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신비한 능력을 가진 도코노 일족. 그 사는 모습이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척 고달프고 쓸쓸해 보인다.  두 번째 도코노 이야기 <민들레 공책>을 먼저 읽은 나는 첫 번째 책 <빛의 제국>에서 도코노 일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넣고’ ‘울리고’ ‘뒤집고’ ‘앞일을 예지하고’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하늘을 날고’ ‘잡초를 제거하고’ ‘불꽃을 피우고’ ‘뮤즈의 음악을 연주’하는 그들의 능력은 이 책 안에서 주목의 목표대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도코노 일족의 능력은 작가가 자기의 말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쓰인 장치이거나 아니면 작가의 말을 재미있게 감싸는 포장지이지 않을까.

요란스런 유니폼을 입고 악의 무리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영웅적 행위를 만인 앞에 한껏 드러내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과는 다르게 오히려 남의 눈에 띄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고 조용히 움직이는 그들이 굳이 세상 사람들 안에 섞여 살면서 이루려는 게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빛의 제국>에서 도코노 사람들은 어떤 흐름을 타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민들레 공책>에서처럼 역사의 흐름일 수도 있지만, 인연이나 주어진 천명 같은 운명의 흐름이기도 한 것 같다.  이를테면 ‘오셀로 게임’의 에이코와 도키코, 또 ‘잡초 뽑기’의 잡초 뽑는 남자, ‘역사의 시간’과 ‘검은 탑’의 아키코, ‘빛의 제국’과 ‘국도를 벗어나’의 미사키 등이 모두 운명의 흐름 속에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을 아키코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그 외에도 깨달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커다란 흐름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아득한 시간과 사람들의 행위가 켜켜이 쌓인 위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기라는 존재를 허비할 수 없다는 것.’(p.280)


이 글 속에 작가 온다 리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 공책>에서도 이런 글이 등장했었다.

 
“저는 세계는 보다 극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세찬 물결 같은 것이 있고, 그곳에 던져지기도 하고 뛰어들기도 하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물결 가운데 있습니다.  자기도 함께 흘러가기 때문에 물결의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민들레 공책>.p.133)


어쩐지 ‘흐름’과 그 ‘흐름을 타고 가는 인간’이라는 것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음 안에 남았다.  생각해볼수록 그 ‘흐름’ 속의 인간이 결코 수동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마치 강물이 수많은 생명체들의 눈부신 생애를 품고 있는 것처럼 우리 개개인은  각각 다른 빛깔의 비늘조각처럼 반짝이며 흐름을 아름답게 만드는 주체적인 존재인 것은 아닐까. 그렇게 우리 모두는 ‘하나는 모든 것 위해서, 모든 건 하나를 위해서, 그리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병행해서 존재’(p.186) 할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기미코가 말하던 능동적으로 흐름에 합류하는 ‘계속의 힘'(p.183)은 바로 그 흐름을 타면서도 자기의 빛깔을 잃지 않고 반짝이며 모두와 함께 가는 데서 얻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 반짝임을 잃어버린 인간에 대한 경고가 사람의 몸에서 잡초가 자라고 세상이 넝쿨과 잡초로 뒤덮이는 이야기 ‘잡초 뽑기’나 인간이 갑자기 갖가지 식물을 섞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이야기 ‘오셀로 게임’인 것 같다.  사람을 흉측한 괴물이나 짐승으로 변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온다 리쿠는 왜 사람의 몸에 잡초가 돋고 딸기로 변하고 입에서 양치류 잎사귀가 뻗어 나온다는 설정을 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가 식물의 수동적 이미지에서 생각이 멈췄다. 

 

그래, 어쩌면 그것은 자기만의 빛깔을 잃고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그저 ‘흐름’ 위를 부유하는 인간, 심지어 선한 ‘흐름’을 역행하는 악에 대한 상징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사람의 몸에 돋아난 잡초는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만들어낸 것’(p.209)이고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p.212)이라고 묘사된다.  그리고는 “매일을 소중하게 살아.  눈을 크게 뜨고, 귓속도 깨끗하게 후비고.  시야 끄트머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놓치지 마. 그러면 자네 등에는 잡초가 안 나.  잡초가 안 나는 사람이 세상에 난 잡초를 뽑을 거야.”(p.215)라고 충고의 말을 던져 놓는 것이다.

