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 - 나를 이루는 원자들의 세계
댄 레빗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오랜만에 과학 교양 서적이란다. 댄 레빗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 쓴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라는 책이란다. 크게 기대를 안 했는데,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지은이가 스토리텔링을 잘 구성하여 이야기해 주고 과학 이론들을 어렵지 않게 잘 이야기해준 것 같구나. 지은이 댄 레빗이 어떤 사람인지 지은이 소개를 보니 25년 넘게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사람이라고 하더구나. 그래서 책의 구성을 잘 했나 보구나. 책 제목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눈치챌 수 있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은 엄청 많을 텐데 그 원자들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책이란다.

그렇다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은 어디서 왔을까? 칼 세이건은 우리 모두는 별의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했단다. 이 말이 무슨 소린가? 하다가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주 탄생 전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빅뱅과 함께 우주가 탄생하고 멀리 퍼져 나가 오늘날 우주가 된 것이잖니. 우리 몸도 우주의 한 부분이다 보니,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과 별을 이루는 물질이 다르지 않다고 칼 세이건은 이야기한 것이야. 자, 그렇다면 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의 시작은 어디부터 해야 할까. 그래, 바로 우주의 탄생인 빅뱅부터야. 1931년 9월 과학진흥협의 창립 100주년 행사에서 벨기에의 르메르트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우주가 원시 원자로부터 폭발해서 생겨났다고 발표했단다.

================

(19-20)

물리학자이면서 수학자이자 가톨릭 성직자이기도 한 르메트르는 강연장에서 당시의 물리학자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우주의 진화라는 주제로 강연을 할 예정이었다. 흰색 깃이 달린 검은 사제복을 입은 그는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듯이 연단에 올라 신학에 위험할 정도로 다가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우주 전체가 아주 작은 “원시 원자(primeval atom)”로부터 폭발하는 순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

르메트르가 이렇게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전부터 우주에 대한 관찰이 활발해졌기 때문이야. 르메트트는 1925년에는 먼 우주가 더 빨리 이동하고 있다는, 우주의 팽창을 발견했어. 자신이 발견한 것을 1927년 그 유명한 제5차 솔베이 물리학 회의에서 발표했단다. 제5차 솔베이 회의는 양자역학만 이슈가 되었는지 알았는데, 르메트르의 우주 팽창론도 솔베이 회의에서 발표를 했었구나. 르메트르의 우주 팽창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어. 그 때까지 우주가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거든. 르메트르는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나 우주 팽창론을 이야기했는데 아인슈타인은 그런 이론을 혐오한다고 했다는구나. 우주는 정적이어야 한다면서 말이야. 르메트르의 우주 팽창론을 누군가 조롱하듯 백뱅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나중에는 정식 용어가 된 것이라는 것은 유명한 일화란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에 가서야 우주의 팽창을 인정했다고 하는구나.

….

 

1.

이렇게 빅뱅과 시작한 우주는 원자와 소립자를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 책에는 그런 원자들과 소립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 그 이야기들을 너희들에게 다 해주면 좋겠지만, 아빠의 기억력과 이해력은 너희들에게 설명할 수준은 되지 않는단다. 우주와 별들의 정체를 밝혀가는 이야기 속에 많은 과학자들과 과학계의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이야기해준단다. 과소평가되고 멸시된 여성 과학자들의 성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주었어. 그 중에 세실리아 페인에 대해 책에 적힌 내용을 소개해 줄게.

================

(67-68)

페인의 발견은 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별이 대체로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구자들은 별이 어떤 연료를 태우느냐는 또 하나의 오래된 수수께끼도 풀 수 있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압력이 높은 별의 내부에서는 양성자가 1개인 수소 원자가 융합해서 양성자가 2개인 헬륨이 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태양이 열과 빛을 내는 방법이다. 페인 덕분에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해를 근거를 결국 더 무거운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신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답은 별의 내부에 있었다.

================

….

이 광활한 우주에서 태양계와 지구로 범위를 좁혀 보자꾸나. 우리 몸은 태양계가 만들어지고 지구가 만들어진 다음 만들어졌을 테니까… 1950년대 말, 러시아의 사프로노프라는 사람은 행성의 발생원리를 밝혀냈다고 해. 그리고 1960~70년대에는 지구의 초창기의 물질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었다는구나. 하지만 지구의 역사가 45억년이니까, 지구의 초창기의 물질이라도 하면 약 35억년 이전의 물질이라고 하는데 그 물질을 얻을 수 없어서 진전이 없다가 인류가 달에 다녀오고 나서야 달의 암석으로 연구를 했다는구나. 달은 소행성들이 지구와 부딪혀 지구의 일부가 떨어져나가 생긴 것이니, 풍화를 겪지 않은 달의 암석은 곧 초기 지구의 물질이니 말이야.

…

지구가 생겨났다. 아직도 우리 몸까지 오려면 많은 여정이 많아 있단다. 지구에서 어떻게 물이 생겨났을까? 초기 지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이 있었는데, 그 많은 물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얼음을 가득 품고 있는 혜성과 충돌 때문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는데, 1986년 지구 근처로 온 헬리혜성의 성분을 조사해 보니, 혜성의 물의 성분과 지구의 물 성분이 많이 달랐다고 하더구나. 얼음 덩어리의 소행성들과 충돌에 의해 지구에 물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라고 하더구나. 그 오래 전 지구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거니?

…

어찌 어찌하여 지구에 물까지 생겼다고 하자. 그러면 생명을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은 생명의 탄생에 대한 연구를 했어. 1918년 러시아의 생화학자 알렉산드로 오파린은 무기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논문과 이를 바탕으로 <생명의 기원>라는 책을 썼대. 그가 그렇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과 무기물로 이루어진 우주의 원소들이 비슷하기 때문이었어.

================

(136)

우리 몸에 있는 지방과 탄수화물은 오로지 탄소, 수소, 산소로 만들어진 분자 사슬이다. 단백질은 탄소, 수소, 산소, 질소, 황으로 만들어지고 DNA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인으로 만들어진다. 그 6종의 원소는 우리 몸에 있는 모든 것의 거의 99퍼센트를 차지한다. 몸무게가 150파운드(68킬로그램)인 사람의 몸에는 산소 94파운드, 탄소 35파운드, 수소 15파운드, 질소 4파운드, 인 거의 2파운드, 그리고 황 0.5파운드가 있다.

그 종의 원소는 또한 우연히도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들이다.

================

…

1951년 시카고대학교의 스탠리 밀러는 오파린의 이론을 직접 실험해 보려고 했어. 원시 지구의 원소들인 메테인, 암모니아, 수소, 수증기 등에 불꽃과 번개를 고압 전기로 시뮬레이션해서 유기물을 만들어내려고 했어. 그렇게 해서 스탠리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리신을 생성하는데 성공했단다. 그는 계속해서 시험해서 유기 분자들을 추가적으로 만들어냈단다. 하지만 유기 분자로만으로는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었어. 그는 계속 실험해서 DNA와 RNA의 기본 단위인 유클레오타이드를 만들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10년을 해도 진척 사항이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또 절망적이게도 스탠리 밀러가 실험에 사용했던 메테인, 암모니아, 수소 등의 기체들이 초기 지구의 대기에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는구나.

그렇다면 이 유기물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우주의 분자들을 연구해 보니 수많은 유기 분자들이 있었다는구나. 그런 분자들 중에는 DNA와 RNA 기본 단위 분자인 유클레오타이드도 있었대. 이런 것으로 보아 지구의 유기분자는 소행성과 충돌하면서 지구로 온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구나. 물도 그렇고 소행성이 없었으면 어쩔 뻔 했니…

…

 

2.

자, 이제 유기분자가 지구에 온 것까지 알아 보았어. 그 다음에는 생명의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준단다. RNA가 어떻게 생명을 촉발했는지 말이야. 그런데 연구를 하다 보니 도저히 초기 지구 환경에서 생명 탄생이 어렵다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 화성에서 처음 생명이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하는 이들도 있다는데, 아직 주장에만 그치고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초기 지구나 초기 화성이나…

…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 우리가 먹은 것들은 식물성도 있고 동물성도 있는데, 동물성들도 결국 먹이연쇄를 따라가 보면 식물들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니 우리 몸의 구성을 알기 위해서는 식물들의 구성을 알아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광합성에 대해 알아봐야겠구나. 잉엔하우스라는 사람이 광합성을 처음 발견했대. 식물이 햇빛을 받을 때 녹색 잎에서 산소를 방출하고, 어두울 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것을 처음 밝혀냈다고 하는구나. 그 이후 케이멘과 루빈이라는 사람들이 광학성의 원리에 대해 연구를 했대. 식물의 질량은 어디서 오는지 연구를 했대.

당시 식물의 질량은 흙에서 온다고 생각했는데, 케이벤과 루빈의 연구를 통해 식물의 질량은 공기에서 얻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대. 그들은 광합성 연구를 한참 하던 시기에 미국이 진주만 공습을 받고 그들은 화학무기 개발에 투입되었다고 하는구나. 루빈은 화학무기 실험 중 실수로 시약병이 깨져서 죽고 말았다고 하니 안타깝구나. 케이멘은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간첩으로 의심받고 쫓겨나고 말았대. 과학자들에게도 수난의 시대로구나. 케이멘과 루빈이 하던 광합성 연구는 멜빈 캘빈과 앤드루 벤슨이라는 사람이 이어서 했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당으로 변화하고 이것이 우리 몸을 만들고 우리 몸에서 열을 내는데 사용된다는 것을 밝혀냈다는구나. 그런데 멜빈 캘빈과 앤드루 벤슨은 결별하게 되고, 나중에 캘빈만 노벨상을 탔다고 하는구나.

….

