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어째서 사람들이 자장면, 스파게티, 낙지볶음같이 맛난 음식들을 제쳐두고 휘발유, 유리, 신문지, 톱밥 따위를 먹고 있는 걸까. 인간은 아니 모든 생물은 자신이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단 한 번에 알아낸다. 그것을 가르시아 효과(Garcia Effect)라고 한다. 그러니까 가르시아 효과에 따르면 한두 번 재미로 톱밥이나 유리를 먹을 수는 있지만 곧 ! 이것은 인간이 차마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 나는 인간이므로 인간의 본분을 지켜야지하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정상적인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인간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식료품을 규정하는 이 세계의 상상력을 전복시키고 일대 충격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믿거나 말거나> 같은 프로그램에 한번 출현해보려고?

(32)

나는 혜성의 충돌, 기상이변, 한 미치광이에 의해 잘못 눌러진 원자폭탄의 발사, 공기전염되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출현, 인공지능과 기계문명의 가공할 발전 등등의 이유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질서 때문에 스스로 종의 역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도대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마친 인류가 이백 년 전에 만들어낸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인간사회의 이곳저곳을 빨아먹고서 이제 인류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괴물로 자라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79)

현대인은 아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요. 전기가 발명되고 매머드 도시가 등장한 이후로 현대의 밤은 일종의 교란상태에 빠져 있죠. 게다가 자본주의가 선물한 최고의 유산은 바로 불안이에요. 보험, 증권, 부동산, 주식…… 현대 경제는 불안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알다시피 불안은 숙면의 최고의 적이에요. 그리고 불면은 다시 불안을 만드는 악순환이 진행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늘 불안한 겁니다. 반대로 원시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영적인 존재였죠.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이었고 해가 지고 나서는 꿈을 꾸고 쉬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니까 신의 섭리에 따르면 삶의 반은 일하고 나머지 반은 꾸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밤에는 잠만 자자는 얘긴가요?”

(200)

이 우주적 가르침에 따르자면 한 개체가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의 사이클이란 언제나 자신의 시간단 하나뿐이다. 우리에게 이해심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애당초 이해란 걸 할 수가 없다. 번개돌이는 달을, 달은 토끼를, 토끼는 번개돌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더 빨리 늙어가고, 누군가는 더 빨리 배가 고프고, 누군가는 더 빨리 사랑했다가 더 빨리 식어버리고, 또 누군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졌다며 밤새 죽을 듯이 울고 난 다음날 새로운 남자와 또다시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나를 왜 사랑하지 않느냐.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 내가 너희만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어쩌자고 이따위냐? 같은 말뿐이다.

(201)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이외에도 아주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얼토당토않고 무모해 보여도 그것은 그들이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한 필연적인 질서라는 것을 모른다. 모르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는 충고를 한다.

이봐, 이제 프리셀은 그만두고 좀더 생산적인 일을 골몰하는 게 어때?”

내가 프리셀을 빼앗아버리면 그는 아마 자살해버릴지도 몰라하고 말하면 사람들은 농담하지 말라는 투로 피식 웃는다. 하지만 정말이다. 프리셀 이외에 이 지루하고 막막한 세계를 견디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는 정말로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릴지도 모른다.

(269)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공포를 혹은 공포의 환상을 물리적인 세계에서 실제로 만난다. 환상 속의 악어는 실제로 사람을 물어죽이고, 삼십 센티미터 높이의 계단에서 떨어지면 온몸이 바스러진다. 그들은 악어를 상상해서는 안 된다. 악어를 상상하면 악어는 곧장 진짜 악어로 바뀌고 그들을 공격한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인 악순환이 시작된다. 환상 속의 악어를 실제로 만난 환자는 더 무섭고 강력한 악어를 상상하게 되고, 그러면 이빨이 더 커지고 몸이 더 부풀어오른 거대한 악어가 그들을 공격한다. 처음에는 살을 할퀴고, 두번째는 발가락을 물어가고, 세번째는 다리 전체를 물어가고, 결국에는 그들을 잡아먹어버린다.

이제 다시 물어보자. 당신은 아직도 침대 밑에 있는 악어가 가짜 악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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