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콜럼 토빈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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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몇달 전에 신간 코너에서 알게 되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은 콜럼 토빈의 <브루클린>이라는 소설을 이야기할게. 신간 코너에서 소개되어 얼마 안된 작품인줄 알았는데, 이 책은 2009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열린책들에서 2011년에 번역 출간된 이력이 있더구나. 오래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더구나. 책 제목이 브루클린이라서 미국 작가의 책인 줄 알았는데, 지은이 콜럼 토빈은 아일랜드 작가로써 이 소설 <브루클린>은 아일랜드 출신의 주인공이 뉴욕에 건너가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해준단다.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시점으로 전쟁의 여파로 유럽 곳곳이 생활난을 겪고 있었는데,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아일랜드로 마찬가지였단다. 주인공 아일리시의 가족은 아버지까지 일찍 돌아가셔서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단다. 오빠인 마틴, 팻, 잭은 모두 잉글랜드로 돈 벌러 가고, 아일랜드의 집에는 아일리시와 언니 로즈, 그리고 엄마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어. 언니 로즈가 번 돈과 가끔 오빠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어. 아일리시는 백수로 지내다가 미크 켈리의 제안으로 그의 가게에서 일요일에만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단다. 일주일에 한 번 일하는 것이니까 돈이 얼마 되지 않았어. 그들이 이렇게 어렵게 생활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전쟁이었단다. 이렇듯 전쟁은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고 다치게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오랫동안 어려움을 준단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까.

 

1.

어느 날, 아버지의 지인인 미국인 신부님 플러드가 방문하였는데, 아일리시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었어. 그런데 그 일자리라는 것이 미국 브루클린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어. 아일랜드에서 미국이 얼마나 먼 곳인데, 일자리 때문에 거기까지 가야 하나? 아일리시는 오랜 고민 끝에 가기로 했단다. 언니 로즈도 아일리시의 결정을 존중하고 아일리시가 미국에 갈 준비를 하는데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어. 아일리시는 배를 타고 아일랜드에서 리버풀에 도착했어. 리버풀에서는 오빠 잭의 도움으로 미국행을 준비했단다. 드디어 미국행 배를 타고 출발했단다.

미국까지는 일주일이나 걸린다고 했어. 처음 이렇게 큰 배를 일주일이나 타 본 아일리시는 뱃멀미가 그렇게 심한 줄 몰랐단다. 먹은 것을 다 토하고 고생을 하면서 힘들게 뉴욕에 도착을 했단다. 뉴욕에 도착해서는 플러드 신부님이 도와주어 키흐 부인의 집에서 하숙을 하고, 바르토치스 매장에서 일하게 되었어.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익숙하지 않고 서툴렀지만, 아일리시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적응해 나갔단다. 처음 도착해서 몇 주 동안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어. 그러다가 가족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나서 심한 향수병에 빠지게 되었어. 일상생활과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향수병이 왔어. 처음에는 향수병인지 몰랐는데, 아일리시의 증상을 보고 상사인 포티니 씨가 알아차렸고, 플러드 신부에게 부탁해서 아일리시의 향수병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주었어.

플러드 신부님이 이야기하기를, 바쁘게 지내다 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면서, 야간 대학에 등록하는데 도와주었단다. 그래서 이때부터 아일리시는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회계, 부기 관련하여 공부를 시작했단다. 미국에 건너와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어. 플러드 신부를 도와 행사를 준비하고 미국에 일하러 온 많은 아일랜드 사람들과 함께 소소하지만 파티를 열었단다.

…

새해가 되고 하숙집에서는 미스 키건이 나갔어. 하숙집 주인은 미스 키건이 쓰던 지하방을 아일리시에게 제안했단다. 미스 키건이 쓰던 방은 지하이긴 했지만 독립적이고 가장 넓은 방이었단다. 아일리시는 자신이 그렇게 좋은 방을 쓴다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하숙생들이 모두 거절한 방이더구나. 미스 키건이 나건 것도 변태남이 지하방으로 계속 쫓아왔기 때문이라고 했어. 당시 뉴욕은 예상치 못하고 비상식적인 일들도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구나.

….

시대가 흐르다 보니 사회에서도 이런저런 변화가 일어났어. 바르토치스 매장에도 유색인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어. 점원들은 유색인을 상대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사장은 아일리시에게 유색인을 담당하라고 했단다. 아일리시는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알겠다고 했단다.

…

아일리시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연 무도회에게 가게 되어 토니라는 청년을 만났어. 아일랜드 출신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토니는 이탈리아 출신이라고 했어. 토니는 배관공으로 일하고 있었어. 아일리시는 토니와 사귀게 되었단다. 토니는 아일리시와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아서 함께 브루클린 다저스를 응원하겠다고 이야기했어. 참고로 지금은 LA다저스지만 예전에는 연고지가 뉴욕 브루클린이었단다. 토니의 이런 발언이 아일리시는 무척 불편했단다. 자신은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었거든. 아일리시는 여전히 야간 대학에서도 공부도 하고 있는 상황이고 말이야. 그래서 토니와 헤어질 생각도 했지만, 그런 이유로 헤어지는 것도 이상했어. 아일리시는 결혼 이야기는 부담스러우니 하지 말라고 토니에게 솔직히 이야기했어.

 

2.