그렇다면 처음 광합성을 하는 생물체는 어떤 것이었을까? 30억년 전 남세균이라는 원핵생물이 있었는데 남세균은 광합성으로 산소를 배출하고 증식도 엄청 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남세균 때문에 바닷속에 산소 농도가 급증하고, 바닷속에 녹아 있는 철이 다 녹슬어서 퇴적되어 지층에 녹슨 철로 된 층이 있다고 하더구나. 철이 다 녹슬고 나서는 바닷속 산소가 더 이상 녹지 못하고 대기로 배출하게 되었대. 이 때부터 산소가 대기에 배출되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산소가 너무 많아지면 독성을 띠기 때문에 단세포 미생물들이 산소의 독으로 많이 죽었대. 남세균이 지구 표면을 지배하고 이것이 빙하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구나. 그리고 미토콘드리아로 이루어진 세포가 등장하면서 생명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구나.

================

(256)

광합성은 2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구를 오로지 단세포 유기체만 서식하는 대륙과 바다를 가진 세계에서 온갖 종류의 활기찬 생명체로 가득한 녹색의 행성으로 변환시켰다. 광합성이 가져다준 변화의 규모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세균이 배출하는 독성 산소가 지구를 녹슬게 하고, 남세균의 경쟁자를 죽이거나 쫓아냈다. 남세균은 널리 퍼졌고, 엄청난 양의 로켓 연료인 산소를 대기 중에 배출했다. 갑자기 미토콘드리아로 가득 채워진 새로운 고성능의 세포가 등장했다. 그런 세포는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었고, 더 많은 유전자와 단백질을 만들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생명은 폭발적으로 복잡해졌다. 그런 세포 중 일부는 광합성 공장인 엽록체의 도움으로 산소의 농도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후에는 바다에서 사나운 포식자와 눈부신 생태계가 등장했고, 광합성 식물이 대륙을 녹색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

…

녹색 식물의 출현까지 이야기해준 지은이는, 이제 녹색식물이 어떻게 우리 인간까지 왔는지 이야기를 해준단다. 이 부분부터는 예전에 읽은 <경계>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했단다.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진화를 거듭해 가는 이야기… 약 5억년 전 단세포 조류가 이끼로 진화를 했는데, 이것은 생명체의 육지에서의 첫 도전이었단다. 하지만 토양이 부족하고 성장에 필요한 미네랄도 부족했어. 이것을 해결한 것이 곰팡이였다는구나. 곰팡이는 암석 속 미네랄을 채취하여 이끼에게 전달했대. 하지만 여전히 질소가 부족했는데, 이것을 해결해준 것은 박테리아였대. 박테리아는 공기 중에 있는 질소 분자(N)를 암모니아 형태로 바꾸고 이를 뿌리에서 흡수했다는구나. 이런 사실을 1886년 헬리겔 빌파르트가 발견하여 농업계 혁명을 이루었다는구나. 1908년 독일 프리츠 하버라는 사람은 암모니아 비료공장을 만들어 농산물 증식을 이루어 기아를 없애는데 큰 공을 세웠단다. 프리츠 하버는 벵하민 라바투트의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책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낸 사람이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염소 가스를 개발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고 했잖니.

…

수억 년 전 곰팡이와 박테리아의 도움으로 이끼는 크게 번성하게 된단다. 그리고 진화를 통해 줄기, 잎, 뿌리가 생기면서 지구의 육지 여기저기 퍼져 나간단다. 동물들을 구성하는 원자와 식물들이 구성하는 원자가 비슷한 것으로 보아 동물들도 결국 식물에서 진화해 왔을 거야.

…

그리고 동물들의 진화가 결국 인간까지 이어졌겠지. 이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데 아빠의 메모도 부실하고 기억력도 좋지 않아 건너뛰어야겠구나. 우리 몸을 온전한 몸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을 섭취해야 하고, 그렇게 섭취한 것들을 어떻게 세포로 만들어 우리 몸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내용도 나온단다. 그 핵심은 DNA인데 그 DNA에 대한 발견과 구조를 알아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와 경쟁과 배신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단다. 그리고 우리 몸을 이룬 세포들은 어떻게 계속 유지를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와 늙고 죽게 되는 원리를 끝으로 책은 마무리가 된단다.

================

(392)

세포가 지나치게 손상되어 더 이상 복구할 수 없게 되면 어떨까? 그런 경우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 있다. 세포 전체를 파괴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조작으로 잘게 쪼개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포를 만든다. 평균적으로 우리는 10년마다 세포를 교체한다. 하루에 3,300억 개의 세포를 갈아치우는 셈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세포가 더 자주 교체된다. 강한 산(酸)에 노출되는 내장의 세포는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서 계획적인 자살을 통해 이틀에서 나흘마다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긁히거나 자외선에 노출되는 피부 세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체된다. 혈류를 따라 돌아다니는 적혈구는 120일마다 교체된다. 매초마다 거의 350만 개의 적혈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뼈와 같은 곳에 있는 다른 세포는 10년에 한 번 정도로 그 빈도가 낮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역사를 아는 것은 전 우주의 역사와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 등 모든 과학을 총괄하는 그런 여정인 것 같구나. 그것을 너희들에게 아빠가 이야기해주려고 했으니 아빠의 욕심이 너무 과했구나.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한번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구나. 그리고 오늘 이야기해 준 것은 아빠가 책을 읽으면서 적은 메모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서,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감안하길 바란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이 책은 할아버지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쓴 것이다.

책의 끝 문장: 원자의 여정을 되짚어보는 것은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일이다.

 


일반 언론은 그의 이론을 좋아했다. <모던 메커닉스>는 "하나의 원자가 폭발하면서 우리 우주의 모든 태양과 행성이 등장했다"고 경탄했다. 그러나 물리학자에게는 그런 아이디어가 그저 터무니없고,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캐나다의 존 플라스켓은 그런 주장을 "어떤 근거도 없이 겆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추론의 사례"라고 비판했다. 르메트르의 옛 스승인 에딩턴도 그것을 "혐오스럽다"고 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그에게도 르메트르의 주장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존재했던 우주를 믿고 싶어했다. - P27

지금까지 과학의 역사에서 우리가 관찰을 통해서 알아낸 모든 사실에 따르면, 우리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물질은 빈 공간 이외에 전자, 쿼크, 글루온이라는 단 세 가지 기본적인 입자로만 이루어져 있다. 질량이 없는 힘 입자인 글루온은 쿼크들을 서로 달라붙게 해서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도록 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30,000,000,000,000,000,000,000,000,000(30옥틸리언)개의 전자와 더 많은 수의 쿼크, 그리고 쿼크들을 서로 달라붙도록 해주는 수많은 글루온의 집합이다. - P58

대체로 철로 되어 있는 우리 행성 중심부는 바깥 부분이 녹아 있었기 때문에 자전하는 지구와 함께 회전한다. 그 속에서 흐르는 전류가 지구 주위에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자기장을 만든다. 대기권 바깥까지 확장되는 거대한 힘 장이 강한 에너지를 가진 우주선(cosmic ray)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그런 힘 장이 없었다면 우리의 DNA는 작은 조작으로 부서졌을 것이다. 지구 자기장은 지구의 대기를 잘라내서 우주로 날려보낼 수 있는 또다른 위험 요소인 태양에서 오는 (주로 전자와 양성자로 구성된) 태양풍도 막아준다. 화성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크기가 너무 작은 화성의 자기장은 태양풍 입자의 충돌을 막아줄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그래서 화성의 대기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갔다." 지구의 초기에 융용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자기 보호막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재앙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 P90

무엇보다도 물은 루이의 분자가 서로 만나고 뒤섞이는 우리 몸속의 바다에 해당하는 매질(媒質)이다. 역설적으로 그런 일은 물이 심한 약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 분자 사이의 결합은 아주 쉽게 끊어진다. 물 분자는 2개의 너그러운 수소 원자가 1개의 산소 원자에 불평등하게 결합해서 만들어진다. 더 무거운 산소는 가진 것을 너그럽게 나누지 않는다. 산소는 각각의 수소와 공유하는 전자를 자신에게 좀더 가까이 끌어당겨서 산소 쪽에는 약간의 음전하가 생기고, 수소 쪽에는 약간의 양전하가 생기게 만든다. 이웃한 음전하가 생기고, 수소 쪽에는 약간의 양전하가 생기게 만든다. 이웃한 분자의 산소와 수소 원자들이 가진 전하에서 내타나는 작은 차이가 수소결합이라고 부르는 약한 연합을 만들어서 액체의 물 분자가 서로 달라붙게 해준다. - P107

완전히 성장한 후에도 지친 몸은 쉴 수 없다. 우리의 DNA는 여전히 끊임없이 움직인다(그리고 DNA의 양은 대단히 많다. 수조 개의 세포에 들어 있는 모든 DNA 가닥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태양계 지름의 두 배에 달한다). 그중 일부는 유전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풀어진다. 지금도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서는 수천 개의 유전자에 해당하는 RNA 복사본이 만들어지고 있다. 달리기를 하거나, 역기를 들거나, 음식을 먹거나, 병에 걸리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마다 새로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 P3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루공가의 치부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1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에밀 졸라의 <루공가의 치부>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루공가의 치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 시리즈 중에 하나로, 아빠가 만나는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는 이번에 세 번째란다. <루공 마카르 총서>는 모두 20권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출간하지 않은 책들도 여러 권이고, 출판사도 이곳 저곳에서 출판해서 시리즈를 모으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구나. 아빠도 그 중에 한 사람이란다. 아쉬운 대로 현재 출간된 책들을 하나하나 찾아 읽어보려고 한단다.

