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
강진아 지음 / 한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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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강진아 작가님의 <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라는 책을 이야기할게. 이 소설은 독특한 분위기의 책표지가 눈에 띄어 책소개를 보고 읽게 되었단다. 지은이 소개를 보니 강진아 작가님은 영화감독도 하셨구나. 그리고 <mymy>라는 작품도 쓰셨구나. 이 책도 한동안 인터넷 서점에서 많이 눈에 띠었었는데그럼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할게.

….

성차경. 부모님이 사기죄를 짓고 도망가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단다. 아무래도 집안이 넉넉하지는 못했어. 고등학생인 차경은 미술에 소질이 있어서 그 방향으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단다.

고도희. 아버지가 배우출신 국회의원으로 유명하고 집도 부자란다. 도희는 아버지 몰래 학원비를 써서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어. 도희가 차경에게 접근해서 5만원짜리 위조지폐를 만들자고 꼬셨어. 딱 한 번만. 차경도 미술용품을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했어. 위조지폐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도희의 꼬임에 고민을 하게 되었지. 딱 한 번만. 그들은 위조지폐를 만들어 각각 50만원씩 나눠 가졌단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구나.

도희는 테스트를 위해 중학교 때 친구 혜미를 끌어들였어. 혜미는 그 돈이 위조지폐인지도 모르고 편의점에 가서 물건을 사가지고 왔단다. 아무 의심도 받지 않고 넘어갔어. 처음이 어렵지, 이렇게 되자 도희는 더 만들자고 했어. 여러 번 더 만들었으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단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위조지폐를 만들 때 준비물이 부족해서 위조지폐의 마지막 단계를 건너뛰게 되고 그것이 문제가 되고 말았어. 공방에서 혜미가 계산을 했는데 주인 아저씨가 위조지폐 같다고 의심을 했고 혜미는 무작정 도망가다가 택시에 치여 그만 죽고 말았단다. 큰일났구나.

이 사고 이후 도희는 차경을 모른 척 했어. 그 동안 도희가 보여준 행동을 보면 너무 당연한 처사였단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으니차경은 안절부절 못했어. 더욱이 만들고 남은 위조지폐가 도희의 집에 있는 금고 안에 있었어. 도희는 그 위조지폐로 차경을 괴롭히고 차경은 도희가 무슨 짓을 벌일까 무서워 도희를 감시하고 있었어.

...

 

1.

3때 도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시간은 흘러 차경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었어. 차경이 도희를 감시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 대학생활 내내 인스타 등으로 도희를 모니터링 했어. 이제 시간도 한참 지냈으니 잊고 지낼 만도 한데 말이야. 일부러 연락하지 않는다면 우연히 만나기 쉽지 않을 텐데. 그렇게 감시를 하다가 오히려 꼬리가 밟힐 수도 있을 수도 있을 텐데.

...

차경은 미술 재능을 살려서 엔티라고 하는 잘나가는 대기업 취직 준비를 했어. 마지막 프로젝트 시험만 남아 있던 상태였지. 그런데 몇 달 동안 인스타 업데이트가 없던 도희가 국내로 돌아와서 샵을 차린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럼 그곳을 멀리 해야 하는데 이 바보 같은 차경은 도희 주변에서 감시하다가 도희의 눈에 띄어 다시 만나게 되었단다. 도희는 동업자와 문제가 생겨 재판 중인데 차경에게 대뜸 가짜 증명서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 부탁도 아니고 거의 명령이었어. 자신의 금고 안에 여전히 위조지폐가 있다고 협박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그게 있다고 해도 차경이 만들었다는 근거를 댈 수 있나? 소설이라서 이런 설정을 만들었겠지만 읽는 내내 차경이 답답하더구나.

...

차경은 샵의 cctv까지 전원을 끄는 등 온갖 어려운 방법을 써서 비어있는 도희의 샵에 잠입하여 금고의 문까지 여는데 성공을 했는데 위조지폐는 없고 도희의 천식 흡입기만 있었어. 도희는 어렸을 때부터 천식을 앓고 있었거든. 그렇다면 위조지폐는 어디에 있지? 그렇게 아무 성과 없이 샵에서 나왔어. 나중에 다시 도희를 만나러 샵에 와서 증거를 달라고 했으나 도희는 못 준다고 하여 둘은 다투게 되었고 그러다가 도희는 천식증세가 나타났어. 금고 안에서 흡입기를 찾았으나 그건 이미 차경이 가지고 갔단다. 천식 환자라면 흡입기를 늘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걸 왜 꺼내기 어려운 금고 안에 두었을까? 아빠가 좀 대충 읽어서 놓친 부분이 있나?

아무튼 둘은 더욱 격렬하게 다투고 도희는 천식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죽고 말았단다. 차경은 도희가 자살한 것처럼 꾸몄어. 도희의 핸드폰으로 도희의 계정으로 인스타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리고.. 샵에 불을 지르고 도망을 갔단다. 사전에 CCTV를 꺼 놓아서 차경의 범행은 완전범죄처럼 보였어. 그리고 차경은 엔티에 합격하면서 소설은 끝이 났단다. 이쯤 되고 보니 차경은 도희를 감시했던 이유가 죽이기 위해서였던 것인가 싶더구나. 과연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게 남아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 그리고 나중에 도희를 부검을 하면 불 때문에 죽었는지, 죽은 다음에 불이 났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과연 계속 완전범죄로 남아 있을까, 의문이 가는구나. 아빠가 이야기를 차경과 도희 두 명을 중심으로 했는데 곁가지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도 있단다.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어 재미는 있으나 다소 억지설정이 보이고 공감 가지 않는 주인공의 행동들이 좀 거슬렸단다. 가볍게 읽는 스릴러 소설이라 한 줄 평을 하련다.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오만 원권 속 신사임당을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보았는지 모르겠다.