이제 향수병도 모두 치유되고 미국 생활도 잘 적응해 갈 즈음, 아일랜드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단다. 언니 로즈가 자다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이었어. 아일리시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단다. 미국에 있는 주변사람들이 아일리시를 위로해 주었지만 그녀의 뻥 뚫린 가슴을 채워줄 수 없었어. 얼마 후 오빠 잭의 편지가 도착했어. 언니 로즈가 죽고 난 이후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신다고 했어. 오빠는 아일리시가 돌아와서 엄마와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어. 아일리시는 토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토니는 아일리시가 아일랜드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걱정했단다. 그래서 혼인 신고를 하자고 아일리시를 설득했어. 아일리시는 결혼은 아직 성급하다고 생각했는데, 토니의 계속된 설득으로 결국 혼인 신고를 했단다.

….

그리고 아일리시는 아일랜드로 돌아왔어. 로즈 언니의 묘지를 찾아가고, 집에 와서는 엄마와 함께 로즈 언니의 유품을 정리했단다.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단다. 그런데 아일랜드에서 짐 패럴이라는 남자와 점점 가까워졌어. 문화적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아일리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질 않더구나. 로즈 언니가 죽고 엄마가 힘들어서 집에 왔다면, 엄마와 슬픔을 이겨내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니? 아일랜드 오기 직전에 미국에서 혼인신고까지 하고 온 사람이 다른 남자와 가까워지다니.... 가끔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애정 표현이 점점 깊어지더니 짐은 아일리시에게 약혼하자고 했어. 그런데도 아일리시는 자신은 이미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 했단다.

아일리시는 아일랜드에 남아 있으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타지 생활로 힘들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경제적으로 힘들긴 해도 심적으로 편안했으니 말이야. 엄마도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아일랜드에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어. 일단 좀더 아일랜드에 남아 있으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어. 그런데 세상은 좁다고 했던가… 어느날 미스 켈리가 호출해서 찾아가 보았어. 아일리시의 브루클린 하숙집 주인인 키호 부인이 미스 켈리의 친척이라고 했어. 그러면서 아일리시가 결혼한 소식을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를 했어. 토니와 단둘이 혼인신고를 했는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아무튼 미스 켈리는 결혼한 여자가 이곳에 와서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는 것을 은근히 질책을 했어. 아일리시는 창피하면서도 기분이 상했단다.

아일리시는 더 이상 애매한 상황을 만들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길로 뉴욕행 배를 예약했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자신이 결혼한 소식을 알리고 그래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어. 엄마는 예상외로 놀라지 않으셨어. 엄마에게는 딸의 행복과 딸의 결정이 먼저겠지. 아일리시는 짐에게 편지를 남겨두고 뉴욕행 배를 타려고 집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가 너무 고리타분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일리시가 고향에 와서 한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더구나.

….

이 소설은 아빠가 책을 펴기 전에 기대했던 것에 많이 미치지 못했던 소설이었단다. 사람은 분명 동물이지만,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살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구나. 그런데 자리를 옮겨 뿌리내리는 것이 쉽지 않고 또 적응하기도 쉽지 않고 말이야. 그리고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선택의 기로가 있을 텐데, 늘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거야. 이 소설의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은 과연 옳은 선택일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의 주인공 아일리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아일리시 레이시는 프라이어리가에 있는 집, 2층 거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러고는 눈을 감고 더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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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08-24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버지의 독서편지...유익하고 따스합니다~~

bookholic 2026-08-24 19:28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110-111)

설령 그 사진이 잿더미 속에서 재생되어 나온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증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사진을 발견했을 당시,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그 세 사람은 분명히 유라시아의 정보원에게 나라를 팔아먹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후로 두 번인가 세 번쯤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윈스턴으로서는 몇 번의 변화가 더 일어났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자백서는 본래의 사실이나 날짜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쳐 쓰이곤 하기 때문이었다. 과거는 이미 변조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조될 것이다. 그를 악몽처럼 괴롭히는 것은 ‘왜’ 그 같은 엄청난 사기 행위가 행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과거를 날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얻게 되는 이점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펜을 들고 글씨를 썼다.

“나는 ‘방법’은 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른다.

 

(216-217)

“이건 예외적인 경우야. 사람이 죽는 문제하고는 달라. 당신은 어제를 비롯한 과거가 깡그리 지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직 과거가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건 저 유리덩어리처럼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하는 물체일 뿐이야. 이미 우리는 혁명 당시와 그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 모든 기록은 폐기되거나 날조되었고, 책이란 책은 모두 다시 쓰였으며, 모든 그림도 다시 그려졌어. 또 모든 동상과 거리와 건물에는 새 이름이 붙었고, 역사적인 날짜마저 모두 새롭게 고쳐졌지. 물론 이런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행해지고 있어. 한마디로 역사는 정지해 버린 거야. 이젠 당이 항상 옳다고 하는 이 끝없는 현재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물론 나는 과거가 날조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나 자신이 날조 행위를 하면서도 내게는 이것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어. 일단 날조되고 나면 그 어떤 증거물도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 결국 유일한 증거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인데, 과연 사람들이 내 기억을 믿어 주기나 할까? 그런 장담할 수 없는 일이야.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나는 딱 한 번 그 사건 이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가졌던 적이 있었어.”

