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내가 쓰는 이 책에도 꽃들의 사진이 무수히 들어가지만, 내게 있어 모든 꽃 사진은 인내와 땀, 그리고 시간의 결과이다.

 

(74)

원래 군사분계선 가까이 접근하면 어느 쪽에서든 발포하게 되어 있는 것을 충분이 알고 있었지만 꽃이 있다는 말에 정신이 홀린 것이었다. 다른 조사단원들은 모두 점심을 먹고 있던 터였기에 내가 그곳까지 가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 열심히 기어가는데 노란색의 표지 말뚝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쳐다보니 군사분계선 표지였다. 아차, 번쩍 정신이 들어 더욱 몸을 낮추고 우선 바로 앞 건너편 진지에 있는 북한군 병사들의 동향을 살폈다.

 

(81)

당시는 눈에 이상이 온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다시 백령도까지 강행군을 하여 8월 말이 되어서야 조사 활동을 끝맺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눈 한쪽이 하얗게 덮여 백내장이 와 있었다. 누가 봐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증상이 확연했지만 감히 병원을 찾을 수도 없었다.

서울에 들어오자마자 빚쟁이에 시달렸고 더구나 외상으로 가져간 필름 값을 구할 길도 없었다. 끝내는 필름 값 때문에 사무실에 집달리가 와서 딱지까지 붙이는 소동도 벌어져 앞이 더 안 보였다. 야생화를 찾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사무실 차압은 면할 수 있었다.

 

(141)

나는 여기서 커다란 경험을 했다. 우리 토종식물 같으면 그렇게 무성하게 번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구에서 들어온 이 외래식물들은 그 높은 강원도 함백산 고원지에서도 잘 견디니 서울의 우리 집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그 모습을 보고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이 말뱅이나물 외에도 그와 비슷한 돼지풀, 달맞이꽃, 서양등골나물을 비롯한 여러 귀화종들은 우리 땅을 무섭게 뒤덮고, 더구나 우리 토종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비록 그 한 종의 외래식물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긴 했지만, 직접 길러보고 나서 커다란 경험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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