흐름. 그 흐름을 타고 반짝이며 흘러가는 개개인의 소중한 삶. 그 모두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보살펴온 두루미 선생이 있다. 장수長壽의 능력을 타고난 두루미 선생은 흐름을 여행한 내가 돌아갈 고향 같은 이미지의 인물이다. 실제로 <빛의 제국>에서 회귀, 돌아감에 대한 글이 보인다.  회귀의 그 곳은 기억의 원천인 것 같기도 하고 따뜻하고 평화스런 고향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 곳엔 ‘본연의 나’ 또는 ‘치유된 나’가 있다. 

이 책에서 회귀는 흐름의 역행이 아니다.  흐름의 끝이 곧 나의 회귀의 장소인 동시에 새로운 흐름의 시작이다.  환생한 미사키가 두루미 선생으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는 곳이며(‘국도를 벗어나’) 야스히코가 자신의 사랑과 상실을 동시에 깨닫고 본연의 나를 발견하는 장소(‘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두루미 선생이 데라사키 교지로에게 나타나 “응. 난 늘 있다네.  어디에나 있어.  늘 자네들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디선가 또 만날 일이 있겠지.”(p.133)라고 말했듯이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장소(‘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 사는 곳하고 내가 돌아갈 곳을 향해 기도’(p.299)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흘러가야 하는 것일 게다.  언젠가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참 평화롭고 따스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제 세 번째 이야기 <엔드 게임>이 남았다.  ‘오셀로 게임’의 에이코와 도키코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도코노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로 끝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쩐지 낚였다든가 말려들었다는 기분이 든다.  요즘 계속 일본작가의 책을 읽게 되는데, 일본에 부는 한류열풍보다 우리나라에 부는 일본문화의 열풍이 훨씬 크고 거세다는 느낌이다.  문화의 교류라는 건 좋은 거지만, 일본의 문화에 우리의 문화가 잠식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위기감이 들기도 한다. 

사족 하나. 
이 책을 읽다가 발견한 글.
“거울을 봐라. 지금 자기가 얼마나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둬.  자기가 지금 얼마나 시시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응? 안그러냐? 그야 세상에는 시시한 사람이 수두룩해.  그런 사람들 때문에 네가 불쾌한 일을 많이 당한 것도 인정하마.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시시한 사람이 되어도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냐?‘ (p.150)
이 글을 탈레반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족 둘.
얼마 전 오쿠타 히데오의 <오!수다>를 읽었다.  거기서 작가와 나 사이에 민족감정의 마찰이라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했는데 이 책에서 온다 리쿠의 자국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을 담고 있는 부분이 보여서 오쿠타 히데오와의 마찰 경험을 상쇄했다. ‘빛의 제국’에서 온다 리쿠는 전쟁 중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생체실험을 하는 자국의 잔인한 역사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반전이라든가 평화라든가 하는 메시지가 강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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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02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족 하나,에도 추천합니다, 섬사이님 ^^

섬사이 2007-08-03 05: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7-08-0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이거 일본서점에서 봤어요! (한동안 이런 말 하고 다닐것 같다는 느낌이....^^;;; 용서하시와요)

섬사이 2007-08-07 23:49   좋아요 0 | URL
일본여행은 즐거우셨어요? 그리고 일본 소설을 일본 서점에서 보신 게 뭐가 미안하시다고 용서하라 하세요? ^^ ㅋㅋ
 

 

그 일이 일어난 이 후, 난 신문을 읽지 않았다.  뉴스도 보지 않았다. 

마치 내가 보면 꼭 우리나라 팀이 지더라, 며 국제적인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궁금해도 눈을 돌렸던 것처럼  내가 언론을 통해 그 사실을 주목하고 따라가면 일을 그르치고 불길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소식은 들려왔다. 인솔했던 목사가 살해당했고,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지역으로 무모하게 들어간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 거세게 비난받고 있고, 저쪽에서 자기네 죄수와 인질을 교환하자는 제의가 있었으며, 그 와중에도 미국은 나 몰라라 하고 있고, 대통령의 특사가 파견되었다고.

