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취임한 지 석 달이 가까워 옵니다만, 지금까지의 그의 언행은 국가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해온전임자들과는 무척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운영의 책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에 대한 설명책임과 시민들과의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시점에서 국가에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돌보는 것임을 잊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취임 직후 그가 가장 먼저 발표한 정책제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그리고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국회 안팎에 아직 광범하고 뿌리 깊게 포진해 있는 기득권세력과
수구 언론들의 완강한 저항과 반대를 무릅쓰고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조치를 단행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11)
민주주의는 복잡한 이론을 필요로 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민중의 스스로의
운명과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는, 즉 자기통치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정치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윤리적으로 커다란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핵전쟁의 가능성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상황을 타개하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파스트트들이나 유사 파시스트들은 주장하지만, 실제로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
점을 지금 한국에서 ‘촛불혁명'의 성과로 모처럼 민주정부가
들어서서 그동안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적 가치와 제도를 살리기 위해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실험들은 일본의 여러분의 주목과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5)
이런 면에서, 영미권의 산업 민주주의란 독일의 경제 민주주의와는 달리
그 폭이 좁아요. 생산 현장 중심이죠. 독일의 경제 민주주의는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을 민주화한다는 구상인데, 영미식 산업 민주주의는 현장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단결권, 교섭권, 행동권, 참여권) 보장을 골간으로 해요. 이런
점에 견주면, 우리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균형 성장, 적정 분배, 남용 방지, 주체
조화)은 영미식 산업 민주주의보다 범위는 넓지만, 내용이
좀 추상적이에요. 특히 국가의 경제 개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민주화라기보다 국가화라고 할 수도 있겠죠.
(17)
그래서 예컨대, 제대로 된 일자리도 만들고 노동시간도 단축하고, 청년들이 자신의 꿈에 따라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도 고른 대우를 받으며,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의 경영 참가도 적극 보장하고, 주거나 교육, 의료나 노후 문제를 사회 공공성 차원에서 해결해내는 새 해법들이 나와야 해요.
즉, 경제민주화란 살림살이를 행복하게 하자는 거요.
(24)
-정치,경제 민주화가 이뤄진다면
일반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지겠죠. 아이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꿈을 꿀 수
있고, 어른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죠. 더 이상 ‘헬조선’이
아니겠죠. 물론 이 모든 건 지난한 과정이라 긴 시행착오와 학습과정이 필요해요. 시간도 걸리죠. 중요한 건 나부터 깨어난 시민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면서, 또 여럿이 더불어 토론하고 여론을 만드는 거죠. 또 현 선거제도의
맹점을 고쳐나가면서(연동형 비례대표제, 결선투표제 등의 도입을
통해), 정치,경제 민주화의 의지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을
선거에서 뽑아야죠. 이렇게 되면 일반인들도 정치,경제에 더
많은 관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될 거예요.
(48)
결국, 뒤떨어졌다고 하는 아시아인들을 근대화시키기 위한 서구인의 노력은, 그것이 아무리 진지하고 이타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존경과 감사는커녕
원한을 불러일으켰다. 토착민들은 자신들이 깃들어 살던 오래된 사회적,
정치적 질서로부터 쫓겨나고 또한 서구적인 것이 지배하게 된 세계에서 인간적 존엄성이 부정된 결과, 늘
서구를 서구 자신의 게임법칙으로 패배시키기를 꿈꿨다. 앙드레 말로의 예언적 소설 <서양의 유혹>(1926) 속에 등장하는 중국인 지식인은
“유럽은 지금 유럽식 옷을 입고 있는 이 모든 젊은이들을 이미 정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럽을 증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른바
유럽의 ‘비밀’이라는 것을 알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비밀 중 많은 것을 지금 아시아인들은 손에 넣었다.
(51)
세계화 경제의 수혜자로서 이 아시아인들이 갖고 있는 자기 이미지는, 물질적으로
성공하고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목적지를 향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신감에 찬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나
인도는 경제의 세계화로 인한 단절을 중국보다 훨씬 더 눈에 띄게 드러내고 있다. 인도는 경제의 몇몇
부문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기대감을 높여놓고는 그 혜택은 매우 좁게 분배하고 있다. 그리고
환멸과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를 확대해온 결과, 허다한 사람들이 흔히 포퓰리스트와 종족주의적인 정치가들이
먹이가 되고 있다.
