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책인 줄 알았지
자기 계발서 류의 책을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사람은 책 한 권 읽는다고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뜻하는 바를 이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냥 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그 사람과 나의 삶의 지점이 다르고 채워가는 삶의 내용과 의미가 다른데 그 사람의 경험과 사례가 나에게 똑같이 적용될 리 없지 않겠냐고, 내가 책한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겠냐고 고개를 돌렸다. 이 책도 심리학 책으로 오해하지 않았다면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 표지 뒤에 인쇄된 추천글처럼 이 책이 '완벽한 길잡이'라거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이 책을 읽기 전의 당신과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대함은 겸손한 시작에서 비롯되며 힘들고 귀찮은 일에서 비롯된다.(p.90)'나 '에우테미아 euthymia (p.163. '마음의 평정'을 뜻하는 그리스어)'처럼 내 지난날의 어느 한 부분을 돌아보게 하거나 지금의 나를 점검하게 하는 문장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에고'가 뭔데?
제목에서부터 에고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이 책에서 에고는 프로이트가 정의한 에고와는 다른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에고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
'거만함',
'자기중심적 야망',
'어떤 것보다 자기 생각을 우선시하는 특성',
'합리적인 효용을 훌쩍 뛰어넘어 그 누구(무엇)보다 더 잘해야 하고 보다 더 많아야 하고 또 보다 많이 인정받아야만 하는 것',
'자신감이나 재능의 범주를 초월하는 우월감'
으로 정의된다.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열정, 성공, 실패라는 인생의 세 단계 중 하나에 속해 있는데, 에고는 이 세 단계,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가 설명하고 예시를 통해 드러내는 에고의 모습은 심술궂고 변덕스럽고 유아적이며 겁쟁이에다 제멋대로인 고집불통이고, 거만하다. 그런 에고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버티고 있으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방해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저자는 분노와 증오는 에고를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에고를 잘 통제하는 사람은 '열망하지만 겸손'하고, '성공을 해도 자비'로우며 '실패를 해도 끈기'가 있다.
저자는 말콤 X, 독일 메르켈 총리, 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기타리스트 해밋,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 미식축구 감독 빌 월시, 조지 마셜 장군 등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에고를 잘 통제한 예와 통제에 실패한 예들을 열거한다. 너무 많은 예시가 산만하게 느껴지고 저자가 말하려는 주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많은 예시를 통해서 '성공'과 '실패'를 단지 부와 명예, 권력을 얻거나 잃는 것으로 이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벨리사리우스와 말콤 X의 경우
동로마 제국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에고를 통제하는 능력으로만 보자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세운 빛나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에게 버림을 받고 급기야는 두 눈을 잃고 거리에서 구걸하며 살아가야 하는 처지까지 추락한다. 에고를 잘 통제할 줄 안다고 해서 그게 부와 명예와 권력을 불러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에고를 통제하며 자기 길을 성실히 걸어온 사람이 에고를 통제할 줄 모르는, 아예 통제할 마음조차 없는 누군가(여기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물론 중세 동로마 제국의 이야기라고는 하나 황제로부터 업적에 대한 보상은커녕 누명을 쓴 채 가진 것마저 모두 빼앗기면서도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성스러운 임무'라고 믿으면서 자신이 옳은 일을 했으며 '그것으로 족했다'라고 만족하는 것이 에고를 잘 통제했다고 칭찬받을 일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벨리사리우스가 자기가 믿는 바대로 에고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일에 성실했고, 우직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신하였고, 황제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도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자기 안의 에고에 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공한 삶이라는 걸까.
말콤 X의 경우는 또 어떤가. 뉴욕 빈민굴인 할렘가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마약과 도박, 매춘, 강도 등 범죄를 저질러 오던 말콤이 10년 형을 언도받고 5년간 교도소에 있는 동안 그는 책을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인종차별 문제에 눈을 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말콤이 감옥에 있는 동안 시간을 죽이지 않고, '살아 있는 시간'을 선택해서 자기 안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고 썼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말콤은 감옥에서 나온 후 과격한 흑인 해방운동을 벌였다. "백인은 악마다, 그 악마가 우리의 적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같은 시기에 흑인 민권운동을 벌였던 킹 목사를 비난했다. 그렇다면 말콤 X는 에고를 잘 통제해서 교도소에 있는 동안 자신을 좀 더 높은 차원으로 변화시킨 사람인가, 아니면 에고를 통제하지 못하고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결국은 살해당하고야 마는 실패자인가.
저자는 '에고를 버리고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아야 한다'(p.278)고 말한다. '증오와 분노 대신 당신을 향한 모든 시선과 모든 말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모든 것들이 자양분이 되어 당신을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p.278)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도 죽어라 안 될 때가 있다. 남들한테 '수고했다'라는 말 한 마디 듣지도 못하고 오히려 오해받고 비난받는 거지 같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남들이 별생각 없이 던지는 칭찬이나 비난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저자는 그럴 때 우리가 무기력에 빠져 지금까지 애써 견디며 해온 일들을 포기해버리거나 아니면 남들이 던져주는 인정을 듣지 않고는 일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거나 작은 성공에 우쭐해져서 거만을 떨다가 고꾸라지는 일이 벌어질까 봐 경계하는 것이다.
잠자코 일이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