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열전 2 - 잊힌 인물을 찾아서 독립운동 열전 2
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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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지난번에 이어서 <독립운동 열전> 2권을 이야기해줄게. 지난 1권의 부제는 <잊힌 사건을 찾아서>였는데, 이번 2권의 부제는 <잊힌 인물을 찾아서>란다. 1권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했듯이 <독립운동 열전>은 잘 모르고 있던 독립운동, 특히 사회주의자들이 벌였던 독립운동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했잖아. 이번 2권에서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소개해주고 있단다. 그런데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구나. 이들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그런 그분들의 희생이 기반이 되어 오늘날 발전된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인데 사상이라는 이유로 너무 외면했던 것 같구나.

아빠의 기억력이 좋지 않아 그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면서 다시 한번 기억해보고자 노력해야겠구나. 2권의 앞 표지에는 멋진 사나이들이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단다. 독립운동을 하려면 외모도 받혀 주어야 한다는 듯한 외모들이구나. 하지만 그들의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독립을 향한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 싶구나. 사진 속의 인물은 한인사회당을 이끌었던 분들인데 사진은 임시정부 시절의 사진이라고 하는구나. 1권에서도 소개했던 김립, 박진순, 이동휘, 이극로, 김철수, 계봉우, 그리고 신원미상의 한 분. 사진 속 얼굴과 눈 속에서 그들의 의지와 열정을 보이더구나.


1.

첫 번째 소개해준 이는 김사국과 김사민 형제란다. 이름부터 나라를 생각하고(思國), 백성을 생각하라는(思民) 이름이니 그들은 애국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그들은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활동을 했어. 김사국과 김사민은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단다. 김사민은 체포되어 2년형을 받게 되는데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옥 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는구나.

형 김사국은 북간도로 망명을 했으나 그곳에서 폐병을 얻어 국내로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공산당 창립에 노력을 했어. 하지만 병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6 35살 어린 나이에 그만 죽고 말았단다. 김사국의 아내분도 대단하신 분이었단다. 김사국의 아내 박원희는 북간도 용정의 동양학원의 교사였는데, 남편과 함께 북간도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어. 역시 체포되었지. 하지만 임신 중이라서 가석방되었고, 서울로 돌아와서 아이를 낳았단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 박원희는 여성동우회 창립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내에서도 독립운동을 이어갔어. 하지만 알 수 없는 갑작스러운 병을 얻게 되어 1928 31세로 남편의 뒤를 따랐단다. 어린 아이만 남았을 텐데 참 안타깝구나.

김한이라는 사회주의자 독립운동가가 있단다. 조선공산당 활동으로 4 3개월형을 받고 감옥에 갔는데 모진 고문 속에서도 동료들을 불지 않고 혼자 모든 책임을 안았단다. 출옥 후 다시 감시를 받고 다시 체포 당하고 출소하고이런 감시하에서 사회주의활동이든 독립운동이든 쉽지 않았지. 그럼에도 김한은 국내에서 비밀 결사 활동을 했단다. 국제선인 김단야와 함께 활동하며 조직을 확대하려고 했는데, 국제선이 대거 검거되면서 다시 쫓기게 되었고 김한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을 했고 후에 모스크바에 가게 되었단다.