오늘 이야기할 <루공가의 치부>는 에밀 졸라가 1871년에 출간한 책으로 <루공 마카르 총서>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작품이란다. 이 책은 원제는 <La Fortune Des Rougon> 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군데 출판사에서 출판을 했는데 다른 제목을 달고 출간했더구나. 을유문화사는 <루공가의 치부>, 도서출판 길은 <루공가의 행운>으로 출간했어. 두 책이 같은 책이니 책을 사려는 사람들은 주의를 해야겠구나. 그 중에 아빠는 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서 출간된 책으로 읽었단다. 제목에 있는 ‘치부’는 보통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부분을 이야기할 때 쓰는 말로 알고 있는데 아빠가 프랑스어를 모르지만 Fortune은 영어랑 비슷해서 그 뜻을 유추할 수 있겠구나. 그래서 ‘치부’의 뜻을 좀 찾아보니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됨’이라는 뜻이 있더구나. 이 뜻으로 쓰인 것이구나. 그러니까 루공가가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대작을 여는 이야기를 해줄게.

 

1.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는 주요 시대적 배경이 1800년대이기 때문에 당시 격변하는 프랑스의 시대상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작품들이란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의 역사와 사회상을 많이 알고 있으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텐데, 아빠가 그 점이 취약하다는 점은 이해해주길 바래.

…

이야기가 시작되는 플라상 지역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 있고 가운데 도로를 공유하고 있었단다. 신시가지에는 주로 부자들이 많이 살았고, 구시가지에는 주로 서민들이 많이 살았어. 피에르 푸크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농부이고,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에게는 1768년생 아델라이드라는 외동딸이 있었어. 이 사람은 잘 기억하자. 아델라이드가 열여덟 살 때 아버지가 미쳐서 죽고 아델라이드는 혼자가 되었어.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을 받게 된 아델라이드는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 주변 사람들의 관심사였단다. 그런데 아델라이드는 루공이라는 가난한 머슴과 결혼을 했단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렸어. 사실 아델라이드도 미친 아버지의 유전자를 받아서 그런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었나 봐.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사람들부터 미쳤다는 소리도 듣곤 했어. 아무튼 루공과 결혼한 아델라이드는 아들 피에르 루공을 낳았어. 그런데 얼마 후 남편이 일사병으로 죽고 과부가 되었단다.

그로부터 1년 뒤 아델라이드는 또 이상한 남자와 사귀게 되었어. 남들이 다 거지, 불한당이라고 부르는 마카르라는 남자야. 그들은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 앙투안과 딸 위르쉴을 낳았어. 이 책은 <루공 마카르 총서>의 시작이라고 했잖니. <루공 마카르 총서>는 루공이라는 집안과 마카르라는 두 집안의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서 다 나온 것 같구나. 아델라이드의 남편인 루공.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 피에르 루공. 남편이 죽고 만난 애인 마카르. 그 사이에서 낳은 앙투안 마카르과 위르쉴 마카르. 이들이 <루공 마카르 총서>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

아델라이드는 아이들을 낳고도 정신줄을 놓은 듯한 생활을 했단다. 아이들은 돌보지 않고, 재산도 관리하지 않았어. 남자친구 마카르도 다시 떠돌아다녔어. 그렇다 보니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도 성품이 좋지 않게 자랐단다. 어느덧 앙투안은 열여섯 살이 되었어. 앙투안은 악동에 술주정뱅이가 되었단다. 위르쉴도 변덕 심하고 신경질적이었어. 한편 앙투안과 위르쉴의 아버지 마카르는 국경지역에서 떠돌다가 국경수비대에게 총을 받고 죽었단다. 그리고 아델라이드와 루공 사이의 아들 피에르 루공은 마카르 남매보다는 좀더 이성적이었어. 하지만 피에르도 교활하고 얍삽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어. 피에르는 엄마 아델라이드의 재산을 독차지할 궁리를 하고 있었어.

앙투안은 군에 끌려가고 위르쉴은 제조공 무레와 결혼하여 모두 집을 떠났어. 그들이 떠난 집에 피에르는 늘 정신이 혼미해 있는 엄마 아델라이드와 함께 지냈어. 이 때 피에르는 재산의 명의를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어 사생아들의 상속권도 자신에게 이전을 했단다. 피에르는 펠리시테 퓌에쉬라는 여자와 결혼하여 3남2녀의 아이를 낳았어. 펠리시테는 돈 욕심, 재산 욕심이 많은 사람이자 기회주의자였어. 피에르가 기름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가게보다 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고 재산도 잘 모이지 않았단다. 그래서 펠리시테는 아들들에게 투자하기로 하고 그들을 공부시키는데 몰두했어. 피에르와 펠리시테의 아들이 셋이라고 했잖아. 첫째 으젠은 정치적 야망이 커서 자라서는 주로 파리에서 지냈단다. 변호사 일을 했지만 실력이 좋지 않았고, 고향인 플라상에 자주 오고 갔단다. 둘째 파스칼은 파리에서 의대를 졸업했으나 엄마의 바램과 달리 돈에 그리 관심이 없었어. 고향 플라상에 돌아와서 생리학에 대한 공부만 열심이었단다. 셋째 아리스티드는 재물 투기에 관심이 많았어. 딸도 둘이 있다고 했는데 일단 이름만 알아두자. 시도니, 마르트.

…

프랑스에서는 1848년 2월 혁명이 있었어. 2월 혁명은 1830년부터 이어진 7월 왕정 시대를 무너뜨리고 제2공화국을 수립하고 모든 성인 남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사건이었단다. 그런데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았는데, 공화정과 관련 없어 보이는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대통령이 되었단다. 이렇듯 선거는 가끔 인기투표와 같은 결과를 낳기도 한단다. 그렇게 되자 루이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보수파와 공화파의 갈등이 생겼어. 피에르와 펠리시테는 보수파였어. 그들은 보수파들의 정기적인 모임을 자신들의 집 거실에서 가졌어. 그러면서 인맥을 넓혀가고 피에르는 징세관이 될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 펠리세페의 아들들 중에는 파스칼은 의사라고 했잖아. 그래서 돈을 벌게 하려고 자신들의 집에서 열리는 보수파들의 사교 모임에 오라고 했는데, 파스칼은 마지못해 몇 번 왔지만 파스칼은 정치에 관심 없고 의학 공부에만 관심이 있었단다.

…

1851년 보수파와 공화파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어. 플라상 지역은 보수파(반동파, 왕당파) 세력이 차지하고 있었어. 피에르의 첫아들 으젠은 파리에서 왕당파와 관계를 맺고 파리의 정보들을 아버지에게 편지로 알려주었어. 1851년 12월, 대통령이었던 루이 나폴레옹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붕괴시키고 자신의 임기를 10년으로 바꾸었단다. 이 친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루이 나폴레옹은 다음해인 1952년 황제에 즉위하게 된단다. 이렇게 되자 그 쿠데타에 반대하는 저항군들이 들고 일어났고, 플라상에서도 저항군들이 진군을 하기 시작했어. 피에프의 거실에 있던 사람들도 그 소식을 듣고, 소문에는 한 시간 뒤에 저항군이 그곳에 도착한다고 했어. 그 소문을 들은 피에르의 거실에 있던 보수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몇 명 남지 않았어. 피에르는 자신의 할머니 아델라이드의 집에 가서 숨어 있었어.

…

 

2.

앙투안 마카르의 이야기 좀 해야겠구나. 앙투안 마카르가 군대에서 돌아오고,  자신의 상속을 피에르가 가져갔다는 것을 알고 격분하며 그를 찾아갔지만 문서 상에는 그들의 어머니 아델라이드가 피에르에게 처분한 것으로 되어 있었어. 앙투안은 이후 돈만 생기면 술을 먹고 형을 욕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다 알게 되었어. 피에르와 펠리시테는 고심 끝에 그를 만나 100프랑을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앙투안은 만 프랑을 요구하다가 천 프랑으로 내려 요구했어. 결국은 펠리시테가 앙투안을 잘 설득하여 돈 200프랑과 살 집을 구해준다는 조건으로 협의했단다. 앙투안은 현금으로 받은 200프랑을 술 먹고 노는데 다 써버리고 다시 형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했지만, 이제는 형의 평판이 좋아져서 더 요구해도 받지 못했어. 어쩔 수 없이 앙투안은 광주리 만드는 일을 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핀이라는 여자와 결혼했지만 틈나면 서로 싸우는 등 사이가 안 좋았어.

앙투안과 핀은 1827년 첫째 딸 리자를 낳는 것을 시작하여 둘째 딸 제르베르, 셋째 아들 장을 낳았단다. 둘째 딸 제르베르는 다리가 휜 장애를 가졌는데, 너희들도 기억날 지 모르겠지만, <목로주점>의 주인공이란다. 셋째 아들 장은 <패주>의 주인공이란다. 이렇듯 <루공 마카르 총서>의 등장 인물들은 여러 소설에 겹쳐 있어서 그들의 가계도를 그려보면서 읽는 것도 재미가 있단다. 앙투안은 폭군 같은 가정폭력범이었어.  아내 핀, 둘째 제르베르, 셋째 장이 벌어온 돈을 모두 자기가 가져가 써버렸단다. 앙투안이 그런 망나니 짓을 하고 돌아다니다 보니 피에르와 펠리시테의 눈에도 거슬렸어. 아버지가 다르긴 하지만 동생은 동생인데 그렇게 망나니짓을 하면 자신들의 평판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거든.

…

그런데 앙투안의 여동생 위르쉴의 이야기도 좀 해야겠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위르쉴은 무레라는 사람과 결혼했다고 했잖아. 안타깝게도 위르쉴은1839년에 죽었고, 남편 무레는 아내가 죽고 난 후 상심하여 1년 뒤에 자살했대. 그들에게는 아이들이 셋 있었어. 딸 엘렌은 열여덟 살이었고, 첫째 아들 프랑수아는 스물세 살, 그리고 어린 막내 실베르는 여섯 살이었어. 피에르는 프랑수아를 자신의 딸 마르트와 결혼을 시켰단다. 그리고 어린 실베르는 할머니 아델라이드가 데려가 키웠어. 하지만 아델라이드는 여전히 가끔씩 발작도 하고 나이도 일흔다섯 살이나 되었어. 그래도 할머니라고 실베르를 잘 키우려고 노력했단다.