희망을 품었다.  지난번과는 다를 거라고,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위정자들이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구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고 말이다. 

내가 뭐라고 하더라도 콧방귀도 안 뀔 미국을 향해, 파병이나 FTA 협상 때는 우리나라 국민이 그렇게 반대해도 기를 쓰고 나서더니 이제 온 국민이 나서서 도와달라고 손 내밀 땐 본 척도 안 한다고 궁시렁대기도 했다.

그런데 또 희생자가 나왔단다.  오늘 아침 옆지기에게 신문을 가져다주면서 힐끗 보게 된 신문 일면의 머리기사. 오늘 오후 4시 반까지 협상 안 되면 또 살해.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둔 피랍자의 사진들.  이 사진을 보게 된 가족들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가슴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온 몸의 피가 말라 굳어버리는 것 같겠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보면서 그 앞에서 밥 먹고 웃고 잠자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허우적대던 사람이 물 속으로 가라앉고 나면, ‘어머, 어떡해, 큰일났네, 나머지 사람이라도 얼른 물에서 나와야할텐데.’ 하든지 아니면 ‘그러게 누가 물 속으로 들어가래?’하면서.  어쩐지 비현실적이고 괴기스럽다. 이럴 때마다 내가 괴물처럼 느껴진다. 

불특정한 무고한 사람들에게 향하는 탈레반 그들의 분노와 증오 또한 괴기스런 비현실이다. 

그런 괴기스런 비현실을 현실이 되도록 조장한 배후세력의 정체는 뭘까.


어디 숨어 있을까.

나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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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1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2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1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2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1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2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씩씩하니 2007-08-0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지났는데..아직 속보가 안올라와요,,,
욕을 할 수는 있지만,죽어도 싸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건 정말,,,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한 국가에 속한 국민이라는 사실이............이럴 때.그래도..뒷빽이 되줘야하지 않을까,,해요~~

섬사이 2007-08-02 11:09   좋아요 0 | URL
그래요, 말없는 힘이 되어주어야 할 것 같아요. 어찌되었건간에 누군가의 고통을 비난한다는 건 비겁한 짓이란 생각이 들어요.

fallin 2007-08-01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까운 현실인 거 같아요..우리 국민이지만 우리 맘대로 할 수 없다는..자괴감이 드네요..생명이 달려있는데도 미국은 자신들의 원칙만 고수하겠다 하고..너희 나라여도 그럴테냐? 욱했다가도 욱해도 소용없으니 말문이 막히고..정말 가족들도 피가 말릴 거에요...가슴이 아파요..

섬사이 2007-08-02 11:14   좋아요 0 | URL
약한 나라의 설움이겠죠. 그러나 미국이 정말 강대국으로서,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국가로서 자기 책임을 다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미국민이 피랍되었든, 한국민이 피랍되었든, 아프리카 오지의 이름도 없는 부족민이 피랍되었든 똑같이 노력하고 애써주었으면 하는...그런 부질없는 바람도 생기구요.

치유 2007-08-0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가슴만 먹먹하게 아파와요..그렇다고 신문이며 뉴스를 안 볼수 도 없고..

섬사이 2007-08-02 11:18   좋아요 0 | URL
전 그동안 안 봤더랬어요. 제 입으로 그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도 않았더랬어요. 왠지 그래야 부정타는 일없이 그 분들이 모두 무사히 돌아올 것만 같았었죠. 그런데 희생자가 생기네요. 남은 분들이라도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려봐야겠죠.

asdgghhhcff 2007-08-02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은 분들이라도 모두 생환하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에 더 답답함을 느끼네요. 협상이 원만하게 잘 끝나길 바래봅니다.

섬사이 2007-08-03 05:03   좋아요 0 | URL
우아한 인삼님, 반갑습니다. 모두의 희망이겠죠. 생환.
 
