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5)

회의는 새해 시무식 직후 사무동 1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회장은 임원과 팀장들의 갈채 속에 입회해 회의실 안쪽 가장 큰 책상 뒤에 앉았다. 임원들이 차례로 일어나 발표를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은 하나도 없었고 핵심 관리 지표라는 것도 모두 타 회사 자료에서 베꼈는지 회사 실정과 전혀 동떨어져 있었다. 중언부언에 말끝마다 혁신, 혁신, 혁신 모두 그뿐이었다. 말밖에 안 되는 말이 중력 없이 떠돌았고 드러낸 것보다 감춘 것이 더 많은 실적 수치들은 속이 텅 빈 전망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회장은 아무 불만도,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수량 넉넉한 호수처럼 관대하게 웃었고, 횡설수설하는 임원들을 지켜보며 이따금 알아듣겠다는 듯 고래를 끄덕였다. 회의는 원만히 이어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84)

아무리 그렇더라도 귀가 있고 생각이 있으면 임원들의 횡설수설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상관없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회장의 힘이고 지위고 회장을 둘러싼 찬란한 광배였다. 회장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림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사고 원인을 결정한 사람도 회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99)

문서라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것인가? 문서란 엉성하고 허술한 현실에서 부스스 떨어져 내린 각질에 불과했다. 하지만 누가 문서를 우습게 보는가? 아무도 없다. 모든 사람이 문서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이 현실을, 회사를, 정부나 국가를, 종교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는다. 누운 배 한 척이 그렇게 됐듯 사실이라는 것은,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흔들 수 있었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마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116)

성질 괄괄하고, 억센 부산 사투리를 쓰고, 돌려 말해야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현장 안 나간 지 보름이 지나도록 턱 끈 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만큼 밖으로 쏘다니며 일하던 남자에게 있는 것은 결국 정이었다. 그 남자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 사고를 겪고 당하면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덮어둔 채 버티고 견딜 수 있게 해주던 그 정이,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161)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를 기준으로 삼기 바랍니다. 이전에도, 또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이 해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모른다, 확인하겠다, 말만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들어들 오세요. 이 회의는 주간 공정 회의입니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생산 실적을 확인, 정리하고 다가올 한 주의 생산을 제고할 방안을 미리 세운다는 관점에서 준비들 해오세요. 이 회의에 참석한 여러분은 모두 관리자고 책임잡니다. 11초가 귀한 사람들입니다. 설명 같은 변명, 변명 같은 핑계, 핑계 같은 거짓말, 불순하고 무책임한 잡설로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남의 시간을 뺏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황 사장은 수첩을 덮었다.


(166-167)

황 사장은 자신의 책상 양옆으로 앉아 있는 임원들을 봤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회사의 모든 사람이 그 고통을 나눠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나누는 게 책임을 나눠 진다는 건 아닙니다. 회사가 어려워진다면 잘못은 내게 있고 또 각자 가지 분야에서 최고참이자 전문가인 임원들, 우리 경영진에 잘못이 있습니다. 책임 역시 내 책임이고 우리 경영진의 책임입니다. 수십 년 일해온 우리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조차 장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뒤집어 말해 돌발 상황과 변수를 통제하지 못하고 다른 부서가 일하는 것에 자기 일을 맞춰나가겠다고 하는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내 일의 주도권을 남에게, 외부 요인에 내줬다는 게 명백한데도 그걸 되찾을 거라고, 되찾아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실패와 지연에 적응하고 익숙해질 수 있습니까?” 회의실 안은 적막했다.


(177)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지나간 것을 어떻게 바꾸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다르게 봅니다. 과거야말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겁니다. 링 위에서 똑바로 못 했다면 이유가 뭐겠습니까? 링에 오르기 전까지, 링 밑에서 똑바로 안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견디고 헤쳐나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되레 우리 발목을 잡고 억압하는 과거, 인습, 껍데기뿐인 규정과 규제, 타성, 그런 것들이야말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재를 돌파하는 데 도움 주는 것들, 전통, 통찰, 지혜라고 부르는 것, 아니 더 쉽게 말해서 지금도 쓸모 있는 것,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것,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옳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만 과거에 남겨둬야 합니다.


(241)

그게 말입니까? 잘못은 한 사람이 저지르고 수습은 왜 열 사람이 나눠 합니까? 임원이라서요? 생각들 똑바로 하세요! 임원이기 때문에 한 사람도 수습할 일 없게 일해야 하는 겁니다! 당신들이 똑바로 안 하면 당신들 밑에 있는 수십 명이 바로 당신 하나 때문에 개고생, 헛고생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사 행세, 상무 행세, 뭐든 다 아는 척 거들먹거리면서 대접이나 받고 특권이나 누리라고 회사가 그 많은 연봉을 당신들에게 지급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신들부터 똑바로 하세요!


(301)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젊음이 인생의 금화라던 황 사장의 말 역시 수사가 아니다. 이대로 10, 20년 또 어느 회사에서 삶을 보내든 그 회사가 모두 이렇다면 내 인생의 금화는 결국 몇 푼 월급으로, 지폐로 바뀌어 녹아버릴 테고 나는 그저 노인이 돼 있을 터였다. 그다음은 끔찍하다. 명예퇴직, 권고퇴직, 그런 말 아닌 말로 수십 년 회사 일에만 길들고 늙은 사람인 채 양계장에서 풀어준 노계처럼 세상에 나올 것이다.


(302)

나는 계속 일했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고 산정으로 밀어 올리면 굴러떨어지고 다시 밀어 올리면 다시 굴러떨어지는, 아무 희망도 보람도 주지 않는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매일 굴러떨어졌다. 젊은 카뮈는 매일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부조리와 그것을 각성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투쟁에 관해 썼다. 투쟁을 통해 부조리를 비웃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유일한 미덕이고 행복이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 바위는 결국 모든 것을 깔아뭉갠다. 신이 아닌, 노쇠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결국 바위를 이기지 못한다. 어리석음도, 각성도, 비웃음도, 경멸도, 희망도, 젊음도 굴러떨어지는 바위의 요란한 소리에 묻힌다. 쾅쾅쾅! 늙은 인간을 깔아뭉갠 바위만이 저 끝, 힘이 다해 더 굴러갈 수 없는 곳에 멈춘다. 모든 것이 침묵한다.


