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런데 1318년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교황이 마녀사냥을 허가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317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교황 요한 22세를 향한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범인은 놀랍게도 교회의 고위 사제인 주교였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교황을 살해하려 한 방법이 칼이나 무기가 아닌 주술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경악했고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분노한 교황이 마녀를 이단자로 단정할 논리적 근거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이단자와 마녀를 혼동하며 마녀사냥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후 프랑스 남부에서는 1320년부터 1350년 사이에 600여 명이 마녀로 기소되었고, 그중 400여 명이 화형에 처했습니다.


(47)

그렇다면 우리는 마녀사냥을 어떻게 경계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게을러지는 순간, 깨어 있지 않은 순간, 그래서 ‘쉬운 답’을 찾으려 하는 순간 마녀사냥을 일어납니다. 불행이 찾아왔을 때 문제를 똑바로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손쉬운 희생양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 희생양은 제거해야 할 악, 즉 현대판 마녀가 되는 것이죠. 게다가 오늘날의 사회는 수백 년 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고, 진실 파악은 그만큼 어려워졌습니다. 마녀사냥이 일어나기 쉬운 조건에 당면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백 년 전에 일어난 마녀사냥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지 속에서 폭력을 일삼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깨어 있기 위함입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마녀사냥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118)

다이아몬드 광산 근처에 살고 있는 한 아이는 외지인에게 다이아몬드 광석을 가리키며 “이건 대체 어디에 쓰는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외지인이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하자 아이는 “이 돌 안에 피가 들어 있어요. 갖고 있으면 불행을 가져와요. 우리 부족에서는 피를 부르는 돌이에요”라고 대답했죠.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에서는 그저 돌멩이에 불과한 다이아몬드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것입니다. 이처럼 권력자들의 다이아몬드 쟁탈전에 힘없는 국민만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124)

프리타운에 끔찍한 테러가 벌어진 후 UN은 다시 한번 시에라리온 내전에 관여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시에라리온의 평화에 도움이 됐을까요? 놀랍게도 UN은 평화유지군을 지원하겠다는 조건으로 또다시 카바 정부에게 반군과 협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강압에 못 이긴 카바 대통령은 결국 1999년 7월에 아프리카 토고의 로메에서 포데이 산코와 한 번 더 평화 협정을 맺었습니다. 로메 협정의 주요 내용은 ‘모든 적대 행위를 끝내고 반군을 무장 해제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포데이 산코의 처우와 관련된 조항도 있는데, 놀랍게도 그를 부통령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잔인한 학살을 일으킨 반군의 수장이 저지른 범죄 행위를 모두 사면하는 것도 모자라 부통령으로 임명하라는 조항은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UN은 시에라리온의 분쟁에 깊이 관여하기보다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라며 미온적 태도를 고수했습니다.


(152-153)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 끝났습니다. 과연 그 많던 나치 전범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대다수의 나치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반성은커녕 숨거나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남미 국가로 도망쳤는데 나중에는 가족들까지 탈출시켜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고 합니다. 독일 검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전범들이 남미로 도망쳤다는 1금 비밀문서를 확인했는데, 무려 9,000여 명이었습니다. 이 중 약 5,000명이 아르헨티나로, 1,500명~2,000명이 브라질로, 500명~1,000명이 칠레로 갔고 나머지는 파라과이와 우루과이로도 탈출했습니다. 당시 남미 국가들은 대체로 군사독재 정권이었기에 나치 전범들이 정착할 수 있었죠. 특히 백인 우월주의가 강했던 아르헨티나는 유럽 백인들의 이민을 장려한 만큼 나치 전범들을 선뜻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195-196)

사실 폴 포트가 사람들을 죽이는 데 명확한 기준과 이유는 없었습니다. 불만 많은 사람, 게으른 사람,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부터 인정 많은 사람, 용감한 사람, 똑똑한 사람, 개인주의자, 평판이 좋은 사람, 재주가 많은 사람,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죽였죠. 그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반대할 것 같거나 방해될 것 같은 사람은 모조리 죽였던 것입니다. 게다가 폴 포트는 색출한 사람만 죽이는 게 아니라 이들의 삼대까지 씨를 말려야 한다며 온 가족을 살해했습니다. 젖먹이들까지 가차 없이 죽였죠.


(225-226)

1918년 후반이 되지 프랑스와 미국에서 스페인 독감의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브라질과 카리브해 지역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 지역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스페인 독감도 폭발적인 확산세가 조금은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다고 스페인 독감도 끝난 것은 아니었죠. 해외에서 파견했던 군인들이 귀국하면서 호주에서 유럽으로 스페인 독감이 다시 퍼졌고, 미국 도시들에서도 산발적으로 독감이 퍼지다가 멕시코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숨진 사람이 약 1,500만 명인 데 반해 스페인 독감으로 숨진 사람은 5,000만 명에 달했습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던 것입니다. 제28대 미국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과 화가 구스타프 글림프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습니다. <절규>로 유명한 화가 뭉크도 스페인 독감에 걸렸는데 감염 전 자화상과 감염 후 자화상을 비교해 보면 그의 몰골이 심하게 망가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77)

과거에는 단순한 전통 의상이었던 히잡은 종교와 세속, 근대와 전통, 강요와 자유를 가르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히잡을 두고 여성을 향한 억압이라고 하거나, 종교적 문화일 뿐이라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히잡이 무엇을 상징하느냐가 아닙니다. 강압에 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유롭게 히잡을 쓰거나 벗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히잡 혁명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이제 용기를 내어 변화를 이루고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란 국민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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