그런데 동지였던 이성해가 김한에게 누명을 씌어 밀고하였고, 허망하게도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는구나. 김한이 국내에서 일본 경찰에 잡혔을 때 그가 일본 경찰에게 일본의 부당함을 하나하나 꼬집어 이야기할 때 일본 경찰은 반박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구나.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모진 고문뿐이지 않았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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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김한은 총독정치가 얼마나 조선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교육과 산업은 물론이오 그 밖의 어느 방면을 보더라도 조선 사람은 불평원한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에게 남겨진 것은 총독부 법령을 위반하거나 아니면 죽는 길밖에 없다, 김상옥 사건도 이 같은 총독정치가 만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을 언급했다. 그는 헤겔과 다윈을 인용하면서 혁명을 위험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 만물이 살아가는 자연법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조선 사람이 자유와 해방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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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야에 대한 이야기도 했는데, 김단야라는 사람은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쪼금이라도 알게 된 것은 조선희 님의 <세 여자>라는 책에서였단다. 이번 <독립운동 열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김단야는 3.1운동때 적극적으로 참가를 했고, 조선 공산당 창립 멤버로 몇 번의 투옥을 했다는구나.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나중에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기도 했어. 그런데 스칼린이라는 자가 정권을 잡은 이후 한인 공산주의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단다. 일본 사람과 다를 게 없다면 말이야. 그 와중에 밀정을 의심받아 감옥에 투옥되었는데, 코민테른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했어. 그런데 앞서 김한에게 누명을 씌운 이성태란 사람이 김단야에게 불리한 진술을 해서 결국 김단야는 이국 땅에서 총살로 삶을 마감했다는구나.

당시 김단야가 모스크바에 있을 때 주세죽과 부부였어. 주세죽은 원래 박헌영과 부부였는데, 모스크바로 도망가면서 김단야와 주세죽이 부부행세를 하게 되었고, 이후 모스크바 정착 후 부부가 되었다고 앞서 이야기한 <세 여자>에서 읽은 것이 기억나는구나. 당시 주세죽은 박헌영이 죽은 줄 알고 있었고, 김단야는 박헌영이 살아 있는 것을 알았는데 주세죽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이것도 <세 여자>에서 나온 이야기였어.

<독립운동 열전 2>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들 챕터에서 주세죽을 아주 짧게 이야기해주었단다. 주세죽 님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이야기한 <세 여자>의 독서편지를 참고하길 바람. 그리고 주세죽 님에 대한 또 다른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그 책도 꼭 읽어보고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줄게.


2.

그리고 제법 유명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홍범도 장군은 아빠가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해서 오늘을 생략할게. 아빠가 쓴 독서편지들을 조회해보니 <빨치산 대장 홍범도 대장>이라는 책을 비롯하여 여러 책에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구나.

유학자이면서 독립운동을 하셨던 김창숙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김창숙의 두 아들들도 함께 독립운동 하다가 아들분들인 김환기와 김찬기는 김창숙보다 먼저 옥사와 병사로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자식들을 먼저 보면 김창숙은 마음이 찢어지셨겠구나. 오래 전에 <심산 김창숙 평전>을 읽고 쓴 리뷰가 있는데, 김창숙 님에 대한 이야기를 그때 쓴 리뷰로 대신할게. (아빠가 예전에 이야기한 것은 자꾸 생략하는데 이해해 주렴. 독서편지가 밀려서 부지런히 쓰려고 그러는 거니까. )

1권에서도 잠깐 소개한 박진순에 대해 2권에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서 좀 자세히 설명해 주었단다. 박진순은 동양의 레닌으로 불릴 정도로 철저한 사회주의 사상가였단다. 학창시절 연해주에서 공부해서 러시아어도 잘했어. 아버지의 의병활동에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힘쓰셨다고 하는구나.

조훈이라는 분은 연해주의 사관생도 출신이었어. 독립자금을 얻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중간 브로커에 속아서 돈은 못 벌고 러시아 벌목장에 노예처럼 갇혀서 탈출도 못하고 막노동만 하게 되었단다. 아빠가 2년 전에 김금숙 님의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란 책을 이야기해 준 적 있는데 김알렉산드라가 벌목장의 노동자들을 도와주어 빼내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때 그 벌목장의 노동자들 중에 조훈이라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란다.

빨치산 대장들이라는 챕터에서는 박종근, 박영발, 방준표라는 분들의 행적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독립운동보다 해방 후 빨치산 활동을 더 많이 해준 것 같았어. 그들이 어떤 독립운동을 했었다고 알려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구나. 그들에게 빨치산이란 가족보다 더 중요한 이상인 것 같았어. “여성이라는 챕터에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주세죽을 포함하여 애국부인회 결성회에 앞장섰던 김마리아, 간호원 출신으로 나중에 의과대학 진학하여 의사가 된 뒤 여성해방운동에 힘썼던 이덕요, 근우회 책사로 일하다가 나중에 조선공상당에서 활동했던 박신우, 여학생 문제 운동을 주독했던 송계월이라는 분들을 소개해 주었단다.