(326)

분명한 것은 일을 일로 하지 않는 회사는, 야합과 담합으로, 협잡과 인습으로, 사람에게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을 끼워 맞춰가며 시키는 회사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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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 신화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영화처럼 읽는 중국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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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이 가끔씩 책으로도 나온단다.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에서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고, <썬킴의 세계사 완전정복>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다루었단다. 그 다음에는 어느 나라가 책으로 나올까 생각해 보았단다. 작년에 방송했던 프랑스나 십자군이 나오려나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중국사가 책으로 나왔구나. 아빠가 뜻밖이라고 이야기한 이유는 팟캐스트에서 중국사 통사를 다루지 않았거든. 중간중간에 특집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다른 나라 역사처럼 쭉 이어서 이야기해 준 적이 없어서 뜻밖이라고 한 것이란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이웃하고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나라 중에 하나가 중국이고, 중국 역사가 드라마틱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갖고 있다 보니, 중국사를 책으로 내면 매출이 좋을 거라고 출판사에서 판단한 것은 아닐까 싶구나. 나중에 중국사 통사를 한번 하고 출간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지만 황금알을 밴 오리의 배를 가른 느낌?

책 제목은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그 전에 출간한 책들은 팟캐스트에서 방송했던 부분을 책으로 옮긴 것인데 이번에 나온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는 방송에서 했던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단다. 최소한 아빠가 들은 부분까지는 그랬어. ‘중국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온 책이니  중국 전체 역사를 다루어야 하고, 방송에는 띄엄띄엄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방송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도 책에 실어야 했던 것 같구나.

그래도 썬킴의 입심이 어디 가겠니? 이번에도 책이 술술 읽혔단다. 그런데 아빠가 그동안 중국사 관련된 책들을 여러 권 읽어서 그런지 익히 알고 있던 내용들이 꽤 있었단다. 그래서 앞선 책들에 비해 감흥이 별로였단다. 읽기 전에 차례를 봤는데, 청나라 이후 역사가 아주 짧게 나와서 의아했는데, 읽다 보니 그 이유가 있었단다. 청나라 후기부터 근현대 중국사는 이전 책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에 나온 내용이랑 겹쳐서 뺐다고 하더구나. 그 책을 읽지 않고 중국사에 대해서만 읽으려고 이 책을 산 사람들은 다소 당황했을 것 같구나. 책 제목은 중국사인데, 이 책에 다 담기지 않고 다른 책을 참고하라고 써 있으니 말이야. 그게 아빠는 아쉬웠단다. 이번에는 좀 성급하게 책을 출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

책을 출간하게 되면 팟캐스트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하구나. 아빠는 아직 작년 방송들을 듣고 있어서 최근 방송은 아직 듣지 못했거든. 말이 길어졌네. 아무튼 좀 아쉬웠다고근현대 중국사가 다른 책과 겹친다면, 이 책을 통해 중국 통사를 접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위해 양해를 구하고 다른 책의 똑 같은 내용이라도 이 책에 실었어야 한다고 아빠는 생각한단다.


1.

지은이 썬킴 님께서 청나라 이후의 역사를 안 쓰시면서 <썬킴의 거침없는 세계사>를 참고하라고 이야기한 것을 보고, 아빠도 독서편지를 그렇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가 중국사에 관한 책들을 읽고 쓴 리뷰나 독서편지들이 있으니, 중국사에 대한 내용은 아래 책들의 리뷰를 참고하거라, 라고 말이야.

조관희 님의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 공원군 님의 <춘추전국 이야기> 시리즈, 고우영 님의 <만화 십팔사략>,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정비석은 친일파라서 님 안 붙임), 중국 작가 리선샹 님의 <와신상담> 등등. 또 뭐가 있을려나. 생각해보니 중국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꽤 읽었구나. 그 중에 <만화 십팔사략>이 가장 좋았던 것 같구나. 역시 만화야. 이미 이렇게 많이 중국사에 대한 책을 읽고 리뷰를 썼으니 이번에는 중국사의 흐름에 대해 다 이야기하는 것은 관두고, (다시 말하지만 중국 통사는 위의 책들 리뷰를 참고하길 바란다) 새로 알게 된 내용이나 너희들이 알면 좋겠다는 내용을 몇 군데 소개해주는 것으로 짧게 쓰려고 한단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독서 편지가 잔뜩 밀려서 말이지

중국 역사뿐만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 봉건제도라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단다. 봉건제도의 뜻이 이 책에 잘 설명이 되어 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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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봉건(封建)이라 할 때 봉()토지를 하사하다란 뜻이랍니다. 그리고 ()’나라를 세우다란 뜻인데 즉, (또는 황제)이 일가친척에게 지방의 땅을 나눠주고 그 친인척들이 그곳에서 자기들의 나라를 만들어 살라는 뜻이랍니다. ? 이미 나라가 있는데 나라를 또 만들라고요? 독립하란 말인가요? 아닙니다. ‘큰 나라가 있고 그 안에 조그만 나라를 만들어 살라는 뜻이랍니다. 실제 이렇게 왕에게 지방 부동산을 받고 나간 친인척들을 제후(諸侯)라고 불렀고 그 꼬마 나라를 제후국(諸侯國)이라고 불렀는데 꼬박꼬박 수도의 왕에게 세금을 바치고 왕이 위험에 처했을 때 지원군만 보내준다면 사실상 내정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독립국 행세를 할 수 있었답니다. 당시 교통도 발달 안 된 데다 왕권도 강력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그 넓은 땅의 왕국을 유지할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이 봉건제도였어요. ‘믿을 건 친척밖에 없다란 생각에서 시작된 이 봉건제도 덕분에 주나라는 무려 790년 동안 유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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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라는 종교가 인도에서 생겨났으나 인도에서는 그 자취가 사라지고 중국, 우리나라 등 다른 나라도 꽃을 피우게 된 이유. 다른 나라에 전파되어 그 나라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쳐도 왜 인도에서 불교가 싹 사라졌을까에 대해 무척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 그 이유를 깔끔하게 설명해 주었단다. 그 이유는 바로 카스트 제도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불교의 평등 정신과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상충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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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아시다시피 인도에는 카스트라고 4개의 신분 제도가 있지요? 수천 년 동안 뿌리를 내려 오늘날까지도 카스트 제도 때문에 벌어지는 신분 제도를 철저히 거부했어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란 철칙이 있었지요. 그 말은? 맞습이다. 불교틑 카스트의 나라인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또 다른 정착지를 찾아 나섰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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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태종 이세민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우리나라 고구려 역사에서 등장하는 사람이라서 이름은 익히 들었단다. 그런데 이세민이 태자를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서 왕 자리를 빼앗았다고 하는구나. 조선 시대 이방원을 떠오른 듯한둘 모두 묘호가 태종이로구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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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63)

