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이번에 나 가고 나면 아들 혼자 잘 곳 찾으러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찾아 헤매고 있잖아. 그러다 만만 그곳의 전문보호사라는 사람, 난색을 표하며 하는 말이
가관이야. 딱한 사정이라 조언 주는 건데, 자폐장애라는 말은
숨기고 상담하래. 정 부득이하면 발달에 다소 장애가 있다고만 하래. 지적장애
뒤에 숨으라는 거지. 행동매뉴얼? 천만에. 현실은 금지매뉴얼인 거지. 사람들이 이 지경이야. 유일 보호자인 자신이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왜 마지막 선택이
동반자살로 몰리는지 짐작이나 되니? 요즘은 언론에서는 그런 기사 싣지도 않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세상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우리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73)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라, 따지고 보면 그닥 즐겁지도 않은 소식 전하는 꼴인지라 뭔가 송구하기도 하고,
‘나 몇 달 안 남았대’ 이런 얘기를 생글생글 해맑은 표정으로 하면 ‘이놈 진짜 갈 때가 됐구나. 정신적 문제인가?’ 할 것 같고. 무엇보다 한 사람 두 사람 만날 때마다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거든. 내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내 입으로 설명해야 하는 그
구차함. 딱 싫더라고. ‘말기암’ 이런 단어는 꺼내기조차 싫고, 듣는 사람은 또 뭔 죄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한테 그런 이야기나
듣고 있는 게 얼마나 재미없을까. 그러니 그런 대화는 미리 글로 대신하고 우린 즐거웠던 인연의 기억이나
회고하면 좋겠다 싶었어.
(85)
내가 집에 있는 걸 보더니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좋아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 없는 며칠 동안의 집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다
어디 산속에 데려다놓고는 이제 여기서 살라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 어디로 도망갔는지
자기 혼자 내버려둔 채 보이지도 않는 아빠를 얼마나 원망했겠어. 그 새벽에 그놈 좋아하는 스팸과 우리집
김치 잔뜩 넣어 부대찌개 만들고 라면도 끓여주니 단숨에 두 끼 이상을 먹더라. 그리곤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잠들었지.
(127-128)
사람 인생의 황금기라는 40대가 되며 전 일찌감치
독거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나홀로 자폐아들을 키우며, 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그러자 세상은 이제 아예 저를 빼놓고 돌아가더군요. 보란듯이. 대한민국에서 살인을 저질러도 복역기간 20년이 넘는 사례가 거의
없다던데, 제 형벌이 20년을 훨쩍 넘어가는 걸 보고 전
생각을 바꿨죠. ‘이건 현생의 업이 아니다. 전생에 정말
엄청난 죄를 지은 거다. 남들은 전생 최고의 중죄가 나라를 팔아먹는 거라는데, 난 최소한 삼국을 팔아먹은 게 분명하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망한 건 모두 내가 한 짓이다.’ 그랬다가 엄니마저 치매와 뇌경색을 앓게 되시고, 한 지붕 세 가족
중 이제 둘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됐을 때 또 생각을 바꿨죠. ‘삼국이 아니다. 난 지구를 팔아먹은 게 확실하다.’
(212)
‘대한민국헌법’을
시작으로 ‘장애인인권헌장’ ‘서울시장애인인권증진에관한조례’를 거쳐 ‘장애인복지법’까지
샅샅이 훑었어요. 장애인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바이블이자 실무지침서라는 600쪽짜리 <장애인복지시설 사업안내>도 꼼꼼히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곳에 길이 있었습니다. 비록 글이지만 말입니다. ‘글이 현실이 될 수 있으려나? 법과 지침이 현실이 되는 나라던가?’ 싶었지만 해야죠. 허구와 가상현실인 영화 속 시나리오는 아니니까요.
(230)
하지만 저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은, 청산의 맑은
블루가 아니었어요. 청산은 보이지도 않는 곳의 밤이었죠. 아들
없는 집에 남은 건 지독한 정적이었고, 27년간 짊어졌던 숙제를 내려놓자 찾아온 공허함이었죠. 아들이 정착한 청산은 비바람 없는 평화의 숲이고, 행복이 넘치는
땅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제 청산을 찾아야 합니다. 아들을
위해 비워둔 내 삶의 자리가, 이토록 짙은 어둠의 심연인 줄 몰랐으니까요. 아들을 보내고서야 실감한 짙푸른 상실, 새벽녘 찬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시리게 서늘한 짙은 쪽빛의 신새벽 하늘이 열렸습니다. 블루의
또다른 얼굴, 미드나잇 블루.