책의 끝 문장: 꼭 그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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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

, 나보코프는 잡힐 듯 말 듯한 흰 고래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고, 해설해서, 결국 잡았나? 탑이 높아질수록, 가능한 한 많은 의미를 더할수록, 흰 고래는 점점 시커메지고, 번역이 실패했다는 증거는 쌓여간다. 주석의 탑은 번역 불가능성의 웅대한 증거다. 번역은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 번역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만다는 조바심이 탑을 이룬다. 이 탑은 무한의 영역으로 뻗는다. 번역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번역은 무한하다.

 

(43)

전 세계에 단테의 <신곡> 번역본이 수천 종 있을 것이다. 저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라고 주장하지만 한 권 한 권 다른 책이다. 쓰인 언어가 다르거나, 번역된 시대가 다르거나, 번역한 사람이 다르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다 다르다.

 

(45)

번역가들은 왜 배신자일까? 신이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지 못하게 언어를 흩어놓았는데도 갈라진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해서, 니므롯처럼 신의 뜻에 반한 배신자가 되었나? 서로 다른 언어 사이를 오갈 때는 손실이 불가피하므로 원저자든 독자든 누군가를 배신하게 없었느냐는 것이다.

 

(49)

특히 다른 언어를 쓰는 국가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는 번역/통역가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극에 달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번역/통역가들은 스파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번역/통역가는 적대적인 세력 사이에서 협상을 거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도울 뿐인데,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박쥐처럼 여겨지고 모국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일제강점기 때도 역관들은 친일파이자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통역사들이 숱하게 죽었다. 번역가 수잔 바스넷도 이 죽음을 언급한다. “얼마 전에 한 신문의 짧은 기사가 내 눈을 사로압았다. 시체 몇 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되었는데 모두 탈레반의 희생자였다. 그들은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혀가 잘려 있었다. [...] 희생자들은 모두 통역사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 여기에 한 가지 역설이 있다. 번역가들은 한편으로 세상에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invisible) 존재처럼 보이지만,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중요한 존재로 보인다는 것이다.”

 

(53)

이에 반발하여 속어 번역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다. 성경 번역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이므로 그 자체로 엄청나게 위험했다. 중세 말기에 존 위클리프(c.1328~1384)는 라틴어 불가타를 영어로 번역해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위클리프의 사상과 번역은 두 세기 뒤에 일어난 16세기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번역은 근세를 추동하는 동인이 되었다. 성경 번역이 종교개혁을,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요인 중 하나였다고 해도 지나치제 않을 것이다. 성격 번역은 종교개혁 시기에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고 권력 투쟁의 핵이었다. 성경이 번역되자 성직자를 거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번역 성경은 민족 언어와 문화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65-66)

나도 번역이라는 일이 탐정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탐정소설 속 탐정의 목표는 범죄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이다. 탐정이 모든 정황과 맥락을 고려해 가장 그럴듯한 한 가지 서사를 완성하듯이, 번역가도 단어들의 단서를 모아 매끈한 하나의 문장, 빈틈없는 하나의 줄거리를 만든다. 번역가는 흩어진 의미의 조각들을 이렇게 맞추어보고 저렇게 맞추어 보며 도무지 옮겨지지 않는 것을 옮기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르륵 퍼즐이 풀린다. 비어 있는 한 자리에 딱 맞는 단서/단어를 끼워 맞추자 이야기가 완결된다. 이렇게 문장을 완성할 때의 희열. 결국 번역을 하는 이유는 번역이 이런 일이기 때문이다. 드물게 찾아오는 완성의 감각.

 

(71)

10여 년 전에는 직역이냐 의역이냐를 놓고 두 번역가가 번역 배틀이라는 형식으로 맞붙은 신나는 일이 있었다(번역이라는 단어 다음에 이렇게 흥미진진한 단어가 붙은 적이 유사 이래 또 있었던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기 마음대로 원문에 담긴 정보를 삭제하고 번역해서는 안 된다”(이덕하)는 주장과 쉽게 읽히는 노씨의 번역에 대해서는 주요 정보가 완곡한 표현으로 번역되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것이 다가 아니다등의 비판이, 우리말로 부드럽게 옮겨지지 않은 이씨의 번역에는 정보만 있을 뿐 정서가 없다’, ‘읽기 불편하다등의 비판이 나왔다.” 직역이냐 의역이냐의 해묵은 논쟁을 종식할 줄 알았는데, 싱겁게도 무승부로 얼버무려버렸다.

 

(90)

단테가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어를 발명했다는 말이 있다. 중세에는 문어와 구어가 분리되어 있어서, 고등교육, 과학, 철학, 신학 등의 학문과 공공 기록 등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라틴어가 쓰였다. 당시에 진지한 주제로 책을 쓸 때는 라틴어로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속어로 <신곡>을 씀으로써 이탈리아 문화와 언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으로부터 이탈리아어의 표준이 생겼고 이탈리아어 문학이 시작되었으며 이탈리아 민족문화와 국가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었다.

