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광중 속에 누우신다.  일꾼들이 돌로 만든 횡대로 할머니를 덮는다. 가족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삽으로 흙을 떠서 할머니 위에 뿌린다. 

할머니, 좋으세요? 
매일 방 안에만 누워계시다가 이렇게 바깥 바람 쏘이시니까 좋으세요?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던 육신에서 놓여나시니까 좋으세요? 
하늘도 참 맑네요. 
햇볕도 좋고 짙어가는 녹음이 싱그러워요.  
저 하늘 높이높이 날아다니시며 이 모든 것을 내려보시니 좋으시죠?
할아버지 곁에 누우시니까 외롭지 않고 좋으시죠?  

갑자기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할머니가 떠올랐다.  내 눈 앞에 떠오른 할머니는 소녀인 듯, 새색시인 듯 어리고 앳된 모습이다.  수풀 우거진 산 속, 색동저고리를 입은 할머니는 열심히 걸음을 서둘러 산을 오르신 모양이다.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다.  맑고 시원한 계곡을 만나자 할머니는 손으로 물을 떠서 입을 적신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으신다.  얼굴이 생기로 가득하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시곤 저 쪽 산 길로 사라지신다.  난 맥없이 서서 그냥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고 만다. 

손님들도 모두 돌아가고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시누네 가족과 우리 식구들만 남았다.  동네 전골집에서 저녁을 먹고 시댁에 들어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제 이 2층집에 어머님과 아버님, 단 두 분만이 살게 되었다.  결혼해서 우리가 시댁에 살 때만 해도 옆지기와 나, 그리고 지니까지 해서 4대에 걸친 여덟식구가 살던 집이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  시댁에 왔다가 집에 가기 전에 할머니가 계신 2층 방에 올라가 시끌벅적하게 인사를 드리고 가는 게 절차였다.  늘 하던 절차를 빠뜨리고 집에 돌아가려니 허전해서 혼자서 불도 켜져 있지 않은 계단을 올라 2층 할머니 방에 들어섰다.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 불을 켜니 훤히 드러나는 빈 방.

할머니가 누워계시던 침대가 주인을 잃은 채 비어있었다.  비어 있을 줄 알고 올라왔는데, 몸으로 다가오는  빈 공간의 느낌이 너무 커서 할머니의 침대를 쓰다듬다가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땅 속에 몸을 누이는 할머니를 보는 것 보다 더 당혹스러웠다.  당혹감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는데, 할머니를 간병해주시던 아줌마가 올라오셨다.  나를 보더니 등을 도닥거리신다.  힘들지 않게 편히 가셨으니 그만 슬퍼하라신다.  아줌마에게 내 바보같은 모습을 들킨게 창피하다.  머쓱하게 웃고는 계단을 내려오는데 어머님이 날 보고 계신다. 

"빈 방을 보니까 이상하지?"
"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려고 했는데 목구멍이 조여들면서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부엌 구석에 서서 휴지로 얼굴을 닦는데 옆지기가 오더니 내 등을 두드린다.  난 왜 이렇게 바보같을까.  내 눈물은 바보같다.  적어도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옆지기와 시누 앞에서 이러면 곤란하다.  할머니에 대한 나의 애정이 그 분들 보다 더하랴.  그런데 위로해야 할 사람이 위로받아야 할 분들에게 거꾸로 위로를 받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며칠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옆지기의 운전이 불안했다.  지니가 조수석에 앉아 아빠에게 껌을 먹이고, 말을 시키고, 네비게이션이 붉은 빛으로 깜박거릴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할머니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이렇게 남은 생을 이어간다. 

어느 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순간이 할머니의 고요한 죽음과 할아버지의 정갈한 죽음을 본받을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벌써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의 틀니를 닦아드리고, 할머니의 긴 식사를 옆에서 거들고, 할머니의 등에 손을 넣어 긁어드리고,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이 할머니의 인자한 눈빛이나 긴 시간동안 계속되던 기도나 희망으로 밝게 빛나던 할머니의 표정과 말씀에 비하면 실상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할머니는 내게 당신의 마음을 주셨고, 나는 할머니께 손주며느리로서의 무미건조한 도리만 돌려드렸다는 사실이 후회로 남았다.   언제쯤이면 후회 없이 떠나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후회없이 떠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을 잊지않고 기억하며 살 수 있을까. 

