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40분 쯤에서야 지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이제 연극 끝났어."
지니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약간 들떠있다.
"재미있었어?"
"응, 엄마. 짱 재밌어, 짱 웃겨."
10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돌아온 지니. 연극 이야기로 아이의 얼굴이 넘실댄다. 연극의 내용을,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사 하나하나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연극무대의 섬세한 분위기를, 배우의 연기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을 나에게 전달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지니의 이야기로는 전쟁, 사랑, 예술을 담당하는 요정(?) 셋이 이야기를 끌어간다고 한다. 전쟁요정은 전쟁이야기만 하려하고, 사랑 요정은 사랑이야기만 하려하고, 예술요정은 예술 이야기만 하려고 하다보니 서로 모이면 이야기가 뒤죽박죽이 되는지라, 그 셋이 함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협약을 맺은 듯..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세 요정에 의해 변형되고 뒤틀리는 내용인 것 같다.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난리다.
"최근에 본 스파이더맨 3,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그리고 연극 환상동화 중에서 하나만 더 볼 수 있다면 뭘 선택할래?" 하고 물었더니 망설이지도 않고 "환상동화~!"라고 대답한다.
이궁, 비싼 건 알아가지고, 티켓 값이 2만원이더구만.
"네 용돈으로 가!" ㅋㅋㅋ
엄마가 같이 봤으면 좋았을텐데, 어쩌구 하면서 아쉬워한다. 관람한 연극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게 무척 안타깝고 아쉬운 모양이다.
"같이 본 친구랑 수다 떨면 되잖아?" 했더니
"걘 말이 없어, 말이... 그냥 재밌었다고만 하고 자세한 말을 안해."하며 속상해한다.
다음 메세나 콘서트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전"이다. 환상동화를 보러 가기 전에 내용을 인터넷에서 살펴보더니 시큰둥해 했다. 음악연주회도 아니고, 미술 전시회도 아니고, 뮤지컬이나 연극도 아닌 생소한 전시라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환상동화를 보고 오더니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엄마, 나 모짜르트 전도 당첨되면 가볼래. 혹시 알아? 그 전시 보면서 내가 모르던 분야에 대해 새롭게 흥미를 느끼게 될지?"
"그래.. 세상은 넓고도 다양하니까. 그치?" 하며 맞장구 처주며 웃었더니
"응, 맞아" 하며 좋아한다.
그래, 세상은 넓고 살아가는 모습도 방법도 참 다양하다. 세상의 그 무수한 다양성 속에서 지니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그 다양함 속에 또 하나의 다양성을 보태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세상에 백명의 사람이 산다면 백개의 외로움이 있다고 한다. 그 말은 곧 백개의 행복과 백개의 고통이 있다는 말과도 통할 것 같다. 지니에게 찾아올 지니만의 외로움과, 행복과, 고통을 조용히 곁에서 지켜보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나를 포함해서 부모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능하고 약한 사람들이다. 당황하고 안절부절할 때가 부지기수이고 때때로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집불통 외골수가 되기도 하고, 조바심내며 불안해 하면서 스스로를 들볶기도 한다. (나만 그런가?)
아이들에게 완벽한 행복을 선물해주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아이와 나를 불행하게 만들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이들이 자기의 행복을 스스로 찾아낼 만큼 영리하고 강하다는 사실을 부모는 인정하기 어려워 한다. 아이에게 행복을 찾아주고 선물하는 일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 스스로 자기 행복을 찾도록 놔둔다는 것은 방관이며 무책임이고 부모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참견과 간섭이 아이의 행복에 도움이 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아이의 인생에 적극 개입을 하고 만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 부모로서의 그 환상이 깨져버리는 날이 오고 그 때 부모가 받는 상처는 상당히 큰 것 같다. 하지만 그 상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고, 부모도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성숙한 부모로 거듭나게 되는 것 같다. 상처받았다 싶을 땐 내가 상처받지 않으면 아이가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니 내가 상처받는 쪽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는 요령도 터득하게 된다.
나에게 부모로서의 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 길에서 몇 번의 상처도 받았으니 그만큼 조금은 성숙해졌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그러나 부모의 도를 터득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지니는 평일날의 이 즐거운 외출이 피곤하기도 했나보다. 샤워하고는 일찍 자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지니의 즐거운 하루, 그 짧은 축제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