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고 차가운 돌침대에 할머니는 누워 계셨다. 똑바로 펴진 적이 없던 팔과 다리가 여전히 굽은 채로, 마치 마트 냉장보관대에 진열된 선동 오징어나 동태마냥 딱딱하게 굳은 채로 그 썰렁하고 삭막한 방 안에 누워 계셨다. 할머니가 까마득히 낯설어 보였다.
젋지도 늙지도 않은 낯선 남자가 우리 할머니의 몸을 닦아드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모로 눕히자 허리부분의 욕창이 드러났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몹쓸 것이다. 십수년을 방 안 환자용 침대에 누워 보내셨던 할머니건만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늘 묵주를 손에 들고 계셨고, 사랑을 가득 담은 인자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곤 하셨다. 그 오랜 시간을 침대에 누워만 계시면 절망에 빠질만도 하건만, 할머니는 "나, 많이 좋아진 것 같지? 조금 있으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하시며 밝게 웃곤 하셨다. 그러면 우리는 "네, 할머니, 안색이 저번보다 더 좋아지셨어요."하거나 "할머니, 햇볕도 너무 좋고 꽃도 만발했어요. 얼른 일어나셔서 저희랑 꽃구경 가요.", '"이 번 부활절에는 저희랑 같이 부활대축일 미사 드리러 성당가셔야죠." 따위의 헛말들로 할머니의 희망을 지켜드리고자 했었다.
그러나 한 이십여일 전, 욕창이 할머니의 허리를 파고 들기 시작했다. 욕창의 고름을 짜내고 소독을 할 때마다 짜증 한 번 안내시던 할머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래서였을까. 삶의 희망을 놓지 않으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기력을 잃으시고 죽음을 맞이하신 건. 이제 곧 걸을 것 같으니 꽃신 좀 사달라며 수줍게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입에서 희망의 언어들이 사라졌던 건. 삶의 고통이 죽음을 압도했던 걸까.
남자가 할머니의 몸을 닦고 머리를 빗겨드리고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드렸다. 그러더니 수의를 입히기 시작한다. 우리 할머니는 저런 옷 싫어하시는데.. 우리 할머니는 병아리빛 노란 저고리나 하늘빛과 바다빛을 섞어놓은 듯한 옥색 치마저고리를 좋아하셨는데, 버선도 비뚤지 않게 반듯하게 신겨드려야 하고 머리도 곱게 뒤로 빗어 예쁜 머리 띠를 해드려야 좋아하셨는데.. 저렇게 멋없이 크고 맵시 없는, 거기다 빛깔도 곱지 않은 저런 옷을 입혀드리면 싫어하실텐데.. 할아버지 만나러 가시는데 저런 옷을 입혀드리면 서운해하실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이승과 저승간의 그 아득하고 막막한 간격이 생생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남자가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 있던 우리를 불렀다. 낯선 모습으로 누워계신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가족이 모두 둘러서서 기도를 드리고 성수를 뿌리는데 소식을 듣고 광주에서 허겁지겁 올라오시느라 가뜩이나 지쳤을 고모님이 오열을 터뜨리셨다. 남자가 할머니 입에 발라놓은 분홍색의 립스틱이 번져 있다.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깔끔하고 고운 걸 좋아하셨는데, 저 따위로 립스틱을 대충 발라놓았담. 할머니 입가에 번져 있는 립스틱 자국을 지워드렸다.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 차갑다. 홀쭉하게 푹 패인 할머니의 양볼이 안쓰러워 손으로 잠시 감싸드렸다. 이미 수의자락 속에 들어가 숨겨있는 할머니의 손을 찾아 잡아드렸다. 비틀어진 채 굳어버렸던 할머니의 손. 세게 잡으면 아파하실까봐 늘 손끝만 살짝 잡아드렸었지. 이제 그 손을 내 손 안에 가득차게 꽉 잡아드릴 수도 있구나.
잠시동안 할머니 주위에 둘러서게 하고는 할머니의 죽음을 확인하도록 하더니 이제 염을 할터이니 나가서 기다리란다.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는 유치원 아이들처럼 훌쩍훌쩍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가며 줄줄이 나와서 다시 유리창 너머의 자리로 돌아갔다.
할머니의 몸이 꽁꽁 묶여간다. 궁중에서 염하던 방법대로 멋을 내서 하는 거라는 설명을 들었건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답답하기만 하다. 유난히 작고 가냘픈 체격을 가진 할머니라 몇겹의 수의를 입었는데도 침대가 훵해 보일정도로 왜소하다. 관 안에 모시니 관에도 남은 공간이 넉넉하다. 할머니의 여든아홉의 생애가 할머니가 누워있는 관 안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부름에 주르르 관 주위에 둘러선 우리는 할머니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
침대에 누워 늘 기도하시던 할머니. 이제 누가 우리를 위해 그렇게 길고도 큰 기도를 올려줄까. 어머님이 할머니의 수의 자락 속에 할머님이 생전에 쓰시던 묵주를 넣어드렸지만, 어쩐지 할머니의 기도가 빠진 앞으로의 우리 처지가 곤혹스럽게 여겨진다. 그렇게 많은 기도를 받고도 모자라 벌써 할머니의 기도가 그립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묵주를 손에 감고 어머님의 묵주기도 소리를 듣다가 주무시듯 조용히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
입관예절을 마치고 빈소로 돌아와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편안히 떠나셨다는 사실, 그 하나만을 위로삼아 서로의 허한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진다. 성당에서 기도해주러 오신 많은 분들 한쪽에 끼여앉아 할머니 앞에서 연도를 바쳤다. 내 기도가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