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신경과학은 내가 매일 하는 예사로운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인간의 뇌를 손에 받쳐들 때마다 경외감에 빠진다. 뇌의 상당한 무데(성인의 경우 1.4킬로그램), 기이한
균질성(꼭 탄탄한 젤리 덩어리 같다), 쭈글쭈글한 겉모습(둥그스름한 전체에 깊은 골들이 패여 있다)을 살펴보고 나면, 뇌가 순전히 물리적인 대상이라는 점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보잘것없는
물질 덩어리와 그것이 산출하는 정신적 과정들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16)
이제 아기의 스냅스 개수는 최대치에 도달했으며, 그
개수는 앞으로 아기에게 필요한 개수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연결들의 만발 대신에 신경학적
‘가지치기’가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된다. 당신이 성숙하는 동안, 당신이 가진 시냅스들의 50퍼센트가 감축된다.
(38)
요컨대 그 생일잔치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이미 퇴색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첫째, 당신이
보유한 뉴런의 개수는 유한하며, 모든 뉴런은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각각의 뉴런이 때에 따라 다른 연결망에 참여한다. 그 생일잔치에
대한 기억을 담당하는 ‘생일’ 뉴런들이 다른 기억 연결망에
동원되는 일이 거듭됨에 따라, 그 생일잔치 기억은 퇴색한다.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한한
개수의 뉴런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기억이 퇴색했는데도 당신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은
그날의 장면 전체가 기억에 남아 있다고 느끼거나 최소한 추측한다.
(64)
시각이란 눈에 들어온 광자들을 뇌의 피질이 손쉽게 해석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시각은 온몸이 참여하는 경험이다. 뇌로 들어오는 신호들은
훈련을 거쳐야만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훈련은 그 신호들을 우리 활동의 감각적 귀결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만 우리의 뇌는 시각 데이터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게 된다.
(74)
뇌의 작동도 마찬가지다. 뇌의 작동은 한 지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뇌의 어떤 구역도
격리되어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뇌의 도시에서 모든 일은 거주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그 상호작용은 온갖 규모에서 일어난다. 국소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먼 거리를 가로질러 일어나기도 한다. 열차들이 도시로 들여온 천연자원과
직물이 가공되어 도시의 경제에 편입되듯이, 감각기관들에서 유래한 미가공의 전기화학적 신호들은 뉴런들로
이루어진 초고속도로로 운반된다. 그러면서 그 신호들은 가공과 변환을 거쳐 우리가 의식하는 실재에 편입된다.
(86)
결론적으로, 당신의 머리 바깥에 있는 세계의 ‘참모습’은 어떠할까? 그
세계에는 색깔이 없을뿐더러 소리도 없다. 그 세계에 있는 공기의 압축과 팽창이 당신의 귀에 포착되어
전기 신호로 변환될 뿐이다. 그러면 뇌는 그 신호들을 감미로운 음악과 ‘쌩’하는 소리와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쨍그랑거리는 소리로 가공하여 우리에게
제공한다. 냄새도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뇌 바깥에는 냄새
따위가 없다. 공중에 떠도는 분자들이 우리의 콧속 수용기들과 결합하고 뇌에 의해 다양한 냄새로 해석될
뿐이다. 실재 세계는 풍부한 감각적 사건들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뇌가 손전등으로 대상을 비추듯이 고유한 감각 능력으로 세계를 비추는 것이다.
(110)
그러니 다음번에 사람이 걷거나 달리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거든, 잠깐 멈춰서 인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동작을 완벽하게 지휘하는 무의식적 뇌의 능력에도 감탄할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동작들의 복잡한 세부 사항은 수조 회의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그 모든 계산은 당신이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공간적 규모에서 당신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일어나는
신호 전달의 형태를 띤다. 지금까지 제작된 로봇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신체 동작에 훨씬 못 미친다. 게다가 슈퍼컴퓨터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에, 우리의 뇌는
놀라운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인간 뇌에 에너지 소비량은 대략 60와트
전구와 같다.
(121)
컵 쌓기 챔피언 오스틴 네이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몰입
상태에 진입한 극한 스포츠 선수의 뇌파는 의식적 숙고의 재잘거림(내가 멋있게 보일까? 내가 이러이러한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문을 잘
잠갔나?)으로 요란하지 않다. 몰입 상태의 뇌에 서는 ‘이마엽 저하(hypofrontality)’가 일어난다. 이 용어는 앞이마엽피질의 몇몇 부위에서 일시적으로 활동이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그 구역들은 추상적 사고, 미래 계획, 자아감에 주의 집중하기를 담당한다. 이 배경 활동들을 줄이는 것은
선수가 암벽을 타는 비법의 핵심이다. 딘이 발휘한 것과 같은 솜씨는 내면의 재잘거림이 없을 때만 발휘될
수 있다.