 

(116)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전() 언어 단계에서 언어의 첫 단계로 넘어가 말을 익히면 이 놀라운 조음 능력은 거의 전부 사라지고 만다. 아기가 언어를 습득하면서 사고와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얻는 대신 몸과 감각의 일체성을 잃는다. 아르토의 음절 덩어리와 발음할 수 없는 단어들은 상징계에 들어가기 전 아기의 옹알이 같은 소리로 회귀하려는 언어다. 사고를 추방한 비이성의 미로에 순수한 소리와 감각--살만을 남긴다.

 

(134)

나는 잘 읽히는 번역문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어 독자가 자연스러운 논리로 글을 읽게 하려고 이쩌면 나에게 허럭된 것보다 더 많이 개입할 때가 있다. 마치 편집자가 된 것처럼 원문에 가위를 댈 때도 있다(있는 것을 잘라내거나 없는 것을 집어넣는다는 말은 아니다. 문장을 합하거나 나누거나 문장구조를 뒤틀거나 긍정과 부정을 뒤집을 때가 있다). 그런데 번역 원고를 다듬고 고치다가 피츠제럴드처럼 진부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145)

2016년 데버라 스미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The Vegetarian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뒤에 번역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최근에 구체적인 사례를 두고 이만큼 열띤 논쟁이 벌어진 일은 없었을 듯하다. 처음 수상 소식이 들려왔을 때 (한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한국인들은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쾌거라며 들떠서 축하하고 칭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인터넷에 The Vegetarian의 오역 의심 사례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번역 작품을 원본과 비교해본 국내 번역가들은 다들 나처럼 아연했을 듯싶다. 데버라 스미스가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번역을 했던 것이다. 만약 국내 번역가가 외국의 유명한 작품을 그렇게 번혁했다면 곧 오역 논쟁에 휩싸였을 것이고 영원히 출판계에 발을 붙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147-148)

서양의 번역 관행과 우리나라의 번역 관행이 크게 다르고 기준점도 다르니 충실성의 개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에서 한국어로 쓰인 책을 번역 출간할 때는 출판사 편집부에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한국처럼 편집자가 원본과 번역본을 한 문장 한 문장 대조하고 비교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번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원문 충실성을 훨씬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번혁 논쟁은 거의 언제나 원문을 기준으로 놓고 벌어지는 오역 논쟁이었고, 원문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거나 곡해한 번역이 어떤 이유로든 옹호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서양 번역 전통은 (여성 혐오적 표현이지만 한 번만 더 쓰자면) 충실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미녀(Les Bells infideles)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고 스미스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여전히 그 기조가 이어진다. 스미스의 번역이 부정한(infidele)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이 충실할 생각이 없다는 번역관을 밝혔는데 윤리적 의무를 저버렸다느니 배신을 했다느니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서는 미녀(belle)인지 아닌지만 따지면 된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수행하는 번역 비평은 좀처럼 눈에 뜨이지 않는다.

 

(158-159)

또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나 다른 언어라서 좀 더 많이 개입할 필요가 있다(이 점에 있어서는 영어와 한국어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한 데버라 스미스와 내 생각이 일치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를 많이개입한 것으로 보느냐의 기준은 크게 달라서 같은 말을 해도 무척 다른 이야기이긴 하다.) 영어에서 한국어로 올 때는 문장을 완전히 뒤집거나 구문을 재배치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러지 않고 영어의 특유 표현(수동태, 물주(物主) 구문, 완료, 진행, 사역 등)을 그대로 옮기면 어색한 번역 투가 되고 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가기 십상이다. 영어와 한국어는 언어의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서 좀 더 적극적으로 번역해야 한다.

 

(173)

이런 부침을 겪은 그녀는 여전히 쓰이기는 하되, 굉장히 불균형하게 쓰인다. 언어학자 안소진은 신문, 잡지, 문학, 비문학, 구어 등으로 분류된 말뭉치에서 그녀의 출현 빈도를 조사해서, 텍스트의 종류에 따라 그녀가 나타나는 빈도가 크게 달라짐을 보였다. 문학 말뭉치와 순()구어 전사 자료에서 무려 298배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전체 그녀출현 건수 중에서 83퍼센트가 문학 말뭉치에서 나타났다. 반면 순구어에서는 사실상 그녀를 안 쓴다.

 

(174-175)

우리는 /그녀를 유럽어에서 받아들여 쓰게 되었는데, 이제는 서양에서도 남녀를 구분하는 대명사를 불편하게 여긴다. 자신이 이분법적 성별 체계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non-binary)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명서 ‘he/she’ 대신 ‘they’를 삼인칭 복수 겸 단수 대명사로 쓰는 경향이 눈에 뜨인다. 경칭으로도 ‘Ms’‘Mr’ 대신 ‘Mx’를 붙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이렇게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학생을 임의로 ‘he/she’로 지칭하면 차별이 될 수 있어서 늘 신경 쓰고 조심한다고 한다.

