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ㅣ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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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유시민 님의 유럽 도시 기행 시리즈인 <유럽 도시 기행> 세 번째 책을 이야기하려고 해. 이번 3권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대표적인 도시 네 곳을 이야기해줄게. 이베리아 반도의 대표적인 도시 네 곳을 말하라고 하면, 이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이 책에서 소개한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라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구나. 스페인 도시 두 군데, 포르투갈 도시 두 군데. 지난 <유럽 도시 기행>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번 책에서도 유시민의 인문학적 지식과 솔직한 관광지에 대한 평가로 이 곳들을 여행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구나.

 

1.

첫 번째 도시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편이란다.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서 대항해시대까지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도시라고 했어. 18세기 이후 발전이 이루어진 곳이라서 다른 유럽의 도시에 비해 오래된 역사 유물은 없다고 하는구나. 스페인이 대항해 시대를 거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나 대항해 시대가 지나고 나서는 독재자 프랑코의 오랜 독재 시기로 인해 다른 유럽에 뒤쳐지게 되었대. 세계 대전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어서 전쟁에 피해가 적었지만, 유럽 주류 세계에서 멀어지게 되었어. 그러다가 1970년대 총리인 아돌프 수아레즈의 개혁으로 스페인 민주주의 기틀을 마련하여 오늘날의 스페인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마드리드에 있는 국립고고박물관( MAN)을 방문하고 스페인의 오랜 역사를 이야기해주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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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에서 파악한 스페인의 역사를 요약해 본다. 역사를 몰라도 마드리드를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지만 알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베리아’라는 지명과 관련이 있는 최초의 인간 집단 ‘이베로’ 부족은 3,600여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건너거나 해변을 걸어서 들어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철기를 들고 남하한 셀따(켈트) 족이 이베로 부족과 결합해 오늘의 스페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셀띠베로(celtibero) 부족을 형성했다. 페니키아와 그리스 상인들이 찾아와 기술과 문화를 전해주었으며, 로마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처절한 싸움을 벌인 끝에 로마 군대가 주요 지역을 점령했다. 라틴어로 이스빠니아라고 했던 이베리아반도는 기독교 세계에 포섭되었고 가스띠까, 까달루냐, 갈라시아 등 상이한 언어를 쓰는 열러 문화권이 무너진 5세기 이후에는 게르만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토착민과 손잡고 똘레도에 왕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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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비롯하여 역사 박물관, 프라도 미술관, 소피아 미술관과 소로야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과 미술관에 방문한 느낌을 이야기해주었단다. 박물관과 미술관이라…. 너희들과 아빠가 좋아하는 동선은 아닌 것 같구나. 스페인을 대표하는 여러 화가들이 있는데 그 중에 고야라는 화가의 작품들이 프라도 미술관에 많이 있어서 그의 작품에 대해 여러 편 소개해 주었는데, 그림은 잘 그리는 것 같지만, 말년에 그린 그림들은 좀 기괴해 보여서 아빠 취향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림들은 스페인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의 야만성과 민중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서 그렸다고 하는구나.

예술가들은 이렇듯 시대상을 반영할 줄 알아야 하지. 고야보다 더 유명한 스페인의 화가 피카소도 1937년 스페인 내전 중 독일 공군이 프랑코를 지원하려고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을 기리기 위한 <게르니카>도 마드리드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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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유시민은 마드리드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마드리드에 대한 단상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주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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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가 어떤 도시라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스페인의 수도이지만 제일 잘사는 도시도 아니고 가장 아름다운 도시 또한 아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무엇을 바라면서 어디로 나아가려 하는지는 분명했다. 총칼 앞에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정치인의 이름을 국제공항에 걸었다.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인간의 이성을 깨웠던 예술가를 잊지 않았다. 실패했지만 옳은 길을 가려 했던 지도자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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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두 번째 도시 바르셀로나는 까딸루냐의 주도(州都)란다. 까딸루냐는 예전에는 독립된 나라였으나, 이사벨-페르난도 공동왕의 스페인 왕국 창설 이후 스페인에 복속되어 마드리드에 억눌리고 때로는 짓밟혔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까딸루냐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독립을 하려고 한단다. 2017년에는 까딸루냐 자치정부가 주도한 주민투표에서 43퍼센트 투표율에 90퍼센트 독립에 찬성표가 나와서 독립을 시도했으나 스페인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중앙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무산되었단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까딸루냐의 주도 바르셀로나이니,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는 얼마나 앙숙인지 잘 알겠지? 그런데 무력을 사용하면 불법이 되잖아. 그래서 그걸 대신하는 것이 축구란다. 프랑코 독재 시절 언어와 깃발과 자유를 빼앗긴 까탈루냐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축구였단다. 독재 정권의 근거지였던 마드리드의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만은 기필코 이겨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 그래서 오늘날까지 강팀으로 남아 있는 것 같구나. 예전에 바르셀로나 소속의 포르투갈 출신 축구 선수인 피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레일 마드리드로 이적을 해서 배신을 느낀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피구 선수에게 강한 적대감을 보였다고 하는구나. 그들의 역사를 알면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구나.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축구는 축구 그 이상일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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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가우디가 있단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건축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평들이 있다. 1882년에 착공한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 얼마 전에 드디어 완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 건물 또한 가우디의 작품이란다. 사후 100년이 지나서야 완공이 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봐도 압도적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 실려 있단다. 동화 같은 장식으로 꾸민 구엘 공원에도 가우디의 작품들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하는구나.