(306)
“그 원초적 기본인권을 위해 다른 인권이 어느 정도
침범받을 수 있느냐를, 최소한 직계 피붙이인 부모가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정상 아닙니까?” 늘 들어온 말이라는 듯, 별로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하네요.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못 합니다.” 딱 거기까지. 그리고 요지부동.
생존권 사수 투쟁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게 안 되면 당장 체험 입소를 아예 못 하잖아요. “피 몇 cc만 뽑으면 됩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결국 10명이 오면 3명 정도는, 무려 국립재활원의 무려 장애인 전담 건강검진센터에서도
성공하지 못한다네요. 그게 현실이랍니다. ‘장애인 전문 치과병원’에 이어, 이번엔 깊은 산속 ‘장애인
전담 건강검진센터’에서 또 쓸쓸히 퇴장해야 했죠. ‘전문’ ‘전담’ 이 단어는 국가고시를 거쳐 사용면허를 받은 사람들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보건복지부답지 않게 참 ‘박복한’ 병원을 만들었더군요.
(345-346)
이제 꿈을 포기하고 사람과 세상을 원망할 순서입니다. 그러기
싫어서, 그러면 원망 다음 순서는 끔찍하고 모진 그 결정을 이번엔 정말 실행해야 하기에 또 생각해보려
합니다. ‘아직 아닐 수도?’ 아, 돈 없어서 요즘은 항암주사도 못 맞고 있었지.’ 잊을 뻔했네요. 제 교수도 ‘이제는 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이 뭐가 남았을까?’하고 있다는 걸. 그 의사도 아들 살 곳 찾을 때까지만 살려달라는
제 말이 “그러세요” 한 책임감에 힘겨워하고 있단 걸. 이미 그가 말해준 의학적 통계적 평균 여명을 넘긴 아빠입니다. 아들
살길 찾아야 하는 제 삶의 마지막 소명, 그 간절한 소망이 저를 붙들었기에 그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는 제게 허락된 시간이 없습니다. 남겨진 방법이 안 보여서요.
(357)
글이 점잖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미 느끼고 계셨다고요? 이제는 지금까지처럼 하소연하기도 비굴해지기도 싫습니다. 제가 말
바꾸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가차없이 원망할 겁니다. 어쩌면 욕을 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향해서 크게 소리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 립니다. 네, 지금 저는 눈에 뵈는 게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올 겨울 이상하게 덜 춥다 싶더니 더럽게 춥네요. 속았습니다. 겨울이 끝난 줄 알았지 뭡니까? 아들이 시설에서 외롭게 버티던 날들. 그사이 년도가 바뀌어 황송하게도
아빠의 나이가 +1 되더니, 마지막 병원 입원중 시설로부터
지금까지와 다른 이상한 소식을 처음 듣고 퇴원하던 2026년 1월 8일, 갑자기 지독하게 추워졌죠. ‘왜
이리 춥지?’ 하며 옷도 벗지 못하고 무려 만 하루를 잠만 잤으니까요.
덜덜 떨면서, 염병을 떱니다. 그 무렵보다 지금이
더 춥구먼요. 계속 그러든가. 빌어먹을. 춥거나 말거나, 저는 지금 막 ‘쉼표’를 찍었습니다.
(400-401)
하지만 그럴 일이 없었어요. 바로 다음날 아침, 기숙사라면 사감쯤 돼 보이는 선생님이 일찌감치 전화를 걸어와 그러시더군요. “아시다시피
아드님의 ‘도전행동’이 우려돼서 함께하기는 힘들겠네요.” 그놈의 ‘도전행동’. 이
단어 말이죠. 자폐 치료교육 현장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복지 지원 분야에서는 늘 단골멘트죠. 주로 시설 관계자나 운영자들이
애용하는. ‘도전행동 때문에 단체생활 어려움’, 그러니 ‘입소 불가’, 혹은 ‘퇴소
처분’ 누구를 위한 단어랍니까? 누구를 배려하는 거죠? 누구의 시선이죠?
(403)
이 나라는 우리에게 늘 ‘밖으로 물러나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우리는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배제의 위협에
너무 길들여져 왔습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지하철의 경고방송에서도, 거주시절의 거절규정에서도, 열차도 시설의 안전이란 건 존재할 수
없는 단어입니다. 시설을 향해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을 뿐, 시설의
안녕을 위협하려고 도전한 적 없습니다. 그곳은 권력이 아닙니다. 강압적
경고를 할 자격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시설에 위험이 있다면 걷어내시고, 안전이 위협된다면 먼저 고치세요. 우리는 잘 준비된 시설의 ‘안전성 안으로’ 초대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배제가 아니라 배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