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레타 페이지터너스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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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이사벨 아옌데 님의 신작 소설을 읽었단다. 이 책은 2022 1월 코로나 펜데믹이 한창일 때 외국에서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말에 출간되었단다.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 빛소굴의 페이지터너스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구나. 페이지터너스 시리즈 중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번에 읽은 이사벨 아옌데의 <비올레타>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단다. 슈테판 츠바이크와 이사벨 아옌데는 아빠가 전부터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럴 수 있겠지만, 페이지터너스 시리즈 두 작품이 모두 재미있었으니 페이지터너스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도 한번 살펴봐야겠구나.

이 책이 코로나 펜데믹 시절에 출간되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이 소설의 내용과도 연관성이 있단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1920년에 태어나서, 2020년에 삶을 마치게 되는데, 1920년은 전세계적으로 스페인 독감으로 펜데믹을 겪던 시절이었고, 2020년은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펜데믹을 겪던 시절이었단다. 100년을 산 한 여인의 이야기가 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단다.

이사벨 아옌데의 다른 소설들처럼 이 소설의 주무대는 칠레이고, 한 사람이 일생을 들여다 보면서 삶 속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음과 삶이 얼마나 짧은지도 다시 한번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또한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역사이고, 소설이 아닌 실제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역사는 사람의 수만큼 있다는 말이 있단다. 아빠의 역사, 너희들의 역사도 같을 수가 없단다. , 그럼 지금부터 비올레타의 역사를 이야기해줄게.

 

1.

이 소설은 황혼의 끝자락에서 손자 카밀로에게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해주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단다. 주인공 비올레타는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던 1920년 칠레에서 태어났단다. 스페인 독감은 역사적으로 가장 무서운 독감 중에 하나였는데, 아빠는 스페인에서 시작하거나 가장 큰 피해를 입어서 스페인 독감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구나. 1차 세계대전 때 유행하기 시작한 정체 모를 독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어졌는데,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1차 세계 대전의 피해로 독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 피해가 비교적 적었던 스페인에서 먼저 이 독감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어서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구나.

아무튼, 비올레타의 아버지 아르세니오 델 바예는 방역을 철저하게 해서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스페인 독감에 걸리지 않았단다. 비올레타의 아버지 아르세니오 델 바예.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중간 이름과 성()은 익숙하지 않니? 델 바예. 아빠만 익숙하니?^^ 이사벨 아옌데의 소설 <세피아빛 초상>의 주인공의 집안이 델 바예 집안이었잖니. 비올레타의 아버지 아르세니오 델 바예도 이 집안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아빠는 확신했단다.^^ 왜냐하면 지은이 이사벨 아옌데는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다른 소설 속 인물들과 관련이 짓곤 했거든.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 아는 이름을 발견했단다. 아르세니오 델 바예의 어머니 이름이 니베아라고 했어. <세피아빛 초상> <영혼의 집>에서 나왔던 세레로 델 바예와 니베아 부부가 있었어. 그 부부는 열다섯 명을 낳았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아르세니오 델 바예는 그들의 아이 중에 한 명인 거야. 이것은 분명 지은이가 의도를 한 것이었겠지?

다시 소설의 이야기를 하자꾸나. 비올레타의 엄마는 마리아 그라시아라는 사람이고, 오빠들이 다섯 명 있었는데, 가장 큰 오빠인 호세 안토니오와 가장 친했단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이모들인 피아, 필가르와 함께 살고 있었단다. 비올레타는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여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났단다. 비올레타는 어렸을 때 조세핀 테일러라는 아일랜드 출산 가정교사로부터 공부를 배웠어. 조세핀 테일러는 고아로 힘들게 살았는데, 비올레타의 집에 와서 처음으로 가족 같은 사람들을 만났어. 비올레타의 집에 와서 지낸 지 2년 뒤에 종양으로 큰 수술을 할 때도 비올레타의 가족들이 잘 보살펴주어 회복할 수 있었단다. 특히 비올레타의 큰 오빠 호세 안토니오가 지극히 간호해 주었었어. 사실 호세 안토니오가 조세핀을 짝사랑하고 있었거든. 조세핀이 다 회복하고 나서, 호세는 청혼을 했는데 조세핀은 거절했단다. 어렸을 때 일하던 집에서 집주인으로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 트라우마로 남자를 멀리하게 되었거든.