집에 들어서니 피곤이 몰려왔다.  짐도 풀지 않고, 뜨거운 물을 받아 욕조에 몸을 담그고  부어오른 다리와 혹사당한 발을 주물렀다. 씻고 나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누이니 할머니는 몰려오는 잠에 저만큼 밀려나신다.  불쌍한 우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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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8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이런 일이 있었군요. 섬사이님, 손주며느리의 정이 살가워요.
할머님도 좋은 곳으로 가셔서 님 생각하시리라 믿어요. 이제 그만 손 놓고
마음 놓으시기 바래요.. 애 많이 쓰셨어요.

치유 2007-06-08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랬군요..그랬어...천국에서 편히 쉬시길..!

fallin 2007-06-0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을 글을 보니..할머니도 편히 가셨겠단 생각이 드네요. 작년에 떠나가신 저희 할머니 생각이 나요. 때로 할머니를 돌봐드린다는 게 귀찮고 짜증스러웠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할머니의 모습, 존재 그 자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섬사이님의 글을 보며 공감도 가고, 할머니께 죄송하기도 하고..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섬사이님 피곤하시겠어요. 푹 쉬세요 ^^

2007-06-08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6-0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구나.
님의 글을 읽으면서 맘이 짠~해 오네요.
할머님은 오히려 하늘나라에서 님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계실거예요.

2007-06-09 0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6-09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배꽃님,fallin님, 속삭인 ㅎ님, 홍수맘님, 속삭인 ㅇ님, 고맙습니다. 할머님을 잃고도 밥도 잘먹고 히히거리며 잘 지내고 있어요. 삼우제 마치고 한 이틀 푹 쉬었더니 피곤도 많이 풀렸구요. 애도의 슬픔은 너무나 짧고 저의 일상은 아무 변화도 없이 냉정하게 이어지네요. 님들의 위로를 받기가 쑥스럽고 민망할 정도에요. 제가 너무 못됐죠?

2007-06-09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섬사이 2007-06-0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님께도 그런 슬픈 기억이 있군요. 그래요, 시간은 많은 것을 무디게 해주고 정화시켜 주는 것 같아요. 네, 돌아가신 분들은 분명 저희를 따뜻하게 지켜보고 계실 거에요. 그렇죠?
 

딱딱하고 차가운 돌침대에 할머니는 누워 계셨다.  똑바로 펴진 적이 없던 팔과 다리가 여전히 굽은 채로, 마치 마트 냉장보관대에 진열된 선동 오징어나 동태마냥 딱딱하게 굳은 채로 그 썰렁하고 삭막한 방 안에 누워 계셨다.   할머니가 까마득히 낯설어 보였다. 

젋지도 늙지도 않은 낯선 남자가 우리 할머니의 몸을 닦아드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모로 눕히자 허리부분의 욕창이 드러났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몹쓸 것이다. 십수년을 방 안 환자용 침대에 누워 보내셨던 할머니건만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늘 묵주를 손에 들고 계셨고, 사랑을 가득 담은 인자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곤 하셨다.  그 오랜 시간을 침대에 누워만 계시면 절망에 빠질만도 하건만, 할머니는 "나,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조금 있으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하시며 밝게 웃곤 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네, 할머니, 안색이 저번보다 더 좋아지셨어요."하거나 "할머니, 햇볕도 너무 좋고 꽃도 만발했어요.  얼른 일어나셔서 저희랑 꽃구경 가요.", '"이 번 부활절에는 저희랑 같이 부활대축일 미사 드리러 성당가셔야죠." 따위의  헛말들로 할머니의 희망을 지켜드리고자 했었다. 

그러나 한 이십여일 전, 욕창이 할머니의 허리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욕창의 고름을 짜내고 소독을 할 때마다 짜증 한 번 안내시던 할머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삶의 희망을 놓지 않으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기력을 잃으시고 죽음을 맞이하신 건.  이제 곧 걸을 것 같으니 꽃신 좀 사달라며 수줍게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입에서 희망의 언어들이 사라졌던 건.  삶의 고통이 죽음을 압도했던 걸까. 

