 와중에도 알라딘 서재는 열어봤다는 것.   서재중독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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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5-2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씨적에 대학로에 참 잘 갔었는데..
결혼하고는 한번을 못가보았네요..정말 강행군이었군요..정말 피곤하면서도 행복하셨겠어요..공주님들과 그렇게 즐길수 있다는거 정말 좋아요..

섬사이 2007-05-3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이 언제까지 엄마와 다니려고 할까요? 누릴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열심히 누려야지 싶어요. 게다가 요즘 날씨가 워낙 좋아서 집에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죠.^^
 

지난 주 토요일, TV의 전원스위치가 망가졌다.  리모콘? 작동불능상태에 빠진지 오래다.  하긴 결혼하고 아직까지 새 TV를 장만하지 않았으니 그 수명을 다했다 해도 성질부릴 일이 아니다.

나야 워낙 TV를 잘 안보는 편이고, 아이들도 켜면 보고 안켜면 안보고 스타일이다.  문제는 옆지기,, 주말에 즐겨보는 고정 TV 프로가 있고, 주중에도 퇴근해서 들어오면 TV부터 켜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비니, EBS의 뿡뿡이나 디보, 콩콩이, 그림책버스 등을 즐겨보곤 했는데.. 걱정이 됐다.

그래도.. 내 개인적으론 이 기회에 우리집에서 TV를 퇴출시키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큰딸 지니랑 수다를 떨면서 "아빠가 조만간 TV를 주문하지 않을까?"하는 쪽으로 예측하고 있었는데 오~~~ 놀랍게도 옆지기가 TV없이 버티고 있고, 비니도 처음 하루이틀동안 TV를 보려고 하더니 금세 포기했다. 

그래서 일주일간 우리집엔 TV 소리가 나질 않았다.  옆지기에게 "TV,어떻게 할까?" 하고 슬쩍 떠봤더니, "난 없어도 괜찮은데 당신 필요하면 하나 구입할까?"한다.  물론 나도 괜찮다고, 구입할 필요 전혀 없다고, 도리질을 했다.

TV 없는 일주일 동안, 긍정적인 변화는 아이들의 독서시간이 쪼~~~금은 늘어난 듯... 그 효과가 미비한 건 컴퓨터 탓이다. 특히 뽀는 5월 한달 학원을 쉬기로 했으니 시간이 널널하게 남아도는지라 컴퓨터 게임의 시간도 그만큼 늘어나버리고 말았다.  지니는 유럽여행의 꿈에 젖어서 여행안내서를 들여다 보며 여행계획을 짜고, <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와 <명화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로알드 달의 <맛>이라는 소설책을 읽고... 등등 나름 여가시간을 이용하고 있다.  (5월 한 달이 우리 가족에게는 본의 아니게 축제의 달이 되어버린 듯..)

 

 

 

 

어쨌거나 TV퇴출은 일단 성공한 것 같다.  흐흐흐흐~~ 이젠 거실의 서재화 프로젝트를 완성하면 되는데..이 프로젝트에 대해선 옆지기도 찬성하는 쪽이고, 아이들의 호응도 좋다.  문제는 방법이다.  소파도 1인용 소파만 남기고 나머지는 치워버리고 싶다. 책꽂이도 각 방에 있는 책꽂이를 들고 나오자니 책꽂이 모양이며 색깔이 제각각이다.  뭐, 그런 거 무시하고 일단 거실을 서재의 모양새로 바꾸는 데 의의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구의 재배치,, 그게 또 온가족이 매달려야하는 스케일의 작업이다 보니,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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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일을 계획하고 계시네요? 조만간 서재화가 된 거실의 변화를 저도 볼 수 있겠죠? 저에겐 아직까진 그냥 꿈이예요. 저희도 되도록 빨리 거실의 서재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07-05-27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5-27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저 또한 아직 실행을 못하고 있으니 꿈이죠. 결행을 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들 것 같아요. 궁리만 요란합니다. ^^

섬사이 2007-05-27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 감사는 무슨.. 제가 좋아서 그러는건데요, 뭐.

이매지 2007-05-2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책보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거실의 서재화는 꿈도 못 꿔요 ㅎ 어릴 때는 그나마 거실이 서재였는데 이제는 그 책들이 다 제 방에 들어와있는 ㅎ 책꽂이가 제각각이면 어때요! 더 더워지기 전에 거실을 서재로~!ㅎㅎ 나중에 구경시켜주세요^^

섬사이 2007-05-28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이매지님 페이퍼에서 어느 방송에서 님의 책들이 공개되었다는 내용이 있었죠? 그 때 아쉽게도 전 그 동영상을 못찾아서 못봤어요. 정말 보고 싶었는데.. 거실을 서재로 만든다고 해도 그다지 기대할 만한 수준이 못될 거예요. 재작년에 이사하면서 책들을 일차 처분했었고, 옆지기의 책은 사무실로 다 나가 있거든요. 누군가에게 공개하기엔 너무 보잘 것 없어요. ^^

비로그인 2007-05-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지는 않지만 참 멋진 결정이세요.
TV는 사실 습관적인 면이 많아 한편 안보기 시작하면 안봐도 별 불편함 못느끼거든요 저도 TV는 거의 안보는 편인데요 오히려 유익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무스탕 2007-05-28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요즘 티비로 못 본건 인터넷으로 찾아볼수 있으니 여건이 그렇다면 꼭 들여놓을 필요는 없으시지요.. 부럽..
저도 집에서 티비를 몰아내고 싶어요!! 저희집은 저 빼고 남정네 셋이 티비없으면 죽습니다 -_-;;

섬사이 2007-05-2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일주일 넘기는데 큰 무리가 없었어요. 체셔님 말대로 TV 시청은 습관이었던 것 같아요. 보고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내용들인데 말이에요.

