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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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문장 하나하나를 이토록 다정하게 쓰다듬고 헤아리며 읽은 흔적들. 그녀가 성실함을 재능으로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10년이나 20년쯤 후에도 그녀의 따뜻한 책 이야기를 읽으며 미소지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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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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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미상궁이 된 기분이었다. 잘 차려진 수라상에 오른 음식들을 충분히 음미하며 천천히 씹어 삼키지 못하고 음식에 독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혹시 상한 음식이 오르진 않았는지를 알기 위해 살짝 살짝 먹어만 보는 기미상궁. 이 책에 실린 12편의 글들은 12첩 반상이라는 수라상 못지 않게 탐식하고 싶은 글들이다. 사람의 자취를 담은 퇴계와 남명 조식,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과 김이재, 허균과 허난설헌, 그리고 역사의 흔적을 담은 서울 성곽, 강화도, 남한산성, 대관령과 강릉, 금강, 양동마을과 향단.... 하나하나 깊이 되집고 음미하고 싶은 사람들과 장소들이다.  

하긴 이 책에서 자취와 흔적을 기록한 인물과 장소들이 그 삶과 역사의 의미가 크고도 깊으니, 이 짤막한 열두편의 글로 꼼꼼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갈증이 나고, 감질난다. 제대로 맛보고 싶은 마음이 연기처럼 솟는다.  

편의상 사람의 자취를 담은 글과 역사의 흔적을 담은 글로 나누었지만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간 터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으랴. 정약용에 대한 글에서는 강진의 다산초당과 백운동계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남명 조식에 대한 글에서는 지리산을 그냥 넘어갈 수 없고 퇴계 이황은 그 유명한 도산서원을 빼놓고는 말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반가웠던 글은 허균에 대한 글이었다.  2008년 겨울에 강릉에 들러  허균 허난설헌 생가를 찾은 적이 있었다. 녹은 눈 때문에 질퍽했던 흙마당과 지키는 사람 하나 없고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풍경들에 마음이 시려왔었다. 오죽헌이나 선교장에 비해 얼마나 볼품이 없었던가. 그런 기억 때문에 '남존여비 사회의 세 여성과 불우한 사람들의 벗, 허균'이란 제목의 글은 더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길 위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처럼 어쩌면 그 '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감을 잡기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내가 가 본적이 있는 허균, 허난설헌 생가, 다산초당, 강화도, 대관령, 지리산, 서울성곽에 대한 글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비해서 남한산성(여긴 멀지도 않은데 왜 지금까지 가볼 생각을 안했을까), 금강, 양동마을에 관한 글은 좀 감정이입이 힘들었다. 자료사진이 많이 실렸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사람의 무늬를 탐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들었다. 그런 의미라면 이 책은 사람의 무늬를 이해하기 쉽도록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 서문에 인문학은 '재미와 유익', '감동과 느낌', '여유와 관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점에 대해서도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하고 싶다. 하지만 처음 이야기했듯이 기미상궁처럼 스을쩍 맛만 보고 지나간 것 같은 이 미진한 기분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나. 

다산초당, 백운동계곡, 소쇄원, 지리산과 섬진강... 그 곳에 갈 수 있다면 미진한 기분 따위 훨훨 씻어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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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1-05-12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 그러니까 별점이 님보다 훨씬 박해서 페이퍼로 갈아탔었죠.
다들 빼어난데, 한데 어울릴 수는 없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전 한승원이 참 좋았어요~^^

섬사이 2011-05-12 10: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한데 어울릴 수는 없는 느낌!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쩝쩝 입맛을 다셨어요.

순오기 2011-05-13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쇄원은 2012년에 광주이벤트에 참여하시면 구경시켜 드릴게요.^^
다산초당, 지리산, 섬진강은 가 봤는데, 난설헌 생가가 보고 싶네요.
오죽헌은 수학여행으로 갔었고, 남한산성은 수년내 가게 될 거 같고...
양동마을은 중전님 사진 때문에 꼭 가고 싶은 곳이고요.

섬사이 2011-05-13 19:49   좋아요 0 | URL
2012년이라... 고3 큰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테니,
좀 가뿐한 마음으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소쇄원에 대한 페이퍼를 순오기님 서재에서 보았던 것 같아요.
그 때,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도 살짝 언급이 되더라구요.
오늘은 날씨가 오랜만에 화창했어요.
어딘가 공기 맑은 초록 그늘 아래 서 있고 싶었어요. ^^

세실 2011-05-1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이런 단편적인 글은 맛보기로 끝나는 아쉬움이 있죠.
나두 여행가고 싶어라....당분간은 어려울꺼 같아요. ㅠㅠ

섬사이 2011-05-19 11: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왜 그런 기분 있잖아요.
너무 감질나게 조금만 먹어서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되는,,
딱 그런 느낌이더라구요.
여행은... 저도 쉽지가 않네요. ㅠ.ㅠ
 