그때 아버지 이연은? 한가로이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답니다. 이세민은 측근 부하를 이연에게 보내서 이 사실을 알랍니다. 아버지 이연은 깜짝 놀랐지만 할 수 있는 하나도 없었어요. 한순간에 당나라 권력이 이연에서 이세민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태자까지 궁 안에서 화살로 죽여버리는 인간이니 아버지라고 봐줄까요? 겁에 질린 이연은 이세민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고 자기는 스스로 쫓겨납니다.” 사실상 당나라는 애초부터 이연이 세운 나라라기보다 이세민이 세운 나라라고 해야 해요. 형제를 죽이고 또 아버지 이성계를 몰아내고 왕이 된 조선 태종 이방원과 거의 싱크로율 100%랍니다. 이세민은 당나라 태종, 즉 당태종이 됩니다. , 그러고 보니 이방원도 태종이고, 이세민도 태종이네요! 하여간 서기 626년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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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기즈칸의 후예로 중국 위쪽 초원에서 자리한 나라 몽골. 아빠는 학창시절 몽골이라는 국호보다 몽고를 더 많이 사용했단다. 요즘도 몽고라고 말할 때가 있어. 그런데 알고 보니 몽고는 중국이 몽골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라고 하더구나. 실제 몽골족들은 그 몽고라는 말을 무척 싫어한다고아빠가 몽골 사람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지만, 앞으로 몽골이라는 나라이름을 이야기할 때 꼭 몽골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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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금나라가 열심히 남송을 괴롭히고 있을 때 금나라 북쪽 초원 지대에 또 다른 유목 민족이 힘을 키우고 있었어요. 바로 몽골족이었답니다. ‘몽고(蒙古)’란 한자 표기는 중국 한족이 몽골족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랍니다. ‘()’어리석다란 뜻이고 ()’오래되다란 뜻이에요. , ‘어리석고 구닥다리 민족이란 뜻으로 중국 한족이 의도적으로 만든 표현입니다. 몽골족은 이 중국식 한자 표현 몽고를 굉장히 싫어해요. 이제부터라도 몽골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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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퀴즈를 좋아하니까 퀴즈 하나 낼게. 명나라를 세운 사람은? 주원장이란 사람이란다. 이름에 특별한 뜻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주원장은 25살 때 바꾼 이름이라고 하는구나. 원나라를 증오하는 그의 마음이 가득 담긴 이름이라고 하는구나. 주원장의 본명은 뭐지? 책에 나왔었나? 기억이 안 나..ㅠㅠ 다시 책을 찾아보니 주원장의 본명은 주중팔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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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그러나 이렇게 굶어 죽는 건 다 몽골족 때문이다란 생각에 당시 한창 송나라 부활 운동을 벌이던 홍건적에 합류를 해요. 그의 나이 25살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바꿔요. ‘주원장(朱元璋)’으로요. ()는 주살(誅殺)하다, 죽여 없애다()’와 발음이 같죠. 그리고 원()은 당연히 원나라를 뜻했어요. 마지막으로 장()인재라는 뜻이거든요. , ‘원나라를 죽여 없애는 인재란 뜻입니다. 얼마나 원나라에 대한 증오가 끓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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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몇몇 너희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몇몇 정보를 이야기해보았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 책은 술술 재미있게 잘 읽히니까 너희들도 좀더 크면 이 책으로 중국사를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청나라 후기와 근현대사는 다른 책으로 읽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야.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우리가 종종 일본을 보고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지요.

책의 끝 문장: 감사합니다.


당시 중국도 마찬가지였어요. 춘추전국시대란 헬게이트가 열리자 이 혼란을 해결할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상과 사상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죠. 그중 원톱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공자(孔子)였어요. 공자는 인(仁)과 예(禮), 즉 ‘어짐과 예절’을 강조했고 묵자(墨子, 밥 묵자, 아닙니다.)란 어르신은 ‘평화’를 강조헸어요. 그리고 노자(老子)란 양반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를 외쳤답니다. 하여간 춘추전국시대의 각 나라들은 이런 사상 중 하나를 자기 나라 통치 이념으로 택해서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지금 중국의 변두리인 산시성에 위치했던 진(秦)나라는 "우리는 ‘인, 예, 자연, 평화’ 따위는 필요 없다! 우리는 법(法)이 최고다!"라면서 법으로 강력하게 나나를 다스렸어요. 결과적으로 그것이 중국을 통일시킨 원동력이 되었고요. - P62