조세핀은 어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바지입은 여자 테레사 리바스를 만나게 되는데 둘이 말도 잘 통하고 금방 친해져서 우정을 쌓아간단다. 당시 칠레에서 여자들이 바지를 입는 것은 반항의 의미까지 있을 정도로 진취적인 여성의 상징이었어. 그만큼 테레사 리바스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여성으로 페미니스트였단다. 조세핀과 테레사는 처음에는 우정으로 친하게 지냈지만,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단다. 호세만 가슴 아프겠구나. 호세는 조세핀과 테레사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도 모르고 10번도 넘게 조세핀에게 청혼을 했다는구나.

 

2.

시간은 빠르게 흘러 1930년 세계 대공황의 시대가 왔어. 미국에 시작한 대공황은 칠레에도 영향을 주어 아버지의 사업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단다. 아버지가 동분서주하여 회사를 살리려고 했지만, 끝내 파산은 막을 수 없었고, 집까지 빼앗기게 되었어. 그리고 아버지는 하지 말아야 할 결정을 했단다.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했어.

하루아침에 풍비박산이 된 비올레타의 식구들은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단다. 조세핀이 테레사에게 부탁을 해서, 테레사의 부모님인 아벨과 루신다가 살고 계신 칠레 남부의 나우엘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단다. 그곳은 조용한 시골이고 테레사의 부모님은 모두 선생님으로 아이들이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하여 아이들을 가르쳤단다. 그곳이 아무리 멀어도 마다하지 않으셨어. 그런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서 테레사가 진취적인 사람이 되었나 보구나. 테레사의 부모님인 아벨과 루신다는 비올레타의 식구들을 모두 받아주셔서 그곳에서 함께 지내게 되었단다. 비올레타는 테레사의 부모님과 함께 다니면서 교육을 받았단다.

그 시골에 파비안이라는 젊은이가 수의사 실습을 하기 위해서 왔는데, 비올레타는 파비안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비올레타의 오빠 호세 안토니오는 이제 청년이 되어 사크라멘토에서 목공건축사업을 시작하여 재기에 성공하게 된단다. 성인이 된 비올레타도 오빠의 일을 돕겠다고 사크라멘토로 가게 되는데, 남자 친구 파비안은 나무엘에 남아 있어야 했단다. 잠시 헤어져야 했지. 어느날은 어머니가 위중하다는 소식에 나우엘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오랜만에 모두 모인 6남매를 뒤로 하고 돌아가셨단다.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어. 칠레는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곳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워낙 큰 전쟁이다 보니 칠레도 혼란을 겪게 된단다. 혼란의 시간이 지나고 1945년 전쟁이 끝나게 되고, 드디어 비올레타는 파비안과 결혼을 했단다. 그런데 사실 비올레타는 결혼 전에 이 결혼을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했어. 어렸을 때 풋사랑으로 만나 계속 그 관계를 유지를 해왔는데, 자신이 파비안을 진정 사랑하고 있는지 잘 몰랐거든. 그래서 조세핀 선생님한테 상담도 했는데, 조세핀 선생님은 하지 말라고 조언했었단다. 하지만,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 없어서 파비안과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파비안은 수의사로 크게 성공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수의사가 되었어. 그리고 비올레타는 자신의 의심을 결혼하고 나서 확신을 하게 되었단다. 자신이 파비안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거지. 그저 유명한 수의사의 아내 연기를 하고 있는 거였어. 그러면서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파비안의 아내상은 너무나 달랐어. 집에서 살림 잘하고 아이를 낳아주는 아내를 필요로 했어. 결국 그들의 위태위태한 사랑은 덴마크왕족의 방문 파티에서 깨지고 말았단다. 이 파티에 초대받은 파비안과 비올레타도 참석했는데, 비올레타는 그곳에서 덴마크 왕족을 태우고 온 비행사 훌리안 브라보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그래서 파비안과 헤어지기로 했어. 당시 칠레는 이혼이 불법이었다는구나. 그래서 꼼수로 혼인무효라는 것을 많이들 했는데, 파비안은 절대로 혼인무효를 해줄 수 없다면서 비올레타에게 돌아오라고 했어.

