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체르노빌의 이야기는 막연하고 파편적인 이야기였다.  알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공포가 있다는 거. 원전이 폭발하면서 유출된 방사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고, 지금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기형아가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들을 나와 상관 없는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덮어두고 싶었다.

그런데 왜 이 책에 손이 갔을까? 사람들이 재미삼아 공포영화를 즐기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을 확인해보고자 하는 용기가 그 순간 갑자기 밀려올라왔던 걸까? 

껍질 속은 안전하다.  내가 쳐 놓은 장막 아래에서 살아간다는 건 참 아늑한 일이다.  내 울타리 안, 매서운 바람이 불지 않는 곳, 밖깥의 현실이 어둡더라도 스위치 딸깍, 전등불빛을 밝히고 커튼을 내리면 밖이야 어떻든 아무 상관없다.  당시 체르노빌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30분이라는 시각이 오기 전까지 체르노빌의 사람들도 그랬다.  체르노빌 사람들도 그렇지만 낙진의 70%가 떨어졌다는  벨로루시 공화국 사람들에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안전하다고 믿고, 아늑하고 단란한 가정을 성실하게 꾸려갔을 것이다. 

이 책은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전사고로 희생되는 아이들과 붕괴되는 가정, 그리고 은폐하기에 급급한 구소련 정부를 담고 있다.  저자가 저널리스트이자 반전, 평화운동가이므로 이야기의 구성이나 재미로 보자면 좀 허술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고발"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 책의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발생했던 엄청난 방사능 낙진들, 원자로 안에 갇혀 있던 "죽음의 재"가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이 죽음의 재는 당시 일천미터 상공까지 치솟아 올랐고, 핵구름은 기세 좋게 성층권까지 올라가 그 곳에서 수증기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고, 이미 지구는 '죽음의 재'에 포위당했으며 우리는 '죽음의 재'가 흘러든 물을 마시고, '죽음의 재'가 뿌려진 채소과 과일을 먹으며, '죽음의 재'가 발라진 풀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를 먹고 있다고.. 이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그리고 아직도 구 소련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사람들은 원자력을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부르짖고 있었다. 앞으로 세계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이며 1기 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 년에 한 번이라고 하지만 따져보면 그말은 세계에 만약 2천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하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게 아니냐며 반문한다.  그 중 몇개가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다면 그야말로 지구 멸망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싹했다.

원자력 에너지의 필요성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견해라고도 주장한다.  원자력 산업이라는 게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군수산업 중에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업종이며 원자력 발전소를 추진하려는 것은 에너지 부족 문제 때문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이익과 결부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어린 이반과 이네사의 죽음을 지켜보며 마음 아파 하는 건 내 싸구려 눈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말한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원전을 도쿄 한복판에 건설하라고.  그래, 어쩌면 우리는 부르짖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다면, 세계 각국의 수도에 원전을 건설하라고. 우리나라는 청와대 옆에, 미국은 백악관 옆에, 영국은 버킹엄 궁전 옆에~!!!   그러면 적어도 부주의로 인한 원전사고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TV에서 흘러나오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정부측의 홍보 광고를 여과없이 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읽어보게 하고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피해를 스스로 찾아볼 수 있게 하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  체르노빌 원전은 시멘트를 쏟아부어 막아놓았다는데, 그 시멘트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고, 그 틈으로 방사능이 새나오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쳐 놓은 장막 안이 그다지 안전한 공간이 못된다는 불길한 신호가 울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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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5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5-2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땡스 투!!!
아시죠? ㅋㅋㅋ

섬사이 2007-05-2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정말 불안한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을 본받지 마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이궁.. 그나저나 활기차게 시작하셔야 할 하루를 제가 망쳐버린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홍수맘님, 땡스투...^^

2007-05-26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5-26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 님, 외면하고 모르는 척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 것 같아요. 모르는 편이 마음은 더 편할테니까요. 하지만 알고 대응해 나가는 게 현명한 것이겠지요. 우리 아이들에게 이 책 읽기를 권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테고요. 속삭인 님도 남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