실베르가 12살이 되고 나서는 실베르가 발작하는 아델라이드를 보살펴주었단다. 실베르는 생각이 깊은 아이였어. 실베르는 좀더 커서 목수가 되었단다. 실베르는 학교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책읽기를 좋아해서 틈틈이 책을 읽었단다. 앙투안은 여전히 피에르와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앙투안은 실베르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피에르 부부를 대적하는데 이용하려고 했어. 형 피에르가 보수파이니까 앙투안은 당연히 공화파였고, 앙투안은 실베르도 공화파로 합류시켰단다. 그래서 앙투안은 실베르에게 피에르 부부의 온갖 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단다. 그런데 실베르는 앙투안 삼촌에게 왜 일하지 않냐면서 일하시라고 이야기했어. 그런 와중에 앙투안의 아내 핀이 1850년 갑작스럽게 폐렴으로 죽었어. 어머니가 죽고 나서 제르베르와 장은 아버지 몰래 집을 떠났단다. 돈을 빼앗아가는 폭군 같은 아버지와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집을 떠난 것이란다.

…

1851년 수천 명의 저항군들이 플라상에 진군해 온다고 했어. 실베르는 그 저항군에 합류하기로 했단다. 당시 17살인 실베르는 13살 미에트와 비밀 연애를 하는 사이였어. 실베르는 저항군에 합류하기 전, 마지막으로 둘은 묘지에서 밤에 만나 비밀 데이트를 했단다. 미에트는 상트그레유의 딸인데 상트그레유는 사람을 죽이고 감옥이 투옥 중이란다. 하지만 상트그레유의 살인은 정당방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어. 실베르와 미에트는 언제 또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은 평상시보다 더 멀리 비요른 강까지 갔다가 수천 명의 저항군을 만났어. 실베르는 반가운 마음에 그들에게 갔고, 행진 속에는 아는 사람들도 있었어. 미에트도 실베르를 따라 그곳에 가니 자신도 합류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생겼어. 우연히 미에트는 저항군의 깃발을 들었는데, 저항군들은 환호를 질렀고 마치 자유의 여신을 보듯 미에트를 바라보았단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속 깃발을 든 여인 같았을 거야. 그렇게 미에트도 저항군에 합류하게 되었어.

…

미에트의 이야기를 좀 해줄게. 미에트의 엄마는 미에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 상트그레유와 지냈는데 상트그레유는 헌병과 시비가 붙었다가 헌병을 죽이게 되었는데 상트그레유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어. 기요틴은 면했지만 감옥에 가야 했단다. 아홉 살인 미에트는 고아가 되었는데 고모가 보살펴주었지만, 미에트가 열한 살 때 고모가 돌아가셨어. 고모부가 있었지만 고모가 돌아가신 후에 고모부는 미에트를 머슴 부리듯 했어. 농사일을 가혹하게 시켰어. 고종 사촌인 쥐스탱도 성격이 못되어 미에트를 모욕 주고 괴롭혔단다. 머슴처럼 일하다가 미에트는 우연히 실베르를 만나고 아침마다 우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키워갔단다. 이후 2년 동안 비밀 데이트를 하다가 함께 저항군에 합류하게 된 거야.

…

저항군이 플라상에 온 다음날 기병대가 와서 저항군과 전투를 벌였어. 오합지졸 저항군은 기병대에 상대가 도지 않았어. 깃발을 흔들던 미에트는 그만 총에 맞고 죽고 실베르는 포로로 잡혀갔단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지만, 그 이후에도 공화정과 왕정이 번갈아 가면서 이어졌는데 그 동안 국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단다. 실베르와 미에트도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름다운 사랑을 했을 텐데, 그들의 사랑은 혁명의 한 가운데에 꽃도 피지 못하고 꺾이고 말았단다. 혼자 남은 실베르는 또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3.

다시 피에르의 이야기를 해보자. 저항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 아델라이드의 집에 숨었던 피에르는 기병대를 비롯한 우군이 오면서 피에르는 자신과 같은 보수파 사람들과 함께 무장을 하고 공화파가 점령하고 있는 시장실을 습격했단다. 대비를 하지 못했던 공화파들은 보수파의 습격에 힘도 못쓰고 제압 당했단다. 그곳에 앙투안도 있었는데, 피에르는 앙투안을 시장실 욕실에 일단 가두었어. 앙투안은 자신을 풀어주지 않으면 피에르의 약점을 재판에서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어.

피에르는 시장실을 점력하고 집으로 돌아와 펠리시테와 함께 다음 계획을 논의했단다. 함께 시장실을 점령한 보수파에 의해 피에르는 플라상 임시 시장을 제안 받았어. 임시 시의회도 열렸는데 그곳에서 피에르와 보수파들은 시장실을 점령한 것에 대해 부풀려 영웅담처럼 이야기했어. 그래서 마흔한 명이 삼천 명을 제압했다고 소문이 퍼졌어. 임시 시장이 된 피에르는 임시 시의회를 열었어. 그런데 얼마 후 파리에서 친위쿠데타가 실패하고 공화파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어.

피에르에게는 큰 위기가 닥친 거야. 피에르와 펠리시테는 현 상황에 대해 의논했단다. 그들은 왕당파에 도박을 걸 듯 재산들의 돈으로 무기를 샀고, 보수파의 모임을 주선하느라고 빚까지 써서 이대로 끝나면 파산하게 될 거야. 어떤 이가 말하길, 피에르가 시청을 공격했을 때 당시 시청에는 몇 명 없었고 총으로 한 것은 거울을 깬 것이 전부라며 그를 조롱하는 듯한 이야기를 퍼뜨려서 피에르의 위신도 많이 떨어져 있었어. 이래저래 피에르에게는 위기였어. 펠리시테는 앙투안을 이용하기로 했어. 앙투안은 이틀간 시장실에 있는 화장실에 갇혀 있었어. 앙투안은 앙투안 나름대로 자신의 동료들인 공화파에 실망을 하고 있었어. 공화파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형 피에르와 화해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바깥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 때 형수 펠리시테가 찾아왔어. 펠리시테는 앙투안에게 제안을 했어. 1000프랑을 주면서 도망가게 해 줄 테니 다음날 저항군들을 데리고 와서 시청에 와서 시청을 접수하라고 했어. 앙투안은 펠리시테가 시키는 일이 궁금했지만, 돈에 눈이 먼 앙투안으로 그렇게 하겠다면서 선금 200프랑을 받고 도망갔어. 피에르는 자신은 시청을 끝까지 사수하고 플라상을 지키겠다며 사람들에게 큰 소리쳤어. 이것도 펠리시테의 작전의 하나인 것 같구나. 그 작전이 성공하여 일부 사람들은 피에르를 영웅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저항군이 쳐들어오면 그는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다음날 앙투안은 공화파 저항군을 데리고 시청에 왔어. 매복하고 있던 국민군들은 앙투안 일당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어. 이 공격으로 저항군 세 명이 사망하고 국민군도 한 명이 사망했어. 하지만 이 전투로 피에르는 작전대로 큰 것을 얻었어. 사람들은 피에르를 무시하지 못하게 되었고, 진정한 영웅으로 생각하게 되었어. 플라상 사람들은 피에르가 플라상을 지켜냈다고 추켜세웠어. 이 일로 나중에 피에로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어. 피에르와 펠리시테의 작전 성공.

…

일을 마치고 피에르는 엄마 아델라이드의 집에 오니, 그곳에는 아들 파스칼과 앙투안이 있었어. 아들 파스칼도 사실 저항군에 있으면서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있었단다. 앙투안은 그제서야 형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뒤늦게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이 적다고 투덜거렸단다. 하지만 앙투안은 이제 배신자의 신세였어. 피에르는 앙투안에게 나머지 800 프랑을 주고 얼른 프랑스 밖으로 도망가라고 했어.

…

피에르는 시의장이 되었어.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불만인 이들도 있었어. 함께 시청을 사수한 사람들 중에는 피에르 혼자 훈장을 받았다고 불만인 이들도 있었어.

한편, 포로가 된 실베르의 운명도 오래가지 못했단다. 실베르에게 공격 받아 애꾸눈이 된 헌병 랑가드가 실베르에게 복수한다면서 실베르를 데리고 가서 총살시켰어. 그렇게 착한 실베르는 죽고 말았단다.

…

<루공 마카르 총서>의 시작을 알리는 <루공가의 치부>는 대충 이렇게 마무리되었단다.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등장 인물도 많이 나오고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당시 프랑스 역사와 사회상을 아빠가 잘 몰라서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것인지 잘 모르겠구나. <루공 마카르 총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출간되지 않은 작품들이 꽤 있어서 순서대로 읽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일단 아빠가 사놓은 <루공 마카르 총서>들부터 하나씩 읽어봐야겠구나. 그리고 우리나라 출판사는 각성해서 얼른 <루공 마카르 총서>의 미번역본들을 번역출간하길 바란다.

지금까지 읽은 <루고 마카르 총서>는 고작 세 작품이지만 기록에 남겨 본다.

1부 : 루공가의 행운, 7부 : 목로주점, 19부 : 패주

…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한 집안, 즉 한 작은 집단이, 한 사회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열 명이나 스무 명의 개인을 탄생시키면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설명해 보고자 한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저 멀리, 생미트르 공터 깊숙이에서 묘비 위에 흥건히 쏟아진 피가 엉기며 굳어 가고 있었다.