바르셀로나에는 피카소 미술관이 있는데, 피카소는 젊은 시절 바르셀로나에서 지내면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구나. 입체파 화가가 되기 전에 정교한 그림을 이 시절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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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번째 도시는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이란다. 리스본은 영화나 소설에서도 많이 등장한단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포르투갈 출신인 주제 사라마구도 <리스본 쟁탈전>이라는 소설을 썼단다. 아빠는 이 책을 읽으려고 오래 전에 사두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구나. 유시민 님의 <유럽 도시 기행 3>에서 이 소설을 잠깐 소개해주었는데 포르투갈 12세기 무어인에게 빼앗긴 리스본을 탈환하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더구나. 이왕 주제 사라마구 이야기를 했으니 포르투갈의 또 다른 유명한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도 이야기했구나. 페르난두 페소아는 <불안의 책>으로 유명해서 아빠도 읽어보긴 했는데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단다. 유시민 님도 페르난두 페소아는 자신의 취향은 아니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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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의 정신은 외모보다 더 특이했다. 연금술, 신비주의, 마법, 비밀결사, 점성술에 심취했고, 셰익스피어와 나폴레옹 같은 역사 인물의 별자리 운세 모음집을 만들었으며, 바이런 스타일의 영국 낭만주의부터 보들레르가 대표하는 프랑스 상징주의와 엘리어트의 모더니즘까지 온갖 문예사조를 섭렵했다. 1935년 가을 복통과 고열 증세에 시달리다가 사망한 그는 영어로 된 책 네 권과 포르투갈어책 한 권밖에 출간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양의 원고와 스케치를 남겼다. 포르투갈 국립국서관은 나무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원고를 시민들에게 공개했고, 정부는 페소아의 관을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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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은 1755년 엄청나게 큰 지진과 쓰나미로 도시 전체가 거의 파괴되었다고 하더구나. 그 때 도시 재건에 있어 큰 공을 세운 사람이 폼발 후작이라는 사람이야. 폼발 후작은 전결권으로 받아서 도시 재건을 하는데, 그가 설계한 바이샤 지구는 현대적인 격자형 도로망과 내진 설계를 적용한 건축물로 만들었고, 완전히 새로운 리스본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까르무 성당은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을 완전히 복원하지 않고 남겨두어 자연의 무서움과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는 상징물이 되었대.

그리고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알아두어야 할 한 가지 중에 카네이션 혁명이란 것이 있단다. 카네이션 혁명은 1974년에 일어난 것으로 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인데 시위를 하는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아주어서 카네이션 혁명이라고 한다. 카네이션 혁명은 피를 흘리지 않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점에 큰 의의가 있어. 어느 나라든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힘이 있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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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지막으로 뽀르뚜를 알아보자. 보통 포르투라고 하는데, 원어에 좀더 가까운 발음은 뽀르뚜라고 하는구나. 유시민 님은 뽀르뚜를 ‘걸음을 멈추게 하는 도시‘라고 했는데, 그 어떤 표현보다 좋은 평가를 해준 것 같구나. 현대 사회 어디를 가든 바쁘고 정신 없는 것이 일상인데, 강변에서 여유를 누리고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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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365)

