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아이들 깨워 학교 보내놓고, 오랫동안 책꽂이에 대기중에 있던 <이현의 연애>를 꺼내 들었다. 요즘은 비니가 9시 쯤이 되면 일어나기 때문에 아이들 학교 간 뒤의 여유시간이 좀 줄어든 편이다.
그래도 그 시간을 놓치면 안되기에 설거지도 청소도 다 미뤄놓고 일단 책부터 잡는 습관이 붙어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몇 장 넘기지도 못했는데 비니가 방에서 나를 부른다. 같이 누워서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잔뜩 들려주고나서 안고 거실로 나온다. 얼른 밥을 챙겨 먹이고 이불 정리하고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대충 끝내놓고, 비니랑 베란다에 앉아 화단을 보고 있었다.
음.. 백합이 많이 자라서 이제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한다. 며칠 전부터 저러다 꽃이 커지면 꽃 무게를 못이기고 줄기가 뎅겅 꺾여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펜치를 가져다가 세탁소 옷걸이를 곧게 폈다. 비니는 "엄마, 뭐해?"하며 궁금해 한다. 곧게 편 옷걸이를 들고 화단에 나가서 백합 줄기 옆에 받침대로 세우고 끈으로 묶어 줄기를 고정시켜 주었다. 하하 이제 꽃봉오리가 더 커지고 꽃이 펴도 안심이다. ^^
화단에 나간 김에 꽃들을 둘러보는데, 에고에고.. 이제 막 한창 피어나고 있는 찔레꽃 얼굴을 닮은 장미나무에 개미들이 진딧물 농장을 차려놓았다. 지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겠지만, 장미가 괴로울 생각을 하니 잡지 않을 수가 없다. 진딧물농장 철거 작업에 착수하는 수밖에~!!!
처음엔 진딧물이 낀 걸 보고는 기겁을 하고 어쩔 줄을 몰라했는데, 이젠 빨간 고무 코팅이 되어 있는 목장갑을 끼고 그냥 막 손으로 훑어 버린다. 신혼시절 시장에 가서 오징어를 사왔는데 주인이 오징어를 다듬지 않고 그냥 넣어준 걸 집에 와서야 알았었다. 그 때 오징어 다듬으며 징그러워 울던 생각을 하면, 진딧물을 장갑을 꼈다고는 하지만 거리낌 없이 훑어내고 있는 내가 그 때의 나랑 같은 사람인가 할 정도로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래도 징그럽다는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서, "무당벌레들은 다 어디 간거야, 우리집 진딧물 먹으러 오지 않구..." 어쩌구 하며 투덜대기도 한다. 진딧물에서 구해낸 장미꽃이 어쩐지 더 말끔하니 고와보인다. 마치 못된 피부병에서 놓여난 사람의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며칠 후에 다시 살펴봐야지.. 진딧물이란 녀석들이 워낙 집요하고 끈질긴 면이 있는데다가 개미의 비호까지 받고 있으니 쉽게 우리 장미꽃에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가 화단에서 진딧물과 맹렬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비니가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묻는다.
"엄마, 뭐해?"
"응? 진딧물 소탕해~"
"사탕?"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