 

(177)

번역이 아무리 자연스럽고 편안한 한국어를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번역문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그 흔적이 번역문의 미덕이 된다. 타자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포개어지고 간섭이 일어날 때 아롱거리는 무늬가 언어에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을 흉내내려 하는데 번역가를 흉내 내어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이런 교환과 충돌을 통해 언어의 가능성이 최대로 이끌어내어지기도 한다. 내가 쓰는 언어에도 지금까지 내가 읽고 번역한 무수한 글들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타자의 택스트를 씹고 삼키고 흔적도 남지 않게 흡수해버리는 번역도 있다. 다음 장에서는 길들이다 못해 잡아먹어버리는 식인주의 번역(Canninalist Translation)을 다룬다.

 

(191)

내가 번역하는 텍스트도 권위로 나를 위합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숭앙해야 하는 원문의 권위라는 것은 없다. 번역이 원문을 배신하고 손상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문이 번역문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미국 백인 작가가 1990년대에 쓴 글을 번역하다가 구제 불능의 인종주의적 표현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이런 문구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분을 둥글려서 감췄다(작가도 오늘날까지 살아 있었다면 부끄럽게 여겼을 거라고 믿는다). 번역에서 손실이 일어났지만, 인종주의를 잃었다고 아까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텍스트도 그 자체로 온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3의 공간을 만들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더 나은 글을 생산하기 위해서 번역하고 또 번역한다.

 

(221)

번역가가 하는 일은 원본을 훼손하거나 손상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 있도록 생명을 주고 되살리는 일이다. 번역가는 상상력과 독창성과 자유로움을 요하는 연금술 같은 정교한 공정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를 복원한다. 에코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하는 말을 따라 할 뿐이지만,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하는 나르키소스가 점점 말라가다 소멸한 뒤에도 계속 나르키소스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다양하게 반향하며 울려 퍼지게 한다. 나르키소스는 침묵할지라도, 그 침묵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에코의 목소리를-빈 산에 울리는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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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들 마티니클럽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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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테스 게리첸의 마티니 클럽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여름 손님들>을 이야기할게. 마티니 클럽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는 작년에 이야기한 <스파이 코스트>란 소설이었어.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이루어진 마티니 클럽이 한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더만, 이렇게 시리즈로 2권으로 돌아왔구나. 전 편과 마찬가지로 이번 <이번 손님들>도 흡입력 있는 필력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초집중하게 했단다. 마티니 클럽은 메인 주 퓨리티라는 지역에 살고 있는 은퇴한 CIA 요원들로 구성된 독서 모임이란다. 메인 주인공은 매기라는 분이고, 전직 CIA 요원들이자 친구인 잉그리드, 데클란, , 로이드가 그들이란다.

소설은 오랜 전인 1972년 어떤 사건으로 시작하는데, 왜 그 사건이 처음에 등장하는지는 소설 후반에 밝혀지게 된단다. 그 사건은 당시 경찰관이었던 랜디 펠레티가 샘 타긴이 일으킨 교통사고를 정리하라고 갔다가 샘 타긴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었단다. 그 때 랜디 펠레티를 포함하여 네 명이 죽었고, 특이한 것은 샘 타긴이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듯 이상했고, 딴 사람 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증언이었단다.

 

1.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된단다. 조지와 엘리자베스 코노버 부부의 식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구나. 조지는 세 달 전에 사망을 했고, 가족들은 조지를 추모도 하고 휴가를 보내기 위해 메인 주 메이든 호수에 있는 그들의 별장에 모이기로 했단다. 조지와 엘리자베스는 콜린과 에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어. 콜린은 아내는 브룩이고 그들에게는 열일곱 살 아들 키트가 있었어. 키트는 은둔형 외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신 건강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 동생 에단의 아내는 수잔이었어. 수잔과 결혼한 것은 2 년 전이었는데, 당시 수잔은 전남편과 사별하고 13살된 딸 조이와 함께 있었어. 에단은 조이의 계부란다.

이런 가족 구성이다 보니 수잔이 좀 불편할 것 같구나. 그들의 별장이 있는 메이든 호수에는 그들처럼 여름에만 찾아오기 만들어진 별장들이 여럿 있었고,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있었어. 그 중에는 루벤 타긴이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에단의 식구들과 루벤 타긴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이가 무척 안 좋았단다. 루벤 타긴은 성()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1972년 살인사건의 범인 샘 타긴의 아들이란다.

….

그런데 그들이 호숫가에서 온지 이틀째 수영을 하던 조이가 실종되었단다. 수잔은 걱정되는 마음에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다른 식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단다. 자신들의 피가 섞이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들자 화도 많이 났지. 실종 신고를 해서 지역의 경찰관 조 티보듀가 찾아와서 조사를 했단다.

조 티보듀는 이전 시리즈 <스파이 코스트>에도 등장했던 지역의 경찰관이었단다. 조이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으로 호숫가에서 처음 알게 된 캘리라는 아이였어. 그래서 캘리 집에 가보니 캘리와 함께 있다가 캘리의 할아버지 루터가 2시 경 호수의 선착장에 데려다 주었다고 했어. 그러자 코노버 사람들은 루터를 의심했단다. 루터는 괜히 도와주려고 했다가 의심만 받는 신세가 되었구나. 그래서 루터는 이웃에 살고 있는 매기에게 도움을 청했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마티니 클럽의 그 매기 맞단다. 매기는 친구들과 함께 루터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단다. 그래서 매기와 친구들은 조이의 실종을 조사하기 시작했어.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던가, 그들의 오랜 CIA 경력은 은퇴를 했어도 여전한 실력 발휘를 했단다. 경찰관 조보다 한 발 앞서 수사 자료들을 조사했어. 조가 조사를 하면 한 발 먼저 매기와 친구들이 조사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단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러다가 도로변에서 버려진 조이의 배낭이 발견되었단다. 조이의 엄마 수잔은 더욱 걱정이 되고 두려움마저 느꼈어.