남자가 할머니의 몸을 닦고 머리를 빗겨드리고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드렸다.  그러더니 수의를 입히기 시작한다.  우리 할머니는 저런 옷 싫어하시는데.. 우리 할머니는 병아리빛 노란 저고리나 하늘빛과 바다빛을 섞어놓은 듯한 옥색 치마저고리를 좋아하셨는데,  버선도 비뚤지 않게 반듯하게 신겨드려야 하고 머리도 곱게 뒤로 빗어 예쁜 머리 띠를 해드려야 좋아하셨는데..  저렇게 멋없이 크고 맵시 없는, 거기다 빛깔도 곱지 않은 저런 옷을 입혀드리면 싫어하실텐데.. 할아버지 만나러 가시는데 저런 옷을 입혀드리면 서운해하실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이승과 저승간의 그 아득하고 막막한 간격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자가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 있던 우리를 불렀다. 낯선 모습으로 누워계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가족이 모두 둘러서서 기도를 드리고 성수를 뿌리는데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허겁지겁 올라오시느라 가뜩이나 지쳤을 고모님이 오열을 터뜨리셨다.  남자가 할머니 입에 발라놓은 분홍색의 립스틱이 번져 있다.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깔끔하고 고운 걸 좋아하셨는데, 저 따위로 립스틱을 대충 발라놓았담.   할머니 입가에 번져 있는 립스틱 자국을  지워드렸다.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 차갑다.  홀쭉하게 푹 패인 할머니의 양볼이 안쓰러워 손으로 잠시 감싸드렸다.  이미 수의자락 속에 들어가 숨겨있는 할머니의 손을 찾아 잡아드렸다.  비틀어진 채 굳어버렸던 할머니의 손.  세게 잡으면 아파하실까봐 늘 손끝만 살짝 잡아드렸었지.  이제 그 손을 내 손 안에 가득차게 꽉 잡아드릴 수도 있구나. 

잠시동안 할머니 주위에 둘러서게 하고는 할머니의 죽음을 확인하도록 하더니 이제 염을 할터이니 나가서 기다리란다.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훌쩍훌쩍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가며 줄줄이 나와서 다시 유리창 너머의 자리로 돌아갔다.

할머니의 몸이 꽁꽁 묶여간다.  궁중에서 염하던 방법대로 멋을 내서 하는 거라는 설명을 들었건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답답하기만 하다.  유난히 작고 가냘픈 체격을 가진 할머니라 몇겹의 수의를 입었는데도 침대가 훵해 보일정도로 왜소하다.  관 안에 모시니 관에도 남은 공간이 넉넉하다.  할머니의 여든아홉의 생애가 할머니가 누워있는 관 안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부름에 주르르 관 주위에 둘러선 우리는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 

침대에 누워 늘 기도하시던 할머니.  이제 누가 우리를 위해 그렇게 길고도 큰 기도를 올려줄까.  어머님이 할머니의 수의 자락 속에 할머님이 생전에 쓰시던 묵주를 넣어드렸지만,  어쩐지 할머니의 기도가 빠진  앞으로의 우리 처지가 곤혹스럽게 여겨진다.  그렇게 많은 기도를 받고도 모자라 벌써 할머니의 기도가 그립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묵주를 손에 감고 어머님의 묵주기도 소리를 듣다가 주무시듯 조용히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   

입관예절을 마치고 빈소로 돌아와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편안히 떠나셨다는 사실, 그 하나만을  위로삼아 서로의 허한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진다.  성당에서 기도해주러 오신 많은 분들  한쪽에 끼여앉아 할머니 앞에서 연도를 바쳤다.  내 기도가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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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6-0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섬사이 2007-06-09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
 

아침에 아이들 깨워 학교 보내놓고,  오랫동안 책꽂이에 대기중에 있던 <이현의 연애>를 꺼내 들었다.  요즘은 비니가 9시 쯤이 되면 일어나기 때문에 아이들 학교 간 뒤의 여유시간이 좀 줄어든 편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놓치면 안되기에 설거지도 청소도 다 미뤄놓고 일단 책부터 잡는 습관이 붙어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몇 장 넘기지도 못했는데 비니가 방에서 나를 부른다.  같이 누워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잔뜩 들려주고나서 안고 거실로 나온다.  얼른 밥을 챙겨 먹이고 이불 정리하고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대충 끝내놓고, 비니랑 베란다에 앉아 화단을 보고 있었다.

음.. 백합이 많이 자라서 이제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한다. 며칠 전부터 저러다 꽃이 커지면 꽃 무게를 못이기고 줄기가 뎅겅 꺾여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펜치를 가져다가 세탁소 옷걸이를 곧게 폈다.  비니는 "엄마, 뭐해?"하며  궁금해 한다.   곧게 편 옷걸이를 들고 화단에 나가서 백합 줄기 옆에 받침대로 세우고 끈으로 묶어 줄기를 고정시켜 주었다. 하하 이제 꽃봉오리가 더 커지고 꽃이 펴도 안심이다.  ^^

화단에 나간 김에 꽃들을 둘러보는데,  에고에고.. 이제 막 한창 피어나고 있는 찔레꽃 얼굴을 닮은 장미나무에 개미들이 진딧물 농장을 차려놓았다.  지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겠지만,  장미가 괴로울 생각을 하니 잡지 않을 수가 없다.  진딧물농장 철거 작업에 착수하는 수밖에~!!!

