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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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좋아하는 작가 천선란 님의 신간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고, 아빠는 바로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장바구니에 넣었단다. 이제 믿고 보는 작가가 된 천선란 작가. 이번에는 단편집이구나. 아빠가 원래 단편을 즐겨 않았는데, 최근에는 단편도 단편 나름 재미가 있더구나. 이번 천선란 님의 <노랜드>에는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단다.

늘 그렇듯 사람 향기 풀풀 나는 SF 소설들이었어. SF 소설을 쓰려면, 새로운 세계관이나 새로운 과학 규칙을 생각해 내야 할 것 같은데, 이번 10편도 제각각 새로운 세계관이 펼쳐졌단다. 마치 10개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단다. 아빠가 천선란 님의 책은 두어 권 안 읽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찾아서 읽어야겠구나. Jiny는 천선란 님의 <나인>도 재미있게 읽었으니, 이번 <노랜드>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구나. 한번 읽어보렴. 아빠의 편지에는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 있으니 책을 먼저 읽고, 다음에 이 독서 편지를 읽기를


1.

자 그럼 10편의 선물에 대해 각각 짧게 이야기할게.

<흰 눈 푸른 달>. 크람푸스라는 외계인의 침략이 있었고, 인류는 그들을 막기 위해 늑대 유전자를 이식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고 4년 동안 전쟁 끝에 승리를 하고 외계인을 쫓아냈단다. 전쟁은 끝나고 늑대 유전자를 이식한 늑대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없애야 할까?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겠는데그럼 다른 모든 사람을 늑대 인간과 똑같이 만들어?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은데..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격리하기로 했단다. 그러다가 적대 관계에 있는 다른 우주의 행성을 먼저 쳐들어가기로 했다는구나.

명월도 그런 늑대 인간 중에 한 명이었어. 격리 생활을 하면서 훈련을 했어. 우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지인이나 가족들의 면회가 있었는데, 명월은 친구인 강설이 면회를 왔어. 크람푸스가 쳐들어왔을 때, 강설의 언니는 크람푸스의 공격으로 죽고, 강설 마저 크람푸스의 공격으로 죽을 뻔했는데, 그때 명월이 나타나서 구해준 인연으로 친구가 되었단다. 강설과 명월의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하지만 찐한 우정이 그려지는 소설이란다.

<바키타> 바키타라는 외계종족이 지구로 쳐들어왔는데, 이 종족은 특이하게도 인류의 골칫덩어리 일회용품 쓰레기를 먹고 몸집을 키우는 종족이었단다. 그래서 지구인들은 바키타와 공존하면서 다시 일회용품을 맘놓고 쓰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바키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인공구조물도 먹고, 인간을 지배하고 사육하려고 했단다. 바키타들이 처음 지구에 왔을 때 인간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간 인간들그들과 공존하다가 그들의 가축 신세가 된 사람들. 하지만 스스로 문명 인간이라고 불렀어. 그들을 떠나 숲 속으로 숨어 들어가 살다가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다가 육식에 유리한 턱을 갖게 진화한 숲 속의 인간들.. 끝이 어떻게 되었더라

<푸른 점> 제목만 들어도 칼 세이건의 글에서 소설 제목을 따 온 것을 알 수 있었단다. 우주에 나가서 지구를 보면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인다고 했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게 되는 인류그 중 한 우주선을 이끄는 시에라 박 함장. 토성의 고리 근처의 웜홀을 앞두고 우주선 외부 작업을 하다가 푸른 점이 아닌 먼지에 뒤덮인 지구를 보게 되었단다. AI인 러스가 진실을 알려주었어. 지구가 옐로스톤의 화산으로 멸망했다고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인류를 구출하러 지구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는 시에라. 하지만 러스는 가능성이 없다고 했어. 그리고 지구가 멸망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했단다. 웜홀을 지나기 직전, 우주선에 있는 사람들은 지구의 마지막 모습, 아름답고 창백하게 빛나는 푸른 점을 보게 된단다. 그들은 그것이 지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홀로그램 상의 푸른 점이었단다.

….