-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안목’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이라고 나와 있다.  또 ‘심미안’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안목’ 또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하여 살피는 마음의 눈’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가끔 미술작품이나 사진작품 같은 것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 안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질 때가 많다.  마치 눈 뜬 장님이 된 것처럼 그 앞에 멍하니 서서 그저 “참 잘 그렸다.”라는 말 한마디 외엔 딱히 떠오르는 구체적인 느낌이 없어서 당황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안목이나 심미안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만 뼈아프게 확인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런 눈을 가져봤으면, 하고 더욱 바라게 된다.  작품의 역사적 시대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 수준 높은 미학 지식, 다양한 갈래의 예술사조에 대한 숙지, 색채와 형태에 대한 예민한 직관, 상징을 읽어내는 능력 등등을 갖추지 못했음을 자조自照하게 되는데, 결국 난 그림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 아닐까 의심하며 고민을 끝내곤 했다. (길게 고민해봤자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도 남은 아쉬움을 어쩌지 못하고는 가끔 미술관련 책을 읽는 걸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것도 너무 어려운 책은 읽어낼 자신이 없어 슬쩍슬쩍 피해가면서. 
이 책 <생각하는 그림들 정>에서 저자는 미술에 관한 이론체계나 축적된 지식들을 배제하고 개별 작품에 대한 저자의 느낌과 이야기를 풀어낸다.  마치 “그런 거 몰라도 돼요.”하는 것 같다. 
글머리에서 저자는 “비록 미술사적인 지식이나 정보를 체계적으로 얻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구체적인 작품을 보고 즐기는 데는 만족스런 길잡이가 되도록 노력했다. 어찌 보면 큰 감동을 주는 작품 하나와 진지하게 만나는 것이 미술 전반에 관해 많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는 친절한 가이드인가. 
책읽기의 부담을 덜어내고 책장을 넘겨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살이는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그래서 그림 속에 담겨진 사람이나 풍경의 모습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작가의 말을 의지 삼아 용기를 내 본다. 
..........

그림보다도 저자의 글이 먼저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사람, 그림 보는 재주와 글 쓰는 재주를 함께 가진 복 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부러움을 먼저 느꼈다.  볕이 잘 드는 넓고 시원한 창가에서 그림 하나를 펼쳐 놓고 고요히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를 정도로 그림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자분자분하다.
그림 속으로 이렇게도 들어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작품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가볍고 시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읽어갈수록 나도 이 남자처럼 그림 앞에 고요히 머물면서  조심스럽게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단 생각이 커져갔다. 내 소소한 일상, 내가 나누었던 사랑들, 내가 느꼈던 아픔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마주한 그림 속에 투영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까지 언감생심 품어가면서 말이다.
물론 미술 감상에 필요한 기본적이고도 핵심적인 지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그림을 읽고 감상하는 데 그리 큰 지식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예술 감상이란 저자의 말처럼 “나 자신을, 나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테니까.  
화가의 의도나 전문적인 배경지식 같은 거 대충 덮어버리고 서툴게라도 그림과 가까이 하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심청이의 아비처럼 번쩍 눈을 뜰 수 있을까?  그림에 대한 문맹, 또는 난독증에서 벗어나 한 폭의 그림이 온전히 마음으로 젖어드는 그런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 책과 같은 시리즈로 <생각하는 그림들 오늘>이 있다.  <정>보다 앞서 출판된 생각하는 그림들 시리즈의 첫 책이건만 어쩌다 보니 <정>부터 꺼내 읽게 되어 순서가 뒤바뀌었다. <오늘>에는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작품에 대한 이주헌 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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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0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헌의 그림읽기를 좋아합니다. 이 책은 보지 못했어요.^^
님, 좋은 책 자분자분 소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섬사이 2007-08-02 08:36   좋아요 0 | URL
아~~~ 자분자분... ^^ 그 말이 생각이 안나고 자꾸 '조근조근'이란 말만 떠오르는 거예요. 전라남도 방언이라는데 그 말이 언제 내 머리 속에 입력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도무지 자리를 비키지 않아서 리뷰 쓰면서 단어 고르는데 땀을 뻘뻘 흘렸죠. 혜경님이 간단하게 해결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수정할게요.^^
 
민들레 공책 도코노 이야기 2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부드러운 동양적 판타지,  요란스럽지 않고 고요하며 순수하고 따스하고 아련한 느낌을 주는 글이었다.  이 책을 나보다 앞서 읽은 딸은 글이 너무 ‘나긋나긋하다.’고 표현해서 내 공감을 얻었다.  