북조 역사에선 딱 한 인물만 기억하면 돼요. 바로 북쪽을 통일한 선비족의 나라 북위 ’효문제(孝文帝)’란 황제랍니다. 471년에 북경에 북위의 황제가 되는데요. 오랑캐 유목 민족 황제였지만 한족의 ‘오리지널 중국 문화’를 너무나 사랑했던 황제였답니다. 그래서 선비족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한족의 중국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북위의 수도도 북쪽 선비족의 근거지에서 지금까지 중국 역사의 중심지인 낙양으로 옮겨버려요. 부산 사람이 서울을 너무 좋아해서 부산 사투리도 못 쓰게 하고 동네 이름도 광안리에서 압구정으로 바꿔버리고 아예 부산을 버리고 서울로 이사를 온 격이조. - P144

유럽이 대항해의 시대를 시작해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 1492년이니까 거의 100년 전에 중국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는 건데 왜 중국은 유럽과 달리 세계 제패를 못했을까요? 항해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스페인과 같은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 건설 또는 무역이 항해의 목적이었던 반면에 명나라의 항해는 "우리 중국 짱이지! 무릎 꿇어!"라는 힘의 과시가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힘이 이 정도야!"란 것을 보여준 후 더 이상 항해를 하지 않았어요. 전 세계에 그냥 ‘힘 과시용 순회공연’ 한 번 한 것이랍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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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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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불편한 편의점>으로 유명한 김호연 작가의 SF 스릴러 소설 <파우스터>를 읽었단다. 책 제목을 보면 괴테의 <파우스트>가 곧바로 떠오른단다. 맞아. <파우스터>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해서 쓴 소설이야. 아빠는 <파우스트>라는 소설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읽어 보지 않았단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라는 책에서 괴테와 <파우스트>를 소개해 주어서 단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모른단다. 괴테 나이 81살에 <파우스트>를 썼다는 것만 생각이 나는구나.

<파우스터>의 책소개에 보면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내용이 잠깐 언급되더구나.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파는 대신 젊은 육체와 쾌락을 선사 받은 늙은 학자 파우스트의 번뇌와 구원을 담은 작품이라고 했어. 영혼을 파고 젊음을 받은 내용이구나. 이 소설에서는 약간 비슷한 것 같구나. 젊음을 다시 사려고 하는 파우스트 같은 이들이 나오니까김호연 님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파우스터>는 술술 읽혀단다. 그냥 스릴러 소설이라고만 이야기해도 되는데, 아빠가 생각하기에는 SF 스릴러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앞에 SF를 붙인 이유는 머릿속에 연결체라는 장치를 넣어서 다른 사람의 뇌를 조정하는 내용이 나와서 그랬어. 자본주의 시대의 탐욕과 세대 갈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 <파우스터>.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해줄게. 가능한 짧게.^^


1.

주인공 박준석.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투수로 FA를 앞두고 있었어. 그는 FA가 되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단다. 그래서 FA를 앞둔 한 해 최선을 다해서 경기를 임했고, 결과도 좋았단다. 박준석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일찍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준석은 없었을 거라고 준석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어. 앞으로 몸 건강을 유지하면서 메이저리그 진출만 하면 그의 꿈은 이뤄지는 것이야.

그런데 어느날 교통사고를 당하고 정신을 잃었다가 병원에서 눈을 떴는데, 최경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준석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당신의 머릿속에 연결체라는 것이 있다. 그 연결체를 통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조종하고 있다. 일부러 교통사고를 냈다. 미안하다. 교통사고를 일부러 낸 이유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야 준석의 머릿속 연결체가 멈춘다, 그 연결체가 멈춰야 그들이 우리의 대화를 엿듣지 못한다. 이 연결체를 머릿속에 심은 배후를 같이 잡자.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헛것을 들은 것인가.

최경은 자신의 아버지도 이 연결체 때문에 돌아가셨고, 준석의 옛 애인 지수도 이 연결체 때문에 죽었다고 했어. 아니, 이 여자가 준석의 애인 지수는 어떻게 아는 거지? 최경은 자신의 아버지는 지수의 연결체에 접속해서 지수의 머릿속을 해킹했다고 했어. 지금은 준석의 연결체가 멈췄기 때문에 그것을 가동하기 위해 그들은 어떤 핑계를 대고 준석에게 뇌수술을 받게 할 것이라고 했어. 그들은 누가인가? 먼 옛날 준석의 머릿속에 연결체를 넣어둔 사람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최경을 사라졌단다.

준석이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었었지만, 다행히 다른 곳은 크게 다지지 않았단다. 야구를 하는데도 큰 지장은 없었어. 그런데 진짜 최경의 말대로 의사는 뇌수술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뇌수술을 받았단다. 얼마 후 최경이 또 준석에게 나타나 이번에는 그들의 침입을 알 수 있는 장치를 주겠다고 했어. 며칠 동안 고민했던 준석은 최경과 함께 그들을 잡겠다고 마음 먹고 그 장치 설치를 허락했어. 정수리 부분의 가늘고 긴 침을 꽂았단다. 그리고 누군가 준석의 머리의 연결체에 접속을 하게 되면 정수리 부분이 뜨거워졌단다. 그렇게 준석은 누군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을 알게 되었어.


2.

케빈은 미국 교포 3세로 메피스토 코리아 지부장이었단다. 메피스토라는 회사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서 따온 이름인 것을 알 수 있었어. 메피스토라는 회사를 잠깐 소개를 해줄게. 이 회사는 비밀리에 회원을 모집하는 비밀 회사야. 회원은 주로 돈 많은 노인들이란다. 돈은 많고 몸은 허약하지만 다시 젊음을 즐기고 싶은 욕망 가득한 늙은이들. 그들에게 젊음을 다시 되찾아주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메피스토란다. 회원이 거금, 보통 수십억을 내면 젊은 사람 몇몇을 후보로 보여주게 되고, 그 중에 회원이 한 명을 선택을 하면 선택당한 사람은 건강검진이나 수술을 받게 된단다. 그 사이에 그 사람의 머릿속에 연결체를 심게 되는 거야. 당사자는 그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자신의 머릿속에 연결체가 심어지는 것도 몰라. 그 회원은 파우스트가 되는 것은 연결체를 심은 젊은이는 파우스터가 되는 거란다.