<하버드 박사의 초등영어 학습법>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하버드 박사의 초등영어 학습법 - 미국식 커리큘럼으로 배우는
정효경 지음 / 마리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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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난 아이들에게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어야 하고,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들의 학습매니저가 되거나 과외선생님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의 인성이나 예절 등의 부분에서까지 손을 놓으라거나 아이들의 학습에 전혀 관여치 말라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아이에게 집에서까지 더,더,더를 목청껏 외치고 싶진 않다는 말이다. 지친 아이가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곳, 마음 속에 쌓였던 스트레스와 욕구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집이며 엄마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뿐이다. (이런 생각은 내가 슈퍼맘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걸 합리화하기 위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런 책들이 아이가 공부에 어려움을 느낄 때 한 마디 툭 던져줄 수 있는 '참고 사항'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엄마가 아이의 영어공부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라는 2400시간을 채워주기 위해 하루에 2-3시간씩 투자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하긴 태아 때부터 영어로 태교를 하고 태어나자마자 영어로 말을 걸고 영어 그림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다른 영어학습도서들에 비하면 초등 1학년을 영어교육의 시작점으로 보는 저자의 의견은 소박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끔 아이들이 영어 때문에 속상해 할 때면, 난 농담삼아 "넌 나중에 동시통역사가 따라붙을 만큼 훌륭하게 자랄 테니까 영어를 너무 잘 할 필요없어."라고 말해준다. 동시통역사가 늘 따르붙을 만큼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영어에 올인하는 것도 무모해 보인다.  

가끔 EBS에서 방영하는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사람들이 기피한다는 3D업종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 삶이 고단해보이더라도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출세하고 성공해서 최고가 되라'는 말보다는 '주어진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라'는 말을 더 많이 들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감상에 젖어든다.  내 아이가 그런 '극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면 난 속이 상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아이는 극한 직업을 가졌어요, 라고 말하는 게 창피할까?  그렇게 위험하고 고된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려는 아이가 오히려 기특하지는 않을까...    

이 책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영어교육 커리큘럼도 들어있다.  초등 1학년 때에는 알파벳과 파닉스를 익히고 단어를 인지시키고, 초등 학년 때에는 스토리북을 읽게하고 기초생활회화와 기본문법을 익히라고 되어 있는 식이다.  분명 이런 과정을 잘 따라오지 못할 아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라도 사회로 나서기도 전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줘야 하는 엄마에게 먼저 '부족하고 모자란 아이'로 찍히는 아이가 생길까봐 미리부터 걱정이 앞선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상위 1%가 되라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경쟁에서 진 무능한 낙오자가 되어선 안 된다고  외칠 때마다 아이들도 부모를 향해 똑같은 말을 외칠 거라는 생각에, 난 소름이 돋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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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12 0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말씀에 동감, 저도 이 책 읽고 책에 반하는 리뷰를 썼거든요.
온 국민이 영어에 목매야 하냐고욧!
나도 학습매니저 절대 안(못)한다에 한표 추가하지요.^^

섬사이 2010-01-14 16:5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온 국민이 영어를 잘해야 할 필요는 없죠.
학습매니저 하라고 해도 이제 기운딸려서 하지도 못하구요. ^^

2010-01-14 0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4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5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10-01-14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섬사이 2010-01-14 16:55   좋아요 0 | URL
배꽃님도 저랑 같은 편인 줄 진작에 알았어요. ^^
잘 지내시죠?
 
<진이의 카페놀이>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진이의 카페놀이 - 600만 블로거가 다녀간 진의 서울 베스트 디저트 & 카페 52곳!
김효진 글.사진 / 더블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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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펼쳐보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책이 임자를 잘못 찾아왔구나'였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20대로 접어든지 3년 미만인 아가씨에게 갔다면 환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중년의 나이를 살고 있고 저자의 표현대로 한다면 '달다구리'하고 '느끼뤼'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 황당하고 낯선 느낌이었다.  

책이 다룬 주제 자체도 그랬지만 저자의 문장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 블로그를 통해 저자가 올린 카페소개글들이 책으로 묶여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자가 선정한 '좋은 카페'의 기준은 또 뭔지, 그것도 궁금했는데, 차례를 살펴보니 '100Q100A'가 있길래 혹시 거기에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어 찾아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저자의 혈액형, 이상형, 좋아하는 색, 숫자... 이런 것들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이 난감하고 황당함이란.   