조이의 실종 때문에 시아버지 조지의 추모식을 취소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져 그냥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단다. 수잔과 남편 에단은 실종된 조이의 포스터를 제작했단다. 이렇게 되다 보니 조이가 어쩌면 호수에 익사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야 했어. 가슴 아프지만 호수를 수색해보자는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이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단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젊은 성인 여성으로 보였으며,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은 족히 지난 유골이었으며 특이한 점은 시신이 돌에 묶인 줄과 연결되어 있었던 거야. 누군가 시신을 수장한 것 같았단다. 도대체 그 시신의 주인공은 누구이고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 사건은 점점 커져만 가는구나.

 

2.

조지의 추모식 당일, 다른 식구들은 모두 추모식에 참석하고 수잔 혼자 집에 남아 있었단다. 딸 조이로부터 연락이 올 수도 있으니 집에 대기하기로 했어. 그런데 이웃 주민인 루벤 타긴이 찾아왔어. 루벤 타긴은 수잔을 보더니 코노보 가족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잊지 말라고 전해 달라는 말을 하고 가버렸어. 수잔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 줄 몰랐어. 저녁때 식구들이 돌아와서 루벤이 남긴 말을 전하자, 식구들은 오히려 루벤이 코노버 식구들을 오랫동안 괴롭혀 왔다는 거야. 루벤과 코노버 식구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이를 마지막에 본 루터는 어쩔 수 없이 용의자로 조사받게 되었는데, 루터의 트럭 보조석에서 조이의 혈흔이 발견되었단다. 그래서 루터는 긴급 체포되어 경찰서에 갇히게 되었어. 매가가 면화를 가서 루터에게 이야기를 들었어. 루터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거야. 루커는 조이를 내려주고 자신은 누군가를 죽이려고 갔다가 용기가 없어서 다시 돌아왔다는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는 자신의 행적을 자세히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거야. 아무래도 루터에는 불리한 상황이구나. 하지만 매기는 루터를 믿는 것 같았어.

한편 수잔은 마을 도서관에서 옛날 기사를 찾아보았어. 호숫가에서 발견된 유골에 관한 기사가 있을까, 하고 찾아 본 거야. 그리고 샘 타긴의 살인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어. 차로 쳐서 세 명을 죽였고, 총으로 경찰 한 명이 죽였다는 거야. 그리고 당시(53년 전) 스물일곱 살 비비안 스틸워터라는 사람이 호수에서 실종되었다는 기사가 있었어. 그렇다면 이번에 발견된 유골이 비비안 스틸워터의 유골이란 말인가.

매기와 친구들은 루터의 트럭 보조석에서 발견된 조이의 피가 생리혈이라는 것을 알아냈어. 그리고 조이가 생리중이라는 것도 확인했어. 매기와 친구들이 이 이이기를 조에게 하고 조는 자신이 성급해서 무고한 사람을 가두었다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느꼈단다. 루터는 무혐의로 다시 풀려났단다. 조가 매기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조의 동료 마이크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조이의 핸드폰이 켜졌다는 거야. 그래서 긴급 출동을 했단다. 조이의 핸드폰이 켜진 곳은 조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이자 절도 이력이 있던 팔리의 집이었어. 팔리에게 어떻게 핸드폰을 얻게 되었는지 물어보자, 자신의 트럭 화물칸에 핸드폰이 있어서 켜봤다고 했어. 그러면서 자신은 조이를 모른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거짓말 같지 않았단다. 팔리는 조이가 사라진 날 메이든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고 했어.

조는 루벤을 찾아갔단다. 코노보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보니 루벤도 용의선상에 둘 수 있었단다. 루벤은 장애인 누나 아비게일과 함께 살고 있었어. 아비게일은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할 만큼 중증 장애인으로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했어. 그런 아비게일을 계속 보살펴 주는 루벤이 나쁜 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구나. 비록 코노버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말이야.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저지른 살인 때문에 평생을 은둔하면 지내고 있었어. 조이가 사라진 날 루벤은 아비게일과 함께 병원에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루벤은 코노버 식구들에게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이야기를 했어. 서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니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루터가 풀려난 이후 매기가 찾아와 경찰서에 한 이야기에 다시 물어봤어. 누구를 죽이고 싶었냐고 말이야. 캘리의 친부 제시 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마약사범이기도 했는데 주기적으로 루터에게 딸을 데려가겠다고 협박을 했다는 거야. 루터가 돈으로 막아보았는데,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했어. 그래서 그를 죽일 생각을 했었다는 거야.

