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도 2 - 봉오동의 그들
방현석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서 방현석 님의 <범도> 2권을 이야기해줄게. 함경도를 거점으로 다시 의병대를 조직해서 홍범도는 참모총장으로 활약한다고 했잖아. 홍범도의 의병대가 또 활약을 하게 되자, 이번에도 전국 의병연합대에서 합류할 것을 제안 받았단다. 이미 1권에서 유인석의 의병대와 연합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어서 지휘부 회의를 거쳐 이번에는 보류하고 독자적으로 일본군을 공격하면서 의병연합대를 지원하기로 했단다. 의병연합대를 알아보니 역시나 지휘부는 양반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단다. 나라를 위해 의병을 일으킨 뜻은 거룩하나, 아직 신분을 따지는 이 조직은 거룩하다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의병연합대를 이끌고 있던 대장 이인영은 일본군과 대전을 앞두고 부친상을 당하게 된단다. 그런데 부친상이 더 중요하다면서 고향으로 가버렸단다. 장례식 때문에 며칠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면 떠났다는구나. 유림의 입장에서 효()에 대한 예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의미겠지. 그렇다고 그 거대한 의병대를 이끄는 대장이 개인적인 일로 의병대를 버린다는 것이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의병대도 따지자면 나라에 대한 충()을 위해 모인 것인데, ()은 유교의 으뜸 아니던가. 아무튼 전국 연합의병대를 와해되었어.

한편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일본의 하세가와가 이끄는 대규모 정규군과 결전을 벌였단다. 총대장 임창근과 참모총장 홍범도가 이끄는 의병대는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단다. 하지만 많은 희생들도 있었어. 총대장이었던 임창근이 전사하고 말았단다. 그리고 홍범도의 아들 양순도 총상을 입었단다. 의병대를 이끌고 있는 이가 홍범도라는 사실이 일본군에도 알려지면서 집에 있는 식구들이 걱정되었단다. 이를 눈치 챈 다른 동지들이 홍범도에게 식구들을 피신시키라고 하여 총상을 입고 치료중인 아들 양순을 보냈단다. 하지만 약속했던 날이 지나도 양순이 오지 않았어. 그러자 몇몇 동지들이 홍범도를 비난했단다. 자기의 아들만 빼돌렸다고 말이야. 제 발로 의병대를 찾아왔던 양순인데, 그럴 리가 없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홍범도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유가 있었어. 계속된 일본의 회유 정책에 마음을 흔들리고 있던 이들이었거든. 그리고 의병대 사정도 좋지 않았어. 식량 부족으로 늘 굶주리고 있었고, 병기도 부족했어. 결국 홍범도는 산을 내려가는 것은 자유의지에 맡겼고, 일부 사람들은 의병대를 떠나 산을 내려갔단다. 그들을 기다라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죽음이나 감옥행이었단다. 일본의 간사한 말을 믿었던 대가였지. 일본에 속아 산에 내려갔던 이들 중에 차도선은 감옥에 갇혔다가 다시 탈옥해서 홍범도에게 돌아왔단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홍범도도 물론 그를 다시 받아주었어.


1.

아들 양순이 몰골이 초췌해져서 돌아왔단다. 어머니의 편지를 들고 왔어. 양산의 어머니, 그러니까 홍범도의 아내는 일본군에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했어.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양순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이 회유하는 내용이었어. 홍범도는 보자마자 가짜 편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어머니를 위해서 회유하자는 아들 양순에게 홍범도는 총을 겨누고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발사까지 했고 양순은 그 총에 귀를 맞아 다쳤단다. 주위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날 뻔했을 거야. 며칠 뒤 홍범도의 부인 수경이 일본군의 고문을 받다가 자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홍범도는 슬픔을 머금고 일본군과 계속 전투를 이어갔단다. 승전보를 올리기는 했지만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어. 홍범도의 아들 양순도 전투 중에 죽고 말았단다. 아내는 고문 끝에 자결을 하고, 아들은 전투 중에 전사하고마음이 찢어지겠지만, 홍범도는 겉으로 슬픔을 드러낼 수 없었단다.

어느날 백무아가 찾아왔단다. 1권에서 수경을 만나기 전에 잠깐 썸을 탔던 여인, 백무아. 기억 나지? 백무아는 미국에 갔다고 했잖아. 백무아는 미국의 정보원이 되어 다시 우리나라에 왔어. 백무아는 이제 조선 안에서 활동하기에는 역부족한 상황이라면서, 국경 너머에서 활동하라고 조언을 했단다.

일본군의 반격은 야비했단다. 홍범도의 의병대를 도와주었던 백성들을 무차별 사살했단다. 백무아의 말대로 일본군의 화력이 막강하여 정면 승부를 할 수 없었어. 친일 앞잡이를 상대로 한 테러를 했고, 그들로부터 군자금을 확보했단다. 그리고 홍범도는 일단 국경을 넘어가기로 결정한단다. 그 많은 의병대를 다 데리고 가기가 어려워 의병대는 해산하고, 자신이 이끌었던 저격여단의 소수정예만 데리고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갔단다.