그리고 파우스트 회원은 파우스팅 머신이라는 기계를 눈에 쓰게 되면 파우스터의 연결체에 접속이 되어 파우스터의 뇌를 정복하게 되고 파우스터가 보고 말하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함께 하게 되는 거야.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게 돼. 젊음을 다시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각 파우스트들은 파우스터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게 되는데 그 목표를 두고 파우스트들은 경쟁을 하게 된단다. 배팅액까지 걸고 경쟁을 했단다.

박준석의 파우스트는 이태근이라는 하는 사람이었어. 10여년 전부터 준석을 조정했고, 이태근의 목표는 준석을 메이저리그에 진출시키는 것이었단다. 이게 그 목표가 거의 눈앞에 와 있는 것이지. 다른 경쟁자들의 파우스터들이 사고나 치고 폐인이 되기 일쑤인데 준석은 차근차근 이태근의 목표에 다가서고 있었단다. 그러니 이태근은 메피스토 코리아 내에서 최고의 파우스트로 인정을 받고 있었어. 다만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준석을 접속하는 것은 주로 준석이 선발 등판하는 날만 접속을 한단다.

최근 새로 들어온 회원으로 백남선이라는 할머니가 있는데 사채업으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번 사람이란다. 백남선은 차은민이라는 가난한 미술학도를 파우스터로 선택했단다. 백남선은 차은민의 주변인들에게 돈을 써서 차은민이 성공가도를 달릴 수 있게 한단다. 차은민은 그런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미술에 전념하게 되게 된단다.


3.

최경과 준석은 몰래 만나면서 배후의 세력들을 찾아냈단다. 준석은 자신의 주변인물들 중에서 의심 가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그들은 배후에 황지용 교수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어. 최경은 부자 오빠의 인맥을 통해 황지용 교수와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되는데, 황지용 교수는 사전에 눈치를 채고 그 자리에 이태근도 몰래 초대했단다. 최경은 이태근의 수하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죽고 말았단다. 박준석과 함께 힘을 모아 끝내는 배후 세력을 처단할 것이라 생각했던 최경이 이렇게 소설의 중간 부분에 죽다니, 예상치 못한 전개구나. 최경도 사실 경호원 임실장을 데리고 갔었는데 임실장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단다. 임실장도 죽고 말았어.

이제 준석이 혼자 맞서야 하는 상황이었어. 파우스트였던 최경의 아버지가 남긴 공책에 메피스토의 실체가 다 기록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났어.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 줄 몰랐단다. 준석은 혼자 추적을 하다 보니 모든 것이 쉽지 않았지만, 백남선의 파우스터 차은민의 정체를 알게 되었고, 최경이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박준석은 차은민에게 접근했단다. 그리고 차은민에게 파우스터의 진실을 이야기해줬어. 차은민 또한 박준석이 처음 느낀 것처럼 멘붕이 왔지. 이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단다.

박준석 역시 이태근의 몰락을 위해 노력을 하는데오늘은 결말은 이야기하지 않을게. 이태근의 몰락은 약간은 예상했던 반전으로 몰락하게 되었다는 것만 이야기해야겠다. 이 소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술술 읽히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했단다. 지은이 김호연 님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하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어.

그런데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단다. 첫째는 그냥 연결체를 빼서 버리면 안되었나 하는 생각이야. 박준석 정도면 몰래 외국으로 도망을 가서 그걸 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멤피스토에서 추적을 해올 수도 있겠지만, 충분이 그들을 빼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사전에 준비만 잘 한다면 연결체를 빼는 것은 짧은 시간에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두번째 아쉬움 점은 이런 내용상의 아쉬움이 아니라, 지은이의 실수가 아쉬웠단다. 박준석이 선발 등판에서 퍼펙트를 한 경기가 있어. 야구에서 퍼펙트는 한 이닝에 세 사람만 모두 아웃으로 처리해서 9 이닝 동안 한 명도 1루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어마무시한 기록이란다. 그러므로 9이닝동안 27타석(각 선수별로 3타석씩)으로 끝나게 된단다. 9이닝의 마지막 타자는 9번 타자가 된단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퍼펙트 게임의 마지막 타자로 4번 타자가 등장한단다. 극적인 요소로 쓰려고 그런 것 같은데 퍼펙트 게임의 마지막 타자가 4번 타자인 것은 너무 큰 실수인 것 같더구나. 아무튼 이 두 가지 아쉬움을 빼면 괜찮은 스토리 라인에 자본주의 탐욕과 세대 갈등을 소설로 잘 엮은 것 같았단다. 김호연 님의 작가들의 소설들을 앞으로도 가끔씩 눈 여겨 봐야겠구나.

, 그럼 오늘은 이상.


PS:

책의 첫 문장: 마운드는 투수의 무덤이다.

책의 끝 문장: 준석은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쁜 마음으로 다시 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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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우리는 자주 예술 작품을 통해 한 시대의 개성과 변화를 발견하게 된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받는 독특한 느낌과 기묘한 불균형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빈의 모습 그 자체다. 19세기 말의 빈은 다가오는 다음 세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빈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욱 갈망한 도시였다. 클림트의 그림들은 빈의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을 고스란히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17-18)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말처럼 클림트가 살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어제의 세계였다. 황제가 거주하던 도시, 19세기 말에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과 고딕 양식의 교회를 지었던 시대착오적인 도시가 클림트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과거지향적인 분위기에서도 변화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19세기를 떠나 20세기로 전진하는 시간의 흐름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기가 바뀌는 와중에 클림트는 먼 과거와 먼 나라에서 찾아낸 영감을 통해 혁신적인 걸작들을 창조해냈다. 그 혁신 속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모순과 불균형들은 천재이기 이전에 빈 사람이었던 클림트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클림트의 걸작들은 과거인 19세기도, 미래였던 20세기도 아닌 제3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으며,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개성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클림트의 걸작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복잡하고도 모순된 한 도시가 놀라운 천재성을 만나 이뤄낸 유니크한 혁신이었다.