그 이야기를 들은 매기와 친구들이 제시 배스의 집에 잠입하여 마약 증거를 찾아서 감방에 넣으려는 작전을 펴고 있었는데, 조로부터 연락이 왔어. 조이를 찾았다는 거야. 등산객이 계곡에서 쓰러진 조이를 발견하고 신고를 했다는 거야. 다행히 조이는 살아 있었어. 하지만 두개골 등에 골절이 있어 수술을 진행했고 지금은 중환자실에 있고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어. 매기와 친구들은 조이가 발견된 계곡과 주변을 조사했단다. 그들은 조이의 물안경을 발견했단다.

조는 이제 매기와 친구들에게 정보를 공유했어. 조가 이야기하기를, 53년 전 호수에서 일어난 비비안의 실종 사건을 당시 해결되었다고 했어. 그러니까 이번에 호수에서 발견된 다른 사람의 유골이라는 거야. 조가 생각하는 가설도 매기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어. 무호흡 다이빙을 즐기던 조이가 호수에서 참수를 하다가 호수 바닥에서 유골을 발견하고 그것이 밝혀지면 안 되는 누군가가 조이를 해친 것이라는 가설을 이야기했어. 배낭과 핸드폰의 위치는 혼란을 주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말이야.

 

3.

조는 수잔과 함께 53년전 실종되었던 비비안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코노보 별장의 이웃이었던 그린 박사의 비서였다는 거야. 그래서 엘리자베스도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물어보기로 했어. 그랬더니 엘리자베스는 심하게 화를 냈단다. 비비안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편 조이의 계부 에단은 소설 한 편을 출간한 이력이 있는 소설가였단다. 그 이후 글이 잘 안 써져서 5년째 구상만 하고 있었어. 그러다가 비비안의 실종 사건과 최근 호수에서 발견된 유골을 모티브로 한 소설을 쓰고 있었어.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 엘리자베스는 또 화를 냈단다. 수잔도 자신의 딸 조이의 실종 사고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에단에게 크게 화를 내고, 집을 나갔다가 폭우에 비를 쫄딱 맞고 말았단다. 이웃에 살고 있는 아서 폭스라는 사람이 그런 수잔을 발견하고는 병원에 데려가 주었단다.

아서 폭스는 조지와 그린 박사의 친구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단다. 병원에 가는 길에 비밀 같은 이야기를 수잔에게 들려주었어. 53년 전 실종된 비비안이 한때 조지와 불륜의 관계였다는 거야. 그래서 엘리자베스가 비비안 이야기만 나오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라고 했어. 비비안이 사라지면서 조지의 불륜 생활도 끝이 났대. 이 이야기는 에단에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단다.

마티니 클럽의 매기와 데클란도 비비안을 조사하기 위해 비비안의 동생 캐시를 만났단다. 그리고 비비안이 교통 사고를 당하고 3년 동안 혼수 상태로 있다고 죽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비비안의 의료 기록이 다 사라졌다는구나. 아무튼 비비안의 마지막이 확실해졌으니 호수에서 발견된 비비안의 유골은 아닌 것이 확실해졌구나. 그렇다면 그 유골의 주인은 누구란 말인가? 비비안이 오래 전에 그린 박사의 의약품 테스트를 했었다고 하는데 이 정보로부터 매기는 무엇인가 깨달은 것 같았어.

매기와 데클란은 다음으로 루벤을 만나러 갔어. 왜 코노버 식구들을 싫어하는지 물어보기 위해서…. 그런데 루벤는 답변 대신 매기를 산 중턱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는 버려진 흰색 건물이 있었단다. 루벤이 말하길 그 흰색 건물에서 조지, 그린 박사, 아서 폭스, 비비안이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했어.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루벤의 아버지를 설득해서 그 실험에 참여하게 했다고 했어. 그리고 루벤의 아버지는 그들이 만들어준 약을 먹고 그날 사고를 일으킨 것이라고 했어. 루벤은 당시 이 일을 밝히려고 했으나, 정부에서 침묵의 대가로 장애인인 동생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했다는 거야. 루벤은 아버지의 범행에 비밀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동생 에비게일의 치료도 중요했단다. 결국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단다.

53년 전 도대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4.