<옥수수밭과 형> 푸코는 열한 살이고 자폐아의 천재였단다. 그런데 푸코를 아주 잘 보살펴 주었던 형이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단다. 그런데 며칠 뒤 옥수수밭에서 형을 다시 만났어. 그것도 건강한 진짜 형이었어. 이상한 것은 그 전에 있었나 긴가민가한 발목에 새겨진 9라는 숫자. 또 얼마 뒤, 부모님은 발목에 13이라고 써 있는 형을 데리고 와서 같이 지낼 거라고 했어. 옥수수 밭에서 만난 9번 형은 13번 형을 없애고 자신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단다. 그런데 며칠 뒤 이번에는 발목에 2번이 새겨진 형을 옥수수밭에서 또 만났단다. 처음에 백혈병으로 죽은 사람은 진짜 형이었을까? 그 형도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렇지 발목에 숫자가 써 있었던 건 아닐까? 형이 도대체 몇 명인 거야? 혹시 푸코의 발목에도 숫자가 써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 > 주인공은 해리성 인격 장애를 겪었단다. 몸은 하나인데, 영혼이 둘이었어.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약물을 먹고 그렇게 되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선천적으로 영혼이 둘이었단다. 둘은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로 서로 부르기로 했어. 재는 엄청난 천재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제는 무척 평범한 사람이었어. 가끔 어쩔 수 없이 재처럼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들킬 뻔한 적도 많았어. 둘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메모로 의사 소통을 했단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시간에서 잠에서 깨어난 제. 그러니까 그 시간은 재가 일어나 활동할 시간인데 제가 깨어난 거야. 재와 제에게는 동생 선이 있었단다. 그런데 선에 제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어. 재는 연구를 거듭하여 제를 죽이고 몸을 온전히 자기 혼자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했어. 선이 제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는 선은 재보다 제를 좋아하기 때문이었어. 그래서 선은 재가 알아낸 그 방법을 제에게 알려준 거야. 제는 이제 재를 없애고 온전히 자신이 몸을 다 차지할 수 있었어. 과연 제의 선택은? 이 소설이 아빠는 가장 마음에 들었단다. 대단한 상상력이시네, 이러면서 읽었어.

<이름 없는 몸> 한 고립된 마을이 있었어. 한쪽은 독암산이라는 산으로 막혀 있고, 나머지 3면은 바다로 둘러 쌓여 있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여서 먹고 인육도 먹는 것 같았어.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노리는 사람들도 많았어. 주인공 를 임신했던 엄마는 임신을 안 한 척하고 를 몰래 낳고, 몰래 키우고 해서 가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었단다. 나중에 엄마가 죽고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고 하러 그 마을에 다시 찾았는데, 그곳은 좀비들의 마을이 되어 있었단다. , 혹시 좀비 장편 소설의 프리퀄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전에 흡혈귀를 소재로 한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를 쓰시기도 했는데, 이젠 좀비 소설도 쓰시다니.. 영역 확장이 반갑더구나

<에게> 죽고 나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이들의 아주 짧은 소설이었단다.

<우주를 날아가는 새> 우리도 예전에 갔었던 강화도 전등사가 배경이란다. 어렸을 때부터 전등사에서 자란 효원. 지구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 되어서 우주선들이 인류를 다른 행성으로 실어 날랐는데, 효원의 부모님과 같은 효종 스님은 몸도 불편하고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우주선을 타지 않기로 했단다. 마음씨 착한 효원도 효종 스님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가지 않겠다고 했어. 둘만 있는 절에 한 새가 날아왔는데, 자세히 보니 몇 년 전에 치료해준 새였어. 그 새가 다시 왔다는 소식을 효종 스님도 기뻐하실 것 같아서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잠을 달게 주무시고 계셔서 이야기하지 못했어. 그런데 그 다음날 효종 스님은 일어나지 못하시고 열반에 드셨단다. 얼마 후 다른 스님이 헬기를 타고 오셨단다. 어떤 새가 염주를 물고 찾아왔다고그래서 마음에 걸려 다시 절을 찾아왔다고효원은 다시 헬기를 타고 같이 떠났단다. 동화 같은 이야기로구나.