그분들 중에 박신우라는 분은 모스크바에서 남편 김규열과 조선공산당 일원으로 활동을 했는데 김단야와 마찬가지로 일본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남편 김규열은 사형, 박신우는 징역 5년형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1989년에 와서야 그들의 누명이 벗겨지고 복권되었다고 하니, 박신우 님은 1979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복권이 안된 상태에서 돌아가셨구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다.

….

그 외에도 이 책에 많은 분들을 이야기해주고 있단다. 그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책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는 것으로...^^ <독립운동 열전>( 2)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독립운동 사건도 많았고,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알게 되어 좋았단다. 그리고 중간중간 읽어볼 만한 책들을 소개해 준 것도 좋았단다. 오늘날 학교 역사책에 일제 시대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어떤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너희들 책을 한번 구경해 봐야겠구나. 이책에서 소개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교과서에 더 많이 실려 있으면 좋겠구나. , 그럼 시험 공부 양이 늘어나려나..^^

오늘은 여기서 이만.


PS:

책의 첫 문장: 김사국 씨의 출생지인 충남 연산에서 씨가 다섯 살 때 씨의 진 아우 사민 군과 24세 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가장 사랑해 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책의 끝 문장: 청년 시절에 그가 꿈꿨던 언어로 표현하자면, 해방을 위한 전투를 쉼 없이 계속했으나 도중에 스러지고 만 외로운 영훈이 지금도 거기에 묻혀 있다.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홍범도 의병부대가 쇠락하게 된 이유가 양반 의병장의 독단 탓이었음이 명백했다. 의병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했던 함경도 부대를 패퇴시킨 것은 일본군이 아니라 한국의 양반 출신 의병장이었다. 오히려 적군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홍범도는 참았다. 지도자 간의 분쟁은 민족해방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연추 주민들의 여론이 그에게 위안을 줬다. ‘이범윤 죽일 놈’이라고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P119

<독일 스파이> 혐의란 무엇인가? 이동휘가 그 혐의를 받아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관헌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1917년 5~6월의 일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의 주요 참전국으로서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전시체제였다. <독일 스파이> 혐의는 교전 중이던 적대국가 독일과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그해 4월의 레닌을 연상하게 한다. 2월혁명이 발발하자 스위스에 망명 중이던 레닌은 독일의 지원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페프트로그라드에 귀환한 레닌은 유명한 4월 테제를 발표하여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또 의회민주주의에 반대하고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노선을 천명했다. 그렇게 급진적인 반정부 운동을 지휘하던 레닌은 반대파에 의해 독일 스파이로 공격받았다. - P160

이데올로기적 외압 조항은 역사적 진실에 배치된다. 독립유공자 여부는 오직 순수하게 독립운동 공적 유무만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1945년 8.15 이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적이 있는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도 사후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외압은 배제되어 있다.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가 애국지사다. 일제로 인해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이다. - P314

옥중에서 어떻게 지냈는가. 이 질문에 그(김중한)는 자신의 독서와 사유 체험에 관해 얘기했다. 심리, 윤리, 문학, 생물학 등에 관한 책들을 즐겨 읽었는데, 특히 ‘원시 인류의 생활 상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가 한다. 그때를 억압과 차별, 계급, 착취가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의 시기로 상정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에도 주목할 만한다. 인생의 본질, 해방, 삶의 가치, 자기 파멸, 비애, 전투 등의 어휘가 그의 내면의식을 구성하는 주요 개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인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해방을 위한 투쟁이되 승리를 기약할 없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비애감에 굴복되지 않고 계속 전투를 해나가겠다고. 이어서 "좀 더 사색을 하고 좀 더 연구를 하여, 이제부터는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끝맺었다.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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