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나는 앞에서 우리를 버리고 간 아버지가 홀연히 찾아와 고무공을 사준 것을 이야기 한 바 있다. 그때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웠는지. 하지만 나를 꼭 데리러 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아버지를, 아버지의 사랑을 포기한 상태였다. 단 한 사람, 어머니만을 믿고 의지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머니마저 나를 버리고 간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유곽의 기생으로 팔려 한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저 고달픈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팔아버리려고 한 것이 틀림없다.

 

(121-122)

이웃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근처 들판에서 놀곤 했다. 내가 집에 돌아와 마당 청소 등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누구누구야, 하며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가위바위보를 하거나 토라지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웃거나 하는 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려왔다. 뜰 앞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보면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데 모여 오비가 땅에 끌리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다. 잡거나 잡히거나 하는 모습이 잘 보였다.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자유로울까.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가난뱅이가 부러웠다. “우리 집은 말이야. 가난뱅이들과는 격이 달라. 아이를 밖에 내팽개쳐둘 순 없어.”라고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고, 고상한 교육방침에 따라 집에 갇혀 있는 내 자신이 불쌍했다. 그리고 할머니의 말이 단지 나를 노예처럼 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슬퍼졌다.

 

(185-186)

아아, 기차여! 7년 전 너는 나를 속이고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고통과 시련 속에 나를 혼자 두고 갔다. 그동안 너는 몇백 번 몇천 번 나를 지나쳐 갔다. 늘 곁눈으로 흘끗 보며 말없이 지나쳤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너는 나를 데리러 왔구나! 너는 나를 잊지 않았구나. 아아. 어디든 데려가주렴! 얼른, 얼른! 그저 빨리 여기에서 벗어나게 해주렴!’

 

(262)

나의 불행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코하마에서, 야마나시에서, 조선에서, 하마마쓰에서, 나는 줄곧 학대당했다. 나는 자신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모든 과거에 감사한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도, 외삼촌에게도, 이모에게도. 아니, 내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고, 가는 곳마다 모든 환경 속에서 학대받을 만큼 학대받은 나의 운명에 감사한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집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면, 아마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 생활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불운한 탓에 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열입곱 살이 되었다.

 

(331)

사회주의는 나에게 특별히 새로운 것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겪어오면서 느낀 감정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뿐이었다. 나는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는 돈을 가진 자로부터 혹사당하고 괴롭힘을 받았으며 들볶였고 억압당했다. 또한 자유를 빼앗겼으며 착취당하고 지배당했다. 이런 나는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해 항상 마음 속 깊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진심으로 동정했다. 조선의 할머니 집 아인 고 씨를 동정했던 것도, 불쌍한 개마저 동지처럼 느꼈던 것도, 그 외에 이수기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할머니 주위에서 일어난 많은 일에서 억압당하고 고통받고 착취당하는 불쌍한 조선인에 대해 한없이 동정했던 것도 이러한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던 반항심과 동정심은 순식간에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불이 붙어버렸다.

 

(360)

실제로 당시의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일에 열정을 갖던 당시 나는 고학을 해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고학을 하더라도 훌륭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훌륭하다고 대접받는 사람만큼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만족과 자유를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나 자신이어야만 한다.

 

(373)

나는 당신 가슴속에서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을 발견했어요. 당신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는 하찮은 사람이오. 나는 그저 죽을 수 없어 살고 있는 사람이오.”

그는 이렇게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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