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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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칠레 작가 중에 한 명인 루이스 세풀베다의 짧은 소설을 한 편 이야기해줄게. <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라는 책인데 동화와 소설 중간쯤 되는 그런 이야기란다. 제목을 보면 고래를 통해 바다를 보호하자는 내용의 책으로 예상되는데,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달빛 고래란다. 오래 전 고래들은 사람들과 어울려 도와가며 지냈단다. 칠레 해변에서 지내는 라프켄체라는 부족도 그런 부족들이었어. 그들은 바다와 바다에 사는 생명체들이 그들의 삶의 일부라고 생각했어. 라프켄체의 전설 중에 사람이 죽으면 트렘풀카웨라는 고래들이 나타나서 죽은 이들을 수평선 너머의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전설이 있단다. 그런 라프켄체와 함께 지내던 달빛 고래는 새로운 인간들을 보는데 그 인간들은 라프켄체 부족과 달리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았어. 오직 인간들만 자기들까지 싸우는 종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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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

인간들이 바다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만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작은 정어리도 다른 정어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느림보 거북이도 다른 거북이도 공격하지 않는다. 탐욕스러운 상어도 다른 상어를 공격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서 자기와 비슷한 이들을 공격하는 종은 인간밖에 없는 것 같다. 인간들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니 영 기분이 언짢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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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고래 이야기로 가득해서 읽다 보면 소설 <모비 딕>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자주 떠올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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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7)

꿈속에 나타난 장소는 우리 고래들이 모두 라프켄체 사람들을 따라가게 될 바로 그곳이었다. 해님의 보금자리를 둘러싼 바다는 언제나 투명할 정도로 맑고 고요했다. 오징어들이 새까맣게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데다, 거센 파도로 일지 않아 짝짓기하기에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게다가 주변에 어떤 위협도 없어서 참고래, 향우고래, 그리고 남방긴수염고래가 아주 작은 밍크고래 옆에서 자신의 웅장한 몸을 한껏 과시하기에 딱 좋았다. 그리고 바다에는 작은 생물체들이 풍부해서 대왕고래와 혹등고래, 그리고 모든 종류의 수염고래들이 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것 같았다. 고래들이 입만 벌리고 있으면 엄청난 양의 물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물을 다시 뿜어낼 때 수염이 맛있는 크릴새우만 걸러 내 목구멍에 남겨 주기 때문이다. 등이 은빛인 돌고래와 일각돌고래는 바다 밑 모래 속에 숨어사는 넙치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였지만, 볼썽사납게 싸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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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달빛 고래는 고래잡이 배와 만나게 되는데, 그 고래잡이 배가 암컷 고래와 새끼 고래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돼. 이에 화가 난 달빛 고래는 그 고래잡이 배를 전복시키고 사람들을 물에 빠뜨렸어. 이것은 마치 소설 <모비 딕>의 모비 딕처럼 말이야. 이 소설에서도 사람들은 모비 딕의 이름을 본 따 달빛 고래를 모차 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단다. 달빛 고래를 잡으면 거금의 포상금도 걸렸어.

어느날 달빛 고래는 고래잡이 배들을 다시 만나서, 이번에는 옆구리에 작살을 맞는 중상을 입었어. 하지만 달빛 고래도 질 수 없었지. 지느러미로 고래잡이 배를 두 동강 내고 사람들을 공격했단다. 한번 꽂힌 작살은 뺄 수 없었기 때문에 작살은 이제 달빛 고래의 몸이 되었단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줄 텐데,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그보다 이제 그 작살 때문에 사람들이 달빛 고래를 더 잘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어. 하지만 달빛 고래는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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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그래서 나는 등에 아홉 개의 작살이 꽂힌 채, 다른 고래잡이배를 찾으러 넓은 바다를 나갔다. 인간들이 무서워 벌벌 떨며 모차 딕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달빛 향유고래인 나의 임무는 그들을 쫓아 바다에서 몰아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인간들을 계속 쫓아다녀야 할 저주받은 운명.

,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의 힘.

, 바다의 가차 없는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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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고래잡이의 공격으로 달빛 고래의 몸에는 작살이 하나둘 늘어났단다. 그가 20년이 지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의 몸에 백 개 이상의 작살이 꽂혀 있었다는 하더구나. 그렇게 이야기를 끝이 났단다. 인간으로써 이 책을 읽으면서 고래들에게, 많은 생명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단다.

고래는 지능이 상당히 높은 동물들로 알려져 있단다. 다른 생명체들과 더불어 살지 않는 인간들을

고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능이 높은 고래의 입장에서 인간이라는 종은 자신들의 이기심에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어리석은 종이라고 생각할 것 같구나. 그리고 그들은 이미 기후 변화에 대한 대비책도 다 마련해두어 결국 인간이 멸종한 후에도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

이 책 뒤편에는 옮긴이의 말이 실려 있는데, 나중에 너희들이 이 책을 읽게 되면 옮긴이의 말도 꼭 읽어보길 바란단다. 이 작품에 대한 설명과 지은이 루이스 세풀베다가 이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을 잘 분석하신 것 같더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2014년 남반구의 어느 여름날, 고래 한 마리가 칠레 푸에르토몬트 부근의 한 자갈 해변으로 떠밀려 올라와 있었다.

책의 끝 문장: 세계의 남쪽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인간은 나의 덩치를 보고 언제나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를 차지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해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저렇게 커다란 동물을 무엇에다 쓸까? 태초부터 인간은 그게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인간이 처음 바다로 다가왔을 때부터 쭉 그를 관찰해 왔다. 그 결과 인간의 몸은 깊은 바다 밑을 알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물에 뜨는 것을 이용해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와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P19

내 이야기가 믿기지 않니? 할아버지 향유고래는 눈으로 계속 말했다. 너는 까마득히 먼 옛날 고래들과 라프켄체 사람들이 바다에서 약속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해. 우리 고래들은 크고 강한 반면, 인간들은 작고 연약하지. 우리 고래들은 먼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지만 인간들은 우리가 안전하게 머물게 될 그 장소에 이르는 길만 알고 있어. - P60

인간들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거야. 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그들의 탐욕과 야망을 막을 수 없어. 그들은 우리가 본 적도 없고 보지도 못할 지역에서 오는 거야. 그들은 오르노스곶이라고 부르는 곳에 오기 위해 여기처럼 엄청나게 큰 바다를 건너오고 있는 거지. 거기에 가면 배와 난파선의 잔해들이 해안에 잔뜩 쌓여 있단다. 그것들은 말은 못 하지만 인간들이 얼마나 무모한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끈질기고 집요한지, 자기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셈이지.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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