(66-68)

클림트의 일생에서 가족의 그림자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다. 클림트는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가족에서 집착했고 타계하는 순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다. 클림트에게 필생의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뢰게를 만나게 된 것도 그가 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 것은 1892년이었다. 그해 아버지 에른스트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 동생이자 동료, 예술적 동지이기도 했던 에른스트가 심근경색으로 급사하고 말았다. 당시 클림트의 나이는 서른, 에른스트의 나이는 스물여덟에 불과했다. 연이은 비극이 클림트 일가를 덮친 셈이다.


(75)

오랜 세월 빈은 모든 역사적 발전에서 동떨어진 장소였다. 그것은 다분히 빈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도 했다. 19세기 말, 바다 건너 뉴욕에서 22층짜리 고층빌딩이 지어지고 같은 유럽 대륙 내의 파리에서도 철골 구조로만 이뤄진 높이 304미터의 에펠탑이 세워지며 현재의 도래를 알리고 있을 때, 빈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크풍의 웅장한 박물관과 르네상스 스타일의 기둥으로 장식된 부르크 극장을 세웠다. 그리고 그처럼 과거에 영원히 머물고 있는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오스트리아 예술가 조합은 심지어 자국 예술에 해악을 끼친다는 이유로 해외 작가들의 오스트리아 전시를 금지했을 정도다.


(105-108)

빈 대학 천장화를 그리면서 클림트가 본인의 스타일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천장화를 그리기 이전부터 클림트는 황제와 귀족의 청탁을 받아들여 최대한 그들의 의도를 부각시키는 역사와 작업에 진력을 낸 상태였다. 마치는 클림트가 타고난 리더십을 가진 이였다면서, 친구들이 클림트 장군이라는 별명으로 그를 불렀다고 회상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처럼,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어떠한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클림트가 가장 존경했던 예술가는 클래식 음악의 혁명가 같은 존재,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1902년 제14회 빈 분리파 전시에서 선보인 <베토벤 프리즈>는 베토벤, 아니 예술 자체에 바친 클림트의 신앙고백이나 다름없었다.


(124-126)

금세공업자의 아들인 클림트는 금을 얇게 펴서 바르는 중세의 기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은 금을 칠한 벽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했다. <베토벤 프리즈>가 큰 화제를 모은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클림트의 동료들은 이 새로운, 동시에 지극히 고답적인 재료의 등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금의 사용은 예술가를 마치 신처럼 보이게 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심 클림트가 바라던 바였다. 클림트의 황금시대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159)

벨베데레 미술관의 <키스>가 전시된 방으로 들어서면 검은 벽에 <키스> 한 점만이 걸려 있고 그 앞으로는 관람객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몰려 있다. 독일어, 영어, 중국어, 한국어 등 각 나라 가이드들의 열띤 해설이 한꺼번에 들려온다. 그러나 그 모든 소음과 소란은 이 그림 앞에서 일순간에 정지한다. 남자가 여자의 몸을 안고 볼에 막 입을 맞추려고 하는 순간이다. 하나가 된 두 사람의 주위로 온통 황금빛 비가 내리고 있다. 이것은 곧 소멸하기 전의 우주, 마지막으로 빛나는 불꽃의 광휘와도 같다. 극도로 관능적인 순간이지만 결코 천박하거나 노골적이지 않다. 직사각형 문양의 가운을 입은 남자는 황금빛 구름을 몰고 천상에서 지상으로 막 내려온 듯하고 꽃무늬 옷을 입은 여자는 지상에서 막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여자의 발목에는 황금빛 넝쿨이 감겨 있다.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지만, 남녀가 서로를 갈구하는 감정은 너무도 강렬하게 느껴진다.


(161)

<키스>는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이 함축된 작품이기도 하다. 남녀의 뒤로 펼쳐진 어두운 배경이 된 암흑은 그의 여름 휴가지인 아터 호수의 고요히 일렁이는 물결과 엇비슷하고, 기하학적인 황금빛 무늬는 라벤나에서 본 비잔티움 모자이크, 그리고 아버지의 금세공 작업을 연상시킨다. 결국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은 <키스> 한 점에서 모두 표현된 셈이다.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갖가지 언어로 들리는 해설에도 불구하고 전시실은 고요했다. <키스>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거대한 침묵과도 같았다.


(188)

여자가 없는 클림트는 상상할 수가 없다. 그에게 여자란 자기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클림트의 작업실은 막 피어오르는 꽃들로 뒤덮인 것만 같았다. 그녀들 중에는 보통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처녀도 있었고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귀족 가문의 레이디도 있었으며 유대인도, 부유한 상인의 딸도 있었다. 클림트는 그들 모두를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향기 속에 싸여서 살았다. 아마도 클림트보다 더 현재의 여성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언론인 프란츠 세르베스가 1912년 클림트의 여성 편력에 대해 쓴 글의 일부분이다.


(199-200)

하지만 에밀리 플뢰게를 단순히 클림트의 연인으로만 부를 수는 없다. 그녀는 일생 동안 클림트의 삶과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단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클림트의 연인인 동시에 예술적 동료였으며 매니저였고 삶의 조력자이자 후원자였다. 클림트는 에밀리와 평생 동안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거리낌없이 다른 여자들, 특히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기거하던 모델들과 성적 관계를 맺었다. 에밀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떤 여자가 자신의 실질적인 남편을 다른 여자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그러나 에밀리와 클림트에게는 이 기묘한 관계가 별달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프랭크 휘포드는 이 관계에 대해 빈의 부르주아 남성들은 아내를 두고도 거리낌 없이 외도를 즐겼다. 말하자면 클림트와 에밀리 사이의 관계는 조금 느슨해진 중년 이후의 부부와 엇비슷했다.”고 설명했다.