처음엔 진딧물이 낀 걸 보고는 기겁을 하고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이젠 빨간 고무 코팅이 되어 있는 목장갑을 끼고 그냥 막 손으로 훑어 버린다.  신혼시절 시장에 가서 오징어를 사왔는데 주인이 오징어를 다듬지 않고 그냥 넣어준 걸 집에 와서야 알았었다.  그 때 오징어 다듬으며 징그러워 울던 생각을 하면, 진딧물을 장갑을 꼈다고는 하지만 거리낌 없이 훑어내고 있는 내가 그 때의 나랑 같은 사람인가 할 정도로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래도 징그럽다는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서,  "무당벌레들은 다 어디 간거야, 우리집 진딧물 먹으러 오지 않구..." 어쩌구 하며 투덜대기도 한다.   진딧물에서 구해낸 장미꽃이 어쩐지 더 말끔하니 고와보인다.  마치 못된 피부병에서 놓여난 사람의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며칠 후에 다시 살펴봐야지.. 진딧물이란 녀석들이 워낙 집요하고 끈질긴 면이 있는데다가 개미의 비호까지 받고 있으니 쉽게 우리 장미꽃에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화단에서 진딧물과 맹렬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비니가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묻는다.
"엄마, 뭐해?"
"응?  진딧물 소탕해~"
"사탕?"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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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6-0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애쓰게 가꾼 꽃들을 어떻게 해 버린 줄 알았답니다. 휴~.
"진딧물 사탕(?)" ㅋㅋㅋㅋㅋㅋㅋㅋ.

섬사이 2007-06-0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때문에 홍수맘님이 놀라셨나봐요. ^^

치유 2007-06-02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님의 글에 공감하며..아줌마라서 엄마라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내는 일들이 있어요..전 아직도 생선다듬는건 죽어라고 못해먹겠으니..
사탕하나를 진딧물들에게 주면 그거 물고 다 날아가지 않을까요??헤헷~!!
행복한 풍경이 보여 미소짓게 합니다..베란다에 보일락 말락한 공주 매달려서 엄마하는것 살피고..엄만 공주 쳐다봐주며 진딧물 잡아주랴 백합 지지대 살펴주랴.
백합꽃이 아..이제야 허리펴고 살겠다..하며 고마워했겠어요..ㅋㅋ.이쁜 녀석들 들여다 봐주랴..아침부터 책펴들고 보시니 그리 많은 책을 보시는군요..존경스럽습니다..

비로그인 2007-06-0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철거민들의 농성같은것 생각하며 들어왔어요.

저도 신혼초에 화초 몇 개 키우다가 진딧물때문에 못 키우고 죽여 내버린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을 위해 힘든일도 감수하는 진짜 어머니의 모습, 멋져요.

fallin 2007-06-05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좀 터푸했는데 말이죠ㅋㅋㅋ 읽고나니 죽어가는 제 화분이 생각나네요. 주말에 그걸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작업에 들어가진 않았어요. 이거 읽고나니 찔리는 걸요 ^^;;;

섬사이 2007-06-07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저도 생선 다듬는 거 아직 못해요. ^^ 백합꽃이 세워준 지지대를 넘어서 키가 자랐어요. 꽃봉오리도 여러개 달았구요. 좀 있으면 백합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승연님, 어느 어머니나 다 그렇죠, 뭐. 멋지다고 하시니 부끄럽사와요~^^

fallin님, 제목이 좀 그랬죠?^^ 저도 죽인 화초들이 여러 개에요. 잠시 묵념...^^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큰 딸 지니와 같이 이 책을 읽고 서로 떠오르는 말 말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왔던 말들을 대충 적어보면,
"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자기 무덤 제손으로 판다."
"인생, 만만한 거 아니다."
"삶 앞에 겸손하라."
"까불다 맞는다."  등등...