2.

당시 연해주는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단다. 홍범도는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미래를 도모했단다. 홍범도가 연해주에서 만난 이들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기 전의 안중근도 있었고, 독립 운동의 대부 최재형도 있었고, 간도의 책임을 맡으며 독립운동을 하던 이범윤도 있었단다. 그 밖에 많은 이들이 있었는데, 아빠가 일일이 기억을 못하겠구나. 그리고 아빠가 다른 읽은 책들에서 등장하는 아들도 있었단다. 아빠가 몇 년 전에 책을 통해 알게 된 김 알렉산드리아도 나왔고, 얼마 전에 <독립운동 열전>에서 읽었던 철혈광복단의 조선은행 현금 탈취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단다. 안중근과 함께 의병 활동을 했던 엄인섭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 이야기도 <독립운동 열전>에서 나왔었지. 이 소설에서 다시 한번 이 이야기가 나와서 머리에 다시 한번 새겼단다.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이들이 가장 의지했던 세력은 바로 러시아였단다. 러일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일본의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거든.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러시아와 연합하여 일본을 공격하려고 했어.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국제 정세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어졌단다. 1914년 세계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얼마 후 러시아와 일본 모두 연합국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단다. 그러니까 같은 편이 된 거야. 두 나라 모두 자신들의 나라에 이득이 되기 위한 선택이었단다. 그러니 둘이 싸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단다. 일본이 연합국에 참여한 것은 일본은 독일이 차지하고 있는 산둥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술수였단다. 연합국에 참여하고 바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독일이 차지하고 있던 산둥반도를 공격하여 점령해 버렸단다. 유럽에서 한창 싸우고 있는 독일이 산둥반동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

러시아는 더 상황이 복잡했단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단다. 그러면서 1차 세계 대전에서 발을 뺐어. 독일이 망명 중이던 레닌을 소련 국내로 잠입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던 이유도 바로 러시아를 세계대전에서 발을 빼도록 수를 쓴 거지. 러시아 혁명을 성공한 러시아는 다시 흰 파와 붉은 파로 나뉘어 내분이 일어났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도 흰 파와 붉은 파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양분되기도 했어. 이 때 붉은 파 소속이었던 김 알렉산드라는 외무장관을 맡고 있었어. 홍범도는 대한독립군 소속으로 외무장관인 김 알렉산드라와 만났단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말이야. 그런데 안타깝게도 김 알렉산드라는 혁명 전쟁 도중 죽고 말았단다. 김 알렉산드라가 계속 살았다면 홍범도와 우리나라 독립운동에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3.1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연해주도 독립운동에 대한 열의가 더 뜨거워졌고, 홍범도도 대한국민회의를 통해 임시정부와 협력하게 되었단다. 대한독립군의 사령관이 되어 북간도 쪽으로 이동을 했고, 봉오동 전투를 치르게 된단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영화 <봉오동>은 한번 같이 보자꾸나. 아빠는 봤는데 한번 더 볼 의향이 있단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홍범도가 아니고 봉오동에 참여한 일반 의병들이긴 하지만 재미있게 봤단다.

봉오동에서 대승을 거두긴 했지만 일본군의 야비한 복수극은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 가슴 아팠단다. 이 부분과 청산리 전투 부분은 아빠가 예전에 읽은 김삼웅 님의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의 독서편지를 참고하렴. 그래서 그 때 쓴 독서편지 일부를 발췌해 보았단다. 아빠가 쓴 독서편지를 아빠가 쓰는 독서편지에 발췌하다니참 게으른 것 같구나.^^

=================================

1920 6 7. 독립전쟁 제 1회전이라고도 부르는 봉오동 전투. 이것은 사실 작은 전투에서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소규모 헌병순찰대를 격파했는데이에 일본군의 반격이 있었고, 삼둔자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일본군을 전멸시키는 성과를 냈단다. 이에 일본군의 대대적인 보복전이 있었어. 홍범도는 전략을 세웠어. 먼저 마을의 사람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는 마을 공동화 작전을 폈고, 이후 유인 작전 전술을 폈어. 그날 날씨는 천둥 번개를 동반하여 좋지 않았지만그것은 일본군에도 마찬가지. 봉오동에 있었던 전투에서 적군 5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단다.