플라상은 약 만 명 정도가 사는 군청 소재지이다. 비요른강이 내려다보이는 고원에 세워지고, 북쪽으로는 알프스산맥의 최종 갈래에 속하는 가리그 언덕을 등지고 있는, 이 시는 마치 막다른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모습이다. 1851년에 주변 지역과는 도로 두 개로만 연결되었다. 동쪽으로 내려가는 니스로와 서쪽으로 올라가는 리옹로(路)가 있고, 두 도로는 거의 평행적 위치에서 이어진다. 그 시절, 시의 남쪽을 지나가는 철도가, 예전 강둑의 가파른 경사인 언덕 아래 놓였다. 지금은, 작은 개울 오른쪽에 있는, 역에서 나와 고개를 들면, 정원이 테라스처럼 형성된, 플라상의 첫 번째 집들이 보인다. 그 집들에 도달하려면 족히 1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 P59

그 당시, 루공 부부는 충족되지 않는 자만심과 욕망이라는 이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들의 얼마 안 되는 행복한 감정은 쓰디쓰게 변했다. 그들은 스스로 불운의 희생자들로 자처했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고, 만족하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며 더욱 맹렬하고 더욱 단호한 마음이었다. 실상 그들은 고령에도, 자신들의 희망 가운데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펠리시테는 막연히 자신은 부자로 죽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는 강변했다. 그러나 비참한 나날은 그들에게는 참기 힘들었다. - P111

성공해서, 자신의 가족 모두 큰 자산을 가진다는 생각은 펠리시테의 편집증이 되었다. 파스칼은 그녀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노락 거실의 밤 모임에 몇 번 들렀다. 그는 거기에서 걱정했던 것보다 덜 무료했다. 처음에, 그는 건장한 남자들이 그렇게까지 어리석어질 수 있다는 데 아연실색했다. 은퇴한 기름과 아몬드 상인들, 후작과 사령관까지, 그에게는 그때까지 연구해 본 적이 없었던 기묘한 동물들 같았다. 그는 자연주의 과학자다운 성찰로, 그 사람들의 관심사와 욕망을 발견하게 되는, 찌푸린 얼굴 속에 고정된 그들의 가면을 관찰했다. 그는 야옹대는 고양이나 멍멍 짖고 있는 개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그들의 공허한 수다에 귀를 기울였다. 그 당시, 그는 비교 자연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동물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유전 방식에 대해 그가 해 왔던 관찰드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었다.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 위고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홍한별 님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라는 에세이란다. 이 책은 여러 평론가들과 리뷰어들이 추천하여 관심을 갖게 된 책이란다. 지은이 홍한별 님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전문 번역가셔. 그래서 아빠가 읽은 책 중에 홍한별 님이 번역한 책이 있는지 봤더니,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이라는 책을 비롯하려 세 권을 읽었더구나.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라는 책은 지은이가 번역가로서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을 적은 글들이었어. 책 제목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따온 제목이란다. <모비 딕>에서 이슈메일이 흰 고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분량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흰 색은 결국 다른 색을 칠하고 난 빈 여백이라고 했어. 지은이는 번역과 흰 고래와 비슷하다고 했어.

=================

(15)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흰 고래 같은 텍스트를 만났을 것이다. 잡히지 않는 공허. 포착할 수 없는 의미. 이쪽을 붙들면 저쪽을 놓치고, 저쪽을 잡으면 이쪽이 사라지는 단어를, 의미를 고정하는 순간 무수한 틈이 생겨버리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붓질을 더할수록 더럽혀지기만 하는 순백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번역은 얼마나 투명해져야 하는가?

=================

…

 

1.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번역을 처음 시작한 아주 오래 전부터 번역은 논란이 되는 경우들이 많았대. 성경 같이 중요한 책을 번역을 할 때는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고 하는구나. 성경의 잘못된 번역의 대표적인 것이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라고 하는구나. 원문에는 무화과로 되어 있는데 사과로 번역을 해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를 다들 사과로 알고 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성경을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위클리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죽은 후 30년이 지난 후 묘지에서 그의 시신을 꺼내어 화형을 시켰다고 하는구나. 감히 성경을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게 번역을 하다니, 그것은 교회의 권위를 도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

(53)

이에 반발하여 속어 번역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경 번역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므로 그 자체로 엄청나게 위험했다. 중세 말기에 존 위클리프(c.1328~1384)는 라틴어 불가타를 영어로 번역해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위클리프의 사상과 번역은 두 세기 뒤에 일어난 16세기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번역은 근세를 추동하는 동인이 되었다. 성경 번역이 종교개혁을,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격 번역은 종교개혁 시기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고 권력 투쟁의 핵이었다. 성경이 번역되자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번역 성경은 민족 언어와 문화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

…

아빠는 읽으면서 자연스럽고 어색하지 않게 읽히는 번역본을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했어. 원문을 직역해서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나쁜 번역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직역과 의역 논란이 있다는구나. 의역은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번역하는 것으로 번역자들의 개입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오히려 번역자의 개입이 많다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있대. 번역가들 중에 일부러 직역에 가깝게 하는 사람이 있대. 그렇게 해야 원문에 최대한 가깝다는 거야. 물론 그로 인해 번역투 문장에 읽기 어색한 문장들로 뭇매를 맞는 경우가 있단다. 한 때는 독자들을 위해 의역을 많이 했는데 최근에는 좀더 직역에 가깝게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는구나. 이렇듯 의역과 직역의 장단점이 있다 보니 의역을 하면 의역이 심하다고 비난 받고, 직역을 하면 번역투라고 비난 받는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

(71)

10여 년 전에는 직역이냐 의역이냐를 놓고 두 번역가가 ‘번역 배틀’이라는 형식으로 맞붙은 신나는 일이 있었다(번역이라는 단어 다음에 이렇게 흥미진진한 단어가 붙은 적이 유사 이래 또 있었던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기 마음대로 원문에 담긴 정보를 삭제하고 번역해서는 안 된다”(이덕하)는 주장과 “쉽게 읽히는 노씨의 번역에 대해서는 ‘주요 정보가 완곡한 표현으로 번역되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등의 비판이, 우리말로 부드럽게 옮겨지지 않은 이씨의 번역에는 ‘정보만 있을 뿐 정서가 없다’, ‘읽기 불편하다’ 등의 비판이 나왔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해묵은 논쟁을 종식할 줄 알았는데, 싱겁게도 무승부로 얼버무려버렸다.

=================

…

의역과 직역 논란을 읽으면서, 부커상을 수상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번역 논란이 있다는 생각이 났단다. 이 책에서도 당시 일었던 번역 논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어. 의역이 아닌 오역에 가깝다는 논란이었어.

=================

(145)

2016년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에 번역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최근에 구체적인 사례를 두고 이만큼 열띤 논쟁이 벌어진 일은 없었을 듯하다. 처음 수상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한국인들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라며 들떠서 축하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인터넷에 The Vegetarian의 오역 의심 사례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번역 작품을 원본과 비교해본 국내 번역가들은 다들 나처럼 아연했을 듯싶다. 데버라 스미스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번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번역가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그렇게 번역했다면 곧 오역 논쟁에 휩싸였을 것이고 영원히 출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

…

데버라 스미스의 번역 논란은 외국의 번역관과 국내의 번역관 차이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구나.

=================

(147-148)

서양의 번역 관행과 우리나라의 번역 관행이 크게 다르고 기준점도 다르니 충실성의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한국어로 쓰인 책을 번역 출간할 때는 출판사 편집부에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처럼 편집자가 원본과 번역본을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하고 비교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번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원문 충실성을 훨씬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번역 논쟁은 거의 언제나 원문을 기준으로 놓고 벌어지는 오역 논쟁이었고, 원문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거나 곡해한 번역이 어떤 이유로든 옹호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서양 번역 전통은 (여성 혐오적 표현이지만 한 번만 더 쓰자면) 충실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미녀(Les Bells infideles)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고 스미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그 기조가 이어진다. 스미스의 번역이 부정한(infidele)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이 충실할 생각이 없다는 번역관을 밝혔는데 윤리적 의무를 저버렸다느니 배신을 했다느니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서는 미녀(belle)인지 아닌지만 따지면 된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수행하는 번역 비평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

그리고 영미권에서 번역자의 이름을 책표지에 적지 않는 경우가 많대. 번역자의 이름을 적은 경우가 3%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는구나. 왜 그럴까?

…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에 없는 말들이 있는데, 그런 말들을 번역을 하다 보면 우리말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는구나. 없던 말들이 새로 생겨날 수도 있다는 거야. 그 중에 대표적인 말이 ‘그녀’란다. 아빠는 예전에 당연히 오래 전부터 ‘그녀’라는 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오덕 님의 책을 읽고 우리말의 3인칭은 ‘그’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녀는 ‘she’를 번역하려고 생긴 말로 그 이후에 우리말에도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것이래. 우리나라의 말에는 남녀 차별이 없었던 것이지. 아빠도 이오덕 님의 책을 읽은 이후에는 ‘그녀’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한단다. ‘그’라는 3인칭대명사도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고 고유명사(이름)을 주로 쓰려고 노력한단다. 서양에서도 요즘에는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서 부르는 3인칭 대명사 he/she를 구분해서 쓰지 않고 they를 3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구나.

=================

(173)

이런 부침을 겪은 ‘그녀’는 여전히 쓰이기는 하되, 굉장히 불균형하게 쓰인다. 언어학자 안소진은 신문, 잡지, 문학, 비문학, 구어 등으로 분류된 말뭉치에서 ‘그녀’의 출현 빈도를 조사해서, 텍스트의 종류에 따라 ‘그녀’가 나타나는 빈도가 크게 달라짐을 보였다. 문학 말뭉치와 순(純)구어 전사 자료에서 무려 298배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전체 ‘그녀’ 출현 건수 중에서 83퍼센트가 문학 말뭉치에서 나타났다. 반면 순구어에서는 사실상 ‘그녀’를 안 쓴다.