매기와 친구들은 53년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밝혀냈단다. 그들이 오랜 CIA 경력도 당시 비밀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었어. 매기는 그들이 알아낸 사슬을 경찰관 조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어. 1950년에서 70년대까지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MK 울트라 프로젝트라는 인체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어. 그들을 진행하는 멤버들은 모두 CIA 소속이었어. 비비안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MK 울트라 프로젝트를 폭로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고, 그러자 그림 박사와 일행들은 비비안에게 약물을 투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비비안은 교통사고를 내게 된 거야. 루벤의 아버지 샘 코긴의 사건도 그들의 약물을 복용하고 벌인 사고였던 거야. 그리고 매기가 추측하기를 조지의 아내 엘리자베스도 CIA이고 MK 울트라 프로젝트에 참가했을 거라고 했어.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조는 엘리자베스를 찾아가 이 사실들을 이야기했어. 엘리자베스는 대부분의 사실을 인정했어. 하지만 호수의 유골은 MK 울트라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단다. MK 울트라는 1970년대에 완전히 종료되었는데, 호수의 유골은 검사 결과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유골이라고 밝혀졌단다. 기술이 발달하여 유골로 얼굴도 복원할 수 있는데, 복원된 얼굴을 보고 엘리자베스는 무엇인가 알아 차린 것 같았지만 이내 무표정을 지었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큰 아들 콜린이 그곳에 왔는데 엘리자베스는 갑자기 콜린을 탓했단다. 그 복원된 유골은 한때 그들의 집에서 보모로 일했단 애나의 얼굴이었던 거야. 큰 아들 콜린이 애나와 불륜을 저질렀고 나중에는 애나를 죽였던 거야. 애나의 시신 처리를 할 때는 콜린의 아버지 조지가 도와주었고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콜린에게 화를 내면서 아버지와 똑 같은 놈이라고 소리쳤단다. 엘리자베스는 이제는 너를 보호해주지 못하겠다고 했어그러자 콜린은 모르는 사실이라고 했어. 아버지 조지가 애나에게 돈을 주고 보냈다고만 알고 있다는 거야. 너무 강력하게 이야기해서 거짓말 같지는 않았어. 그렇다면 누가? 엘리자베스와 콜린은 애나가 떠나는 날, 애나의 짐 싸는 것을 도와준 브룩을 떠올렸단다.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 강력한 스포일 것 같아서 중단해야겠구나. 이 책은 나중에 너희들도 재미있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이 소설에서 언급된 MK 울트라 프로젝트라는 인체 실험 프로젝트는 1970년대까지 미국에서 실제로 진행 했다는구나. 놀랍구나. 처음에는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는데 실체가 있었던 프로젝트로 1990년대에 와서야 미국정부는 시인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구나.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무서운 나라구나.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대통령에게 너무 큰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요즘이구나. 무식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전세계를 전쟁터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야. 그의 질주를 누가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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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은 저잣거리 시민들이 아니었던가? 과거 민주화운동으로 얻은 어쭙잖은 명망을 업고 학생들을 모아 지도부를 결성한다고 하자,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간여한 우리는 싫든 좋든 학생 지도부와 함께 가야 할 것이고, 죽음을 무릅쓰고 싸운 저잣거리 시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 아닌가?’

 

(185)

이종기 변호사의 제안에 장세균 목사와 남재희 신부가 조비오 신부를 돕겠다고 나섰다. 김성용 신부는 시민수습위원들의 주고받는 말에 흥미를 잃었다. 광주시민을 살상한 계엄사의 사과 없이 무기만 갖다바치면 수습이 될 것이라는 말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김성용 신부는 광주시민의 희생을 줄이겠다고 무기를 회수하러 나선 조비오 신부와는 생각이 달랐다. 일부 수습위원이 가해자인 계엄사 측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협상이 아니었다. 무기를 회수해 오면 연행자를 석방하겠다, 보복을 금지하겠다, 광주에 재진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본말이 바뀐 협상이었다. 김성용 신부는 수습위원의 태도를 비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187-188)

저는 전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극단 광대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동리소극장 대표인 박효섭입니다. 비도 오고 있으니 저는 군더더기의 말을 생략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겄습니다. 계엄사 측은 무기를 회수해어 갖다 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시민수습위원들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계엄사 측이 순진하고 순수헌 시민수습위원들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무기를 갖다 주는 것은 신군부 야욕을 도와주는 꼴입니다. 계엄사 측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시민들이 무기로 철저하게 무장허고 있어야만 계엄군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광주항쟁의 불길이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항쟁은 세계 각국의 지지를 받을 것이고 신군부는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여 스스로 권력 찬탈의 야욕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314)

고등학생들은 나가라. 우리가 싸와서 도청을 사수헐 테니 니들은 집으로 돌아가거라. 니들은 역사의 증인이 되거라. 우리는 오늘 계엄군에게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니들이 우리를 잊지 않는다믄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기록헐 것이다. 도청을 나가는 니들은 비겁자가 아니다. 역사의 증인이 되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

 

(350)

526, 우리의 피를 원한다면 하느님, 이 조그만 한 몸의 희생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희생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는 무엇이오니까? 너무 가냘픈 존재이올시다. 너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올시다. 주님,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큰 고통과 번뇌와 시련을 듬뿍 주셔서 세상을 이겨나갈 힘과 지혜를 주십시오. 고아라면 모두 이를 갈겠지요. 내 형제들, 어린 동생들, 이렇게 죽는 나로 말미암아 두세 겹의 고통과 멍에를 짊어지고 쓰레기처럼 살 수밖에 별 도리가 없겠지요. 하느님,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양심이 그 무엇입니까. 왜 이토록 무거운 멍에를 매게 하십니까. 이렇게 주께 갈급하게 구해야만 세상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하렵니다. 하느님, 도와주소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세상에는 관용과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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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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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년 전 쯤 미국의 유명한 작가 폴 오스터의 부고 소식에 조금은 놀랐단다. 아빠가 기억하는 폴 오스터는 비교적 젊은 작가였는데 벌써 돌아가시다니... 부고 뉴스를 찾아보니 향년 77세였어. 장수하신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그리 적은 것도 아니었구나. 그런데 왜 아빠는 폴 오스터를 젊은 작가로 기억하고 있었을가? 그것은 아빠가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 프로필 사진에서 본 폴 오스터의 사진만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누가 그를 77세의 노인으로 만들었는가. 세월이, 시간의 짓이라는 것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되는구나. 아빠가 읽은 폴 오스터의 작품은 세 권인데 마지막으로 읽은 것을 확인해 보니 2005, 20년도 더 되었구나.