소설의 앞부분을 읽을 때 내 머리 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들은 그림이 고운 순정만화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과 소피가 공중산책을 하는 장면을 보는 느낌과 비슷했다. (공중 산책하는 장면이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등장하는 인물들조차도 어쩌면 그렇게 만화적이던지, 하긴 판타지니까....,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일본은 판타지 영역마저도 이렇게 밝고 아기자기하고 공손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첫 부분, ‘어느 시대든 새로운 것은 배를 저어 나아가는 바다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연다.  이 비유적 표현은 서서히 주변 열강들에게서 근대화를 강요받기 시작하는,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는 기대와 함께 두려움과 불안이 공존하는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인데, 소설에서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커다란 축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 전통 일본화에 염증을 느끼고 서양화를 공부하는 시나와 일본 전통 예술을 고수하는 불상을 조각하는 불사 에이케이는 개방과 전통이라는 양립되는 개념이 충돌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작중화자의 역할을 담당한 미네코는 “두 분 사이에 어떤 심오한 것이 오갔다”(p.56)고 하면서 그것이 “험악한 것이 아니라 정감 넘치는 진실한 것”(p.56)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작가는 개방화, 근대화의 거센 물결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밀려난 전통문화에 대한 안쓰러운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이 시선은 마키무라 집안의 병약하고 아름다운 아가씨 사토코를 통해서 드러나는데 사토코는 전통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에이케이에 대한 사모의 시선을 거두지 않으며 종국엔 ‘마을을 지킨다.’는 가문의 사명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일에 절정의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전통에 대한 애정,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빠르게 잊혀져가는 정신적 가치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역사의 물결은 개인의 삶을 난폭하게 휘저으며 흘러간다.’ 라는 주제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느 시대에도 혼란은 있었고, 세계는 늘 어딘가에서 이어져 있었네.  하지만 앞으로는 전혀 다른 의미의 혼란이 일어날 테지.  세계는 보다 가까워지고 보다 좁아지고 있어.  어딘가에서 태풍이 발생하면 바람을 피할 수 없게 돼.  세계는 일련탁생이 되어가고 있는 걸세“(p.87 一連托生 죽은 뒤에 극락정토에서 같은 연꽃 위에 다시 태어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선악이나 결과에 대한 예견에 관계없이 끝까지 행동과 운명을 함께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네이버 사전)라는 도코노 일족인 요타로의 말이라든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픔을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으로 대신하는 이케하타의 기행, 마지막 미네코가 전하는 에필로그 같은 부분 등이 그것이다.

 

 

역사의 거대한 힘 앞에 나약하고 무력한 개인의 가치와 꿈이 지켜지고 간직되었으면 하는 희망이 도코노 일족의 ‘넣을 수 있고 울릴 수 있는’ 판타지적 능력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네코는 “그분들이 저희들의 마음을 남겨줄 것이다. 저희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지 깨달은 것입니다.”(P.273)라고 말한다. 도코노 일족의 그런 능력과 방법으로 개인의 가치와 꿈, 삶의 이유들이 지켜지고 따뜻한 연대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일 게다.  그러나 내가 도코노 일족이 아닌 다음에야 그게 가능할까?

소설의 뒷부분은 다분히 최루적인 내용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로 엮어진다. 너무 감상적이다, 하고 내 이성적 부분이 판결을 내리고, 이런 최루적인 감상에 대책 없이 빠져드는 건 유치한 일이라고 경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콧등이 시큰해짐을 느꼈다. 게다가 미네코는 미약하기 짝이 없는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나갈 나라가 정말 있기는 할까요?’(P.280)라고 묻는다. 더 나아가 도코노 일족에게 ‘저희가 이 나라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P.281)를 물어보고 싶어 한다. 개인의 순수와 꿈이 존중되고 보호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낸 날들 중에 지인의 첫 번째 기일이 있었다.  지인의 묘소 주변에는 한창 바쁜 여름날의 개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개미들은 무심하게 내딛는 우리의 발걸음에, 또는 의도적인 발짓에 희생되었다. 마치 인간 개인이 역사의 횡포에 희생되는 것처럼.

