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켄드릭 씨, 제가
처음 당신 그림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도 될까요. 저는 속으로 말했어요. ‘이 사람은 강한 사람이구나.’ 눈에는 걱정도 있고 아픔도 상처도
있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안에는 따뜻함과
친절함이 있다. 그리고 이제 알겠습니다. 이건 좋은 아빠의
얼굴이네요.” 테오는 액자 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전 알아볼 수 있었어요. 이 사람은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라는 걸요. 화가는 그걸 명징하게 담아냈어요. 켄드릭
씨, 직접 만나서 다시 한번 영광입니다.”
(182)
“예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좋은 예술’을 정의하는 건 더 어렵죠.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좋은 작품이 아니라 좋은
반응만 있는 걸지도요.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예술 작품이
익숙한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게 해주거나, 우리가 느껴왔어야 할 감정을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게 해준다거나, 우리가 이 세상 속 어디에 서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면, 그런
작품이 ‘좋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품이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면, 그것이
예술이 지닌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189)
“그렇다면 이른바 ‘좋은 예술’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겠죠? 좋은 예술은 아이에게도, 거장에게서도 나올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고요. 이런 관점은 비평가들, 특히 현대 비평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무엇이 예술로서 정당한지, 무엇이
가치 있고 없는지, 그걸 자기들이 정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싶어 하죠.”
(232)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 잘못일지도요. 엘렌, 나이가 들수록 저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는 게 있어요. 이 세상이
알게 되는 모든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껏 살았던 사람들의
책임이라고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적인 건 아닐지 몰라도,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쩐지 우리는 세상의 모든 상처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282)
토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지만 문장은 여전히 툭툭 끊겼다. “테오… 전쟁이
나를 바꿔놓은 게 있다면, 최소한 정직하게 만들었겠지. 전쟁이
눈을 뜨게 했어. 인간이란 종족에게 갖고 있던 그 어떤 낭만적인 환상도 사라졌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들이 자랑할 게 뭐가 있겠나. 정글, 공포, 총… 그리고 어설픈
애국심이 합쳐져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우리 모두 안에
살인자가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해.”
(308)
테오는 말을 이었다. “아마 기자님도 항상 시절
문학 시간이든 혹은 따로 공부를 하시다가 위즈워스를 읽어본 적이 있겠지요. 워즈워스는 한 시에서 선한
사람의 삶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작고 이름 없고 기억되지 않는 친절과 사랑의 행위들’이라고 쓴 적이 있어요. 아마
<틴턴 수도원>이라는 시였죠? 작고, 이름 없고, 기억되지 않는 것. 우리는
원래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특히 요즘 세상 사람들은 무언가 ‘큰 것’, ‘입 소문 나는 것’, 그런
것들을 좋아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워즈워스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373)
“예야, 세상에는
정의도 있고 자비도 있단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면 나는 늘 자비 쪽으로
가라고 말하고 싶구나. 혹여 실수하더라도 자비를 베풀다 실수하는 것이 낫다. 잘못된 자비는 잘못된 정의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진 않아. 그리고
항상 기억해라. 하나님의 눈은 다 보고 계신다.”
(448)
가까운 친구 중 안과 의사가 있는데, 아주 철학적인
분입니다. 그분은 부모가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형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은) 아이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를 가까이 안고 눈을 마주치는 것. 이보다 더 단순한 일이 있을까요? 또 이보다 더 심원한 일이 있을까요? 이보다 무모와 아이를 크게
변화시키는 일이 또 있을까요?
(536)
나는 감사하는 늙은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다.
지금처럼 살아가거라. 사랑하는 아이야.
진실을 구하라.
아름다움을 만들어라.
좋은 삶을 살아라.
사랑한다, 내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