 

(263-264)

그러나 이 같은 식의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파괴다.)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20세기 초 몇몇 사상가들이 꿈꾸었던 농경 사회로의 회귀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그것은 거의 전 세계에 걸쳐 준본능(準本能)이 되다시피 한 기계화 경향과 맞지 않기로 하거니와 공업에서 낙후된 국자는 군사적으로 무력해질 뿐만 아니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공업 선진국가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82-283)

지배계급들은 언제나 자유사상에 어느 정도 물들어 있었고, 무슨 일이든 대충대충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데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중시한 나머지 백성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중세의 가톨릭교회마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관대한 편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과거의 어떤 정권이든 시민들을 끊임없이 감시할 힘이 없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전과 함께 기계 하나로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모든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다른 모든 통신망은 폐쇄시킨 채 정부 선전만 듣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고 의견 통일까지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287-288)

초기의 위태로웠던 시절에는 당이 세습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반대 세력을 무마시키는 작용을 했다. 소위 ‘특권 계급’이라는 것을 상대로 투쟁해 온 지난 시대의 사회주의자들은 세습적이 아닌 것은 영구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그들은 과두 체제가 영속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굳이 드러내 놓고 사실 그대로를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며, 세습적인 귀족 사회는 늘 단명했지만 가톨릭교회 같은 선임 체제는 수백,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과두 체제의 본질은 아버지에게 아들로 이어지는 부자 세습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남겨 놓은 세계관이나 생활양식 등을 산 사람이 고수하는 데 있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후계자를 지명할 수 있는 한 지배계급이다. 당은 그들의 혈통이 아니라 당 자체를 영속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계층적 구조를 언제나 동일하게 유지하는 한 누가 권력을 장악하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362)

윈스턴은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았다. 피로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열정에 들뜬 광적인 빛이 오브라이언의 얼굴에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한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수호할 수도 없거니와 진리와 접할 줄도 모른다.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강한 타인에 의해 통치되거나 체계적으로 기만당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당은 약자의 영원한 수호자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희생하며, 선을 구현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헌신적인 집단이다.

 

(366)

“우리는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도 지배할 수 있네. 실재란 머릿속에 있지. 자내도 차츰 알게 될 걸세. 우리가 못하는 건 없네.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도, 공중을 날 수도 있지. 그 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네. 원한다면 비눗방울처럼 이 마루 위를 둥둥 떠다닐 수도 있지. 당이 원하지 않으니까 안 하는 것뿐이네. 자연의 법칙에 대한 19세기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만 하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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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나무 아래의 죽음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3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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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어느덧 13권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을 이야기해줄게.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올해 안에 21권까지 마무리하려면 열심히 달려야겠구나. 이전 12권은 1141년 12월 1일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이번 13권 <장미나무 아래의 죽음>은 1142년 4월에 시작하여 본격적인 이야기는 1142년 6월부터란다. 공간적 배경이야 늘 그렇듯 슈롭셔 지역의 슈루즈베리 성 바오로 수도원이란다.

수도원의 인근 베스티어 집안의 주디스 펄이라는 20대 초반의 젊은 미망인이 있었어. 주디스는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였단다. 그리고 남편이 죽기 전에 살던 집과 땅을 주님께 기부해서 지금은 수도원이 그 집과 땅을 소유하고 있었어. 수도원에서는 주디스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자, 기부한 집의 정원에 있는 장미나무에서 피는 백장미를 일 년에 한번씩 보내달라고 했어. 그 내용은 집을 기부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었어. 수도원에서는 고마운 마음에 주디스의 부탁을 들어주었어. 성 위니프리드 축일이 되면 백장미 한 송이를 주디스에게 보내주었단다. 그 백장미를 전달하는 일은 엘루릭 수사가 하고 있는데 올해가 3년째란다.

엘루릭 수사는 세 살 때 수도원에 들어와 지금은 십대 후반의 청년이 된 수사로 지금은 제단관리를 담당하고 있었어. 주디스는 대미사가 있어 수도원에 와서 참석했다가 캐드펠 수사를 만나 연고를 받고, 고장난 허리띠를 수리하기 위해서 청동세공업자인 닐을 만나 허리띠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엘루릭 수사가 라둘푸스 수도원장을 찾아와 면담을 신청했단다. 주디스 펄에게 장미를 갖다 주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달라고 부탁했단다. 엘루릭 수사가 수사이기 전에 이제 막 청춘에 들어선 남자이잖니. 어쩌다 주디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서 괴롭다고 했어. 라둘푸스 원장은 이 일에 대해 엔젤름 수사와 캐드펠 수사와 의견을 나누었어. 자신이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면서 말이야. 그들은 주디스에게 장미를 전달하는 일은 수사가 아닌 닐에게 부탁하기로 했어. 닐은 펄이 기부한 집에 세들어 살고 있으니 닐이 장미를 전달하는 것이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어. 닐도 흔쾌히 동의했단다. 닐은 아내와 사별한 40대 초반의 홀아비로 어린 딸이 있었어. 어린 딸은 닐의 여동생 부부가 키워주고 있었단다. 닐도 속으로 주디스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 같았단다.

 

1.

주디스 펄은 이모 애거사와 이종사촌인 마일스와 함께 지내고 있었어. 마일스는 주디스보다 두 살 많았고 주디스의 사업체들을 관리하고 있었어. 주디스 펄은 미망인이 되고 난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구애를 받고 있었는데 모두 거절했어. 본인은 수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그래서 캐드펠 수사에게 매그덜린 수녀와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어. 매그덜린 수녀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여러 번 나온 사람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게. 매그덜린 수녀는 여자 캐드펠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 매그덜린 수녀는 주디스를 만나 이야기했는데 주디스가 수녀가 되는 것을 반대하며 주디스를 설득했단다.