(264-266)

실레는 열입곱 살이던 1907년 클림트를 처음 만났다. 당시 실레는 빈 미술학교 학생이었고 클림트는 이미 빈 분리파와 빈 공방을 통해 오스트리아 전체에 이름이 알려진 화가였다. 그러나 실레의 드로잉을 본 클림트는 이 소년의 넘치는 재능에 압도되고 말았다. “제가 재능이 있다고 보시나요?”라는 실레의 물음에 클림트가 재능이 많아, 너무 많아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리고 클림트는 덧붙였다. “나도 자네처럼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 실레가 클림트에게 자신의 드로잉과 클림트의 드로잉을 바꾸자고 제안했을 때 클림트는 이렇게 답했다. “왜 자네 걸 내 것과 바꾸려고 하지? 자네 그림이 훨씬 더 나은데 말이야.” 이 대답의 의미를 실레는 곧 깨닫게 된다.


(281)

클림트는 생전에 이미 유명한 화가였으나 작품에 대해서는 늘 평가가 교차했다. 보수적인 빈의 분위기 속에서 클림트의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그림은 많은 비판과 논란을 불러왔다. 1908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키스>를 구입하면서 위상은 더욱 높아졌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예술가는 아니었다. 더욱이 사망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해체되고 빈 역시 쇠락하면서 클림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잊혔던 클림트의 작품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은 사후 약 5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클림트를 비롯해 이곤 실레, 오스카 코코슈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면서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클림트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화가가 되었다.


(288)

예술의 도시 빈에는 여러 예술가들의 흔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남아 있다. 도시 곳곳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와 슈베르트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거장들 중에서도 클림트처럼 빈에 자신의 발자취를 확실하게 남긴 이는 없다. 클림트는 빈의 공기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다. 빈 슈베하트 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이들은 누구나 공항 벽에 펼쳐진 <키스>의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실물보다 훨씬 더 큰 그 이미지들은 클림트의 도시 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 오래된 황제의 도시는 이제 예술의 황제로 클림트를 떠받들고 있다. 제국의 광휘는 오래전 사라졌으나, 클림트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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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열전 2 - 잊힌 인물을 찾아서 독립운동 열전 2
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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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지난번에 이어서 <독립운동 열전> 2권을 이야기해줄게. 지난 1권의 부제는 <잊힌 사건을 찾아서>였는데, 이번 2권의 부제는 <잊힌 인물을 찾아서>란다. 1권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했듯이 <독립운동 열전>은 잘 모르고 있던 독립운동,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벌였던 독립운동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했잖아. 이번 2권에서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소개해주고 있단다. 그런데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구나. 이들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그런 그분들의 희생이 기반이 되어 오늘날 발전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데 사상이라는 이유로 너무 외면했던 것 같구나.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 그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다시 한번 기억해보고자 노력해야겠구나. 2권의 앞 표지에는 멋진 사나이들이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단다. 독립운동을 하려면 외모도 받혀 주어야 한다는 듯한 외모들이구나. 하지만 그들의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립을 향한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싶구나. 사진 속의 인물은 한인사회당을 이끌었던 분들인데 사진은 임시정부 시절의 사진이라고 하는구나. 1권에서도 소개했던 김립, 박진순, 이동휘, 이극로, 김철수, 계봉우, 그리고 신원미상의 한 분. 사진 속 얼굴과 눈 속에서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보이더구나.


1.

첫 번째 소개해준 이는 김사국과 김사민 형제란다. 이름부터 나라를 생각하고(思國), 백성을 생각하라는(思民) 이름이니 그들은 애국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그들은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 김사국과 김사민은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단다. 김사민은 체포되어 2년형을 받게 되는데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옥 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는구나.

형 김사국은 북간도로 망명을 했으나 그곳에서 폐병을 얻어 국내로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공산당 창립에 노력을 했어. 하지만 병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6 35살 어린 나이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김사국의 아내분도 대단하신 분이었단다. 김사국의 아내 박원희는 북간도 용정의 동양학원의 교사였는데, 남편과 함께 북간도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어. 역시 체포되었지. 하지만 임신 중이라서 가석방되었고, 서울로 돌아와서 아이를 낳았단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 박원희는 여성동우회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갔어. 하지만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병을 얻게 되어 1928 31세로 남편의 뒤를 따랐단다. 어린 아이만 남았을 텐데 참 안타깝구나.

김한이라는 사회주의자 독립운동가가 있단다.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4 3개월형을 받고 감옥에 갔는데 모진 고문 속에서도 동료들을 불지 않고 혼자 모든 책임을 안았단다. 출옥 후 다시 감시를 받고 다시 체포 당하고 출소하고이런 감시하에서 사회주의활동이든 독립운동이든 쉽지 않았지. 그럼에도 김한은 국내에서 비밀 결사 활동을 했단다. 국제선인 김단야와 함께 활동하며 조직을 확대하려고 했는데, 국제선이 대거 검거되면서 다시 쫓기게 되었고 김한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을 했고 후에 모스크바에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동지였던 이성해가 김한에게 누명을 씌어 밀고하였고, 허망하게도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는구나. 김한이 국내에서 일본 경찰에 잡혔을 때 그가 일본 경찰에게 일본의 부당함을 하나하나 꼬집어 이야기할 때 일본 경찰은 반박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모진 고문뿐이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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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김한은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을 언급했다. 그는 헤겔과 다윈을 인용하면서 혁명을 위험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만물이 살아가는 자연법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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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야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김단야라는 사람은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쪼금이라도 알게 된 것은 조선희 님의 <세 여자>라는 책에서였단다. 이번 <독립운동 열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김단야는 3.1운동때 적극적으로 참가를 했고, 조선 공산당 창립 멤버로 몇 번의 투옥을 했다는구나.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나중에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했어. 그런데 스칼린이라는 자가 정권을 잡은 이후 한인 공산주의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단다. 일본 사람과 다를 게 없다면 말이야. 그 와중에 밀정을 의심받아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코민테른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했어. 그런데 앞서 김한에게 누명을 씌운 이성태란 사람이 김단야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서 결국 김단야는 이국 땅에서 총살로 삶을 마감했다는구나.

