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
자, 손은 인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손 덕분에 우리는 정교한 도구를 만들고 환경을 적절히 활용하고 동굴 곰이나 사자 같은 경쟁자들을 물리친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뇌는 손과 함께 진화했다. 손짓은 뇌의 발달을
촉진했다. 어쩌면 손의 움직임이 인간의 인지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활성화하는 주요 요인이었고, 정교한 언어 능력은 그 후에 발달했는지도 모른다. 뇌와 상당 부분
역시 손과 관련되어 있다. 손을 잘 조작하는 법을 파악하려면 뇌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야 한다.
(113)
1400년대 초 언젠가, 사카키라는 이름의 유명한 우즈베키스탄 시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불편한 몸으로 계속 움직이려고 애쓰는 ‘절름발이 개미’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젊은이를 소재로 독특한 시를 썼다. 마침 시 속의 젊은이도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용맹한 전사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젊은이는 용기 있는 작은 개미에게 크게 감동한
나머지 자신도 장애를 딛고 끝까지 해내겠다고 다짐하고, 또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시 속 젊은이는 세계적으로 위대하고 악명 높은 정복자 티무르였다.
(139)
에릭 에릭슨 같은 일부 프로이트 학자들은 루터의 가득 찬 장이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까지
했다. 즉, 화가 나 있고 고통스러워하며 변비로 고생하던
남자가 가톨릭의 권위에 맞서는 데서 위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당시에 현대의 변비약이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오늘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널리 신뢰받지는 못하지만, 심리적인 요인이 교감 신경계를 제약한다는
것은, 어느 학술 논문에 따르면 그래서 ‘결장이 더 길고
넓어지고 건조하고 움직임이 둔해진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어느 정도 사실이다.
(141)
물론 종교개혁 운동을 펼친 이들 중에는 장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를 비롯한 다른 핵심 창시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때가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가 탄생하기에 전반적으로 적절한 시기였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루터는 종교개혁가들 중 가장 주목받았고 분명 가장 거침없었다.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특히 자신의 장 활동에 관련하여
격렬한 불만을 자주 쏟아냈다. 그렇다. 1517년에 그가
얻은 종교적 깨달음은 변기에 앉아 입을 삐죽이며 찡그린 채 생각에 잠긴 수많은 경험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는
‘하지만 나는 악마를 물리칠 때 종종 방귀를 뀌어 쫓아 버린다’라고
하는 등 설교, 연설, 편지에서 배설물을 언급할 때 전혀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았다.
(221-222)
배역에 충실한 여느 충실한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바이런은 다이어트를 했는데, 체중을 줄이기 위해 설사약까지 사용했다. (그는 통통한 편이라 필사적이었다.) 한편, 그는 매우 넓고 다양한 팬층을 계속 끌어들였다. 어딘가 어두우면서도 잘 생긴, 전형적인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바이런은
예상대로 여성팬이 아주 많았는데, 이들 중 다수가 그에게 사인을 받거나 그의 머리카락 뭉치를 가지려고
안달했고 무엇보다 은밀하고 낭만적인 밀회를 원했는데…… 바이런은 이런 식의 탐닉을 꺼리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였고, 어느 정부의 말에 따르면 ‘미치도록 알고 싶지만 알고 나면 나쁘고
끔찍한’ 남자였다.
(237)
일부 신경학자들은 터브먼의 부상 후에 나타난 결과를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으로 본다. 이는 뇌의 외상으로 특별한 재능이 유발되는 증상이다. 서번트 증후군
자체는 자폐증을 비롯한 선천적 소아가 신경 질환을 앓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며 빈도가 100만 명 중에
한 명 정도로 매우 드물다. 후천적으로 갑자기 서번트 증후군이 발생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지금까지 약 50건의 사례만 기록되었다. 이는 대개 외상성 뇌 손상 이후에 발생하지만 뇌졸중 이후에 발생하기도 한다.
위스콘신 의학회가 인용한, 증거가 잘 정리된 사례는 열 살 난 소년이 야구공에 맞아 의식을
잃은 뒤에 발생했다. 의식을 찾은 소년은 달라진 뇌 덕분에 몇 가지 새롭고 놀라운 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중 하나로, 소년은 달력과 관련된 계산을 갑자기
놀라울 정도로 쉽게, 그야말로 몇 초 안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소년은
달력을 보지 않고도 주어진 날짜에 해당하는 요일을 빠르게 말할 수 있었다.
(249)
벨은 소리를 계속 연구했다. 그는 청력 측정기를
발명했고 세상에는 청력을 측정할 수 있는 최초의 수단이 생겼다. 또한 소리의 수준을 측정하는 단위로
데시벨(decibel)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벨’은 자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햇빛을 소리로 바꾸는 방법을 개발하여
광선 전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실험에 성공하자 아버지에게 “햇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라고 편지를 썼는데, 이는 무선 통신과
광섬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83)
레닌은 사망 직전에 집단 지도력을 촉구하는 스탈린을 당서기장에서 해임할 것을 권고하는 유서를
썼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들, 그중에서도 스탈린은 이를 감추었다. 스탈린은 주로 여론 조작용 재판과 처형을 통해 레닌 사후에 집단 지도부를 구성한 사람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사진을 조작하고 초창기 볼셰비키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신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잘못된 사실을) 강조하는 영웅적인 그림을 새로 그리게 하여, 대중이 머릿속에서 그와 고인이 된 존경받는 지도자를 서로 연관 짓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죽어가던 레닌이 어머니 곁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는데도 그 뒤를 이어 곧 독재자가 된 스탈린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레닌을 숭배하게 만드는 것은 스탈린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스탈린에게
필요한 것은 그 숭배가 지속되도록 레닌을 부활시키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좀처럼 제기된 적이 없는 정치적
의문이 제기되었다. 죽은 지도자의 피부를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처럼 유지할 것인가?
(308)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뇌 연구를 통해 천재성의 기원이 밝혀졌을까?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연구자들은 주목할 만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생각한다.
1999년 맥매스터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실제 아인슈타인의 뇌는 평균보다 작았지만 두정엽 같은 특정 부분은 평균보다 컸고
더 많이 발달해 있었다. 그 후 10년 넘게 지난 뒤에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의 연구진은 그의 뇌가 신경세포 대비 신경교세포 비율이 높았고 모든 신경교세포끼리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쉽게 설명하자면, 아인슈타인은 인지 능력이 높아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쉽게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나 현재에나 추측일 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뇌구조가 지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이해하는 여정에서 시작점에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