…

닐은 가끔씩 딸을 만나기 위해 여동생의 집에 가는데 자고 올 때도 있었어. 그날도 여동생의 집에서 하룻밤 지내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원에 있는 장미 나무 아래 죽어 있는 시신을 발견했단다. 안타깝게도 엘루릭 수사였단다. 곧바로 수도원장님께 이야기를 드렸고, 수도원장은 캐드펠 수사와 엔젤름 수사한테 조사를 해보라고 했어. 캐드펠은 사건 현장에 가보았어. 엘루릭 수사가 죽은 것은 안타깝지만 범인을 잡아야 하니 캐드펠은 사건 현장을 조사했어.

누군가와 다툰 흔적이 있었고, 장미나무에 도끼 흔적이 있었어. 범인이 도끼로 장미나무를 베려고 했는데 그것을 우연히 엘루릭 수사가 보게 되어 막으려고 했고, 그래서 둘은 다투게 되었고 우발적으로 엘루릭 수사를 죽인 것 같았어. 그렇다면 범인은 그 이후에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도망가는 동선을 추측을 해보았어. 북쪽 담벼락에서 범인의 신발자국을 발견했단다. 신발자국이 확실하게 찍혀 있어서 캐드펠은 그 신발자국을 밀납으로 본을 떴단다. 그때 수선을 맡긴 허리띠를 찾으러 주디스가 와서 그들을 보았어. 그래서 주디스에게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주었어. 엘루릭 수사가 주디스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이야기도 했어. 주디스도 마음이 아팠겠구나.

…

며칠 후 주디스의 사촌인 마일스가 수도원에 찾아와 주디스가 실종되었다고 했어.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마일스가 이야기하는 내막은 이랬어. 엘루릭 수사가 죽은 사건은 자신이 장미를 받기 때문에 생긴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장미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계약서를 수정하려고 수도원으로 간다며 집을 나왔대. 그런데 그 이후 사라진 거야. 엘루릭 살인 사건과 주디스의 실종 사건은 서로 관련이 있어 보였어. 그렇다면 왜 장미 나무를 베고, 주디스를 납치하려고 했던 것일까? 목적이 무엇일까? 장미 나무를 베어 버리면 장미를 주디스에게 줄 수 없게 되고, 그렇다면 이것은 계약 위반이 되기 때문에 기부했던 집과 땅은 다시 주디스에게 돌아가게 되는 거야. 그리고 누군가 주디스와 결혼을 하게 되면 주디스의 더 많은 재산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정말 이런 걸 노렸던 것일까?

….

주디스의 실종 사건은 이제 시간을 다투는 사건이 되었어. 시간이 늘어지게 되면 주디스의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어. 캐드펠 수사는 휴 베링어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주디스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어. 주디스가 사라지고 나서 사촌 마일스는 엄청 걱정을 많이 했단다. 마일스도 다른 일 다 제쳐 두고 주디스를 찾는데 온 힘을 쏟았어. 과할 정도로 보였어. 가족이라서 찾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주디스의 실종은 마일스에게 위기가 될 수 있었어. 주디스가 결혼하게 되면 마일스가 관리하던 주디스의 사업체는 주디스의 남편의 손에 넘어가게 되니까 말이야. 마일스 입장에서는 재산을 빼앗기는 일이었어. 그래서 주디스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것 같더구나.

 

2.

주디스의 집과 수도원 사이에 있는 강가에서 주디스의 허리띠에 있던 장식품이 발견되었단다. 그리고 강의 하류에는 훔친 배가 발견되었어. 이제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구나. 주디스를 납치해서 배에 태우고 강의 하류로 내려가서 어딘가에 가둔 것으로 의심되었어. 그렇다면 용의자는 누구일까. 주디스 집에서 일하는 하녀 앨리슨의 아들이자 직공장인 버트레드라는 사람이 있었어. 버트레드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어. 그 사건이 있던 날 저녁 버트레드는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이야기했어.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디스를 감금한 것이 아닌, 누군가 주디스를 감금하는 것을 목격한 것 같은 이야기들을 했단다.

그날 밤 버트레드는 연장들을 들고 주디스가 갇혀 있던 창고로 갔어. 지붕에 올라가서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 창고에서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몰래 엿듣다가 미끌어져서 땅으로 떨어져 넘어졌어. 개가 짖고 문지기가 쫓아와서 버트레드는 도망가야 했단다. 강물까지 달려가서 강물로 점프해서 다이빙을 했는데, 하필 강물 아래 바로 바위가 있는 곳으로 다이빙을 한 거야. 바위에 부딪혀 기절을 하고 말았단다. 그런데 한참 뒤 누군가 자신을 안아주면서 조금씩 의식이 돌아왔어. 그 사람이 자신을 구해주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그를 강 한가운데로 끌고 나서 놓아버렸어. 아직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지 못한 베트레드는 그냥 그렇게 강에 빠져 죽고 말았단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렇게 베트레드가 창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을 때 창고 안에는 누가 있었을까? 창고 안에는 주디스와 주디스를 납치한 비비언 하인드라는 사람이 있었어. 비비언 하인드는 주디스에게 구애했던 사람의 한 사람이었어. 주디스를 납치한 것은 약간 우발적인 것 같았어. 주디스를 납치한 것을 후회하면서 주디스에게 용서를 구했어. 자신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주디스에게 도와달라고 했어. 주디스도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을 싫어했고 이런 상황이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소문이 나는 것도 싫다고 했어. 그러면서 한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아무도 모르게 고드릭 포드에 있는 베네딕토 수녀원에 계신 매그덜린 수녀원에게 데려가 달라고 했어. 그러면 자신은 납치당한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고 수녀원에서 며칠 있다가 돌아온 것으로 위장할 수 있다고 했어. 그들은 다음날 밤에 함께 베네딕토 수녀원에 가기로 했단다.

