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생각해보세요. 학교란
기관은 생각보다 기회를 주지 않아요, 실용적이지도 않고도. 평생을
공부했는데 우리가 누군지도 모른 채로 사회에 던져지죠. 먹고는 살아야겠으니 알바하다가, 공부했다가, 어영부영 취업했다가,
다시 퇴사했다가, 쉬다가, 반복 또 반복, 그러다 까딱 잘못하면 고립 청년이 되고요, 좀 잘되면 견딜 수 있는
작업을 찾는 거죠. 그런데 하나의 일을 꾸준하게 해왔다는 건 인내와 끈기가 있다는 거거든요. 게다가 악기는 한 곡을 연주하기 위해 수없이 같은 것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잖아요. 섬세함도 갖춰야 하고요. 저는 김정한 씨야말로 청년귀농프로그램이
원하는 인재상이라고 보거든요.”
(88)
방진 커튼을 펼쳐 안으로 들어선다. 아침 햇살처럼
따스한 황색의 LED 라이트가 공간을 빼곡히 덮고 있다. 창문
하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일한 태양이 되어주는 인공 불빛 아래 층층이 펼쳐진 사육 틀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각사각. 잎을 갉아 먹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먹는 일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한없이 입에 잎을 밀어 넣는 말랑한 생명체들. 밀가루 반죽처럼 부드럽고 젤리처럼
탱글거리며 하얗지도 노랗지도 않은 반투명한 빛깔로 살이 오르는 나의 말캉한 몸뚱이들. 이들이 내가 키우는
빵충이다.
(102)
‘누님이 밀었잖아요’라는 투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저 피식 웃음으로 흘려보내며 엑셀을 밟았다.
낭만 농부라니, 세상에. 그 촌스러운 별명이
웃기면서도 싫지 않았다. 낭만은 서울에 다 두고 온 줄 알았다. 어쩌면
내가 두고 온 건 커피와 담배, 대마, 새벽 감성에 취해
끄적이던 곡들. 그리고 한탄과 질투로 여름날 아스팔트 위 껌처럼 엉겨 붙은 지독한 예술병이었는지도 모른다. 트럼펫으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지자, 어린 날의 그때처럼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서울의 비좁은 자취방에 살 때와 다르게 이곳은 뒷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어떤 소음 공해나
항의 없이 마음껏 불어댈 수 있었으니까. 한껏 마음속 쌓인 음표들을 내지르고 나면 속이 뻥 뚫린 것같이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