물론 나중엔 없는 말을 지어 갖다 붙여가며  딸과 함께 낄낄거렸었다. 
옆지기도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이 책을 붙잡고 있었는데, 딸과 함께 "충격적 반전"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잠깐씩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 책에 엮어진 열 편의 단편소설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아마 위에 적힌 "뛰는 놈~"부터 "충격적 반전"까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세에 능숙해서 세상에 대해 알만큼 다 안다고 자부하며 자기의 도도한 잣대를 타인에게 휘두르는 무례하고 거만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상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도 있다는 듯, 모든 사람이 자기 손바닥 안에 있다는 듯 무시하며 조롱어린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그게 아니라면 '인생 한 방'이라는 식의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어느 쪽이든 인생을 너무 쉽고 만만하게 본다는 게 문제다.

'목사의 기쁨'에서는 고가구 판매상인이 그렇고, '손님'에서는 바람둥인 오스왈드, '맛'에서는 미식가 리처드 프랏, '항해거리'에선 잔머리 좀 굴려보려던 보티볼씨가 그렇다.  '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에선 벅스비 부인이 잔꾀를 쓰다가 오히려 남편에게 뒷통수를 맞고, '하늘로 가는 길'에서는 착한 포스터 부인의 약점을 갖고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그 남편이 끝내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 '남쪽 남자'에서 내기에 손가락을 요구했던 부유해보이던 작은 남자는 빈털털이의 정신병자였다.  '피부'에서의 드리올리는 등에 문신으로 새겨진 유명화가의 그림 덕에 인생역전을 이루려나 했지만 냉혹하고 잔인한 현실에 희생되고 만다. 

말마따나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듯한 오만하거나 아니면 허황된 인생역전의 꿈에 젖어 있던 인물이  "충격적 반전"에 의해 낭패를 보고 손해를 보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그려져 있다. 

교만한 자들이 끝내 골탕먹는 이야기지만 읽으면서 그리 통쾌하다거나 유쾌한 감정을 느끼진 못했다.  반전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런가 하고도 생각해 보았는데, 그건 아니다.  내가 그 교만한 인물로부터 조롱받는 자의 입장과 동일시 되었다면 반전이 충격적일 수록 쾌감을 느꼈어야 옳았다.  문제는 내 자신이 어느 편의 인물들과 동일시 되고 있느냐인데, 내내 생각해 본 결과, 그 둘 다였다.  나의 내면에는 타인에 대한 오만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잘난 타인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오기도 있었던 거다. 이야기 속의 충격적 반전이 유쾌하다기 보다 오싹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로알드 달은 우리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교만에 대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주억거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느니 하는 말들을 이야기꾼의 재미난 입담으로 풀어낸 건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겸손의 덕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덕도 없다.  틈만나면 잘난 척하고 싶고, 작은 자랑거리라도 생기면 떠벌리고 싶고, 죽어도 남들한테 무시당하기 싫어서 죽기로 기를 쓰기도 하니, 삶과 사람 앞에 겸손하기가 얼마나 어렵던지.   잘난 척 까불거리다가 제 코앞도 못보고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기 전에 겸손하게 고개 숙이고 고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덕을 언제쯤이면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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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 2007-06-02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독서교육을 들었었는데..섬사이님처럼 책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는 게 참 좋대요. 아무 얘기라도 말이죠^^ 저도 결혼해서 애기 낳으면 섬사이님 따라해봐겠어요 ^^

섬사이 2007-06-0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저희 가족은 너무 농담따먹기식 대화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 따라하지 않으심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
 

9시 40분 쯤에서야 지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이제 연극 끝났어."
지니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약간 들떠있다.
"재미있었어?"
"응, 엄마. 짱 재밌어, 짱 웃겨."

10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 지니.  연극 이야기로 아이의 얼굴이 넘실댄다.  연극의 내용을,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사 하나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연극무대의 섬세한 분위기를, 배우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을 나에게 전달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지니의 이야기로는 전쟁, 사랑, 예술을 담당하는 요정(?) 셋이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한다.  전쟁요정은 전쟁이야기만 하려하고, 사랑 요정은 사랑이야기만 하려하고, 예술요정은 예술 이야기만 하려고 하다보니 서로 모이면 이야기가 뒤죽박죽이 되는지라, 그 셋이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협약을 맺은 듯..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세 요정에 의해 변형되고 뒤틀리는 내용인 것 같다.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난리다. 
"최근에 본  스파이더맨 3,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그리고 연극 환상동화 중에서 하나만 더 볼 수 있다면 뭘 선택할래?" 하고 물었더니 망설이지도 않고 "환상동화~!"라고 대답한다.
이궁, 비싼 건 알아가지고, 티켓 값이 2만원이더구만. 
"네 용돈으로 가!" ㅋㅋㅋ

엄마가 같이 봤으면 좋았을텐데, 어쩌구 하면서 아쉬워한다.  관람한 연극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게 무척 안타깝고 아쉬운 모양이다. 
"같이 본 친구랑 수다 떨면 되잖아?" 했더니
"걘 말이 없어, 말이... 그냥 재밌었다고만 하고 자세한 말을 안해."하며 속상해한다.

