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럼에도 선거제도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선거로만 대표자를 뽑아서 의회를 운영하는 제도만으로는 옳게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갈수록 많은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근년에 들어 세계적으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생각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 숙의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시민의회인 거죠. 그러나 당분간은 선거제도와 추첨제가 같이 가야 되지 않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국회를 없앨 수는 없잖아요. 현재의 국회가 무슨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너무나 뿌리가 깊으니까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은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부터 혁파해서 비례대표제를, 최소한 독일 수준 정도까지라도 확대하는 게 긴급한 과제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시민의회에 대해서도 생각을 계속하면서 그 실현 방안을 열심히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27)

저는 우선 지역정당이 우리나라에서 허용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지금 5개 지역에서 1,000명씩 당원을 모집해야 (전국)정당 설립이 가능한데, 이런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정당을 허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풀뿌리 조직에서 정치에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겠죠. 시민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상시적으로 계속 올릴 수 있는 단위들을 강화해야 될 것 같아요. 지역정당을 허용한다는 건 이중 당적도 허용한다는 거죠. 지역적으로는 어느 당, 전국적으로는 어느 당, 이렇게 이중 당적도 가능해야 됩니다. 그럼 여성주의든 동물권이든 이슈별로 다양한 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고, 선거 때도 이런 정당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겠죠. 이런 정치생태계가 가능하도록 선거법과 정당법을 바꾸기 위해서 저는 시민의회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55)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의 실천이 단 한 가지 절차에 매달리는 일은 별로 없었고, 오로지 선거에 집착하는 근대적 관행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예외적인 것이다. 베르나르 마냉은 근대혁명들과 더불어 정치의 장에서 제비뽑기가 왜 사라졌는지, 의문을 최초로 제기하였다. 그의 대답은 두 개의 관찰에 근거했다. 첫째, 근대 공화국의 창설자들은 선출된 귀족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원했다. 따라서 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적 방법이라고 말한 무작위 선출 방식을 거부한 것이다. 둘째, 자연법사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동의의 이론이 너무나 광범하게 퍼져 있어서 공식적으로 시민들에 의해 승인을 받지 않은 정치적 권위는 어떤 것이라도 정당성을 갖는 게 어려워 보였다는 점이다.

 

(61)

불편부당성

네 번째, 광범한 역사적 경험에 토대를 둔 무작위 선정 미니-퍼블릭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는 그 불편부당성이다.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 전문가들, 조직화된 이해관계자들은 특정한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강한 경향성을 갖고 있다. 그와 반대로, 무작위 선정 방법은 옹호해야 할 어떠한 이해관계도 갖지 않은 비당파적 인물들을 고르게 포함하고 있고, 그들은 토의 및 숙의 절차에 의해서 공공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리도록 장려된다. 이 점은 환경문제나 미래세대의 삶의 조건을 보전하는 문제를 포함한 장기적인 현안들을 다룰 때 특히 높은 가치를 갖는다.

 

(81)

그렇다면 최근 우리가 경험한 말이 안되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째서 말이 안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이 안되는 것들의 실체는 국가-재벌 복합체라는, 일종의 중독시스템이다.

중독시스템이란 무엇인가? A.섀프의 <중독사회>에 따르면, 중독시스템이란 중독행위를 조장하면서도 또 그에 의존해 지탱되는 폐쇄적 체계로, 그 작동방식은 각종 중독 과정과 구조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중독행위들이다. 쉽게 말하면, 전체 사회시스템이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정점에 국가-재벌 복합체가 있고, 그 주변에 국회, 사법, 행정, 검찰, 언론, 대학 등이 동반 중독자로 아첨, 순종을 하며 예스맨이 된다. 이 패턴은 사회 전 영역에서 재현된다. 직장, 학교, 가정, 심지어 종교기관이나 시민사회단체들도 중독과정 속에 움직인다.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리더(또는 보스)가 돈중독, 권력중독에 빠져 속물적으로 움직이며 갈수록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추구한다. 리더는 물론 구성원들도 모든 걸 통제 가능하다고 믿고 만물을 이분법으로 보며, 만사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 지향적으로 움직인다. 구성원 대부분은 일중독과 소비중독, 관계 중독에 빠져 있으며, 애국심과 애사심, 부단한 경제성장을 절대시한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부인으로 일관하고, 오히려 그를 제거하거나 금세 순치해 그 수족으로 만들어버린다.

 

(96)

이는 1920 1 8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도산 선생의 임시정부 첫 신년사에서부터 언급된, 제법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소? 그렇지 않소. 대한나라의 과거에는 황제는 1인밖에 없었으나 금일은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요. 황제란 무엇이요? 주권자를 이름이니, 과거의 주권자는 유일했으나 지금은 제군이 모두 주권자외다. 주권자가 유일했을 때는 국가의 흥망은 1인에 달려 있었으나 지금은 국민 전체에 있소. 정부의 직원은 노복이니 이는 정말 노복이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다 제군의 노복이외다. 그러므로 군주인 국민은 그 노복을 선하게 인도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고 노복인 정부직원은 군주인 국민을 섬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오.”

 

(141)

소련에 속지말고/미국놈 믿지말고/되놈은 되나오고/일본은 일어나니/조선사람 조심하세.”

100여 년 전 조선반도에서 불렸던 동요다. 유럽에서 17세기 베스트팔렌조약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근대적 주권국가 개념이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요원하다 국가와 민족은 분단되어, 남쪽은 주권을 스스로 반납하며 그 대가로 강대국 전략경쟁 불바다에 섶을 지고 뛰어들고 있고, 북쪽은 주권을 과잉 행사하며 강대국의 전략경쟁에 빌미를 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백 년은 근대적 주권 개념을 21세기에 맞게 구현하는 지혜를 요구한다. 그런 지혜야말로 21세기를 다른 백 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100여 년 전 불렀던 동요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194-195)

이들 중에서 정약용이 누구보다 사랑했던 제자는 황상이었다. 황상은 아명이 산석(山石)이고 호는 치원(巵園)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된 이듬해인 1802 2월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황상이 그가 머물고 있던 주막으로 찾아오면서 시작되었다. 황상의 성품을 단박에 알아본 정약용은 황상이 양반이 아니어서 과거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시를 짓도록 권면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그에게 주었다.

- 내가 산석(황상)에게 문사(文史)를 닦도록 권하니 그는 머뭇거리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 둔하고, 둘째 막혀 있고, 셋째 미욱합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공부하는 자에게는 세 가지 큰 병통이 있는데 너에게는 하나도 없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는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 짓는 재주가 좋은 것으로 이는 부화(浮華)란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것으로 이는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대저 둔하지만 집요하게 뚫어내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질 것이고, 막혔지만 잘 소통시키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질 것이며, 미욱하지만 잘 갈고 닦는 사람은 빛이 날 것이다. 뚫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근면함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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