이 책에 소개된 카페들 중에 신사동에 있는 카페 두 어 군데는 알고 있는 카페다.  하지만 워낙 내가 이런 카페들에 시큰둥하는 성격인데다가 한 잔에 만원쯤 하는 커피나 2만원을 육박하는 햄버거나 음료나 디저트 등까지 갖춰 먹으려면 5만원을 가볍게 점프하는 스파게티의 사악한 가격들을 편안하게 감당하지 못하는 찌질함까지 갖췄기 때문에 그런 카페들과 되도록 상종을 하지 않는 편이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비싼 돈 주고 커피를 왜 마시냐는 남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단다.
"평생을 혼자 노총각으로 살 거 아니면 좋은 카페 몇 군데쯤은 알아 두는 게 좋을 거예요."라고.  그러나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한적한 골목길 허름한 계단에 앉아 마시는 것도 꽤 근사하고 멋진 일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푸드전문취재기자라는 저자가 자기 직업에 충실하게 일한 나름의 결과물이라고 본다면 좀 너그러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카페의 인테리어나 메뉴 소개를 넘어 전문가다운 예리함이 더해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제목에서 드러난대로 말마따나 그저 '놀이'다, 생각한다면 놀고 싶은대로 그냥 놀면 그만이다.  노는 방법은 사는 방법만큼이나 천만가지로 다양할 것이고 카페놀이가 적성에 맞는다면 이 책 속에 소개된 카페들을 찾아가 직접 확인해본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임자를 잘못 만나도 단단히 잘못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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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2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받고 임자를 잘못 만났다 생각했어요.ㅎㅎ

섬사이 2009-12-28 13:56   좋아요 0 | URL
이 책 받고 고민했어요. 도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그런데 그냥 리뷰를 써버렸어요.
비염때문에 꼬박 밤을 뜬눈으로 지샜거든요. ^^
 
<마크로비오틱 밥상>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마크로비오틱 밥상 - 자연을 통째로 먹는
이와사키 유카 지음 / 비타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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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크로비오틱, 좀 생소하다.  드라마 '스타일'에서 류시원이 셰프 역을 맡아 만들었던 요리들이 '마크로비오틱이라는데 '스타일'이라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았던데다가 요리에는 워낙 별 관심이 없으니 아마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고 하더라도 '마크로비오틱'이라는 어렵고 생소한 말을 내 기억에 담아둘 리가 없다.  이 책을 받고 나서도 한동안 '아크로바틱이랑 비슷한 말이었는데 뭐였지?'하고 헤맸으니까.  

프롤로그에서 저자도 드라마 '스타일' 덕분에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의 국가공인 관리영양사였다던 그녀도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치유법을 찾다가 발견한 요리법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크로비오틱'에 대한 기초조차 모른다는 걸 배려해서 책 초반부에 마크로비오틱의 원리와 조리도구들, 재료손질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신토불이, 일물전체, 자연생활, 음양조화의 4대원리만 보더라도 이 요리가 단순히 '맛'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데 되는데, 히포크라테스의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 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뭔가 우리 몸의 건강을 잘 챙겨줄 것만 같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느낌이다.   표지에 쉬운 영어로 나열된 또 하나의 마크로비오틱 원칙.  "NO MEAT, NO SUGAR, NO MILK, NO EGG." 이게 쉬울 거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끙. 

요리책의 앞부분은 주로 휘리릭 훑어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좀 꼼꼼하게 읽었다.  4대원칙 중 네 번째 것, 음양조화.  음식을 만들거나 먹으면서 음양의 조화까지 따져본 경험은 없다.  그래서 신기한 생각도 들어 읽어봤는데 이건 음성, 저건 양성,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채소를 놓고도 양배추의 경우 겉장은 음성, 중심에 가까울 수록 양성이고 파는 뿌리 쪽은 양성 줄기 쪽은 음성이며, 양파는 봄에 재배되는 양파가 다른 계절에 수확한 양파보다 음성이다.  어쩐지 점점 실천 쪽에 자신이 없어지려는데 그 때 발견한 문장.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제철에 재배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중략)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도 겨울 농작물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여름에 재배되는 식품은 몸을 식혀준다.  이처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서 건강하게 키운 식품을 먹는 것이 오염된 환경 속에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고 환경도 보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p.14)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우리 땅에서 난 제철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그만이다.  단, 농약과 화학비료를 안 쓰거나 적게 쓴 친환경 유기농산물이어야 한다.  왜?  껍질과 뿌리까지 다 섭취해야 하니까.  게다가 '음양오행의 변화를 담은 자연요리'에서 '마크로비오틱 제철식품 달력'을 표로 제시해주는데 계절, 에너지, 곡물, 채소, 콩, 해조류, 과일로 구분되어 있어서 정리가 일목요연하다. 복사해서 냉장고에 하나 턱 붙여두면 좋을 것 같다.     
 