<두 세계> 황유라와 황유진은 쌍둥이였단다. 유진은 늘 이 행성에 잘못 왔다고 이야기했는데,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단다. 유라는 노랜드라고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가상현실과 종이 책을 융합한 책을 만드는 일종의 출판사로 볼 수 있어. 그런데 어느날 크래킹 사고가 발생해서, <아락스>라는 책의 결론이 바뀌었다는 거야. <아락스>라는 책의 주인공은 아락스인데, 그 아락스가 소설 속에서 사라졌다고 했어. 확인해 보니 AI였던 아락스는 능력을 발휘하여 현실 세계의 사람의 영혼으로 이식한 거야. 그러니까 가상 현실을 떠나 현실 세계로 온 거지. 유라는 아락스가 이식한 신규영이라는 사람, 아니 아락스를 만났단다. 신규영이라는 사람의 몸에 들어 앉은 이락스. 신규영은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보니, 아락스는 그 또한 지금 세계의 밖으로 갔다고 했단다. 우리는 이 세상이 다 인줄 알고 살지만, 우리 세상을 들여다 보는 또 다른 세계가 있고, 규영은 그 세계로 갔다는 거야.. .. 그럴 법 하구나. 유라는 혹시 유진도 자살한 것이 아닌, 밖의 세계로 간 것은 아닌가, 생각했단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이인은 외계인 침입에 맞서 싸웠던 군인이야. 포르투갈 해변에서 싸웠어. 100여 일 동안 이어지던 전쟁은 끝이 나고 외계인은 물러갔어. 그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다. 전쟁이 끝나고 다들 자기 나라로 갔는데, 이인은 그냥 포르투갈에 남았어. 어느날 해변도로를 운전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중상을 입었어. 마침 붕대가 있어 응급조치를 했지만, 절벽은 너무 높아 오를 수 없었고, 외부인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고, 먹을 것도 없었어. 시간이 지나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았어. 며칠 뒤 그곳에서 지구에 남아 있던 외계인을 만났어. 그 외계인은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어. 자신의 존재를 비밀로 해주면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했어. 이인의 친구의 꿈에 이인의 모습을 나타나게 해주었어. 그래서 이인의 친구를 그곳으로 왔고, 이인은 구출되었단다.

….

읽은 지 워낙 오래 되었고, 급하게 이야기한다고 앞뒤 줄거리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을 거야. 이상하다고 하지 말고 스포일러 예방 차원이라고 생각하렴.^^ 너희들에게 독서 편지를 쓰다 보니, 다시 한번 소설의 스토리들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단다. 그럼, 천선란 님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며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안내 받은 장소에는 사람이 많았다.

책의 끝 문장: 이인은 이제 그 사람이 보이는 대신 언제 어디서나 딱-- 청아하게 퍼지는 새소리를 들었다.


우주는 공(空)이다. 존재에는 실재가 없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실재하지 않기에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그것을 기적이라 부를 뿐이다. - P296

세계와 자신의 불합치. 어떻게든 이 행성에서 살아갈 이유를 만드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끊임없이 이 행성의 출구를 찾는 존재. 합일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안. 이해 받을 수 없다는 외로움이 굳어져 만든 마음의 외벽. 동시에 이 세상에 입장해 꼬박 스물네 해를 넘긴 후에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 세상과 이 애의 관계였다.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애에게도 길이 될 수는 없었다. 그 애의 우물은 왜 생겨난 것일까. 유라는 고민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그 애조차 찾지 못했던 것이었으니 애초에 유라가 알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 P333

"저는 언제나 더 넓은 세계를 갈망했습니다. 그 욕망만이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머물고 있는 세계 밖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제 욕망은 오로지 그 세계만을 꿈꿨습니다. 제 바람은 언제나 바깥에서 불어왔습니다. 아무리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간다 한들 그 세계에 발붙이고 있는 한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 저는 언제나 괴로웠습니다. 당신은 제 고통을 모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 그 세계보다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갈 수 없는 그 고통 말입니다. 제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저는 욕망을 좇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은 세계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제 그 욕망이 그 세계를 벗어나 더 큰 세계를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계가 오롯이 저에게 고통만 준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 P351

삶과 죽음의 경계는 슬픔의 척도 같았다. 얼마만큼 슬프고 괴로운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삶에서 죽음으로 기꺼이 넘나들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거짓된 고통, 거짓된 슬픔 혹은 크지 않은 고통, 크지 않은 슬픔이 되었다. 고통과 슬픔, 좌절과 모멸, 증오와 살의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누간가 살라고 말했다. 죽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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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07 1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천선란 작가는 아직 못읽어봤는데 이 글 읽으니 읽어봐야겟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한국문학에서 sf소재의 글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거 같은데 소재의 확대라는 측면에서도 좋은거 같아요.

bookholic 2022-09-08 00:14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젊은 SF 작가들을 응원합니다 ㅎㅎ
그리고 바람돌이 님도 저랑 취향이 비슷하길 바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