….

한편 다음날 날이 밝고 캐드펠 수사는 강가에서 버트레드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이마에 멍이 들고 익사한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그의 구두를 보니 많이 익숙해 보였어. 장미나무에서 범인의 신발을 본뜬 것과 같은 구두와 비슷해 보여서 둘을 맞춰 보니 똑같았어. 그렇다면 엘루릭 수사를 죽인 범인이 바로 베트레드인 것인가? 그런데 그는 왜 강에서 익사한 것일까? 캐드펠 수사는 버트레드의 엄마 앨리슨 부인에게 버트레드가 죽었다고 알렸어. 앨리슨 부인을 충격을 받았어. 그러면서 어제 버트레드가 했던 말들을 캐드펠 수사에게 이야기해주었어. 버트레드가 자신을 호강시켜주겠다고 했고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다음날 알려주겠다면서 나갔다는 거야. 버트레드의 익사 사건을 조사하다 보니, 비비언 하인드의 집의 문지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어젯밤에 비비언 하인드의 창고에 누군가 들어와서 자신과 개가 그 사람을 쫓다가 놓쳤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어. 보통 이맘때 양털 도둑들이 가끔씩 창고에 오기 때문에 이번에도 양털 도둑이라고 생각했대. 베트레드는 왜 그 창고에 갔던 것일까. 캐드펠은 그 창고에 가보았는데 그 창고에는 비밀의 방이 있었어.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었단다. 비비언 하인드의 집에 방문했더니 비비언의 어머니가 이야기하기를 비비언은 아침 일찍 아버지와 함께 양떼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고 했어.

….

그날 밤, 비비언과 주디스는 몰래 말을 타고 베네딕토 수녀원으로 향했어. 그런데 그걸 우연히 닐이 보았는데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주디스는 알아봤어. 주디스가 납치당한 것인 줄 알고 닐은 그들을 몰래 쫓아갔단다. 한참을 가던 그들 중 남자는 말 타고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갔고 주디스는 혼자 걸어가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주디스를 공격했단다. 닐은 바로 달려가 그 남자를 공격하여 싸움이 붙었고 그 남자는 도망을 가버렸단다. 닐도 부상을 입었어. 주디스는 닐을 알아보았어. 주디스는 그곳에 왜 닐이 있었는지 깜짝 놀랐는데 닐은 자신이 어떻게 주디스를 따라오게 되었는지 이야기했어.

주디스는 닐과 함께 베네딕토 수녀원에 갔단다. 주디스는 매그덜린 수녀를 만나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자신이 수녀원에 온 이야기도 이야기하면서 도와달라고 했어. 매그덜린 수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단다. 닐도 주디스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단다. 하룻밤을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지낸 주디스는 매그덜린 수녀와 함께 수도원에 도착했단다. 그날은 성 위니프리드 성녀 축일의 전날이었어.

다들 깜짝 놀랬어. 납치당한 줄만 알았던 주디스가 멀쩡히 나타났으니 말이야. 주디스와 매그덜린 수녀는 사전에 약속한 각본대로 이야기했어. 주디스는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며칠 머물고 있었는데 자신이 납치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래서 돌아온 것이라고 했어. 자신 때문에 걱정을 끼쳐드려서 미안하다고도 했단다. 매그덜린 수녀까지 함께 와서 그렇게 이야기하니 그 말을 안 믿을 수가 없었지.

…

주디스는 매그덜린 수녀에게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가시라고 했어. 매그덜린 수녀가 주디스의 집에 가는 길에 캐드펠 수사도 동행했단다. 캐드펠 수사는 버트레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주디스에게 이야기해주었어. 그리고 엘루릭 수사를 죽인 범인도 베트레드로 밝혀졌다고 했어. 주디스는 두 가지 모두 믿을 수 없다고 했어. 버트레드는 수영을 잘 해서 익사했을 리 없다고 했고, 평상시 버트레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죽일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 하지만 모두 팩트인 걸 어쩌겠니. 버트레드는 죽고 없으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야.

캐드펠은 주디스의 이 발언이 마음에 걸렸단다. 그래서 다시 수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주디스 일행이 집에 도착하니 이모 애거사와 사촌 마일스가 반갑게 맞이해주었어. 주디스와 매그덜린 수녀와 캐드펠 수사는 휴 베링어를 만났어. 휴 베링어가 이야기하기를 납치범 비비언을 성에 가두었다는 거야. 휴 베링어는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고 비비언을 납치범이라 확신하고 체포한 것이었어. 주디스는 그 동안 있었던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자신은 소문에 엮이고 싶지 않다면서 비비언을 용서해주었으니 풀어달라고 부탁했단다. 그리고 자신이 한 이야기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단다. 당사자가 용서를 해주어 풀어달라고 하니 휴 베링어도 비비언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단다.

…

앞서 이야기했듯이 주디스의 이야기를 듣고 캐드펠은 다시 수사를 하기 시작했어. 매그덜린 수녀에게 부탁해서 주디스의 집에 있는 구두들의 왼쪽 구두들을 몰래 빼달라고 했어. 캐드펠은 그 구두들과 버트레드가 신고 있었던 구두와 비교해 보았어. 그런데 구두의 닳은 모양이 이상했어. 버트레드가 신고 있던 구두와 매그덜린 수녀가 가지고 온 버트레드의 구두의 닮은 모양이 달랐어. 버트레드가 신고 있던 구두는 마일스의 구두와 닳은 모양이 똑같았어. 범인이 드디어 밝혀지는구나.

