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블 알라까르뜨 -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38가지 방법
이종은 지음 / 캘리포니아미디어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이국적인 표지 디자인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굵고 큰 필기체로 적힌  ‘트래블 알라까르뜨’ 라는 제목 또한 얼마나 낯설고 이국적인가.  책을 손에 쥐자마자 책장을 휘리릭 넘기며 훑어보았다.  세련되고 럭셔리한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렇게 화려한 여행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책 속 사진들의 배열이 어째 잡지스럽다(?)는 엉뚱한 느낌이 들어서,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손에 든 첫인상은 그리 곱지 않았다.

그래도 읽어봐야지. 사람도 속을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듯이, 책도 속을 읽고 나야 그 책을 알 수 있을테니,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를 넗히는 38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방법은 화려한 첫인상과는 달리 소소하다 할 정도로 작고 소박한, 하지만 함부로 여길 수 없는 소중한 지침들이었다.  처음에 곱지 않은 첫인상 때문에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읽기 시작했던 이 책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느꼈고, 마지막 장까지 모두 덮었을 때엔 처음에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보였던 책 속 사진들이 작가가 자신의 삶에 대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애정과 열정, 용기와 모험을 담은 사진으로 달리 보였다.

그저 작가의 여행담을 들었다고 여기며 책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책은 아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행은 영감을 얻게 하고 자신의 세계를 넓히며 성장하게 하는 가장 즐거운 교육’(p.9)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며 좀 더 융통성 있는 시각과 통찰력을 갖게’하고 ‘나 자신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며 “새로운 습관을 배우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한다.’(p.14)고.  그래서 ‘진정한 모험은 찰나의 놀라움이나 가르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적 삶에 적응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p.14)하며 ‘일상을 여행처럼 보낼 수 있는 삶의 방식’(p.15)에 눈을 떠야 한다고. ‘일상의 익숙한 흐름 속에서 변화를 만나고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p.15)이 필요하다고. 

그 말은 곧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책에 소개되는 ‘여행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38가지 방법’은 곧 일상 속에서도 실천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일상 속에서 응용할 수 있는 능력과 열린 사고가 아닐까.

이를 테면 저자가 소개한 열세 번째 방법, ‘감상을 품은 여유 -마음을 이끄는 의자에 앉아 세상의 한 부분을 지켜보자.’ 같은 것.... 내가 낯선 이국의 한 풍경 속에 놓여진 의자에 앉지는 못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흔하게 만나는 많은 의자들, 벤치들, 계단이나 화단 정원석 같은 곳에 앉아 주위의 풍경을 새롭게 만나고 감상할 기회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제로 나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때론 내 변덕스런 마음에 따라 똑같은 풍경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다.  내 살갗에 닿는 대기의 느낌, 놀이터를 둘러싼 나무들의 변화, 뛰어다니는 아이들 틈 속에서 종종거리며 아이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를 쪼아 먹는 참새들, 땀에 젖은 아이들의 이마, 아이를 따라 놀이터에 나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거운 수다를 나누다가도 아이의 부름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엄마들의 애정 어린 눈빛들... 그런 것들 또한 세상의 한 부분을 지켜보는 일상 속의 작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져보니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여행은 수없이 많고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어느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맛볼 수 없는, 내 가족만을 위해 준비하는 우리 집 식탁에서 벌어지는 따뜻하고 단란한 음식 여행, 가까운 미술관으로의 작품 감상 여행, 또는 서툴게 그린 우리 아이들의 그림 속으로의 여행도 즐거울 것이다.  이국의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요리클래스엔 참가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요리책을 뒤적이다가 마음이 끌리는 새로운 메뉴를 저녁식탁에 올릴 수는 있지 않은가.  또 책 속으로 떠나는 일은 언제 어디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일상 속의 작고 즐거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여행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보니, 새삼 나의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책, 마술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실제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단순히 유적지에 눈도장을 찍고 오는 여행이 되지 않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고, 늘 되풀이되는 일상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는 그 일상 속에서 작은 여행을 찾아 즐기며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니까 말이다. 

저자는 책의 끝 부분에서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것 같고 나아갈 대상의 방향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낯선 적이 있는가.  기다리고 나아가야 할 대상, 목표가 존재해야 했다.  그 목표를 갈구 한다고 해도 먼저 그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목표에는 의미가 있어야 했다.’(p.289) 고 말한다.  낯설고 먼 땅으로의 여행이든 우리 평범한 인생 속 여행이든, 목표를 상실하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방황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뜻이리라.  삶의 방향성을 잃고 그저 시간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채로 맥없이 부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았다.  저자는 그런 나에게 충고의 말을 던졌다. ‘기다릴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삶의 방향키를 잡다 보면 일상에서도 즐거움과 설렘을 만날 수 있을 것’(p.292)이라고, ‘가장 멋진 이는 열정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며 자기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아는 사람’(p.301)이라고.

이제 내 삶을 문질러 닦고, 풀어진 나사들을 조이고, 눈을 비벼 나른함을 몰아내고 사방을 둘러봐야겠다.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지, 내 주변에 어떤 보석들이 반짝이고 있었는지를 점검해볼 시간이다.  내 마음의 풍경을 담은 그림 한 장, 내가 꿈꾸는 ‘저 너머’를 담은 사진 한 장을 골라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은 날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언젠가는 나도 정말 떠나보리라 하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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