무스탕님, 아직도 내심 불안하긴 해요. 어느 날 갑자기 옆지기가 TV를 주문하지나 않을지, 아니면 리모컨이라도 사들고 들어오지나 않을지.. 저희 옆지기도 TV를 좋아했거든요. ^^
 

오늘 지니네 학교가 재량휴업일이었다.

그래서 지니랑 비니랑 나랑 셋이서

간송미술관에 갔다가

최순우 옛집을 들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까지 들렀다가 왔다.

지쳤다.

자세한 페이퍼는 다음 기회에 사진과 함께 올리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뻗어야겠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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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5-2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푹 쉬세요..
두공주님 거느리고 행복하셨겠습니다..*^^*
사진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을께요..

홍수맘 2007-05-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힘든 스케쥴이었네요.
푹~ 쉬시고 내일 뵈요. ^ ^.

알맹이 2007-05-26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고 싶어요~ 저도 최순우 옛집 담에 꼭 가볼 테에요 ^^

향기로운 2007-05-2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섬사이님 많이 피곤하셨겠어요... 푹 쉬시고 다녀오신 이야기 들려주세요~^^*

섬사이 2007-05-2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홍수맘님, 앤디뽕님, 향기로운님, 호사스러운 시간을 보내놓고 지쳐 쓰러지는 건 행복한 일이겠죠? ^^ 사진을 올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고 해서 잊어먹기 전에 글로라도 대충 정리해 페이퍼에 올릴까 하고 있어요. 사진은 나중에 간단하게 설명만 붙여서 올려도 되니까요. 님들 덕분에 오늘 하루 푸욱 잘 쉬었어요. 그런데 오늘도 날씨가 너무 좋아서 또 어딘가로 나가고 싶은 거 있죠? 시립미술관을 다녀올까 하다가 자중하자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답니다. ^^
 
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체르노빌의 이야기는 막연하고 파편적인 이야기였다.  알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공포가 있다는 거. 원전이 폭발하면서 유출된 방사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들을 나와 상관 없는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덮어두고 싶었다.

그런데 왜 이 책에 손이 갔을까? 사람들이 재미삼아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을 확인해보고자 하는 용기가 그 순간 갑자기 밀려올라왔던 걸까? 

껍질 속은 안전하다.  내가 쳐 놓은 장막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건 참 아늑한 일이다.  내 울타리 안, 매서운 바람이 불지 않는 곳, 밖깥의 현실이 어둡더라도 스위치 딸깍, 전등불빛을 밝히고 커튼을 내리면 밖이야 어떻든 아무 상관없다.  당시 체르노빌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이라는 시각이 오기 전까지 체르노빌의 사람들도 그랬다.  체르노빌 사람들도 그렇지만 낙진의 70%가 떨어졌다는  벨로루시 공화국 사람들에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믿고, 아늑하고 단란한 가정을 성실하게 꾸려갔을 것이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전사고로 희생되는 아이들과 붕괴되는 가정, 그리고 은폐하기에 급급한 구소련 정부를 담고 있다.  저자가 저널리스트이자 반전, 평화운동가이므로 이야기의 구성이나 재미로 보자면 좀 허술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고발"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 책의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발생했던 엄청난 방사능 낙진들, 원자로 안에 갇혀 있던 "죽음의 재"가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이 죽음의 재는 당시 일천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올랐고, 핵구름은 기세 좋게 성층권까지 올라가 그 곳에서 수증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고, 이미 지구는 '죽음의 재'에 포위당했으며 우리는 '죽음의 재'가 흘러든 물을 마시고, '죽음의 재'가 뿌려진 채소과 과일을 먹으며, '죽음의 재'가 발라진 풀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를 먹고 있다고.. 이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그리고 아직도 구 소련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사람들은 원자력을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부르짖고 있었다. 앞으로 세계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이며 1기 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 년에 한 번이라고 하지만 따져보면 그말은 세계에 만약 2천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하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아니냐며 반문한다.  그 중 몇개가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다면 그야말로 지구 멸망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싹했다.

원자력 에너지의 필요성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견해라고도 주장한다.  원자력 산업이라는 게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군수산업 중에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업종이며 원자력 발전소를 추진하려는 것은 에너지 부족 문제 때문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이익과 결부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어린 이반과 이네사의 죽음을 지켜보며 마음 아파 하는 건 내 싸구려 눈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말한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원전을 도쿄 한복판에 건설하라고.  그래, 어쩌면 우리는 부르짖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세계 각국의 수도에 원전을 건설하라고. 우리나라는 청와대 옆에, 미국은 백악관 옆에, 영국은 버킹엄 궁전 옆에~!!!   그러면 적어도 부주의로 인한 원전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TV에서 흘러나오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정부측의 홍보 광고를 여과없이 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보게 하고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피해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 하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체르노빌 원전은 시멘트를 쏟아부어 막아놓았다는데, 그 시멘트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고, 그 틈으로 방사능이 새나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쳐 놓은 장막 안이 그다지 안전한 공간이 못된다는 불길한 신호가 울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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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5-2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땡스 투!!!
아시죠? ㅋㅋㅋ

섬사이 2007-05-2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정말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본받지 마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이궁.. 그나저나 활기차게 시작하셔야 할 하루를 제가 망쳐버린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홍수맘님, 땡스투...^^

2007-05-2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5-2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 외면하고 모르는 척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것 같아요. 모르는 편이 마음은 더 편할테니까요. 하지만 알고 대응해 나가는 게 현명한 것이겠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테고요. 속삭인 님도 남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