왜 마일스는 장미나무를 베려고 했을까. 장미나무를 베면 장미를 주디스에게 못 주게 되니 계약 위반이고 기부했던 주디스의 집과 땅은 다시 주디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주디스는 희망대로 수녀가 된다면 주디스의 재산은 모두 누구 것이 되겠니. 이모인 애거사와 사촌 마일스의 것이 된단다. 마일스는 최대한 재산을 더 차지하기 위해 일을 벌이려던 거였어. 그러나 그 일을 실패했잖니. 그렇다면 마일스는 또 일을 꾸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캐드펠 수사는 다급히 정원에 있는 장미나무로 갔단다. 하지만 한발 늦었어. 장미나무는 기름을 머금고 활활 타고 있었어. 다음날 캐드펠 수사와 휴 베링어는 주디스의 집에 가서 마일스를 체포했단다. 그렇게 진범을 잡게 되었단다. 닐은 딸과 함께 주디스를 찾아와 장미 한 송이를 전해주었단다. 그렇게 올해도 계약을 지킬 수 있었단다. 닐이 딸에게 주려고 어제 장미 한 송이를 꺾어 두었다고 했어. 마일스가 장미나무를 태우기 전에 말이야. 주디스는 닐에게 자신의 곁에 머물러 달라고 했단다. 닐의 진실한 사랑을 주디스가 알아봐주어 다행이구나. 그렇게 이번에도 사랑의 결실이 맺어지면서 소설은 끝났단다.

….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늘 흥미진진하구나. 이제 여덟 권 남았는데, 계속 기대가 되는구나. 나중에 너희들도 여유가 생기면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래. 이미 독서편지를 읽었다면 스포일러가 되어 책 읽는 재미의 반감이 서려나? 그렇다면 이 독서편지를 나중에 알려주어야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1142년 봄, 4월 내내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더니 5월이 되었는데도 봄기운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책의 끝 문장: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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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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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전에 이야기했듯이 제인 오스틴의 장편 여섯 편을 모두 읽겠다고 했잖아. 오늘은 그 네 번째로 <에마>를 읽고 이야기해줄게. <에마>는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구나.  700페이지가 넘으니 벽돌책의 반열에 들겠다고 하겠구나.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제인 오스틴의 짧은 삶이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작품을 남겼을 텐데… 이번 <에마>도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여성의 시각을 통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단다. 아빠의 상상력이 부족해서 머릿속에서 당시 풍경을 제대로 그릴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말이야. 혹시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있나 싶어 찾아보니, 예전에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가 있고, 최근에는 안야 테일러 조이 주연의 영화가 있더구나. 아빠의 부족한 상상력을 영화가 채워 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나중에 기회 되면 영화로도 봐야겠다. 책 두께가 두꺼운 만큼 할 이야기가 많으니 바로 책 이야기를 시작할게. 아참,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은 1815년이라고 하는구나.

…

주인공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에마라는 스물한 살의 아가씨야. 에마 우드하우스. 엄마는 일찍 돌아가시고, 언니 이저벨라는 존 나이틀리와 결혼해서 출가하고, 에마는 아버지와 함께 하트필드에서 살고 있었어. 에마의 어린 시절부터 16년 동안 에마를 가르친 가정교사이자 친구인 테일러가 얼마 전에 웨스턴 씨와 결혼했단다. 웨스턴 씨는 첫째 아내와 사별하고 지내다가 테일러와 결혼한 거야. 웨스턴 씨는 아들 프랭크가 있었는데 아내가 죽은 다음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기 어려워 프랭크는 외삼촌 부부가 키워주셨단다. 프랭크는 어느덧 스물세 살이 되었어.

에마는 늘 테일러와 함께 지내서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테일러가 결혼하고 나서 아버지와 둘이 지내다 보니, 자주 외로움을 느끼고 무료함을 느꼈단다. 사실 테일러와 웨스턴 씨의 결혼을 주선한 것은 에마였단다. 에마는 다른 사람들의 짝을 지어주는 것을 좋아했어. 테일러와 웨스턴 씨의 짝을 지어주고 그 다음은 엘튼 씨의 짝을 찾아주려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은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이 정도면 에마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대충 알겠지?

 

1.

테일러는 결혼 후에도 가끔씩 에마의 집에 찾아와 놀다가 갔단다. 하트필드에서는 자주 사교 모임을 가져서 저녁이면 이웃들이 모였단다. 당시 영국 사회는 사교 모임은 일상이었던 것 같은데, I성향의 사람들은 좀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에마는 그 사교모임에서 해리엇 스미스라는 사생아와 친하게 되었어. 해리엇이 사생아이다 보니 에마는 은근히 자신보다 낮은 신분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에마는 해리엇을 더 챙겨주려고 하고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했어. 앞서 이야기했던 엘튼 씨가 해리엇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에마는 엘튼 씨와 해리엇을 짝지어 주려고 했단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로버트 마틴이라는 사람이 해리엇에게 청혼 편지를 보낸 거야. 해리엇은 그 편지를 에마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구하려고 했어. 에마는 이미 해리엇의 짝은 엘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틴의 청혼 편지라니.. 자신을 방해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에마는 해리엇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거절하도록 유도했단다. 그래서 해리엇은 마틴에게 청혼에 거절하는 편지를 썼어.

