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말라리아에서 시작된 두 시간의 사색 끝에 월리스는 자연선택이론을 완성해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게 발전하고 도태하는 자연의 자정 작용은 필연적으로 다음 세대를 진보하게 할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열등한 종은 빨리 죽을 것이고, 우월한 종은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즉 가장 적응을 잘한 종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것이다. 월리스는 자신이 지금까지 표본을 수집해온 정글이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기후 변호, 가뭄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계속 변해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오랫동안 찾아온 자연의 법칙”을 깨달았다.


(59)

당시 다윈은 이미 <종의 기원> 3판을 출간하며, 자연선택 이론의 ‘주인’으로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있었다. 월리스는 다윈의 명성이 높아진 것을 보고도 전혀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학계는 이제 월리스를 학자로 대우했다. 영국 조류학협회는 월리스를 명예회원으로 인정했고, 동물학회는 그를 특별회원으로 지정했다.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이렇게 발표했다. “월리스 같은 사람은 한 세대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인물이다. 열대의 야생 밀림을 아무 탈 없이 돌아다니기에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충분한 자격을 갖췄고, 대단히 훌륭한 수집품을 모았다. 게다가 그 수집품을 분석해서 아주 현명하게 결론을 도출했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류학자, 존 굴드는 월리스의 표본이 앞으로의 연구에 아주 요긴하게 쓰일 ‘완벽한’ 자료라고 단언했다.


(73-74)

산업이 발달할수록 이러한 수치는 더욱 커졌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이아몬드 깃털을 자랑하던 1798년 프랑스에는 깃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자가 25명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862년에 이르면 120명까지 증가하고, 1870년경에는 280명까지 급증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깃털을 뽑고 가공하는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미가공 깃털 상인 조합’, ‘깃털 염색업자 조합’, ‘깃털 산업 어린이 노동자 보호 협회’ 같은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1890년대 프랑스에는 거의 4만 5000톤에 달하는 깃털이 수입됐다. 런던 민싱가에 있는 경매장에서는 4년간 극락조 15만 5000마리가 거래됐다. 같은 기간, 현재 가치로 약 28억 달러에 달하고 무게로는 총 1만 8000톤에 달하는 극락조가 거래되었다. 한 영국인 딜러는 1년간 새 가죽 200만 장을 팔았다. 미국의 깃털 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1900년대까지 8만 3000명의 뉴요커가 모자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북미 지역에서만 매년 약 2억 마리의 새들이 죽어갔다.


(285)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박물관 표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일정 시간 후에는, 아마 100년 정도는 되겠지만, 표본들에서 뽑아낼 수 있는 과학적인 데이터는 이미 모두 뽑아냈겠지요. DNA로 이제 더는 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들의 역할이 뭐죠? 그 새들이 멸종되지 않고 더 오래 살게 하려는 것이었죠. 하지만 제대로 안 됐잖아요. 지금도 멸종되는 새가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죠. 밀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345)

그들은 모두 수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계속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또 다른 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냐,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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