묘소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인간의 장례나 제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만이 죽음을 기억하려 애를 쓴다.  이미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이들의 끝나버린 삶을 남아서 살아 있는 이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형식과 절차를 전통과 관습이라는 도구로 묶어 놓았다.  인간의 영혼만이 숭고한 것일까, 그렇다면 묘소 앞에서 희생된 그 개미들은? 인간만이 숭고한 영혼을 지녔기에 그래서 우리는 떠나버린 영혼까지도 정성을 기울여 보살피려는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다보니 지인의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도코노 일족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런 절차와 형식을 통해 그 지인의 삶과 마음을 우리 마음의 서랍 안에 넣어두고 간직하며 오래도록 울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인간이란 ‘타인은 볼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존재’(P.181)이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고, 따라서 서로 타인의 기억 속에 저장되기를 본능적으로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도코노 일족의 “넣고 울리는” 능력과 비슷한 ‘기억’이라는 능력을 통해 따스한 연대를 이루고 서로를 지켜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느 정도 약간 씩은 도코노 일족의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 능력을 발휘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도 들었다.

판타지의 홍수 속에서 고요하고 부드러운 동양적 판타지를 만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판타지 소설이지만 이 소설 안에는 맞서 싸워 이겨야할 괴물도 없고 목숨을 걸고 대항해야만 하는 악마적 존재도 없다.  그런 면에서 여성적 판타지라는 생각도 든다.  도코노 이야기 첫 번째인 <빛의 제국>과 <엔드 게임>을 주문해놓고 배송되어오기를 즐겁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  오타 발견 : P.53  '어차피 나는 셋째 아들이라 가어을 이으려야 이를 수도 없지만.'
                               '
이을 수도 없지만.’ 으로 교정해야 할 듯. 
 **   의문 ; ‘빵’이라든가 ‘홀’같은 외래어 등을 굵은 글씨로 인쇄해 놓았다.  아마도 외래어 표기를 가타가나로 표기하는 일본글을 옮기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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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책입니다. 잔잔한 분위기에 술술 읽히는 책이에요.^^
민들레 공책에 대한 전체적인 평이 별로여서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약간 걱정스러웠는데.. 마음이 놓이네요.ㅎㅎ 귀가 얇은지 읽으면서도 다른 분들의 의견에 마음이 왔다리 갔다리 하네요.ㅋ 이책 읽고 빛의 제국과 앤드 게임 시작해야 겠군요.
지인의 명복을 빕니다.

섬사이 2007-08-02 11:22   좋아요 0 | URL
짱돌이님, 반갑습니다. 처음 뵙는 것 같아요. 온다 리쿠의 책들 중에 처음 읽은 책인데 뭐 그렇게 아주 나쁘진 않았어요. 너무 감상적이랄까,, 하는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것도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즐거운 독서가 되길 바래요.
그리고 지인의 명복을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트래블 알라까르뜨 -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38가지 방법
이종은 지음 / 캘리포니아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이국적인 표지 디자인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굵고 큰 필기체로 적힌  ‘트래블 알라까르뜨’ 라는 제목 또한 얼마나 낯설고 이국적인가.  책을 손에 쥐자마자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훑어보았다.  세련되고 럭셔리한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렇게 화려한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책 속 사진들의 배열이 어째 잡지스럽다(?)는 엉뚱한 느낌이 들어서,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손에 든 첫인상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래도 읽어봐야지. 사람도 속을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듯이, 책도 속을 읽고 나야 그 책을 알 수 있을테니,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를 넗히는 38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방법은 화려한 첫인상과는 달리 소소하다 할 정도로 작고 소박한, 하지만 함부로 여길 수 없는 소중한 지침들이었다.  처음에 곱지 않은 첫인상 때문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읽기 시작했던 이 책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느꼈고, 마지막 장까지 모두 덮었을 때엔 처음에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보였던 책 속 사진들이 작가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애정과 열정, 용기와 모험을 담은 사진으로 달리 보였다.