이쯤에서 조지 나이틀리라는 사람을 소개해야겠구나. 조지 나이틀리는 에마의 언니 이저벨라의 남편의 형이란다. 그러니까 에마에게는 아주버님이 되겠구나. 그렇지만 에마의 집안과도 친분이 있어 자주 집에 방분했단다. 그 조지 나이틀리가 에마가 해리엇에게 조언한 사실을 알게 되어 에마에게 화를 내며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단다. 에마의 속마음도 꿰뚫었는지 혹시 해리엇과 엘튼을 짝지어 주려고 하는 것이라면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덧붙였단다. 엘튼은 결혼 상대로 해리엇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어. 조지 나이틀리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엘튼을 다시 만나 그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엘튼이 해리엇을 좋아한다고 에마는 확신했단다.

…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언니 식구들이 하트필드에 방문했단다. 또 사교모임이 열렸는데 해리엇이 심한 감기가 걸려 모임에 오지 못해서 에마는 병문안을 다녀 왔단다. 사교 모임에서 에마는 엘튼을 만났는데, 엘튼은 해리엇이 감기 걸린 것을 알면서도 걱정을 별로 안 하는 것을 보고 에마는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런가? 하고 생각했어. 그날 사교 모임을 지켜보던 에마의 형부 존은 에마에게 이야기하기를 엘튼이 에마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에마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 에마는 엘튼이 해리엇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

웨스턴 씨 부부의 집에서 모임이 있었어. 웨스턴 씨의 아들 프랭크가 조만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가 취소를 했는데, 에마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는 한편, 조지 나이틀리는 프랭크가 핑계를 대고 안 온 것이라고 했어. 별 거 아닌 것으로 에마와 조지는 의견 충돌로 말싸움을 하기도 했어.

…

어느 날 사교모임 후, 엘튼은 에마를 찾아와 구애를 했단다. 형부 존의 생각이 맞았던 거야. 남자는 남자가 더 잘 보는 것 같구나. 아니면 엘튼이 에마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에마의 편견 때문에 에마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튼 에마는 해리엇을 좋아하다가 어떻게 다시 자신을 좋아할 수 있냐면서 엘튼에게 화를 냈어. 하지만 엘튼은 해리엇을 좋아한 적 없고, 처음부터 에마를 좋아했다고 했어. 조지의 말대로 에마가 헛다리를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구나. 에마는 엘튼의 구애를 거절하고 엘튼도 화를 내며 가버렸단다. 이를 어쩐다. 해리엇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엘튼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마틴의 청혼을 거절하도록 부추긴 것도 마음에 걸렸어. 에마는 고민 끝에 해리엇을 만나 이야기를 했단다. 해리엇은 에마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담담히 받아들였단다. 에마는 그동안 괜히 해리엇에게 바람만 넣은 것 같아 미안했단다.

 

2.

또 한 사람을 소개해야겠구나. 제인 페어팩스라는 아가씨인데 에마와 동갑이었어. 에마는 제인 페어팩스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안 좋아했어. 제인은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일찍 돌아가셨어. 아버지가 은혜를 베풀어준 캠벨 씨가 어린 제인을 친자식처럼 키워주셨단다. 교육도 잘 받아서 자랐는데, 최근에는 베이츠 양 집에 머물고 있었어. 조지는 에마가 제인을 안 좋아하는 것은 열등감 때문이라고 팩폭을 날렸단다.

….

웨스턴 씨의 아들 프랭크가 마을에 방문했단다. 에마도 프랭크와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에마는 선입견을 많이 갖는 편인데, 첫인상이 좋았던 프랭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단다. 그런데 프랭크는 앞서 이야기했던 제인과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대. 에마는 속이 아프겠는데? 프랭크는 2주간 머물다가 돌아갔는데, 에마는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생각해 보았어. 프랭크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자신은 결혼할 생각은 여전히 없기 때문에 그 감정은 사랑은 아니라고 단정했어.

…

그런 와중에 약간은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어. 에마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엘튼이 결혼했다는 소식이야. 그것도 외모도 괜찮고 경제력도 좋은 호킨스 양과 결혼했다는 소식이야. 에마가 생각하기에 엘튼이 자신에 비해 좀 과분한 여자와 결혼한 거야. 에마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신분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 같았어. 얼마 후 엘튼 부부가 사교 모임에 등장했어. 에마는 엘튼 부인인 호킨스 양을 처음 만났는데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좋지 않았어. 그렇게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 그 이후 계속 안 좋은 면만 보게 되었어.

…

어느 날, 해리엇이 집시들에게 곤경에 빠진 적이 있는데, 프랭크가 도와주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해리엇은 에마에게 이야기하기를 독신으로 살겠다고 했어. 에마가 생각하기를 해리엇이 집시 일을 겪고 프랭크에게 빠지게 되었으나 신분 차이가 나서 그와는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독신으로 살겠다고 이야기한 것이라고 생각했어.

…

에마는 인성적으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았어.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꼬면서 이야기하기도 했단다. 그런 모습을 본 조지는 따끔하게 에마에게 충고를 하기고 하고, 그 일로 에마가 상심해서 울기도 했단다. 이 소설에서 에마에게 따끔하게 충고하고 지적하는 사람은 조지 나이틀리뿐인데, 그것에 사랑의 다른 형태가 아닌가 싶구나. 비록 둘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들이 여럿 있었잖니…

….

