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버리기 때문이지.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 다카시마 아카시라는 사람의 연주는 재미있었다. 수면의 잔물결, 시원스레 지나가는 바람, 칠흑 같은 우주까지 보였다. 저 사람 역시 자기만의 음악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308)

하지만 굉장히 어려울 거야. 진정한 의미로 음악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음악을 가둬두는 건 홀이나 교회가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이야. 경치가 아름다운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고 해서 진정소리를 데리고 나갔다고 할 수 있을까? 해방했다고 할 수 있을까?

(433)

은하계 변두리 어딘가에 지구하고 비슷한 조건의 별이 있고, 비슷한 공기에 음파도 비슷하게 전달된다면 역시 음악이 발달하지 않을까? 그러면 비슷한 악기가 발달한 테고, 피아노 같은 무언가를 은하 어디선가 열심히 연주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 글쎄.”

마사루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가능성은 있겠다. 그러면 그 별에도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있을지 몰라.”

(468)

프란츠 리스트 작곡, 피아노 소나타 나단조.

1852년부터 1853년 사이에 작곡, 초연은 1857.

리스트는 이미 피아니스트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그의 제자 한스 폰 뵐로가 연주했다.

걸작으로 칭송받는 이 곡은 소나타 형식으로는 상당히 이색적이다. 소나타라는 이름을 붙인 탓에 발표 당시 이 곡이 소나타인지 아닌지를 둘러싸고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너무나 참신한 구조 때문에 매섭게 비난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에서는 주제부와 전개부가 악장별로 연주되는데, 이 곡은 악장이 나뉘어 있지 않고 전체가 하나로 이어진 1악장 형식이라는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들 수 있다.

30분 가까운 대작으로 어려운 곡이 많기로 유명한 리스트의 곡 중에서도 다양한 기량이 요구되는 최고 난이도의 곡이다.

(538)

가자마 진이 허공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나 혼자 남아도 들판에 피아노가 굴러다니면 끝없이 연주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해.’

세상에 나 혼자.

이런 곳이야?’

아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황야.

바람이 분다. 어딘가 멀리서 새소리가 들린다.

드높은 곳에서 빛이 쏟아진다.

휑하고 척박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충만해지는 장소.

맞아, 이런 곳이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하지만 음악은 본능인걸. 새는 세상에 한 마리만 남아도 노래하잖아. 똑 같은 것 아닐까?’

(641)

라흐마니노프의 악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런 걸 어떻게 치란 말이야,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야말로 악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 아닌가 싶을 만큼 수많은 음표들. 양손 화음이 끝도 없이 잔뜩 늘어서 있는 새까만 악보.

동경하던 낭만적인 2번을 몰래 연습해보았을 때는 해서는 안 될 장난을 치는 기분이었지. 물론 그때는 결국 흉내도 내지 못했다. 띄엄띄엄 연주하는 게 고작이라,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할 체력도 기력도 없었던 것이다.

(654)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아주 조금, 지상의 중력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언가를 덧붙인다면.

음악을 한다는 것이 그에 가장 합당한 답 아닐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나타나는 순간에 곧 사라지는 음악. 그 행위에 정열을 쏟고, 인생을 바치고, 마음을 강하게 빼앗기기 때문에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에게 덧붙은 작은 마법 같은 옵션 기능이 아닐까?

, 어느 정도 진실을 담아낸 답인 것 같아.

(674)

아아, 알 것 같아. 옛날에는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듣고 기록해왔는데, 지금은 아무도 자연 속에서 음악을 듣지 않고 자기 귓속에 가두어두지. 다들 그게 음악이라고 생각해.

맞아. 그러니까 갇혀 있던 음악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자고 얘기했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선생님도, 나도 몰랐어. 선생님은 이제 안 계시지만 나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어.

(693)

뮤직. 그 어원은 신들의 기술이라고 한다. 뮤즈의 결실.

소년은 뮤직이다.

그가 곧,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곧 음악이다.

음악이 달려간다.

이 축복받은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음악이, 하나의 음악이, 고요한 아침을 가르며 바람처럼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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