한편, 홀리안은 비행조종사로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지냈어. 비올레타와 사랑에 빠진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단다. 사실 훌리안은 바람둥이에 나쁜 남자 스타일이었단다. 비올레타는 훌리안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는데, 훌리안은 이것을 문제로 인식하게 된단다. 더 문제는 그들이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거야. 파비안이 혼인 무효를 해주지 않기 때문에 비올레타는 아직 법적으로 파비안의 아내이니까 말이야. 비올레타는 첫째 아들 후안 마르틴을 낳고, 둘째는 딸 니에베스를 낳았단다. 첫째 후안은 비올레타를 닮았고, 둘째 니에베스는 아빠 훌리안을 닮았는데, 니에베스는 자라면서 아빠하고만 다녔단다. 10대일 때는 아빠 따라서 세계곳곳을 여행했단다. 비올레타는 아들 후안과 둘이 주로 지냈단다.

 

3.

나우엘에 사시던 테레사의 부모님들이 돌아가신 후, 그 집은 비올레타가 관리를 하였단다. 테레사는 여성 운동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조세핀은 여전히 이런 테레사를 뒷바라지하고 있었단다. 테레사가 폐암에 걸려 나우엘로 돌아와서 지내다가 얼마 안 있다가 죽고 말았단다. 조세핀은 상심하여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돌아오고 말았단다. 조세핀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혼자 살고 있는 호세 안토니오는 또 청혼을 하였고 조세핀은 이제서야 승낙을 했단다. 조세핀의 나이 62세였고, 호세의 나이 57세였단다. 비록 많이 늦었지만 호세의 사랑이 결실을 맺게 되어 아빠도 기쁘더구나.

그리도 파비안으로부터 드디어 결혼 무효 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사실 오빠 호세 안토니오가 뒤에서 힘을 쓴 것이란다. 하지만 비올레타는 지금 와서 훌리안과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 훌리안과 니에베스는 미국 마이애미라는 곳에 살고 있었는데, 훌리안은 비올레타에게 이제 함께 살자고 계속 졸랐어. 비올레타는 훌리안 때문이 아닌 니에베스 때문에 마이애미로 가기로 했단다. 그동안 소원했던 딸과 친해지고 싶어서 말이야. 하지만 니에베스는 많이 타락해 있었단다. 불량 아빠인 훌리안과 둘이 살다 보니 니에베스에게 제대로 된 길로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히피족이 되어 집에서 가출하고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어. 훌리안이 사설 탐정 로이를 고용하여 딸을 감시해 달라고 했어. 훌리안은 비올레타한테 함께 살자고 했지만, 그에게는 소라이다 아브레우라는 애인도 있었고, 비올레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단다. 비올레타는 훌리안을 더 이상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았거든. 비올레타는 마이애미에 계속 머물 수 없어서 칠레 사크라멘토와 미국 마이애미를 오가는 생활을 했단다.

1960년 칠레는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이 당선되었어. 아빠가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를 했는데, 이 소설의 지은이 이사벨 아옌데의 삼촌인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란다. 후안과 조세핀도 이 좌파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단다. 하지만 좌파 대통령이 되고 나서 반대파와 미국의 모략으로 사회는 큰 혼란을 가져왔단다. 이것은 나중에 비올레타 식구들에게도 영향을 주는데, 그건 조금 있다가 또 이야기를 해주고, 다시 딸 니에베스의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사설 탐정 로이는 거의 죽기 직전의 니에베스를 구출하여 병원에 입원시켰단다. 하지만 니에베스는 그 병원을 탈출하여 다시 사라졌어. 비올레타는 니에베스를 찾으러 다녔단다. 히피족이 다시는 곳, 마약 소굴이라고 부르는 곳들을 다녔어. 로이가 다시 니에베스를 찾았는데, 훌리안은 이번에는 니에베스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단다. 니에베스는 이번에도 병원을 탈출하여 사라졌어.