어느날 웨스턴 부인, 그러니까 테일러가 에마를 찾았어. 에마가 테일러를 찾아가보니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어. 프랭크가 제인과 작년 10월에 비밀 약혼한 사이라고 이야기했어. 테일러는 에마와 프랭크가 서로 좋아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이 소식을 에마에게 알려주는 것이 고통이라고 했어. 하지만 에마는 이미 몇 달 전부터 프랭크에게 관심이 없어졌다면서 괜찮다고 했어. 오히려 속으로는 해리엇에게 또 상처 줄 말을 전할 생각이 고통스러웠지. 에마가 해리엇을 찾아가니 해리엇은 그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 아무렇게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에마는 의아해했어. 해리엇이 말하길 자신이 좋아한 사람은 프랭크가 아니고 조지 나이틀리 씨라고 했어. 에마는 또 헛다리를 짚었구나. 해리엇이 이야기하기를 이번에는 조지 나이틀리 씨와 자신이 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어. 에마는 약간 충격을 받았어. 자신이 독신주의자이긴 하지만, 조지 나이틀리 씨에게 일순위는 자신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해리엇이 조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사실 해리엇이 조지를 마음 속에 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신이 해리엇을 사교 모임에 함께 해서였을 거야.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마틴의 청혼을 거절하게 만든 데서부터인가? 이제서야 가볍게 내뱉었던 자신의 언사에 대한 후회감도 들었어…

..

또 한번의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어. 어느 날 조지 나이틀리가 방문하여 에마에게 고백을 했단다. 예상된 결말이었지만 그래도 이제서야 퍼즐이 제대로 맞춰진 것 같구나. 에마는 조지의 고백을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 해리엇이 걱정되었단다. 해리엇에게 일단 편지로 자신과 조지의 소식을 알리고, 해리엇이 슬픔을 잊게 하려고 런던에서 이저벨라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했어. 그리고 얼마 후 해리엇으로부터 소식이 왔어. 해리엇이 로버트 마틴과 결혼한다는 소식이었어. 멀리 돌아왔지만 해리엇과 마틴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에마는 이제서야 마지막 단추가 제대로 채워진 기분을 느꼈을 거야.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에마는 완벽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더 친근해 보이더구나.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들, 사랑하는 모습들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미인이지 총명하지 부유하지 거기에다 안락한 가정에 낙천적인 성격까지 갖춘 에마 우드하우스는 인생의 여러 복을 한 몸에 타고난 듯했고, 실제로 세상에 나와 스물한 해 가까이 살도록 걱정거리랄 것이 거의 없었다.

책의 끝 문장: 그러나 이런 결함들에도 혼례식을 지켜본 작은 무리의 진정한 친구들의 소망과 희망, 확신, 예언은 이 결혼의 완벽한 행복으로 완전히 실현되었다.


완전한 진실에 접하게 되는 것은 인간에게 드문, 아주 드문 일이다. 뭔가 약간의 위장이나 약간의 오해가 개입되지 않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지만 이번처럼 행동에 대해서 오해했을지언정 감정에 대해서는 오해하지 않은 그런 경우라면, 오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이틀리 씨가 아무리 에마가 가슴으로 후회하고 있다고 여긴들, 또 그의 마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다고 여긴들 에마의 실제 마음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 P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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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나는 앞에서 우리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홀연히 찾아와 고무공을 사준 것을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때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웠는지. 하지만 나를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아버지를, 아버지의 사랑을 포기한 상태였다. 단 한 사람, 어머니만을 믿고 의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마저 나를 버리고 간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유곽의 기생으로 팔려 한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저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팔아버리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121-122)

이웃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근처 들판에서 놀곤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마당 청소 등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누구누구야, 하며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토라지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웃거나 하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뜰 앞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보면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데 모여 오비가 땅에 끌리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잡거나 잡히거나 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자유로울까.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가난뱅이’가 부러웠다.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둘 순 없어.”라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 ‘고상’한 교육방침에 따라 집에 갇혀 있는 내 자신이 불쌍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이 단지 나를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슬퍼졌다.

 

(185-186)

‘아아, 기차여! 7년 전 너는 나를 속이고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고통과 시련 속에 나를 혼자 두고 갔다. 그동안 너는 몇백 번 몇천 번 나를 지나쳐 갔다. 늘 곁눈으로 흘끗 보며 말없이 지나쳤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너는 나를 데리러 왔구나! 너는 나를 잊지 않았구나. 아아. 어디든 데려가주렴! 얼른, 얼른! 그저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렴!’

 

(262)

나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줄곧 학대당했다. 나는 ‘자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외삼촌에게도, 이모에게도. 아니,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입곱 살이 되었다.

 

(331)

사회주의는 나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느낀 감정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뿐이었다. 나는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는 돈을 가진 자로부터 혹사당하고 괴롭힘을 받았으며 들볶였고 억압당했다. 또한 자유를 빼앗겼으며 착취당하고 지배당했다. 이런 나는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해 항상 마음 속 깊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조선의 할머니 집 아인 고 씨를 동정했던 것도, 불쌍한 개마저 동지처럼 느꼈던 것도, 그 외에 이수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 주위에서 일어난 많은 일에서 억압당하고 고통받고 착취당하는 불쌍한 조선인에 대해 한없이 동정했던 것도 이러한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던 반항심과 동정심은 순식간에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불이 붙어버렸다.

 

(360)

실제로 당시의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열정을 갖던 당시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훌륭하다고 대접받는 사람만큼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373)

“나는 당신 가슴속에서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하찮은 사람이오. 나는 그저 죽을 수 없어 살고 있는 사람이오.”

그는 이렇게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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