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단순하게 말해서, 자연 순환의 질서를 깨뜨리고 인간이 마음대로 인위적인 무언가를 하는 게 공업이라고 한다면, 농업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조종하기보다 자연의 순환이라는 큰 틀에 순응해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또 그 과정에서 부산물을 땅으로 돌려 땅을 비옥하게 하고 자연환경을 더 풍요롭게 만들면서요.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순환의 틀에 순응하면서 산다고 해도 훼손은 되거든요. 자연이 소모가 돼요. 그렇지만 그걸 최소화할 수는 있어요. 그 방법이 유기농업적 삶의 방식이라고 나는 보는 것이죠.

(22)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농장을 둘러보았다. 집 뒤에는 농산물 가공작업을 하는 건물이 있고 안에는 저온창고, 곡물 가루를 찌는 커다란 솥, 제분기, 반죽기, 발효기 등의 설비가 잔뜩 있었다. 거의 모두 선생이 손수 설계하여 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편에 강의실 겸 식당, 주방,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이 있고, 또 그 뒤에 축사가 있었다. 널찍한 축사에는 20여 마리의 암소와 송아지, 돼지 20여 마리, 산양, 닭이 느긋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잔돌이 많은 넓은 밭이 겨울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쪽에선 마늘과 양파가 추위를 피해 비닐을 덮고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 옆에는 작은 비닐하우스 여섯 동이 나란히 서 있었는데, 모두 녹비작물로 덮여 있었다. 증폭제를 만들어 보관해둔 상자도 눈에 뜨였다. 5,000여 평 땅에서 이 많은 일을, 선생 내외분의 힘으로 감당해오신 것이다. 이 농장은 선생 가족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학교이며, 선생이 이루고자 했던 바로 그 낙원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39)

산업농은 단절된 부분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식품생산과 인간의 영양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즉각적인 금전적 수익 추구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농민들과 농기업들은 갈수록 옥수수처럼 영양가 낮은 작물의 단일 재배에 집중하고 있다. 옥수수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작물인데, 흔히 영양가 없고 열량만 높은 식료품으로 가공된다. 그 결과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빈곤지역을 포함해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불건강한 식생활 패턴이 빠르게 증가했다. 오늘날 비전염성 질환의 대부분이 식사와 관련되어 있는데, 2020년이 되면 그러한 질병이 전세계 사망 원인의 대략 75%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88)

현재 아베 정권은 단계적으로 현행 평화헌법을 전쟁이 가능한 헌법으로 개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와 아울러  교과서 내용에서도 점진적으로 제국주의시대를 긍정적으로 기술하는 분량을 늘려가고 있다. 또한 국가 틀(헌법)의 개편과 함께 국민들의 제국주의 역사와의 친화를 도모하기 위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은 그것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메이지유신의 일등 공로자인 사이고 다카도리는 평화사절 파견론자로 계속 미화될 것이다. 그의 일대기를 그린 일본 공영방송의 대화드라마는 역사의 진실에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102)

역사를 사람들의 주체적 선택의 누적으로 봐야, 역사의 실패도 잘못도 반성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우리가 자립성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과 표리의 관계에 있다. 그러한 자립한 자각적 주체성의 결여야말로 전쟁이라는 비참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이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시세나 대세에 맡기고 책임을 방기하는 태도야말로 사대주의이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이다.

(148)

탈원전은 이미 역사의 대세다. 우리가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화력발전을 확실히 포기하는 일이다. 원전을 폐쇄해도 갈탄 사용을 중단하지 않고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독일은 세계 갈탄 소비 국가이고, 대형 전력회사들과 지자체들이 관련되어 있어 탈석탄은 쉽지 않다. 독일에는 이미 폐쇄된 원전들이 있는데, 해당 지역에 그와 연계된 일자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발전소 폐쇄가 지역경제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갈탄은 다르다. 게다가 이 지역들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며 높은 실업률과 인구 감소까지 겪고 있다. 따라서 갈탄산업을 대체하려면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을 주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주에 대해서는 연방정부의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165)

문재인 정부는 단지 양심적인 진보파 정부라는 자기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적어도 동확농민전쟁 이후 최초로 성립된 민주정부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사실 김대중 정부도 군사독재세력(김종필)과 연합함으로써 가능했고, 노무현 정부의 출현 역시 재벌세력(정몽준)과 어느 정도 손을 잡은 결과였다. 그래서 결국, 정권 탄생 시의 근본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이명박이라는 희대의 사기꾼과 박근혜라는 극단적으로 아둔하고 무책임한 인물에게 정권을 내주는 참사가 빚어졌던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등은 물론 군사독재와 오랫동안 싸워왔던 민주화 투사들이 집권하여 정부를 운영한 정권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명실상부한 민주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최초이다. 이 사실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이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요소요소에 최고의 인재들을 등용하여, 사생결단을 한다는 각오로 온갖 부패, 비리, 부조리에 구조를 혁파하고, 역사의 진로를 용기 있게 개척해야 한다. 그런 안목과 결연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할 텐데, 좀더 두고 볼 일이지만, 실은 걱정이 많이 된다.

(174)

예를 들어, 당장 개헌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금의 국회에서는 결코 정당한 개헌안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사는 다음 선거에서의 재선이다. 선거법을 개정하고 헌법을 보다 민주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부차적인 관심사일 뿐이다. 게다가 자기들의 재선 가능성을 줄이거나 특권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선거법 개정은 절대로 용납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도 지난번 원전문제를 처리할 때처럼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다. 실은 최근에 몽골에서도 헌법을 개정하면서 공론조사 방법을 채택했다고 한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시민들이 나서서 이를 관철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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