봉오동 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다시 한번 대규모 보복전을 준비하였단다. 이번에는 중국군에 압력을 넣어 중국군까지 동원했어. 하지만 홍범도는 오히려 중국군을 회유했어. 하지만 계속된 일본군의 압박때문에 홍범도는 봉오동를 떠날 수 밖에 없었어. 봉오동 전투가 있고 4개월 뒤일본군을 간도 지역에 대규모 군대를 보냈어. 홍범도는 그들을 용정촌에서 100여 리 떨어진 화룡현 삼도구로 유인하려고 했어. 그곳은 깊은 계곡으로 전략적으로 먼저 진을 치면 유리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결전지로 정했단다. 이번 전투에는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도 함께 했단다. 한편일본군은 이 전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전에 음모를 벌였어. 마적단을 돈주고 사서 간도 내 일본 영사관을 공격하여 아홉 명을 죽이는 자작극을 벌였어. 이 사건은 훈춘 사건이라고 한단다. 이 훈춘 사건을 빌미로 대규모 일본군은 간도에 주둔하게 되고, 1920 10 21일부터 26일까지 청산리 지역에서 대규모 교전을 벌이게 된단다.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 전투천수평 전투어랑촌 전투맹개골 전투만기구 전투, 쉬구 전투천불산 전투고등하 골짜기의 전투까지… 사전에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우리 군은 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단다. 위에서 열거한 많은 전투들은 모두 홍범도의 연합독립군과 김좌진이 인솔하는 북로군정서군이 단독 혹은 연합적으로 수행했던 것이란다. 이 청산리 전투로 일본군은 1200 여명이 죽었어. 우리나라 독립군으로는 정말 큰 승리였단다. 홍범도도 이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단다. 이런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청산리 대첩에서 홍범도가 빠진 교과서로 배워야 했을까. 홍범도가 나중에 소련공산당에 가입을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는 한 사람의 의해서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도 있어.

잠시 그 이야기를 해볼게 나중에 해방이 된 후 북로군정서군의 장교로 있었던 이범석이 국무총리를 맡았는데, 그 이범석이 회고록을 썼어. 그런데 그 회고록에 자신의 업적을 과장해서 쓰면서, 홍범도를 나쁘게 왜곡을 해서 쓴 거야. 홍범도가 도망치다가 아랫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말이야. 아주 노골적으로 왜곡했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청산리대첩의 기록에는 홍범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러나 청산리 대첩의 진정한 주역은 홍범도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홍범도김좌진이범석의 세 주역들과 무명의 많은 독립군들그리고 간도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 이것이 청산리 대첩 승리의 원동력이었던 거야.

=================================

소설에서는 청산리 전투의 이야기를 마치고 세월을 쭉 돌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후 홍범도 장군의 삶의 마지막 부분을 이야기해주었단다. 청산리 전투 이후에도 자유시 참변 등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생략했어. 이 부분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아빠가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을 읽고 쓴 독서 편지를 참고해도 될 듯싶어. 아니면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를 통째로 읽으면 더 좋고 말이야.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와 소설 <범도>를 연이어서 읽으면 홍범도 장군님에 대해서는 박사가 되지 않을까 싶구나…^^

홍범도 장군의 삶을 돌이켜 볼 때, 누가 그보다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 싶구나. 군대 없는 나라 잃은 조국에서, 10대 소년 때부터 평생 진정한 군인이었던 홍범도 장군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나라 군인의 뿌리라고 할 수 있겠구나. 육군사관학교에서는 외면하고 있지만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홍범도 장군님의 진면목을 알았으면 좋겠구나. 육군사관학교가 더욱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야. 이 소설에서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란다. 이름 없이 의병 활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단다. 그들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단다. 좀 두껍긴 하지만 너희들도 좀 커서 읽어봤으면 좋겠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소문으로만 들었던 13도창의군의 통문을 내게 들고 온 것은 뜻밖에도 달음이었다.

책의 끝 문장: 정미공장은 고려극장 수위 자리를 잃은 그가 죽기 전에 몇 달 동안 품팔이를 했던 곳이었다.


스스로 싸우지 않는 자에게 차례질 권리는 없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김알렉산드라가 했던 말 위로 아주 오래전 다른 한 사람이 내게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겹치며 귓전에 울렸다. 부디, 당신이 양반과 침략자, 남자의 편에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선에서 양반보다 더한 계급이 남자입니다. 양반이나 아니나 다 그 더러운 계급의 혜택을 누린단 말입니다. 말입니다, 백무아가 조선을 떠나며 남긴 그 말을 들은 가을로부터 얼마나 많은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간 다음, 나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 그녀의 말을 듣고 있는가. 모든 차별과 억압, 침략에 반대하는 진정한 인민의 권력. 참된 민주공화정……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의 분신과 같은 소총을 꺼내들고 가늠자를 들여다 봤다. - P398

고려령 1고지를 떠나기 전에 나는 결과 특임분대 여덞 명의 분대장으로 남은 지휘관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라가 망한 이래로 우리가 의병이 되어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것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는 아니었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오직 의로써 싸워왔소. 그렇게 싸우다가, 저격여단의 창설자 김수협과 항일연합포연대의 청년중대장 현창하, 부중대장 이정재,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전사했소. 박한과 리범진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했고, 허위와 박상진이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소. 그들이 싸워왔기에 오늘의 싸움이 있소. 오늘 싸워내야 내일의 싸움도 있소. 이번에 싸우지 않으면 다음 싸움도 없소.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언젠가, 대한의 누군가가 못다 한 우리의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오. 그렇지 않소?"
- P54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3-12-05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bookholic 2023-12-05 23:23   좋아요 1 | URL
늘 먼저 와서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도 어느덧 한 달 남았군요...
서니데이 님도 늘 그렇듯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