한 가지 더, 중세와 근대 역사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정복 전쟁을 일삼았던 포르투갈 왕국은 대항해 시대의 짧은 전성기를 지나 유럽의 변방 국가로 되돌아왔다. 공화주의 혁명을 이룬 뒤에는 살라자르의 장기독재를 겪었다. 그런 역사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다해 이웃과 싸우면서 남을 정복했지만,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은 것도 없다. 이기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좋다. 이웃을 적으로 삼기보다는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붐비는 거리에서도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친구나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충분히 들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이방인에게도 경계하고 의심하는 표정이 아니라 여유롭게 환대하는 미소를 선사한다. 리스본과 뽀르투 사람들한테서 나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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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르뚜의 대표명소로 상벤투 역과 렐루 서점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렐루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에 하나라고 소개했어. 아빠도 꼭 한번 가보고 싶더구나. 뽀르뚜에는 도루강이라는 유명한 강이 있는데 그 강가에 파스텔 톤의 건물들과 노천 카페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좋고, 도루강 건너편 가이아 지구에서는 와인 저장고들이 있는데 이곳도 소개해 주었단다. 그 외에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뽀르뚜에 있는 국립 미술관에 들러서 뽀르뚜 출신 여성 화가 아우렐리아 드 수자의 작품들에 대해 소개해 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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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 정도 책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구나. 여행은 아무래도 이런 책을 통한 간접 여행보다 직접 여행을 해야겠구나. 여행을 다녀오면 한 단계 더 성숙한다고들 하잖니.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 경험한 것들이 자신의 세포에 새겨지면서 내적 외적 성장을 만드는 것 같구나.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핑계인 것 같지만 바쁜 일상이 발목을 잡는구나. 짧든 길든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느낌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그것 또한 쉽지 않은 실천인 것 같아. 사진으로나마 많이 남기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듯 하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를 다녀왔다.

책의 끝 문장: ‘잘 있어. 또 올게!’



스페인 내전은 제2차 세계대전과 뒤이은 냉전의 예고편이었다. 20세기의 모든 이념이 충돌해 참혹한 비극을 일으켰다. 독일 히틀러와 이탈리아 무솔리니는 프랑코에게 병력과 물자를 지원했고, 소련 스탈린은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결성한 반파시즘 ‘국제여단’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했다. 프랑코는 1939년 3월 마드리드와 발렌시아를 점령해 공화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3만여 명의 정치적 반대자를 처형했다. 수십만 명의 공화주의자들이 가족과 함께 페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를 탈출했다. 내전에서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의 수가 50만 명이 넘었다. - P18

나는 MAN에서 이런 충고를 들었다. ‘스페인이 무엇인지 묻지 마.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의 모든 도시에서 네가 보고 겪고 마주치는 것을 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스페인 땅에 있는 모든 것, 스페인 사람이 가진 모든 것, 그게 스페인이거든.’ - P40

바르셀로나 사람들한테 1714년은 우리의 1592년이나 1910년에 해당한다. 마드리드 편에서 펠리페 5세가 전쟁을 벌인 끝에 스페인 왕위 계승권을 지켰다고 했다. 전쟁의 발단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카를로스 2세한테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영토가 갈가리 찢어질지 모른다고 걱정한 그는 스페인 왕국의 통합을 유지한다는 조건을 걸고 프랑스 루이 14세의 손자 필리프 공작을 왕위 계승자로 지명해 스페인 왕 펠리페 5세로 옹립했다. 그러자 빈의 합스부르크 왕실과 독일 바이에른 왕실이 저마다의 연고를 내세워 스페인의 왕위가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했다. 1701년 전쟁이 터지자, 해외 식민지 소유권과 노예무역 해상권을 두고 스페인과 대립하던 잉글랜드와 네덜란드가 끼어들었다. 중세 내내 벌어졌던 유럽 왕족과 귀족들의 영토쟁탈권이 스페인 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 P128

‘리스본 대성당’은 작고 소박했다. 초라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 대주교가 있어서 간단히 ‘대성당’이라고 하는 그 집은 12세기 중반 레콩스키스타 직후 지었으니 리스본에서 제일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건축 기술이나 국력으로는 그보다 크고 화려한 성당은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지진이 잦은 곳이라 자주 수리했고 수리할 때마다 유행하는 교회 건축양식을 덧붙였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건물은 로마네스크, 예배당 회랑은 고딕, 실내장식은 로코코 스타일이었다는데 대지진에 다 부서져 불타버렸다. 대성당은 두 가지가 특이했다. 첫째, 군사요새 같은 외관은 레콩키스타 시대의 전투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둘째, 중앙 설교대 위 넓은 공간에 성가대 나무 의자를 놓았다. 특별히 볼만한 게 없다는 걸 알았지만 가톨릭 국가의 수도를 방문한 여행자로서 예의를 지키려고 들렀다. - P229

여행지에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렸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객관적으로 더 고상하다든가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다. 책을 서점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이 총포와 같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총포처럼 위력 있는 것은 새롭고 유용한 지식과 정보이지 문자 텍스트를 인쇄한 종이책이 아니다. 세상은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섰다. 책은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 또한 아니다. 책을 쓰는 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온 나는 책을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로 여긴다. 서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는 통념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 좋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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