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9)
이장은 예초기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가을이
와도 밤을 다 주울 때까지는 풀과의 전쟁이다. 가장 쓸모 없는 것들이 생명력은 오지게도 질겨 고춧대가
찬바람에 시들 때도 저 홀로 무성했다. 그가 풀을 베다 진저리칠 때면 너무 글지 마라, 죽이는 니가 흔들겄냐, 죽는 쩌것들이 힘들겄냐, 양촌댁은 아들 편이 아니라 잡초 편을 들었다. 어머니 말이 옳기야
했다. 잡초도 가만 놔두면 고추나 가지처럼 적당히 크다 멈출 테지. 제대로
크지도 않았는데 싹둑 잘라내니 어떻게든 살려고 기를 쓰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그게 잡초의 운명이고 자나 깨나 잡초를 베어야 하는 건 농부인 그의 운명이다.
(78)
긴 한숨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어릴 때는 다슬기
잡고 취나물 뜯느라 애달프고 나이 들어서는 막걸리 사다 나르느라 고달픈 인생이었다. 하기야 들여다보지
않아서 그렇지 애달프고 고달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으랴. 고생이라곤 깃털만큼도 안 해본 줄 알았던 찌니들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아니지, 찌니들이 고달픈 게 맞나? 스스로 선택한 것 아닌가? 아닌가?
타고나길 그런가? 그럼 애달픈 게 맞나? 이장의
머릿속이 오뉴월 논바닥의 개구리라도 가득 들어찬 양 시끄러웠다. 이럴 때는 윤 선생의 예언도 쓸모가
있다. 이장은 가뿐하게 고민을 멈췄다. 워치케든 되겄제. 이것이 사람 구실하기는 어려운 대가리의 결론이었다.
(163)
이리 멀쩡하게 이삐고 잘난 것들이 워쩌자고 이상헌디로 빠져가꼬 지 무덤을 지가 판다는디 내
속은 워쨌겄냐? 시방도 속이 쌔롬쌔롬허다. 넘이 안 간 질로
가본들 고생만 씨게 해야. 살아봉게 넘들 다 가는 질로 조심조심 감시로 넘들맹키로 사는 거이 젤이드라.
(169-170)
수평마을에서는 한발짝만 내디디면 햇빛이고 바람이고 비였다. 유리창이
덜컹거리고 벽의 어느 틈으론가 바람이 새들면 창밖 풍경을 보지 않아도 바람이 부는 걸 알 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창문도 비에 젖고 벽도 눅눅해져 비를 맞고 있지 않은데도 빗속에 있는 듯했다. 집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자연은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잘 지어져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아파트에서와는 전혀 달랐다. 하기야 처음에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밤이
깊을수록 처연해지는 봄밤의 소쩍새 소리, 귀가 따갑도록 쉴 틈 없이 울어대는 오뉴월 개구리 소리, 머릿속을 두드리는 한여름 낮의 매미 소리, 가을밤 더욱 소슬해지는
고음의 귀뚜라미 소리,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듯한 깊은 밤 고라니의 험악한 울음소리가 어떤
벽도 없는 듯 여과 없이 귀에 닿았고, 하여 이 시공간을 무수한 동물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시시각각
인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늦가을부터는 밤이 고요해졌다. 고요해지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