  
  
  
  
  
  
  
  
  
아까 말했듯이 'NO~'로 쓰지 않는 재료들이 있는데 문제는 그것들이 우리의 식생활에서 거의 필수적인 재료로 자리매김을 했다는 것이다.  얼마전 mbc스페셜의  "목숨 걸고 편식하다" 편을 시청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고기와 우유, 달걀, 단 것을 끊고 현미채식을 하라는 게 요지였다.  우연하게도 'NO'를 외치는 품목이 일치한다.  그 네 가지를 안 먹고 산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데 이 책에는 대체식품을 제시한다.  채식주의자의 경우 고기의 대용으로 견과류를 추천한다.  정 고기가 먹고 싶으면 글루텐을 이용한 밀고기를 만들어 먹거나 아니면 콩고기를 먹으라고 권장하는데 마크로비오틱에서는 고기의 대체식품으로 수수를 뽑았다.  그렇다고 수수를 가지고 고기 비슷한 식감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없다.  그냥 '색이나 식감이 고기와 비슷해서 다진 고기 대신 사용해도 좋다"는 것 뿐.  그 외에도 달걀과 우유 대체품으로는 두부를, 설탕의 대체품으로는 조청과 메이플 시럽을 뽑았다.  그런데 '메이플 시럽'은 신토불이와 어긋나는 것 아닌가?  아이들에게 팬케이크를 해줄 때 메이플 시럽을 조금 뿌려주곤 하는데, 내가 구입했던 것은 모두 수입품이었는데....   
 




 
 
 
 
 
 
 
 
 
재료손질법은 되도록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마크로비오틱의 일물전체 원리에 따라 식품이 가진 에너지가 골고루 들어가도록 손질하는 게 요령이다.  그래서 우엉을 연필처럼 깎는다거나 브로컬리의 굵다란 줄기부분을 버리지 않고 얇게 저며서 볶음이나 무침에 이용한다거나 하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파뿌리는 원래 씨앗이었던 부분으로 생명력이 강하니까 버리지 말고 꼭 먹으란다.  재료의 손질법 뿐 아니라 각 재료의 영양과 인체에 미치는 작용을 서너줄 정도로 써넣은 꼼꼼함이 돋보인다.   
 
이 책의 특징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라는 거다.  오리엔테이션 수준의 마크로비오틱의 원리와 재료손질법, 조리도구들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요리에 들어가서도 그 특징에는 변함이 없다.  예를 들어 '베지버그'쪽을 살펴보면 (언제나 고기가 문제다), 왼쪽 페이지에 완성된 요리 사진이 있고, 그 상단에 요리제목과 재료가 적혀있다.  오른 쪽 페이지엔 왼쪽 구석에 '마크로비오틱 어드바이스'라고 요리에 사용된 재료의  영양소, 대신 쓸 수 있는 재료 등등이 설명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레서피와 쿠킹팁이 짧게 실렸다. 오히려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저자의 글인데 그 요리에 관련된 기억들, 그동안 요리를 업으로 삼으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글만 따로 모아도 한 편의 얇은 수필집을 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을 보는 사람들에게 '마크로비오틱'을 좀 더 잘 알려주고 싶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마크로비오틱'을 실천하자면 음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춰야 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실제로 마크로비오틱의 세세한 이론을 너무 고집하면 음식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롭게 가려먹게 된다.  유기농 식품이 아니어서 먹을 수 없다거나 설탕이 들어가니까 싫다는 등.... 게다가 대중적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낮추어 보는 등 배타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는 물론 음식 선택의 폭도 좁아져 '생명을 담은 크다'의 개념인 '마크로비오틱'이 아니라 '생명을 담은 좁은'이라는 '마이크로비오틱'이 된다.  마크로비오틱의 진정한 의미는 '강요하지 말자!'이다.  어느 곳에 가든 어떤 음식이 나오든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에 따라 먹거리를 선택하고 즐기는 것이다."  

먹는 것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나다.  자칫 '마크로비오틱'이라든가 '채식'같은 원칙에 목줄을 매인 양 질질 끌려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먹을 수 있지만 난 안 먹을래!'와 '먹고 싶지만 먹으면 안돼...'와는 천지차이가 아닐까.  식생활 개선의 성공은 주도권을 쥐느냐 원칙에 매이느냐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뒷부분에 '마크로비오틱 가정식단 원리'와 '마크로비오틱 4일 가정식단'이 들어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하게 차려먹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는 지난 걸까?  저 간소한 상차림 안에서 따스한 햇볕, 시원한 바람, 맑은 물, 향긋한 흙내음이 골고루 들어 있을 것만 같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떠오른다.  조금씩 가까워져야 할 것 같다.  저런 상차림이 자연스러운 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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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2-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서평을 쓰려고 시도하다가 번번히 못 쓰겠어서 미루고 있는 중인데 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네요.^^

섬사이 2009-12-05 20:36   좋아요 0 | URL
참 좋은 요리법이긴 한데, 실천에 자신이 없더라구요.
오늘도 중학생 아들녀석의 고기타령에 못 이겨
돼지모듬구이 사다가 구워 먹었거든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