=================

=================

(174-175)

우리는 ‘그/그녀’를 유럽어에서 받아들여 쓰게 되었는데, 이제는 서양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대명사를 불편하게 여긴다. 자신이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명서 ‘he/she’ 대신 ‘they’를 삼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눈에 뜨인다. 경칭으로도 ‘Ms’나 ‘Mr’ 대신 ‘Mx’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학생을 임의로 ‘he/she’로 지칭하면 차별이 될 수 있어서 늘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한다.

=================

…

그밖에 여러 가지 번역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외국어에 능숙하지 못한 아빠 같은 사람들에게 번역가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란다. 그들이 없었다면 그 많은 좋은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했으니 말이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에는 직역이 경향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적당히 번역가의 창작이 들어간 의역이 나은 것 같구나. 아빠는 읽기 편해야 책에 더 집중할 수 있거든. 물론 원문의 의도를 벗어나면 안되겠지. 그건 의역이 아니고 오역이 될 테니 말이야. 지은이 홍한별님의 번역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도 읽기 번하게 잘 쓰시는 것 같더구나. 같은 외국 작품의 번역본이 여러 권이 있고, 그 중에 홍한별 님의 번역한 책이 있다면 그 책을 골라야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고등학교에 다닐 때 미술 선생님이 하얀 석고상을 그리라고 시킨 일이 있었다.

책의 끝 문장: 나도, 번역에 관한 글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 번역을 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자, 나보코프는 잡힐 듯 말 듯한 흰 고래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고, 해설해서, 결국 잡았나? 탑이 높아질수록, 가능한 한 많은 의미를 더할수록, 흰 고래는 점점 시커메지고, 번역이 실패했다는 증거는 쌓여간다. 주석의 탑은 번역 불가능성의 웅대한 증거다. 번역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 번역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다는 조바심이 탑을 이룬다. 이 탑은 무한의 영역으로 뻗는다. 번역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번역은 무한하다. - P33

번역가들은 왜 배신자일까? 신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지 못하게 언어를 흩어놓았는데도 갈라진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해서, 니므롯처럼 신의 뜻에 반한 배신자가 되었나? 서로 다른 언어 사이를 오갈 때는 손실이 불가피하므로 원저자든 독자든 누군가를 배신하게 없었느냐는 것이다. - P45

나도 번역이라는 일이 탐정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탐정소설 속 탐정의 목표는 범죄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이다. 탐정이 모든 정황과 맥락을 고려해 가장 그럴듯한 한 가지 서사를 완성하듯이, 번역가도 단어들의 단서를 모아 매끈한 하나의 문장, 빈틈없는 하나의 줄거리를 만든다. 번역가는 흩어진 의미의 조각들을 이렇게 맞추어보고 저렇게 맞추어 보며 도무지 옮겨지지 않는 것을 옮기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륵 퍼즐이 풀린다. 비어 있는 한 자리에 딱 맞는 단서/단어를 끼워 맞추자 이야기가 완결된다. 이렇게 문장을 완성할 때의 희열. 결국 번역을 하는 이유는 번역이 이런 일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찾아오는 완성의 감각. - P65

단테가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어를 발명했다는 말이 있다. 중세에는 문어와 구어가 분리되어 있어서, 고등교육, 과학, 철학, 신학 등의 학문과 공공 기록 등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라틴어가 쓰였다. 당시에 진지한 주제로 책을 쓸 때는 라틴어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속어로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 문화와 언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으로부터 이탈리아어의 표준이 생겼고 이탈리아어 문학이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아 민족문화와 국가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 - P90

나는 잘 읽히는 번역문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러운 논리로 글을 읽게 하려고 이쩌면 나에게 허럭된 것보다 더 많이 개입할 때가 있다. 마치 편집자가 된 것처럼 원문에 가위를 댈 때도 있다(있는 것을 잘라내거나 없는 것을 집어넣는다는 말은 아니다. 문장을 합하거나 나누거나 문장구조를 뒤틀거나 긍정과 부정을 뒤집을 때가 있다). 그런데 번역 원고를 다듬고 고치다가 피츠제럴드처럼 진부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 P134

또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나 다른 언어라서 좀 더 많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이 점에 있어서는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한 데버라 스미스와 내 생각이 일치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를 ‘많이’ 개입한 것으로 보느냐의 기준은 크게 달라서 같은 말을 해도 무척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올 때는 문장을 완전히 뒤집거나 구문을 재배치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지 않고 영어의 특유 표현(수동태, 물주(物主) 구문, 완료, 진행, 사역 등)을 그대로 옮기면 어색한 번역 투가 되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가기 십상이다. 영어와 한국어는 언어의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서 좀 더 적극적으로 번역해야 한다. - P158

번역가가 하는 일은 원본을 훼손하거나 손상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 있도록 생명을 주고 되살리는 일이다. 번역가는 "상상력과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요하는 연금술 같은 정교한 공정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복원"한다. 에코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점점 말라가다 소멸한 뒤에도 계속 나르키소스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다양하게 반향하며 울려 퍼지게 한다. 나르키소스는 침묵할지라도, 그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에코의 목소리를-빈 산에 울리는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 P2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29)

십자군전쟁은 종종 낭만적으로 묘사되듯이, 이교도로부터 성지를 탈환한다는 단순히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의도만은 아니었다. 이 유럽 최초의 기독교연합은 한편으로 홍해를 가로막는 봉쇄의 사실을 깨부수고자 했다. 유럽을 위해, 기독교 신앙을 위해 동양과의 무역의 길을 열어놓고자 하는 목적의 몸짓이었다. 그러나 이 충돌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들은 이집트를 이슬람교도들에게서 빼앗아오지도 못했으며 이슬람교도들은 여전히 인도로 가는 길을 막고 있었다. 인도로 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또 다른 길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싹튼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바로 바다였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바르롤로뮤 디아스와 바스코 다 가마가 남쪽으로, 그리고 카보트가 라브라도를 향해 북쪽으로 떠날 수 있었던 대담함은, 그 무엇보다도 서양을 위해 간세도 물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고 인도로 갈 수 있는 자유로운 항로를 발견해서 이슬람의 패권을 꺾어놓고 말겠다는 분명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31)

그러나 포르투갈 왕자 엔리크는 이렇듯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나섰다. 성경 말씀처럼 맨 마지막에 있던 자가 맨 앞에 설 수도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 그의 필생의 과제가 되었다. 지리학의 교황이라는 프톨레메우스가 잘못 알고 있었다면? 때때로 기묘하고 낯선 나무들이 거대한 파도에 실려 해안으로 밀려오는 것으로 보아 만일 대서양이 어딘가에서 끝나 미지의 나라들로 이어지고 있다면? 그리고 회귀선 저편의 아프리카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면? 아직은 탐구되지 않은 이 대륙을 따라 주항할 수도, 인도양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던 그리스 학자의 주장이 허풍이었다면?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포르투갈은 서쪽으로 가장 멀리 나가 있으므로 모든 것을 발견하는 진정한 도약판이 될 테고, 인도에 이르는 가장 가까운 항로를 가진 셈이다. 대양 때문에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항해를 위해 태어난 나라가 될 것이다. 작고 힘없는 포르투갈을 항해의 일인자로 부상시키고, 지금껏 폐쇄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대서양을 항로를 바꾸고야 말겠다는 커다란 소망은 엔리크 황태자를 일생동안 사로잡았다.


(69)

그는 이미 배가 벨렘에 입항할 때부터 놀라기 시작하였다. 바스코 다 가마가 출항할 때 그를 축복해주던 낡고 나지막한 교회 대신 이제 인도의 향료 덕분에 부강해진 조국의 첫 번째 징표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하고 화려한 대사원이 완성되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변화가 느껴졌다. 예전엔 통행도 뜸했던 강에는 이제 돛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고, 강변의 조선소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더 장대한 함선들을 만들어내느라고 일꾼들이 부지런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항구에는 깃발은 깃발끼리, 돛대는 돛대끼리 자국선이건 외국선이건 간에 빽빽하게 모여 있었고, 정박소와 물품창고는 터질 것만 같았다. 새로 쌓아올린 웅장한 왕궁들 사이로 뻗은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북적대고 있었다. 해외상관과 환금창구, 중개업소에는 갖가지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인도를 약탈한 덕분에 리스본은 이제 1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소도시에서 세계적인 도시요, 사치와 향락의 도시가 된 것이었다.


(72)

탐험의 시대는 거대한 배은망덕의 시대였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위해서 전세계를 정벌해나간 저들 정복자들이 국왕에게 받은 대가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콜럼버스는 사슬에 묶인 채로 세비야에 돌아왔고, 코르테츠는 왕의 총애를 잃어버렸고, 피자로는 살해되었으며, 남태평양을 발견한 누녜즈 데 발보아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포르투갈의 투사이자 시인인 카모엔은 비열한 시골 관리들에 의해 누명을 쓰고 동지인 위대한 세르반테스처럼 몇 달, 몇 해를 오물통 같은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카디스와 세비야의 골목길엔 귀향 선원들과 병사들이 불구가 되어 피폐해진 모습으로 열병에 시달리면서 거지떼처럼 헤매고 있었다.


(115)

더 이상은 마젤란도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위해 바랄 것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좀더 경이롭고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아직 어린 칼 5세는 말하자면 소극적이고 결단력이 부족한 성격이었는데, 성격과는 달리 이 원정대의 항해에 있어서는 열정적인 후원에 나섰다. 마젤란이 가졌던 남자다운 확고한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이 원정의 대담한 때문인지, 무엇인가가 이 젊은 군주에게 특별한 열정을 불러일으켰음이 분명했다. 매주마다 진척사항에 대해 보고하도록 하는 등 누구보다도 그 스스로가 가장 장비와 항해 준비에 열심이었다. 때문에 일에 장애가 생길 때면 마젤란은 국왕에게 알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왕의 서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평소에는 의지가 박약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 이 황제는 그의 긴 통치기간 동안 거의 유일하게 굳건한 신의를 지키며 이 위대한 이념을 실천해나갔다.