(116)
왜 많은 나라가 공론조사를 정책결정에서 주요한 기준으로 활용할까? 그
이유는 공론조사 방식이 갖는 탁월한 장점 때문이다. 공론조사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쟁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1차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1차 조사 결과의 의견 분포 및 인구통계학적 특성(지역별, 계층별, 성별, 세대별
등)과 일치하는 토론 참여자 표본을 선발한다. 표본은 많을수록
좋지만 토론 장소의 협소성과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우리나라 핵발전소
문제에 있어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301~501명 정도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155)
높은 질의 삶을 지향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한 자연스런 흐름이다. 이
덕분에 한 사회의 문화는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흐르며 변화무쌍해진다. 특히 혁신적인 기술의 산물이 등장했을
때에는 유행처럼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 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가 초래한 것은 인류가 예상치
못했던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었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되묻게 한다. 결국 우리는 인식하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대규모의 산업적 기술보다 지역에서 자급자족에 필요한 기술이며, 지나치게 첨단으로 가기보다는 오래된 전통 기술과 눈높이를 맞추는 절충된 기술이라는 것을 말한다.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과 인력으로 짓고, 만들고, 고치고, 사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거대 산업기술이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는다면, 자급자족을 위한 기술은
덜 위험하고, 폐해를 일으키더라도 회복이 가능하고 빨리 복원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적정기술의 철학으로서, 도시든 농촌이든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어떤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쓸지에 대한 기준이 된다.
(169)
결론적으로, 나는 확신을 가지고 강조한다. 사회적 자본과 사회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마을공동체는 존속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의 비무장상태로, 사회안전망의 무방비 상태로 추진하는 모든 공동체사업은 사기이거나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평균적 능력의 주민,시민들은 오로지 먹고사는 문제, 안전하게 사는 문제에 일상과 평생을 진력해야 하는 절박한 숙명에 처해 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데 이웃과 공동체를 챙길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이런 개인들이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바람대로 기계적 연대를 벗어나 사회적 분업을 통한 유기적 연대로 옮겨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폭주하면서 사회가 혼돈상태에 빠지고 규제가 도통 먹히지 않는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걱정하는 현대사회의 실상이 아닌가.
(198~199)
동생 허균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누이가 생전 꿈에서
받아 적은 시에 “푸른 바다 아득히 요해에 잠기고 푸른 난새 채색 봉황에 기대었는데 붉은 연꽃 스물일곱
송이 서리 내린 차가운 달빛 아래 떨어지네”라고 하더니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3에 9를 곱하면 27로
누이의 나이와 같다. 사람의 일이란 미리 정해진 운명이 있어 피할 수 없음이 이와 같단 말인가?
또 평하기를,
누이의
시는 모두 천성에서 나온 것이다. 유선시를 즐겨 지었는데 시어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익힌 음식을 먹는
속인들은 따라갈 수 없다. 문(文)도 우뚝하고 기이한데 사륙문(四六文)이
가장 좋다. 백옥루상량문이 세상에 전한다. 둘째 형(허봉)은 일찍이, “난설헌의
재능은 배워서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이백과 이하가 남긴 노랫말을 읊은 것이다”라고 평했다. 아, 살아서는
부부 금슬이 좋지 못했고, 죽어서는 제사 받들 자식이 없으니 아름다운 구슬이 깨져버린 원통함이 그지없다.
(204)
내가 대학시절 잘 읽었던 소설가 중에 이병주라고 있다. 특히 식미지시대를
신문기자처럼 혹은 역사가처럼 관찰하던 시선과 간결한 문제가 인상적이었지. 조금 엘리트주의적이었지만. 신화를 공부하면서 그때 그가 어떤 연재소설 앞머리에 붙였던 제사가 퍼뜩 떠오르곤 했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는 말. 나는 이제껏 역사와 신화를 이보다 더 자신 있게 비교하는
말을 본 적이 없어. 우선은, 역사와 신화가 낮과 밤처럼
다르다는 뜻이겠지. 태양은 양이고, 달은 음이야. 태양이 질서와 논리라면, 달은 혼돈과 주술이야. 낮이 의식과 이성이면, 밤은 무의식과 감성일 테고. 낮에는 일을 하고 기록한다. 밤에는 잠을 자고 꿈을 꿔. 기록에 대해서는 기억이겠지. 역사가 사실과 관련이 있다면, 신화는 허구요 마법과 관련이 있지. 시간에 대한 인식도 아주 달라. 역사의 시간이 직선이든 나선형이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전의 그것이라면, 신화의 시간은 발전과는 상관없어. 그저 텅 빈 시계판 위를 빙빙
돌 뿐이야. 역사에는 종언이 있어도, 신화에 대해서는 종언을
말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