당시 김단야가 모스크바에 있을 때 주세죽과 부부였어. 주세죽은 원래 박헌영과 부부였는데, 모스크바로 도망가면서 김단야와 주세죽이 부부행세를 하게 되었고, 이후 모스크바 정착 후 부부가 되었다고 앞서 이야기한 <세 여자>에서 읽은 것이 기억나는구나. 당시 주세죽은 박헌영이 죽은 줄 알고 있었고, 김단야는 박헌영이 살아 있는 것을 알았는데 주세죽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것도 <세 여자>에서 나온 이야기였어.

<독립운동 열전 2>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들 챕터에서 주세죽을 아주 짧게 이야기해주었단다. 주세죽 님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이야기한 <세 여자>의 독서편지를 참고하길 바람. 그리고 주세죽 님에 대한 또 다른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그 책도 꼭 읽어보고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줄게.


2.

그리고 제법 유명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홍범도 장군은 아빠가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해서 오늘을 생략할게. 아빠가 쓴 독서편지들을 조회해보니 <빨치산 대장 홍범도 대장>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여러 책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구나.

유학자이면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김창숙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김창숙의 두 아들들도 함께 독립운동 하다가 아들분들인 김환기와 김찬기는 김창숙보다 먼저 옥사와 병사로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자식들을 먼저 보면 김창숙은 마음이 찢어지셨겠구나. 오래 전에 <심산 김창숙 평전>을 읽고 쓴 리뷰가 있는데, 김창숙 님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 쓴 리뷰로 대신할게. (아빠가 예전에 이야기한 것은 자꾸 생략하는데 이해해 주렴. 독서편지가 밀려서 부지런히 쓰려고 그러는 거니까. )

1권에서도 잠깐 소개한 박진순에 대해 2권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서 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단다. 박진순은 동양의 레닌으로 불릴 정도로 철저한 사회주의 사상가였단다. 학창시절 연해주에서 공부해서 러시아어도 잘했어. 아버지의 의병활동에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힘쓰셨다고 하는구나.

조훈이라는 분은 연해주의 사관생도 출신이었어. 독립자금을 얻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중간 브로커에 속아서 돈은 못 벌고 러시아 벌목장에 노예처럼 갇혀서 탈출도 못하고 막노동만 하게 되었단다. 아빠가 2년 전에 김금숙 님의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란 책을 이야기해 준 적 있는데 김알렉산드라가 벌목장의 노동자들을 도와주어 빼내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때 그 벌목장의 노동자들 중에 조훈이라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란다.

빨치산 대장들이라는 챕터에서는 박종근, 박영발, 방준표라는 분들의 행적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독립운동보다 해방 후 빨치산 활동을 더 많이 해준 것 같았어. 그들이 어떤 독립운동을 했었다고 알려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구나. 그들에게 빨치산이란 가족보다 더 중요한 이상인 것 같았어. “여성이라는 챕터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주세죽을 포함하여 애국부인회 결성회에 앞장섰던 김마리아, 간호원 출신으로 나중에 의과대학 진학하여 의사가 된 뒤 여성해방운동에 힘썼던 이덕요, 근우회 책사로 일하다가 나중에 조선공상당에서 활동했던 박신우, 여학생 문제 운동을 주독했던 송계월이라는 분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분들 중에 박신우라는 분은 모스크바에서 남편 김규열과 조선공산당 일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김단야와 마찬가지로 일본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남편 김규열은 사형, 박신우는 징역 5년형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1989년에 와서야 그들의 누명이 벗겨지고 복권되었다고 하니, 박신우 님은 1979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복권이 안된 상태에서 돌아가셨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

그 외에도 이 책에 많은 분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책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으로...^^ <독립운동 열전>( 2)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독립운동 사건도 많았고,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중간중간 읽어볼 만한 책들을 소개해 준 것도 좋았단다. 오늘날 학교 역사책에 일제 시대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너희들 책을 한번 구경해 봐야겠구나. 이책에서 소개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교과서에 더 많이 실려 있으면 좋겠구나. , 그럼 시험 공부 양이 늘어나려나..^^

오늘은 여기서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김사국 씨의 출생지인 충남 연산에서 씨가 다섯 살 때 씨의 진 아우 사민 군과 24세 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가장 사랑해 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책의 끝 문장: 청년 시절에 그가 꿈꿨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해방을 위한 전투를 쉼 없이 계속했으나 도중에 스러지고 만 외로운 영훈이 지금도 거기에 묻혀 있다.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홍범도는 참았다. 지도자 간의 분쟁은 민족해방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추 주민들의 여론이 그에게 위안을 줬다. ‘이범윤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P119

<독일 스파이> 혐의란 무엇인가? 이동휘가 그 혐의를 받아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관헌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1917년 5~6월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서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시체제였다. <독일 스파이> 혐의는 교전 중이던 적대국가 독일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그해 4월의 레닌을 연상하게 한다. 2월혁명이 발발하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지원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페프트로그라드에 귀환한 레닌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하여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또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노선을 천명했다. 그렇게 급진적인 반정부 운동을 지휘하던 레닌은 반대파에 의해 독일 스파이로 공격받았다. - P160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역사적 진실에 배치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년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가 애국지사다. 일제로 인해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이다. - P314

옥중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이 질문에 그(김중한)는 자신의 독서와 사유 체험에 관해 얘기했다. 심리, 윤리, 문학, 생물학 등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었는데, 특히 ‘원시 인류의 생활 상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가 한다. 그때를 억압과 차별, 계급, 착취가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의 시기로 상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에도 주목할 만한다. 인생의 본질, 해방, 삶의 가치, 자기 파멸, 비애, 전투 등의 어휘가 그의 내면의식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인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되 승리를 기약할 없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비애감에 굴복되지 않고 계속 전투를 해나가겠다고. 이어서 "좀 더 사색을 하고 좀 더 연구를 하여, 이제부터는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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