그저 작가의 여행담을 들었다고 여기며 책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책은 아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행은 영감을 얻게 하고 자신의 세계를 넓히며 성장하게 하는 가장 즐거운 교육’(p.9)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며 좀 더 융통성 있는 시각과 통찰력을 갖게’하고 ‘나 자신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며 “새로운 습관을 배우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한다.’(p.14)고.  그래서 ‘진정한 모험은 찰나의 놀라움이나 가르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적 삶에 적응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p.14)하며 ‘일상을 여행처럼 보낼 수 있는 삶의 방식’(p.15)에 눈을 떠야 한다고. ‘일상의 익숙한 흐름 속에서 변화를 만나고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p.15)이 필요하다고. 

그 말은 곧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책에 소개되는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38가지 방법’은 곧 일상 속에서도 실천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일상 속에서 응용할 수 있는 능력과 열린 사고가 아닐까.

이를 테면 저자가 소개한 열세 번째 방법, ‘감상을 품은 여유 -마음을 이끄는 의자에 앉아 세상의 한 부분을 지켜보자.’ 같은 것.... 내가 낯선 이국의 한 풍경 속에 놓여진 의자에 앉지는 못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만나는 많은 의자들, 벤치들, 계단이나 화단 정원석 같은 곳에 앉아 주위의 풍경을 새롭게 만나고 감상할 기회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제로 나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때론 내 변덕스런 마음에 따라 똑같은 풍경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내 살갗에 닿는 대기의 느낌, 놀이터를 둘러싼 나무들의 변화, 뛰어다니는 아이들 틈 속에서 종종거리며 아이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참새들, 땀에 젖은 아이들의 이마, 아이를 따라 놀이터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거운 수다를 나누다가도 아이의 부름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엄마들의 애정 어린 눈빛들... 그런 것들 또한 세상의 한 부분을 지켜보는 일상 속의 작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져보니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여행은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어느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없는, 내 가족만을 위해 준비하는 우리 집 식탁에서 벌어지는 따뜻하고 단란한 음식 여행, 가까운 미술관으로의 작품 감상 여행, 또는 서툴게 그린 우리 아이들의 그림 속으로의 여행도 즐거울 것이다.  이국의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요리클래스엔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요리책을 뒤적이다가 마음이 끌리는 새로운 메뉴를 저녁식탁에 올릴 수는 있지 않은가.  또 책 속으로 떠나는 일은 언제 어디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일상 속의 작고 즐거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여행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보니, 새삼 나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책, 마술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단순히 유적지에 눈도장을 찍고 오는 여행이 되지 않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고, 늘 되풀이되는 일상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그 일상 속에서 작은 여행을 찾아 즐기며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니까 말이다. 

저자는 책의 끝 부분에서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것 같고 나아갈 대상의 방향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낯선 적이 있는가.  기다리고 나아가야 할 대상, 목표가 존재해야 했다.  그 목표를 갈구 한다고 해도 먼저 그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목표에는 의미가 있어야 했다.’(p.289) 고 말한다.  낯설고 먼 땅으로의 여행이든 우리 평범한 인생 속 여행이든, 목표를 상실하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뜻이리라.  삶의 방향성을 잃고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채로 맥없이 부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았다.  저자는 그런 나에게 충고의 말을 던졌다. ‘기다릴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삶의 방향키를 잡다 보면 일상에서도 즐거움과 설렘을 만날 수 있을 것’(p.292)이라고, ‘가장 멋진 이는 열정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며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는 사람’(p.301)이라고.

이제 내 삶을 문질러 닦고, 풀어진 나사들을 조이고, 눈을 비벼 나른함을 몰아내고 사방을 둘러봐야겠다.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내 주변에 어떤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었는지를 점검해볼 시간이다.  내 마음의 풍경을 담은 그림 한 장, 내가 꿈꾸는 ‘저 너머’를 담은 사진 한 장을 골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은 날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언젠가는 나도 정말 떠나보리라 하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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