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라는 적 - 인생의 전환점에서 버려야 할 한 가지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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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책인 줄 알았지

자기 계발서 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책 한 권 읽는다고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뜻하는 바를 이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그 사람과 나의 삶의 지점이 다르고 채워가는 삶의 내용과 의미가 다른데 그 사람의 경험과 사례가 나에게 똑같이 적용될 리 없지 않겠냐고, 내가 책한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겠냐고 고개를 돌렸다. 이 책도 심리학 책으로 오해하지 않았다면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 뒤에 인쇄된 추천글처럼 이 책이 '완벽한 길잡이'라거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이 책을 읽기 전의 당신과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대함은 겸손한 시작에서 비롯되며 힘들고 귀찮은 일에서 비롯된다.(p.90)'나 '에우테미아 euthymia (p.163. '마음의 평정'을 뜻하는 그리스어)'처럼 내 지난날의 어느 한 부분을 돌아보게 하거나 지금의 나를 점검하게 하는 문장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에고'가 뭔데?

제목에서부터 에고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이 책에서 에고는 프로이트가 정의한 에고와는 다른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에고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 
'거만함', 
'자기중심적 야망', 
'어떤 것보다 자기 생각을 우선시하는 특성', 
'합리적인 효용을 훌쩍 뛰어넘어 그 누구(무엇)보다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아야 하고 또 보다 많이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 
'자신감이나 재능의 범주를 초월하는 우월감'

으로 정의된다.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열정, 성공, 실패라는 인생의 세 단계 중 하나에 속해 있는데, 에고는 이 세 단계,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가 설명하고 예시를 통해 드러내는 에고의 모습은 심술궂고 변덕스럽고 유아적이며 겁쟁이에다 제멋대로인 고집불통이고, 거만하다. 그런 에고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버티고 있으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방해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저자는 분노와 증오는 에고를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에고를 잘 통제하는 사람은 '열망하지만 겸손'하고, '성공을 해도 자비'로우며 '실패를 해도 끈기'가 있다.

저자는 말콤 X, 독일 메르켈 총리, 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 해밋,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미식축구 감독 빌 월시, 조지 마셜 장군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에고를 잘 통제한 예와 통제에 실패한 예들을 열거한다. 너무 많은 예시가 산만하게 느껴지고 저자가 말하려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많은 예시를 통해서 '성공'과 '실패'를 단지 부와 명예, 권력을 얻거나 잃는 것으로 이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벨리사리우스와 말콤 X의 경우

동로마 제국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에고를 통제하는 능력으로만 보자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세운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게 버림을 받고 급기야는 두 눈을 잃고 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까지 추락한다. 에고를 잘 통제할 줄 안다고 해서 그게 부와 명예와 권력을 불러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에고를 통제하며 자기 길을 성실히 걸어온 사람이 에고를 통제할 줄 모르는, 아예 통제할 마음조차 없는 누군가(여기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물론 중세 동로마 제국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황제로부터 업적에 대한 보상은커녕 누명을 쓴 채 가진 것마저 모두 빼앗기면서도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성스러운 임무'라고 믿으면서 자신이 옳은 일을 했으며 '그것으로 족했다'라고 만족하는 것이 에고를 잘 통제했다고 칭찬받을 일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벨리사리우스가 자기가 믿는 바대로 에고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일에 성실했고, 우직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하였고, 황제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도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자기 안의 에고에 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공한 삶이라는 걸까. 

말콤 X의 경우는 또 어떤가. 뉴욕 빈민굴인 할렘가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마약과 도박, 매춘, 강도 등 범죄를 저질러 오던 말콤이 10년 형을 언도받고 5년간 교도소에 있는 동안 그는 책을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인종차별 문제에 눈을 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콤이 감옥에 있는 동안 시간을 죽이지 않고, '살아 있는 시간'을 선택해서 자기 안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썼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말콤은 감옥에서 나온 후 과격한 흑인 해방운동을 벌였다. "백인은 악마다, 그 악마가 우리의 적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같은 시기에 흑인 민권운동을 벌였던 킹 목사를 비난했다. 그렇다면 말콤 X는 에고를 잘 통제해서 교도소에 있는 동안 자신을 좀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킨 사람인가, 아니면 에고를 통제하지 못하고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결국은 살해당하고야 마는 실패자인가. 

저자는 '에고를 버리고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p.278)고 말한다. '증오와 분노 대신 당신을 향한 모든 시선과 모든 말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모든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당신을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p.278)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죽어라 안 될 때가 있다. 남들한테 '수고했다'라는 말 한 마디 듣지도 못하고 오히려 오해받고 비난받는 거지 같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남들이 별생각 없이 던지는 칭찬이나 비난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저자는 그럴 때 우리가 무기력에 빠져 지금까지 애써 견디며 해온 일들을 포기해버리거나 아니면 남들이 던져주는 인정을 듣지 않고는 일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거나 작은 성공에 우쭐해져서 거만을 떨다가 고꾸라지는 일이 벌어질까 봐 경계하는 것이다. 


잠자코 일이나 해!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 줄기차게 계속 무언가를 바라고 또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분노나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모는 행위로 이어질 뿐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그 일을 잘 해라. 그런 다음 흘러가게 두고 신의 뜻을 기다려라.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인정받고 보상받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저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p.243)

이런 글은 오해의 소지가 많다. 잘못 이해하면 우리가 누려야 마땅한 기본적이고 정당한 권리를 빼앗기더라도 군말 말고 일이나 하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어느 평화 활동가는 말했다. '분노의 영성'을 가진 사람만이 '평화'를 위해 움직일 수 있다고.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만이 세상의 온갖 불평등과 폭력에 저항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저항의 힘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 나는 그 평화 활동가의 말에 동의한다. 


세상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는 위의 인용글처럼 말콤이 세상을 향해 흑인에 대한 차별 철폐와 인권을 외치고 요구하지 않았다면 말콤의 삶은 죽음으로까지 몰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교도소에서 쌓은 지식으로 좀더 편한 일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콤은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했고 그의 바람대로 흑인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우리의 필요를 요구해선 안 된다는 저자의 조언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과 고대 그리스 로마 사상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20세기 철학가이자 노벨문학상을 받은 문필가이기도 한 버트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스토아 철학이 '자기 자신의 의지만으로, 또는 다른 인간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인간의 삶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사람들이 모인 크고 작은 사회 속에서가 아니라 각기 개별적인 한 사람 한 사람에 의해서 선이 실현될 수 있다'고 여겼다고 설명하면서 '고독의 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의 조언이 어째서 이렇게 개인의 노력, 성실, 의지 등을 중요시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타인의 인정이나 비난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가고자 한 방향을 향해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삶을 채워갈 것, 성공의 자리에서도 겸손하게 배움의 자세를 유지할 것, 실패를 인생 순환의 한 과정이라 여기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할 것. 이런 이야기들을 적당한 인물 예시를 통해 반복하고 있다. 일찍부터 성공적인 인생을 달리다가 사업에 실패로 추락의 경험을 맛보고 방황했던 저자의 경험을 통해 나오는 글이라서 사업을 하고 있거나 진로를 준비하는 이들, 확신할 수 없는 꿈에 흔들리고 있는 이들의 결심을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태자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있는 에고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내 삶의 문제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이를테면 나는 내 안에 오만한 겁쟁이 같은 에고가 똬리를 틀고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최근 풀리지 않던 일의 원인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나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모두 에고라고 여기고 귀를 막는다면 그것도 위험할 것이다. 그게 못된 망아지 같은 에고인지, 아니면 양심의 소리인지, 내 안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들려오는 구조 신호인지 듣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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