(142)
당신의 뇌는 경쟁하는 정당들로 구성된 의회와 유사하다. 정당들은
국가라는 배를 조정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당신은 때때로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때로는 자비롭게, 때로는 충동적으로, 또 어떤 때는 장기적인 전망을 고려하면서 결정한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욕망들로 이루어졌고, 그
모든 욕망들이 저마다 통제권을 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189)
전통적으로 뇌 연구는 고립된 뇌를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엄청나게 많은 외 회로들이 다른 뇌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는 깊은 수준에서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는 우리의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거래 상대들이 중첩되어 이룬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주위의 모든 곳에서 우리는 관계의 형성과 결렬, 친밀한 유대, 강박적인 사회연결망 형성, 충동적인 동맹을 본다. 이 모든 사회적 결합을 위한 접착제는 뇌 속의 특별한 연결망들에서 생산된다.
어지럽게 퍼져 있는 그 연결망들은 타인들을 주시하고, 타인들과 소통하고, 타인들의 고통을 느끼고, 타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타인들의 감정을 읽어낸다. 우리의 사회생활 솜씨는 뉴런 회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 회로를 이해하는 일은 사회신경과학이라는 신생 분야의 기초다.
(202)
나의 얼굴 근육은 나의 감정을 반영한다. 그리고
당신의 뉴런 장치는 이 사실을 이용한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려 할 때,
당신은 나의 표정을 흉내 내본다. 물론 작심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흉배내기는 무의식적으로 신속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 자동적인
거울 효과에서 당신은 내 감정에 관한 신속한 추정 결과를 얻는다. 이것은 당신의 뇌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더 잘 예측하기 위해 사용하는 강력한 묘수다. 알고 보면 이것은 수많은 묘수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212)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의 생존을 도울 수 있다. 그들은
더 안전하고 더 생산적이며 위기를 더 잘 극복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호 결속의 성향을 일컬어 ‘진사회성(eusociality)’이라고 한다. 진사회성은 혈연과 상관없는 무리, 집단, 나라의 형성을 가능케 하는 접착제 구실을 한다. 물론 개체 선택은
엄연히 일어난다. 그러나 개체 선택만 가지고는 인간의 행동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경쟁적이고 이기적이지만, 우리가 삶의 상당한
부분을 집단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면서 보낸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 협력 덕분에 인간 집단들은
지구 상의 모든 곳에서 번성하면서 사회와 문명을 건설해왔다. 고립된 개인들은 저마다 아무리 환경에 적합하더라도
절대로 이런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진보는 오르지 연합과 연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진사회성은 우리가 사는 현대세계의 풍요와 복잡성을 낳은 주요 원인들 중 하나다.
(277-278)
개별 뉴런은 어둠 속에서 산다. 뉴런 각각은 다른
뉴런들과 함께 이룬 연결망 속에서 단순히 신호들에 반응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개별 뉴런은 자신이 셰익스피어를
읽는 당신의 눈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혹은 베토벤을 연주하는 당신의 손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당초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른다. 당신의
목표, 의도, 능력은 이 작은 뉴런들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이 뉴런들은 자신들이 모여서 이루는 결과를 알아채지 못하는 채로 더 작은 세계에서 산다.
(285)
만일 의식의 업로드가 가능하다고 밝혀진다면, 다른
별들로 가는 여행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우리 우주에는 제각각
1000억 개의 별들을 거느린 은하가 최소 1000억 개나 있다. 우리는 그 별들 주위를 도는 외계 행성들을 이미 수천 개 발견했다. 그것들
중 몇몇은 지구와 꽤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지닌 생물학적 몸으로는 그 외계 행성들로 가는 여행이
영영 불가능하리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토록 먼 시공을 가로질러 그곳들에 도달할 전망이 전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디지털화되어 있다면, 당신의 시뮬레이션을 중단시킨
상태로 먼 우주로 발사한 다음에 1000년 후 어느 외계 행성에 도착할 때 재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의식은 당신이 지구에서 발사된 다음에 곧바로 새 행성에 도착했다고 느낄 것이다. 의식을 업로드하는 기술의 등장은 웜홀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일 것이다. 그
기술은 우리가 우주의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을 가능케 해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