비올레타는 사크라멘토로 돌아왔는데 몇 달 뒤 로이로부터 연락이 왔어. 니에베스를 찾았다고다시 미국으로 날아간 비올레타는 니에베스를 만났는데, 여전이 약물중독이었고 임신까지 했단다. 비올레타는 니에베스를 진심으로 보살펴 주었단다. 니에베스가 어렸을 때 이후 둘은 가장 친하게 지냈단다. 니에베스도 뱃속 아기를 위해서 약도 끊고 건강을 되찾으려고 많이 노력했단다. 하지만 이미 몸은 무척 안 좋은 상태여서 임신중독까지 걸리게 되었단다. 결국 출산 중에 그만 니에베스는 죽고 말았단다. 건강한 아들 카밀로만 남긴 채 말이야. 비올레타는 딸을 잃은 슬픔도 잠시, 엄마 잃은 손자를 보살펴야 했지. 다행히 로이의 도움으로 비올레타는 카밀로를 로이의 멕시코 여자 사람 친구인 리타의 집에 머물게 되었어. 리타도 무척 착한 사람으로 비올레타와 카밀로를 잘 보살펴 주었단다. 카밀로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칠레 사크라멘토로 돌아왔단다.

 

4.

칠레로 돌아온 지 11개월 후 우익에 의한 군사쿠데타로 인해 좌파 대통령은 죽고 말았어. 그리고 좌파 대통령을 지지했던 좌파 인사들은 모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비올레타의 아들 후안도 쫓기는 신세였단다. 일단 나우엘로 도망갔지만 그곳도 안전한 곳이 못되어, 후안은 국경을 넘어 도망갔단다. 후안은 아르헨티나로 망명을 가서 기자생활을 했는데, 얼마 후 아르헨티나도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안전하지 못했어. 후안은 노르웨이로 망명을 갔고 그곳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정착을 했단다. 카밀로가 좀 큰 다음에 비올레타는 카밀로를 데리고 노르웨이로 가서 아들 후안을 만날 수 있었단다. 카밀로는 이제 노르웨이 사람이 다 되었고, 나중에 칠레가 다시 민주주의를 되찾은 이후에도 칠레도 돌아오지 않고 노르웨이에 계속 살았어. 가끔씩 식구들 만나기 위해 방문할 뿐이었단다.

후안의 망명을 도와준 노르웨이 외교관 하랄드 피스케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나우엘 시골까지 찾아왔단다. 외교관을 은퇴하고 왔다는데 비올레타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거야. 둘은 결혼을 했어. 비올레타 나이 65세였단다. 비록 많은 나이였지만, 비올레타는 가장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단다. 카밀로는 자라면서 사제의 길을 선택했단다. 비올레타가 반대하기도 했지만 손자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지. 그리고 세월은 빠르게 흘러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갈 수 없는 길을 떠났단다. 그리고 비올레타도 니에베스가 찾아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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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477)

한 세기를 살다 보니 시간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백 년은 어디로 갔을까?

너에게 고해성사를 할 수가 없구나, 카밀로. 너는 내 손자지만 네가 원한다면 내 죄를 사해 줄 수 있겠지. 그러면 에텔비나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거다. 죄 없는 영혼들은 우주 공간을 가볍게 떠다니며 별 가루로 변한다.

안녕, 카밀로, 니에베스가 나를 데리러 왔다. 하늘이 예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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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편지도 아빠의 기억력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단다. 한 사람의 삶을 읽다 보니, 아빠의 삶이 비록 지루하고 평범한 삶이지만, 기록으로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지금부터라도 일기를 좀더 열심히 써야겠구나. 늘 재미있고 깊이 있는 이사벨 아옌데의 또 다른 소설을 찾아 나서야겠구나.

,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사랑하는 카밀로에게

책의 끝 문장: 하늘이 예쁘구나.