(118)

마젤란은 탐험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에서 그 어느 것도, 그것이 가장 하찮은 것일지라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 자기에게 생명을 내맡긴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세세한 사항까지 점검하였다. 또 그런 태도로 카사 데 라 콘트라타 시온과 관리들, 상인들, 납품업자, 일꾼들과 끈질기게 협상을 하였다. 영수증도 재검토되었고, 배의 밧줄 하나, 판자 하나, 무기 하나까지 직접 조사하였다. 돛대 꼭대기에서부터 선미에 이르기까지 다섯 척의 배를 모두 자기 몸처럼 자세히 꿰뚫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젤란은 함대를 정비해나가면서, 동시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들의 출항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시기와 적대심에 대항해야만 했다. 한 사람이 세 개의 진영과 맞붙은 장렬한 싸움이었다.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에 대한 싸움이었고, 물질적으로 엄청난 차원의 사업에 가해지는 압력에 대한 싸움이었다. 이 모든 저항들은 어떻게 극복해나가는가가 바로 관건이었다.


(148)

1519년 9월 20일 화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세계사적으로 기억되어야 할 날이었다. 닻이 올려지고, 돛이 펄럭이고, 대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육지는 점점 멀어져 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용감하고, 가장 원대한 탐험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220-221)

1520년 11월 22일, 그의 명령에 따라 배는 정어리강의 항만을 떠났고, 며칠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하였다(앞으로 마젤란 해협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해협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젤란은 캅 데세아도(열망의 곶)라고 명명한 곶 뒤쪽으로 유럽의 배가 아직 항행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바다가 끝없이 넘실대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서쪽 수평선 뒤로 보물의 섬인 향료군도가 놓여 있을 것이었다. 그 뒤로는 동양의 제국들, 중국, 일본과 인도가 있을 것이고 계속해서 가다 보면 고향인 스페인과 유럽대륙이 나타날 것이다. 지구가 개벽한 이래 그 누구도 통과해보지 못한 대양으로 돌진하기에 앞서 한 번 더,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했다. 1520년 11월 28일, 닻을 올리고 깃발이 올려졌다. 축포를 쏘아올리면서 세 척의 작은 배는 마치 생사의 결투를 앞둔 투사가 위대한 적수에게 인사하듯 낯선 바다에 경의를 표했다.


(223)

그러나 마젤란은 철저히 허공 속으로 떠나고 있었다. 유럽의 항구와 집을 떠나온 것이 아니었고, 낯설고도 삭막한 파타고니아에서 출발해 온 것이다. 승무원들은 몇 달 간에 걸친 강행군으로 기진맥진이 되었다. 배고픔과 궁핍이 그들을 따라오는가 하면, 저기 앞에서 또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의복은 낡았고, 돛이란 돛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밧줄은 삭아버렸다. 벌써 몇 주일이나 사람이라고는 만나보지도 못했고, 술도, 여자도, 신선한 고기와 빵은 구경도 못하였다. 이런 망망대해에 버려져 있자니 적시에 고향으로 도주해버린 대담한 동료들이 내심 부럽기도 했으리라. 세 척의 배는 20일, 30일, 40, 50, 60일 동안 계속해서 나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도 육지는 나타나지도 않고, 육지가 가까워 온다는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또 일주일이 지나고, 또 한 주일, 또 한 주일, 그렇게 해서 1백 일이 지났다. 콜럼버스가 대양을 세 번 횡단한 시간이었다. 수천, 수만의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내며 마젤란의 함대는 그저 텅 빈 공간 속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235)

그리고 이 순간 마젤란은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자신의 업적이 완성되었음을 알았다. 그는 동쪽에서 출발하여 그가 12년 전에 도착한 바 있던 말라야 언어권의 한 변두리에 다다른 것이었다. 그토록 열망하는 향료의 섬에 도달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 섬을 찾게 되던,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곳을 찾던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업적의 본질은 향료의 섬이 아니라 누구든지 바다를 따라 계속 항해하면, 그것이 태양이 지는 쪽이든 뜨는 쪽이든 상관없이 자기가 출발했던 지점에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증명했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철학자들이 추측해 왔고, 꿈꾸어 왔던 일이 한 인간의 용기에 의해 믿을 수 있는 사실이 된 것이다. 진정으로 지구는 둥글었다. 한 인간이 지구를 둥글게 한바퀴 돌아온 것이다.


(258)

사령관이 누군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제는 주로 주로 그를 겨냥했다. 벌써 두 번이나 투구를 머리에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사령관은 몇 명 남지 않은 병사들과 함께 용감한 기사로서 더 이상 후퇴하려 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잘 지켰다. 이렇게 한 시간 이상을 대치해서 싸웠는데, 마침내 인디오 한 명이 사령관이 얼굴에 갈대로 만든 투창을 던졌다. 사령관은 노하여 이 공격자의 가슴을 창으로 찔렀다. 창이 찔려 죽은 사람의 몸에서 빠지지 않자 사령관은 이제 칼을 뽑으려 했지만 오른팔이 창에 찔려 마비가 되었기 때문에 절반 정도밖에 뽑지 못했다. 이를 보고 적군은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 중 하나가 단칼에 왼쪽 다리를 내리치자 사령관은 땅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인디오들은 모두 그에게 덮쳐 창이나 다른 무기들을 가지고 그의 몸을 마구 찔러댔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자 빛이요 위안이었던 지도자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283-284)

베르데 곶에서의 체류가 시간도 짧고, 위험하기도 했지만 씩씩한 기록자 피가페타는 마지막 순간에 그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식료품을 사려고 해변까지 갔다온 선원들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는데, 육지는 목요일이라는데 배에서 수요일이 틀림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거의 3년 동안 매일같이 일지를 적어온 파가페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그렇게 해서 한 주가 지나고, 1년이 지나도록 날짜를 계산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하루를 모르고 지나쳐버린 것일까. 그는 자기처럼 매일 선박일지를 쓰는 키잡이 알보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의 기록에도 아직 수요일이라는 것이었다.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루가 달력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베르데 곶에서 처음으로 관찰한 새롭고 중요한 이 현상은 전생애에 걸쳐 그를 흥분시키고 몰두하게 만들었다.


(286)

이제 하룻밤, 하루 낮, 이제 하룻밤만 지내면 된다. 단 하룻밤. 그리고 마침내(모두들 갑판으로 뛰쳐나가서 행복감에 전율하며 한 덩어리로 얼싸안았다) 산루카에서 바다와 만나는 구아달키비르 강이 육지 한가운데로 은띠처럼 반짝이며 흐르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3년 전 265명이 마젤란의 지휘 아래 다섯 척의 배를 타고 출발했던 것이다. 18명의 선원들은 비틀거리면서 배에서 내리자 간신히 무릎을 꿇고 이 딱딱하고도 고마운 고향의 흙에 입을 맞추었다. 1522년 9월 6일, 항해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업적이 마침내 그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297)

한 인간의 생의 비밀은 언제나 죽음의 순간에 가서 밝혀지는 법이다. 그의 이념이 승리로 채워지는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비로소 이 고독한 인간의 내적인 비극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언제나 과업의 짐만을 짊어질 뿐 마지막 성공을 기뻐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운명은 수백만의 무리들 속에서 이 어둡고, 말이 없고 스스로 벽을 쌓고 사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이승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과 자신의 목숨조차도 이념을 위해 절대적으로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부역으로 위해 불러냈고, 즐거움의 자리에는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날품팔이처럼 고마워하지도 않고 은혜를 내리지도 않은 채 이루어놓은 성과에서 쫓아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그가 이룬 명예를 거두어들였고, 다른 이들이 이윤을 챙겼고, 다른 이들이 축제를 벌였다. 그가 모든 면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엄격했던 것처럼 운명도 이 냉혹한 군인에게 대항하고 싶어 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온 힘을 다해 원했던 단 하나만이 그에게 허용되었다. 그것은 지구를 일주하는 항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향의 승리라는 보다 복된 부분은 그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단지 바라만 보고 만져보기만 할 뿐, 자신의 머리에 승리의 월계관을 올리려고 하자 운명은 그에게 ‘그만’이라고 말하며 간절히 내미는 손을 거부했다.


(301)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세속적인 이익이 어떤 업적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를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의식을 고양시키는 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젤란의 행위는 당시 모든 행위들을 능가한다. 그의 명성 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라면 다른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이념을 위해 수천, 수십만의 목숨을 희생시킨 것이 아니라, 단 하나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토록 영웅적인 자기희생으로 인해 미지의 세계와의 성스러운 전쟁을 위해 떠난 다섯 척의 보잘것없고, 힘없고, 외로운 배들의 찬란한 용기가 영원히 잊히지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려 했고, 함대의 마지막 배 한 척이 이를 완수했다는 점에서 마젤란 자신도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광주 아리랑 2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정찬주 님의 <광주 아리랑> 2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이 1980년 5월 14일부터 5월 21일까지라고 했는데, 5월 21일은 1권에서 2권으로 이어진다.

5월 21일.

이제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무기에 맞서 광주 시민군이 되었단다.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여고생 등은 부상 당한 사람들의 부족한 혈액을 위해 헌혈을 했단다. 피를 보관한 헌혈 용기가 부족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어. 계엄군의 총부리는 이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단다. 여고생인 박금희는 헌혈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도중 공수부대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말았단다.

종교계에서도 더 많은 종교인들이 시위대에 동참하기 시작했어. 불교에서는 진각 스님 등 많은 스님들이 동참했고, 특히 적십자사에서 시민군을 돕는 일을 했어. 공수부대는 적십자에도 총격을 하기 진각 스님 등 부상자들이 속출했단다. 시민군도 성과를 했는데 전남도청을 점령했단다.