다음 메세나 콘서트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전"이다.  환상동화를 보러 가기 전에 내용을 인터넷에서 살펴보더니 시큰둥해 했다.  음악연주회도 아니고, 미술 전시회도 아니고, 뮤지컬이나 연극도 아닌 생소한 전시라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환상동화를 보고 오더니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엄마, 나 모짜르트 전도 당첨되면 가볼래.  혹시 알아? 그 전시 보면서 내가 모르던 분야에 대해 새롭게 흥미를 느끼게 될지?"
"그래.. 세상은 넓고도 다양하니까. 그치?" 하며 맞장구 처주며 웃었더니
"응, 맞아" 하며 좋아한다. 

그래, 세상은 넓고 살아가는 모습도 방법도 참 다양하다.  세상의 그 무수한 다양성 속에서 지니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그 다양함 속에 또 하나의 다양성을 보태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세상에 백명의 사람이 산다면 백개의 외로움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은 곧 백개의 행복과 백개의 고통이 있다는 말과도 통할 것 같다.  지니에게 찾아올 지니만의 외로움과, 행복과, 고통을 조용히 곁에서 지켜보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나를 포함해서 부모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능하고 약한 사람들이다.  당황하고 안절부절할 때가 부지기수이고 때때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집불통 외골수가 되기도 하고,  조바심내며 불안해 하면서 스스로를 들볶기도 한다.  (나만 그런가?) 
아이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선물해주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아이와 나를 불행하게 만들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이 자기의 행복을 스스로 찾아낼 만큼 영리하고 강하다는 사실을 부모는 인정하기 어려워 한다. 아이에게 행복을 찾아주고 선물하는 일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자기 행복을 찾도록 놔둔다는 것은 방관이며 무책임이고 부모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참견과 간섭이 아이의 행복에 도움이 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아이의 인생에 적극 개입을 하고 만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 부모로서의 그 환상이 깨져버리는 날이 오고 그 때 부모가 받는 상처는 상당히 큰 것 같다.  하지만 그 상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부모도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성숙한 부모로 거듭나게 되는 것 같다.  상처받았다 싶을 땐 내가 상처받지 않으면 아이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니 내가 상처받는 쪽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는 요령도 터득하게 된다.   

나에게 부모로서의 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길에서 몇 번의 상처도 받았으니 그만큼 조금은 성숙해졌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그러나 부모의 도를 터득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지니는 평일날의 이 즐거운 외출이 피곤하기도 했나보다.  샤워하고는 일찍 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지니의 즐거운 하루, 그 짧은 축제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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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5-3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니가 정말 좋았나 보군요. 제 생각에 메세나 콘서트의 목적은 소외계층 청소년(물론 어른들도 있지만요..) 에게 관람할 기회를 주는게 목적이라서 선정하는 공연이나 전시회는 주로 어른보다 청소년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고르는것 같아요.
지니가 다녀오길 정말 잘했네요 ^^

섬사이 2007-05-3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래요. 지니에게 그랬죠. "세상이 이렇게 다양하고 넓은데 학교공부에 매달려서 살자니 억울하지?" 그랬더니 지니가 "정말 그래"하고 대답하더라구요. 가끔은 이렇게 학교 밖에서 세상을 구경하고 배우는 것이 정말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외계층의 청소년들은 더욱 그렇겠죠.

치유 2007-05-3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왔군요..지니의 문화인이 될거란 말이 맴돌아 나도 문화인이 되려고요..어릴적 정말 누릴수 있는 문화를 다 누리며 살고팠는데....
지니가 또 하나의 세상을 보았군요...아주유쾌하게요.

섬사이 2007-06-01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한 달 동안 좀 많이 돌아다닌 편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니가 좀 들떠 있는 것 같아요. 어서 빨리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데 말이에요.^^

fallin 2007-06-05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엄마시네요 ^^ 새로운 무언가를 접한다는 건 신나는 일이에요. 지니의 심정이 이해가는 걸요~ 저랑 비슷해요^^

섬사이 2007-06-0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lin님, 부족한 게 많은 엄마죠. 다른 님들이 나눠주시는 좋은 정보 덕분에,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도구 덕분에 제 부족함이 많이 메워지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