역병에 걸렸다는 느낌은 무덤 저편에서 건너온 듯 그 무엇으로도 완화되지 않는 오한, 늪에 빠지는 듯한 열병, 몽둥이질을 당한 듯한 두통, 눈과 목이 타는 듯한 열기, 바로 눈앞에서 사신이 찾아온 듯 끔찍한 섬망으로 시작되었다. 감염자의 살갗은 청보라 빛을 띠며 점차 시커메지고 손발은 검은색으로 변했고, 숨을 못 쉴 정도로 기침이 터져 나오고 폐가 부글거리는 피거품으로 가득찬 채 고통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숨이 막혔다. 제아무리 운 좋은 사람도 몇 시간 안 걸려 목숨을 잃었다. - P20

인생의 여정은 한 걸음, 한 걸음, 하루하루, 충격적인 일 하나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지만, 그 여정에서 일어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기억에 새겨진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나처럼 오래 산 존재 안에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깃들어 있다. 내 가엾은 몸은 닳아버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정신은 아직 흐트러지지 않았다. 잊지 모하는 것은 내게 있어 저주란다. - P179

나는 딸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애가 살았을 때 해주지 않은 말을 마침내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너를 사랑했다고, 여러 해 동안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내 딸과 헤어질 수 있었고 안녕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애에게 키스하며 무심하고 소홀했던 내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내 딸로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었다. 내 마음과 아들의 마음속에 네가 언제나 살아 있을 거라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나를 버리지 말아달라고, 꿈속에서 나를 찾아와 달라고, 신호와 암호를 보내달라고, 거리의 모든 아름다운 아가씨의 화신으로 나타나 달라고, 가장 깊은 밤이면 영혼으로 나타나 주고 한낮에는 퍼져나가는 햇살로 나타나 달라고 부탁을 했다. - P316

우리는 오늘날까지 30년 동안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고, 강제 수용소, 고문, 살인, 수많은 사람이 겪은 탄압이라는 최악의 과거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 어느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실제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고 정보도 없었고 소문만 무성했다.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독재가 나라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데 필요한 조치였다며 정당화하곤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독재가 있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였다. 우리는 미국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고, 훌리안 브라보가 10년 전부터 경고한 대로 그들은 우리 대륙에 좌파 사상을 허용하지 않고자 했다. 러시아인들 또한 자기 통제권 안에 있는 나라들에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 P345

1980년대 말에는 세계도 우리나라도 우리의 삶도 많이 변화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28년 동안 독일을 갈라놓는 장벽을 하룻밤에 망치로 부수는 베를린 사람들의 행복감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소비에트 사이의 냉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어떤 나라는 평화를 희망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항상 어딘가에는 전쟁이 존재한다. 몇 가지 슬픈 예외를 제외하고, 오래 고통을 겪어온 온 우리 대륙은 최근에 와서 과거의 족벌, 혁명, 게릴라, 군사쿠데타, 폭정, 암살, 고문, 대량 학살의 역병으로부터 치유되기 시작했다. - P423

살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그 둘 사이에는 기억을 떠올려야 할 시간이 있다. 나는 이 며칠간 침묵 속에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물질적인 문제보다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한 이 유언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세세한 내용을 기록할 수 있었다. 나는 손으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 지 몇 년 되었다. 글씨도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어릴 적 미스 테일러에게 배운 우아한 글쓰체도 잃어버렸다. 그러나 관절염도 내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걸 막지는 못한다. 컴퓨터는 마비되다시피 한 내 몸에서 가장 유용한 수족이다. 카밀로 너는 나를 놀리고 있지. 내가 죽어가는 백 세 노인 중에 기도보다 컴퓨터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단 한 사람일 거라고 말이다.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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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3-26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표지가 인상적이라 강하게 자리잡는 책이네요.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지네요.

bookholic 2024-03-28 23:36   좋아요 0 | URL
북플과 알라딘 서재에서 가장 조심할 부분이죠..
장바구니에 책이 쌓이는 것... ^^
늘 즐거운 책읽기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