….

5월 22일.

갑자기 전남대와 종합운동장에 주둔하고 있던 계엄군이 철수하기 시작했어. 시민들은 계엄군이 왜 철수했는지 이유는 몰랐지만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좋아했단다. 전남대학교 학생과장인 서명원은 계엄군들이 있던 대학교 시설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단다. 그리고 교내 이곳 저곳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병원으로 옮기는 듯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분주했단다. 전남대 교수였던 송기숙, 명노근은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나서 서울로 피신했었는데, 죄책감에 다시 광부로 돌아왔단다. 계엄군이 물러나고 시민대표수습위원회가 결성되어 계엄군과 협의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협의 내용 중에 시민군의 총기를 반납하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이것이 시민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단다. 계엄군을 어떻게 믿고 총기를 반납하냐는 의견이 많았어. 그래서 시민군 일부는 시민대표를 인정하지 않았어. 도청을 장악한 학생들은 별도 조직을 만들려고 했고, 명노근 교수에게 위원장을 부탁했어. 그렇게 임시학생수습위원회를 조직했단다.

도청에서 시민군들을 만났는데, 시민군들은 지금 할 것은 수습이 아니라 전투와 항쟁이라고 했어. 송기숙 교수는 그런 시민군을 향해 지도부가 필요하다고 시민군을 설득했단다. 그렇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임시학생수습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시민군들 중에는 그들에게 동참하지 않는 세력도 있었어. 시민군들은 특별히 조직을 만든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도청상황실장인 박남선이 리드를 하게 되었어. 시민군은 기동타격대를 결성하여 계엄군의 습격에 대비를 했어. 한편 수습위원회는 계엄군과 협의 항목 중 하나인 무기 회수를 해야 한다고 했어. 그렇게 회수된 무기와 계엄군에게 역류된 시민들과 교환하려고 했어.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시민군들은 뭔가 찜찜했어. 무기를 반납하고 나면 계엄군이 다시 쳐들어올 것 같았거든. 기동타격대로 활동하던 시민군들이 낙오한 공수부대원을 체포해서 데리고 왔어. 일부 시민들은 그를 죽이자고 했지만, 박남선은 포로를 죽이지 않는 법이라며 그를 감금하자고 했어. 나중에 시민군과 교환할 수도 있다고 시민군을 설득했단다. 그런데 이렇게 의로웠던 사람이 나중에 윤석열을 지지하게 되었으니, 배신도 그런 배신이 없을 것 같구나.

…

5월 23일.

시민수습위원회와 임시학생수습위원회가 별도로 활동하고 있었어. 조비오 신부와 명노근 교수는 회수한 총기를 들고 계엄군을 찾아가 협상을 벌였지만 원활하지는 않았다는구나. 무기 일부와 시민군들만 교환하고 끝났다고 했는데, 지나고 생각하면 이는 오판이었단다. 시민군들이 더 정확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어. 무기를 반납하고 나면 걸림돌이 사라진 계엄군이 다시 진격해 올 수 있었거든. 그렇게 당하고 계엄군과 그의 배후 전두환을 믿다니, 그들의 생각이 짧았던 것 같구나. 여전히 시민군들 사이에서는 무기회수에 찬반 논란이 이어졌어. 무기 회수를 결정한 시민군의 어떤 소대는 무기가 없어 더 이상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해체하기도 했단다.

그 동안 시민들이 많이 죽어서 시신을 모슬 관이 부족해서 화순으로 관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구남 마을에서 계엄군이 버스에 총격을 가해서 버스에 타고 있던 시민 아홉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단다. 이 소식을 들은 시민군이 구남 마을에 출격했다가 또 많은 사람들이 죽고 말았단다. 계엄군이 철수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폭력성과 무자비함은 철수하지 않았단다.

…

5월 24일.

무기회수 때문에 시민군들은 수습위원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어. 그리고 무기가 없어져서 불안하기도 했어. 앞서 몇 번 이야기한 것처럼 계엄군이 다시 쳐들어오면 방어할 수단이 없었던 거야. 수습위원회 내부에서도 무기 회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갈등을 빚기도 했어. 이것 때문에 시민들의 궐기대회까지 하면서 불만을 토로했단다.

=====================

(185)

이종기 변호사의 제안에 장세균 목사와 남재희 신부가 조비오 신부를 돕겠다고 나섰다. 김성용 신부는 시민수습위원들의 주고받는 말에 흥미를 잃었다. 광주시민을 살상한 계엄사의 사과 없이 무기만 갖다 바치면 수습이 될 것이라는 말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김성용 신부는 광주시민의 희생을 줄이겠다고 무기를 회수하러 나선 조비오 신부와는 생각이 달랐다. 일부 수습위원이 가해자인 계엄사 측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었다. 무기를 회수해 오면 연행자를 석방하겠다, 보복을 금지하겠다, 광주에 재진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바뀐 협상이었다. 김성용 신부는 수습위원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

특히 박효선은 무기 회수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계엄군에게 속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어.

=====================

(187-188)

“저는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극단 광대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동리소극장 대표인 박효선입니다. 비도 오고 있으니 저는 군더더기의 말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겄습니다. 계엄사 측은 무기를 회수해어 갖다 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시민수습위원들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엄사 측이 순진하고 순수헌 시민수습위원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기를 갖다 주는 것은 신군부 야욕을 도와주는 꼴입니다. 계엄사 측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이 무기로 철저하게 무장허고 있어야만 계엄군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광주항쟁의 불길이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항쟁은 세계 각국의 지지를 받을 것이고 신군부는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여 스스로 권력 찬탈의 야욕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

그런 와중에 계엄군이 다시 공격한다는 소문이 돌았어. 도청 안에서는 남아 있는 무기로 재무장을 했단다.

…

계엄군 사이에서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했어. 계엄군 안의 교도부대와 공수부대 사이에 서로 적인 줄 알고 오인사격으로 공수부대에 사상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이란다. 공수부대는 이 오인사격사건 때문에 화가 잔뜩 나 있는 상태고, 이에 대한 분풀이를 위해 시민들에게 총을 휘둘렀단다. 그래서 놀고 있던 중학생들과 초등학생들을 포함하여 송암동 주민들을 죽였단다. 그야말로 학살이었어.

…

1.

5월 25일.

조비오 신부는 광주 시내를 돌면서 시민군을 설득하여 수천여 종의 총기를 회수했단다. 조비오 신부는 이렇게 무기 회수만이 계엄군과 협상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야 더 이상 광주 시민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은 이해한단다. 시민군들이 무장하여 계엄군과 맞붙게 되면 희생자가 어마어마할 것 될 테니… 일단 계엄군을 믿어보고 평화적으로 이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무기 회수를 해서 평화적인 대화로 풀어보려고 해던 것이란다. 하지만 계엄군은 계엄군이고, 여전히 시민군들은 이 의견에 반대를 했단다. 무기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게 되자 계엄군과 협상은 흐지부지되었고, 이제 무기 회수 반대 세력의 입김이 더 세졌어. 그리고 무기 회수에 찬성했던 사람들 일부는 무기를 반납하고 도청을 떠나갔단다. 무기 회수 반대 세력을 중심으로 시민학생투쟁위원회를 결성해서 도청에서 무기로 재정비했단다.

….

5월 26일.

시민군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어. 계엄군의 장갑차와 탱크가 다시 도심에 나타났단다. 시민수습위원회는 계엄군 김기석 소장을 만나 항의를 했지만 김기석은 자신의 영향력 밖이라고 했어. 그래서 이번에는 계엄분소에 와 있던 신군부의 핵심 소준열 준장을 찾아가 항의를 했지만, 그도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한심한 답변만 했어. 그들은 명령에 따라 밤 12시에 진격할 것이라고 했어. 더 높은 곳에서 내려온 하달… 살인마 전두환의 명령이었나 보구나.

밤 12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김성용 신부는 서울로 가서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 도움을 청하기로 했어. 홍남순 변호사는 총리와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서울로 가려고 했으나 도중에 계엄군에게 잡혀 영창에 갇히고 말았어. 시민군도 계엄군들이 밤 12시에 진격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 소식을 듣고 겁을 먹은 시민들 일부는 집으로 돌아갔단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선택일 것 같구나. 누구도 그들을 탓할 수 없었어. 목숨을 내놓고 끝까지 싸우려는 이들만 남아서 도청과 YWCA에서 무장하고 계엄군에 결사항쟁하기로 했단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

5월 27일.

완전무장한 계엄군과 공수부대가 공격을 해봤는데, 시민군들이 저항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단다. 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일부는 항복을 했지만 항복한 이들도 무차별로 폭행 당해 부상을 입었단다. 그렇게 아름답지만 슬프고 아픈 시민군의 저항은 끝이 났단다.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광주 시민들은 1980년 5월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했단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2024년 12월 3일, 40여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다시 계엄령이 내려졌단다. 야밤에 독재자를 꿈꾼 돼지가 선포한 계엄령에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광주를 떠올렸을 거야. 그래서 그 밤에 시민들은 국회로 몰려가서 온 몸으로 탱크를 막아 섰단다. 그리고 계엄군으로 참여한 군인들도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소극적으로 대응해서 계엄을 실패할 수 있었단다. 이 모든 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학습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단다. 다시 한번 우리나라 국민 전체는 광주에 빚을 진 건 같더구나. 다시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예전부터 보고 싶었던 드라마 <오월의 청춘>을 보았단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약간 설정에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인 것 같더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여유가 생기면 한번 봐도 좋을 것 같구나.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창작물은 앞으로도 꾸준히 나와서 잊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광주 시위대는 담양, 목포, 해남까지 시위차를 타고 달려갔다.

책의 끝 문장: 끝내 총을 들지 못한 자신이 비겁하고 서럽고 수치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