그의 책들이 너무 미국적이면서 세세한 전개방식이 당시 아빠 취향과 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그의 책을 멀리 했었어.그것이 20년이 넘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세월의 무서움을 느꼈단다. 아빠의 기억 속에 폴 오스터는 20년 전에 머물러 있던 거야. 폴 오스터가 별세하고 얼마 후 그의 마지막 작품이 번역 출간되었단다. 아빠가 그 동안 멀리했지만 세 권이나 읽은 작가이니 추모할 겸 그의 마지막 책을 읽어보았단다.

 

1.

바움가트너. 소설의 제목이자 주인공이란다. 우리는 어떤 노년의 삶을 살게 될까. 사이 좋은 부부라면 둘이 함께 노년을 살아가겠지만, 사이 좋은 부부라도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단다. 이 책의 주인공 바움가트너 역시 10년 아내 애나가 죽고 난 이후 쭉 혼자 지내는 노인이었단다. 지난 10년 혼자 살아오면서 그는 더 늙었고 최근에는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들었어. 깜빡 하고 냄비를 태워먹고 그 냄비를 치우다가 화상을 입기도 하고... 계량기 검침원과 약속을 잊고, 아니, 약속한 것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검침원과 함께 지하실에 내려가다가 계단에 굴러 넘어지는 등 일상 생활도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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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얼마 전, 40대와 50대 초반 시절 자기보다 나이 많은 친구나 동료가 화장실을 다녀온 뒤 지퍼를 올리는 걸 잊고 나오는 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허리띠 바로 아래 헛간 문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레스토랑의 자기 자리로 느릿느릿 돌아오곤 하던 70대 중반과 80대 초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친구들. 처음에 바움가트너는 이 해로울 것 없는 실수가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재미는 없어졌다. 그때쯤에는 볼 만큼 봐서 열린 바지 앞자락이 종말의 시작임을, 세상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긴 비탈로 가는 첫걸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지기 시작하자-지난 두 주 동안 네 번-그 클럽의 정회원이 되는 데 몇 달 또는 몇 년이 걸릴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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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내와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보기도 했어.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와 이후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행복한 시간들. 안타까운 것은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잘 생기지 않았고 검사를 해보니 둘 모두 불임이었다는구나. 그래도 둘이 함께 행복하게 살았는데 10년 전 해변에 놀러 갔다가 아내 애나는 수영하다가 익사하고 말았단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바움가트너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어. 애나는 작가 겸 번역가로 일했는데 바움가트너는 아내가 죽고 나서 아내의 원고를 보다가 <프랭키 보일>이라는 원고를 보았어. 이 책에는 그 원고의 전문이 실려 있어 또 다른 단편을 읽는 재미도 있단다.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유고집을 작업하면서 아픔을 잊으려고 했단다.

바움가트너는 이제 일흔 살이 되었고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교수인데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날 계획을 갖고 있어. 아내가 떠난 이후에는 주디스라는 같은 학교의 영화과 교수와 그나마 친했어. 애나도 죽기 전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주디스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어. 주디스는 4년 전에 이혼했는데 이후 주디스도 바움가트너를 친구로 의지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2~3일 같이 지내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어. 바움가트너는 긴 고민 끝에 청혼을 했어. 주디스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자유로움이 너무 좋다면서 현재 관계를 유지하자고 했단다. 이혼으로 결혼 생활을 끝낸 주디스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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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우리가 가진 것은 좋은 거지만 이제는 이 정도 좋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쨌든 나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나와 결혼한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주느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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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위와 같은 노년에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로 전개된단다. 사건이 일어나기보다는, 노년에 들어선 바움가트너의 생각과 기억, 그리고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따라가며 진행되지. 나이를 들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미래의 시간보다 과거의 시간과 과거의 사람들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진단다. 그 세월이란 놈이 너무 빨리 흘러가서 나의 일부분은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젊음에 머물러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공감이 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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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50여 년이 며칠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나니 내 인생이 흐릿하게 한 덩어리로 쏜살같이 흘러가 버린 듯한 느낌이다. 나는 늙었지만, 날들이 아주 빠르게 지나가는 바람에 나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젊게 느껴진다. 따라서 손에 연필을 쥘 수 있고 눈앞의 문장을 볼 수만 있으면 여기 도착한 아침 이후 해온 일과를 똑같이 할 생각이다. 마침내 더 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일어나 떠나면 그뿐이다. 그때 너무 늙어 걸을 수 없다면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나를 배웅해 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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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가 남아있는 삶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과 경험이 나의 몸 속에, 영혼에 더 축적되어 간다고 생각해야겠다. 아빠도 머지 않아 책 속의 주인공의 시간이 다가올 텐데...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겨야겠구나. 그 소중한 시간을 너희들과도 함께 하면 더욱 좋고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바움가트너는 서재, 코지토리엄, 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자신의 2층 방 책상에 앉아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릴 때 S.T.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산 자가 죽은 자를 삶과 삶이 아닌 것 사이의 일시적 림보 같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 자마저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은 자의 의식은 영원히 소멸한다.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 버린다. - P77

어떤 사건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실제로 진실이어야 할까, 아니면 설사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어떤 사건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은 진실로 만드는 것일까?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느냐 아니냐를 알아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면 어떻게 될까?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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